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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복지론 과제

Shared on June 6, 2026

04:27:17

- 알아봐, 나한테 줄줄 알아? - 네. 할아버지가 1950년인 생일.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난 해. 2월 10일이야. 음력이니까 아마 4월 초쯤 됐겠지. - 대원한 곳이 어디세요? -

04:27:53

경상북도 상주군 흔히 말하는 TK 출신이야. 대구와 경상도를 일컫는 마을이 TK거든. 경북 상주군 낙동면 내공니야. 낙동강 있지 낙동강? 낙동강이 있는 옆이야. 낙동면이라고.

04:28:28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어떤 분위기였어요? 나는 태어나면서부터도 좀 더 다른 사람들하고는 특별한 삶을 살아, 특별하게 태어났다고 봐야지. 할아버지의 형이 3살 때 죽었어.

04:29:05

나하고 두 살 차이 있네. 그러니까 할머니가 우리 엄마가 아주 슬픔에 젖어졌을 때잖아. 아들을 잃고. 정신적으로 굉장히 슬플 때 내가 생겨났단 말이야. 생기고 낫지. 그래서 이렇게부터 우리

04:29:38

우리 어머니는 그때부터 이제 조금 정신적으로 신경세약 같은 정세가 시작한 거야. 아들을 잃었으니까 생때 같은 아들을 잃고 내가 태어나고 백일점에 정확한 백일은 아니고 백일점에 6.25 전쟁이 터졌단 말이에요.

04:30:11

북한에서 남침을 해 와가지고 한 열흘 후에 우리 집 있는 상주당이 북한의 남쪽으로 침략을 당해서 인민군들이 때로 몰려오니까 피난을 가게 되어서 강, 낙동강, 낙동강의 지른데 낙동강을 건너서 피난을 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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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그러니까 애기 낳은 지 또 얼마 안 돼서 완전히 그 요즘처럼 산후조리고 온다 이런 데 있었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건강에 회복이 안 된 상태에서 강물에 물을 이렇게 저어 바가지로 저어가면서 건너고 해서 아픈, 많이 아파서 혼미해요. 자주 혼미해서 혼절하는

04:31:19

그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나를 버리려 했대요. 나의 할아버지가, 나의 할아버지 되시는 분이 우리 아버지한테 명하기를 우리 아버지 그때 서른 살 아니야. 애는 또 낳으면 된다. 이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시기가 와서 다시 낳으면 되니까 버려라. 전쟁통에 버린다고 해서 크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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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 죽고 애기도 죽을 바에는 하나는 살려야 될 거 아니냐. 그래서 난 버려질 뻔한 위기에 처했었다고. 할아버지 형제 관계가 정확히 어떻게 되시죠? 할아버지는 6남매지만 죽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7남매인데 생존했던 사람은 6남매 중에 세 번째지.

04:32:26

아들, 딸, 아들, 셋, 딸, 셋의 가족에서 태어나서 내가 아들로 선 둘째, 위로는 누나 한 분 계시니까 내가 셋째 아들인 셈이지. 그 형이 죽은, 내 형이 살아 있었다면 내 짜들이 되는 셈인데 죽었으니까. 그래서 나를 버리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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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할아버지 알지? 왕 할아버지께서 나를 안고 나는 그때 백일이 이쪽저쪽 되기 때문에 어린 거 아니야. 어릴 때니까 나를 안고 산에, 뒷산에 올라가서 나를 버리려고 그랬어. 버리려고 하니까 참아 놓을 수가 없는 거야. 나를 부둥켜 안고 울고 있었대요. 울고 있을 때 한 동네에 같이 살던 이익집 아저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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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을 소를 찾아 헤매다가 그 소가 어떤 소냐 하면 인민군들이 키우던 소를 황소 한 마리 암소 한 마리 데려갔다는 것처럼 먹는다고 그래서 그 소를 내 소를 찾겠다고 산 속을 헤매다가 이렇게 보니까 아기를 부둥켜 안고 우리 할아버지가 우리 아빠가 그러니까 울고 있으니까 보고 어이 사람아, 자네 왜 거기서 울고 있나?

04:34:08

사실은 이만저만해서 이미가 지금 정신줄을 놓고 정신이 없어 혼자 해가지고 깨어나질 않았는데 우리 아버지 말씀이 "애를 버리라" 해서 버리려고 하니까 애가 나를 보고 자꾸 웃는다 이거야. 쎅쎅 웃고 있더라 이거야. "못 버리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냐 인명은 제천인데 나도 우리 집에

04:34:42

두 살짜리 딸아이가 있으니까 먹는 젖이 있다. 내가 가서 우리 젖이라도 먹여서 키우자. 산 사람을 왜 버릴려고 하느냐. 그래 해가지고 내려와서 나는 그 젖을 먹고 갔다는 거야. 그런 이야기야. 그런 거 다른 사람보다 좀 특별하잖아. 그러면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나 놀이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 추억이나 놀이? 네, 어린 시절 속에서. 그 어린 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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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까도 얘기했지만 글을 쓰는데 흥미가 있었어. 그래서 초등학교, 그때는 국민학교라고 그랬는데 국민학교에서 실시하는 백일장, 교내 백일장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또 우리 초등학교 대표로 상주군 백일장대회에 가서 입선을 하고 그런 거 주어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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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가 썼던 동시의 제목이 고구마야. 고구마. 우리는 논만 있었고 밭이 없었기 때문에 고구마를 안 키웠어. 그래서 고구마를 키우는 집은 그때만 하더라도 좀 먹을 게 있는 집안이었는데 밭이 없기 때문에 고구마가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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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고구마는 먹고 싶고 고구마를 키워서 다 캐고 난 다음에 이삭 이삭이 있을 수가 있어요 밭을 다시 한번 뒤지면은 거기서 이삭을 뒤져 가지고 다래끼 다래끼를 울려 메고 가는 쌀 쌀으로 만든 큰 짐을 옮기고 하는 다리기로 한 다리 키워왔어요. 그러니까 키워온 건 뭐냐

04:36:53

찢어지고 갈라지고 버린 거란 말이야. 그걸 갖다가 이렇게 집에 와서 삶아놓고 씻어서 쑥 삶아놓으면 우리 집에는 고구마가 없기 때문에. 시장에 가서 살려 하면 비싸고 그거를 이제 나는 뭐 다섯 살 그 형은 다섯 살이 만약에 열 살 이렇게 누나는 열두 살 뭐 이렇게 쭉 있잖아. 서로 먹으려 할 거 아니야.

04:37:25

이건 내 거다, 이건 내 거다 하고 싸울 거 아니야. 그거를 생각해서 내가 어제저녁 우리 형제 싸움 했지요. 한 바가지 고구마 마구 먹다가 너만 먹고 싸움 했지요. 저놈의 고구마, 면 고구마. 어제저녁 우리 형제 싸움 붙이고 그래도 다시 보니 먹고 싶어요. 그때 그 시를 다 기억하시네. 그럼 내가 상을 탔던 시인데.

04:37:59

그런 추억이 있고 다른 건 우리 또래의 집에서 돼지 키우던 일, 여러 가지 있지만 다 이야기하면 많고 시골에서 자랐으니까 운동회, 상주군 체육대회지, 구경을 가려면 30리 길을, 30리 라 하면 약 10키로야. 10키로 걸어서 가는 거야.

04:38:33

걸어서 가는데 그 중간에는 고아원이 있었어. 전쟁 고아원이. 고아원 애들이 우리 집에서 이제 도시락을 싸가지고 갈 거 아니야. 구경 간다고. 그 버스는 가끔 하루에 한 두 차례 가지만 돈이 들어가니까 못하고 집에서 엄마가 싸주는 김밥하고 이거 가지고 고구마하고 밤 이런 거 싸서 같이 불러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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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가 보면 고아원을 만난다. 고아원에 애들이 못됐어요. 애들이 우리 가면 고아원 애들이 밥이야. 고갯길에 있었는데 우리는 거기서부터 걔들이 겁이 나니까. 걔들은 이제 우리처럼 그렇게 가는, 우리는 시골이고 말하자면 걔들은 자동차 길가에 있으니까 깨친 애들이야. 우리가 싸가지고 가던 걸 다 뺏겨요. 애들한테 먹을 걸 다 뺏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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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빈손으로 그 후경 가서 배를 배가 고파서 쩔쩔 배를 굶고 오던 여러가지 추억이 있지. 그게 성장해서 지금 우리가 커서 가끔 고향에 내려가서 이렇게 보니 고원은 그대로 있는데 그 고개가 없어졌어요. 도로로 확장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 고개에 있던 흙이 많이 깎여 내려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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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지처럼 되었더라고. 그런 것도 있지만 내가 어릴 때는 높아 보였지만 내가 성장했기 때문에, 키가 컸기 때문에 낮아 보이겠지. 그런 추억 뭐 그런 거지 뭐. 한 이불에 6명이, 엄마, 아버지가 8명이 한 방에서 겨울이 되면 손 미불 덮고 자는데 추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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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엔 추워요. 문지방 해봐야 문쪽이로 창호지 한 장 사이로 바깥은 영하 13도 15도가 되는데 안에는 춥잖아. 추워니까 이불에도 두둠하게 덮어야 되는데 내가 서로 덮으려고 땡기잖아. 땡기다 하면 찢어져요. 찢어져서 또 엄마, 아빠한테 혼나던 일 뭐 이런 거 재밌는 일이 많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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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릴 때 가족들은 어떤 분들이셨어요? 할아버지,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초등학생 때 일본에서, 그때 일제시대란 말이야. 일본에서 한국에서 태어나서 일본에 이사를 해가, 이주해 가가지고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두 분 다 나오신 분들이야. 일본 말을 잘해요. 일본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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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일본 중에서도 도쿄에서 사셨기 때문에 일본어 중에서도 표준어를 사용하시는 분으로서 그러니까 자식들이 들으면 곤란한 이야기라든지 이런 말은 일본말로 했어요 부부가. 일본말을 해서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그게 커서 내가 일본어를 조금 하는 이유가 엄마 아버지가 일본으로 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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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내가 일본을 공부를 하기 시작하고는 궁금한 게 있으면 시골로 전화해서 아버지, 이럴 때는 어떻게 말합니까? 하고 물어보기도 하고 했었어요. 그래서 엄마는 그러니까 우리 엄마, 엄마는 우리 아버지가 경영하는 공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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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가내수공업을 하셨는데 그 공장 사장의 막내 아들이고 우리 엄마는 그 공장에 일하러 왔던 종업원의 입장인데 우리 엄마도 막내딸이고 그런 사이에서 내가 태어났지. 그러면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와의 기억 중에서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어떤 게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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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누나, 너희 엄마의 고모야. 누나와 나하고 일곱 살 차인데 누나는 동생들이 다섯 명이지만 특별히 유난히 나를 좋아했어요. 바로 밑에 동생은 두 살 차이고 나는 일곱 살 차이잖아. 누나가 뭐 신세대 여성이라 해가지고 그 시골에서는 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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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가는 그런 누나였었는데 동생, 남동생 세 명 중에서 나를 가장 귀여워 하셔가지고 나를 데리고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든지 맛있는 거를 뭐 사준다든지 이렇게 그런 기억이 있지. 그 누나도 84살이 됐고 나도 77살이 됐으니까 둘 다 서로 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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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나이가 다 됐네. 그 누나가 형제... 성격도 같고. 우리 집안에는 이상한 것이 6남매인데 남자 셋, 여자 셋인데다가 머리, 머리카락 색깔이 세 명은 새카매요. 세 명은 할아버지를 닮아서 일찍 이렇게... 색깔이 바렛고

04:45:05

그, 이를테면 나와 누나와 남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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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3명은 머리카락 색깔도 같고 성격도 비슷해요. 나머지 3명은 우리 형님하고 여동생 둘이하고는 엄마 쪽을 닮아서, 아버지 쪽을 닮아서 머리가 빨리 갈색으로 변하고 새치가 일찍 나고 했었는데 그 3명이 또 성격이 같아. 그래서 설날이나 명절때 유철을 놀잖아. 유철을. 유철을 울면 편을 짜게 되거든.

04:46:28

편을 짜면 꼭 그렇게 짠다고. 머리가 까만색 한 편. 나, 누나, 남동생, 우리 세명이 한 편. 저쪽 형님, 여동생 둘. 그쪽이 3대 3 아니야. 엄마까지 4명, 3명. 편을 갈라서 유치원 놀고 게임을 하거나 하면은 항상 그렇게 했어. 하나님께서 머리가 까만... 나는 가만히 향해 있는데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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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 넘어가니까 나도 흰색이 나오더라. -그렇군요. 그러면 학창시절에 학교생활은 어떠셨는지? -나는 그냥 보편적인, 나 시골에서 대구로 유학을 가는 입장이니까. 시골에서 초등학교 나가고 대구로 가서 중학교 다니기 때문에 특별한 건 없지만 제가 특별히 노래를 잘했어요.

04:47:35

음악 시간에는 항상 선생님의 가곡이나 뭐 이런 거 한 번씩 배우잖아요. 오가며 거짓말플, 현재명 작사 작곡 거짓말플 이런 노래 요새는 너희들이 배우는지 모르지만 그 노래 한 번 가르쳐주고 그때는 학교에 피아노가 없어요. 풍금이 있었지. 풍금으로 이렇게 하고 한번 해보라 한단 말이에요. 해보라 하면 노래할 사람 하면서 내가 손을 들어요. 한번 손을 들고 그 노래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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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그 음악 선생님은 들어오면 김태식 일어서 나를 시킨다고 놀아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무래도 의학에 조금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빨래를 하고 밥을 해 먹어가면서 잡취생활을 했어요 형님하고. 방 한 칸을 전셋방으로 얻어가지고

04:48:42

대구에는 전셋방이나 보지방이라고 해요. 보지 세를 주고 방을 얻어서 자취를 했단 말이에요. 자취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그냥 우리가 엄마 아버지가 밥을 해주는 게 아니라 부모 밑에서 크는 게 아니라 우리가 방 하나 세워서 거기에서 쌀은 집에서 보내주고 반찬 우리가 사가지고 만들어서 먹고 이렇게 학교 가고 설거지 빨래 이런 것도 다 우리가 하는 거야.

04:49:15

나는 13살에 그걸 했어요. 했는데 형님하고 나이가 5살이기 때문에 형은 고등학생이고 고등학교 3학년이고 난 중학교 10학년이고 다 밥 담당 뭐 이런 거 다 내가 하는 거냐. 요즘 너희들은 그런 거 못 할 거야. 나는 13살에 김치 담아 먹고 했어. 봄이면 요새 제주도에 그 유채꽃 많이 피지. 그 유채꽃이 꽃이 피기 전에 그거를

04:49:49

김치를 만들어서 먹는다고. 그런데 그때 냉장고가 없으니까 이렇게 놓으면 바깥에 놓으면 쥐가 자꾸 물어가버리나 없어지기 때문에 연탄불을 연탄가에 놨더니 불 옆에 놓으면 김치가 어떻게 되겠나 냉장고도 없으니까 하루만 되면 팍 싹 그러면 또 찌개 해서 먹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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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는 뭐 내가 밥을 해 먹고 빨래도 내가 하고 하고 학교 다녔지. 그러면 그 당시 사회 분행이나 유행했던 누나 같은 거 기억나는 거 있으실까요? 뭐 가난할 때니까 전쟁이 끝나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가난한 때니까 거리에 거지들이 많았고 시골에 살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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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등학교 때는 시골에 살았잖아. 시골에서는 우리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남 보태주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그때는 우리가 우리 동네에서는 땅도 한 30마지 이상 됐기 때문에 좀 부자였었어. 그러면 거지들이 상위 군인들, 6.25 전쟁 때

04:51:27

다리를 다치거나 팔을 다치거나 이런 사람들 목발 짓고 이런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우리 집에 한 사람이 와가지고 바가지에 곡식을 조금씩 주잖아. 우리가 동냥을 주고 가면 그걸 듣고 그 집에 가면 뭐 주더라 하니까 뚜루루루룩. 문냥 의지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뭐 학교에서는 뭐 한일회담 반대니 뭐니 데모를 많이 하고 그러던 시절이지. 그렇지만 난 너무 어리니까 그런 데는 관심이 없었고 사회적으로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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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청년기록과서 젊은 시절에 가장 이루고 싶었던 꿈은 어떤 게 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나는 아까도 얘기했지만 어릴 적부터 글을 쓰고 음악을 하고 이런 게 하기를 좋아했었는데 그것은 유명한 작가가 되어야 되겠다.

04:52:44

또는 소설가가 되겠다 했는데 꿈도 자꾸 변해요. 자꾸 변해서 그것도 뭐 제대로 안 됐고 내가 외국에 가서 살아야 되겠다. 미국, 미국이지. 외국이라 하면 영어에 흥미를 느끼면서부터는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아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하나도 제대로 된 적은 없지.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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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마지막으로 우선 먹고 살아야 되니까 취업을 해야 되겠지. 취업을 하면은 어디다 해야 되겠느냐. 내가 이왕에 직장을 가질 바에는 내가 남들에게 봉사할 수 있고 내가 그 내 직업에 대해서 스스로 자긍심,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그런 것을 한번 택해야 되겠다.

04:53:49

그래서 경찰관이 되기로 했지. 경찰이 됐는데 경찰 퇴직한 지도 지금 벌써 20여 년이 되지만 지금 생각해도 잘했다. 그렇기 때문에 계급 사회 아니냐. 거기에서도 또 내 나름대로는 같은 동기생,

04:54:21

700여 명 중에서 제일 먼저 항상 진급을 입시했었고 제일 선수주자자였었어. 그리고 또 여러 군데를 다니면서 보지기동을 통해서 여러 군데 이쪽에서 근무해서 아는 사람도 많이 사귀었고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에서도 근무를 했고 아 이런 것이 권력이구나 하는 것을 뭔 언저리에서도 느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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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이 되기 위해서 가장 노력하신 게 있으실 거 아니에요? 그럼 가장... 그때는 뭐 내가 경찰관이 되기 위해서는 이미 결혼을 한 후에 경찰관이 되었는데 그 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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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공무원들 시험과목과는 조금 단촐하다 할까. 수학이 없었어. 수학. 나는 어릴 때 수학을 못했는데 수학이 없고 역사, 국사와 논문. 그 다음에 일반 상식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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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석 달간 죽으라고 업무를 했지. 일을 하면서 점심시간, 밥 먹고 밥상 빨리 물리고 거기서 보고. 나는 다행히 신체가 건강했으니까. 경찰관을 하려면 신체가 건강해야 돼요. 뚜렷한 자기주관이 있어야 되고. 외모도 괜찮잖아. 외모도 본다고.

04:56:38

그러니까 그때 당시에 대구에서 시험을 봤는데 734명이 시험을 봤는데 필기시험에서 절반이, 신체검사에서 절반이 떨어지고 350명이 필기시험을 봐가지고 34명이 최종 합격됐어요. 그게 내가 합격한 거야. 10대 1이지. 34명이 최종 면접시험을

04:57:10

부평에 있는 종합학교, 경찰종합학교에서 마지막 면접시험을 보는데 얼마를 왔느냐 하면 전국에서 또 한 700명이 왔는 거야. 거기서 최종 합격하기를 34명이 갔는데 전국에 한 700명이 됐어.

04:57:43

절반을 확 추려서 한 350명 합격하는데 합격을 했지. 해서 첫 근무지가 청와대 근무였어요. 청와대 외곽규모, 청와대 관절을 지키는 경찰관이 됐지. 그러면 경찰관 일을 처음에 시작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드셨어요? 기본? 내가 원하던 바를

04:58:13

내가 원하던 경찰관이 되었으니까 마음속으로 자랑스럽고 뿌듯했었지 뭐. 영어 식으로 말하면 I have a big proud of me. 그러면 그 경찰관 생활하면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일이나 힘들었던 경험은 어떤 게 있을까요? 말했지만 그걸 일일이 어떻게 설명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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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건 조금 전에 차에서 말했다시피 원체 가난한 박봉에 봉급이 적어 경찰관에 일반 공무원보다도 오히려 적어 삼남매를 넣고 색방살이를 하면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까 한창 어린 애들, 어린 삼남매

04:59:20

먹고 싶어하는 우유도 제대로 못 먹이고 키운 게 지금 이렇게 생각하면 안타깝지. 그러나 남한은 그런 게 아니야. 그 시절에는 전체 국민 소득도 낮았고 차차차차 경제가 좋아지면서 이제 경찰관 봉업도 올라가고 오늘날에는 경찰관이 되려면 그때보다 더 힘들어요. 경찰관이 되려고 십수, 이십수까지 하는 사람도 있어요.

04:59:59

대수, 삼수를 떠나가지고 10년씩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어. 근데 나는 한 번만에 대했으니까. 그런 자부심도 있고. 그럼 가장 보람이 있었던 일이 어떤 게 있을까요? 그러니까 내가 35살 때부터 35살이 34살이나 84년도, 34살이구나. 34살부터

05:00:30

아주 소장을 해서 소장으로서 근무를 함으로 해서 동네 어른이란 말이에요. 한 동네를 맡아서 치안을 담당하던 사람으로서 이렇게 거리에 나섰을 때 시험을 같이 본 동기생들보다도 월등히 빨랐고 지역 주민들이 어느 소장님 뭐든

05:01:04

그때는 경찰대학이 없었지. 경찰을, 감보호생 출신입니까? 어떻게 이렇게 젊은 사람이 왔습니까? 하고 그렇게 묻기도 하고 했지만 내가 이렇게 나는 주로 대학교 앞에서 근무를 했는데 고려, 처음 한 대가 고려대학교 앞 파주소장을 했는데 거기서 학생들을 도와줬던 일,

05:01:36

이를테면 학생들이 그때만 해도 데모를 많이 했어요. 그렇죠. 전두환 정권 물러다라나 뭐 하는 이런 데모를 많이 했었는데 데모 끝나면 꼭 우리 파출소 뒤에 있는 술집에 와서 막걸리를 먹고 안주를 시켜놓고 데모가를 부르고 하다가 후삭삭 도망가고 했어요. 돈 안주고

05:02:10

그런 애들이 많았어. 왜냐하면 고려대학이라는 데가 지방에서 온 학생이 많아요. 지방에서 공부계는 한다는 우수 학생들이 지원하는 데가 고려대학인데 그러면 술집을, 식당이나 술집을 하는 주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겠냐. 저 사람 학생들, 도망가다가 붙잡힌 학생도 많아요. 처벌해 달라고 데려올 거 아니야. 데려오면 내가 대신 식사들을 줄테니 다는 안 주고

05:02:45

말은 주지는 못하지만 절반에 내가 보상해 줄 테니 이 학생들에게 그냥 돌려주시오. 그래서 무말을 시키고. 그러면 또 이 주인들은 받을 소장 체면을 생각해서 아이고, 됐습니다. 나도 자식 키우는 사람인데 오죽 먹고 싶으면 그렇겠습니까 하고 또 이해하면서 돌아갔고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듣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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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부모들 전화를 하거나 오거나 해서 "사장님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때 보람이라면 보람 아니었을까? 그럼 이제는 결혼과 가족 형성적인 쪽에서 말해보면 할머니를 처음 만나셨을 때의 이야기나 결혼 후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까요? 할머니를 만나게 된 것도

05:03:52

아주 재미있는 영화 같은 스토리야. 내가 해군에서 근무를 했는데 우리의 고모님께서 시골에 경상북도에서 제일 큰 과수원을 했어. 사과과수원. 그 과수원 이름이 에덴 노원이야. 성경에 나온 에덴 있잖아요.

05:04:25

에덴 동산. 거기를 내가 휴가를 얻어서 해군복을 입고 나와서 이렇게 고무실을 한번 가봤더니 하.. 사과나무마다 처녀들이 시골 처녀들이 사과를 따고 하는 사과나무마다 매달려 있는 거야. 사과를 딸 때 보면 바구니 옆에 놓고 사과를 이렇게 바구니에 담고

05:04:59

나무 하나에 한 5명씩 붙어 있거든. 난 총각 아니냐. 우와 멋있네. 완전히 그립 같잖아. 영화 같잖아. 근데 사과 맛도 있고 그 집에 가면 그 고모집에 사과도 먹고 먹고. 사과도 먹고. 아가씨들, 예쁜 아가씨들도 많고. 그래서 이제 제대로 했단 말이야.

05:05:33

대구에 있을 때 한번 가봤던 기억이 있고. 그다음에 제대를 해서 서울에 무작정 상장해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어요. 내가 직장생활을 했는데 처음 직장생활은 알루미늄, 백색 알루름을 칼라 알루름으로 바꾸는 그림입니다.

05:06:06

할미늄 회사에 공장 종목으로 들어갔어요. 공원으로. 경찰관이 되기 전에. 할머니 만나기 전에. 그러다가 봉급이라고 타 보니까 그때 만팔처럼 이렇게 하는데 도전히 그걸 가지고는 서울에서 새 빵도 하나 제대로 밥 먹고 나면

05:06:39

저축할 돈도 없고 시골에 아버지 돈 보내줘야 될 거 아니야. 그걸 주고 나면 내 손에 남는 건 하나도 없고 저축도 안 되고. 그럴 때 이제 시골에 새마을운동이라는 바람이 확 불었어. 박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께서 시골에 초가집도 고치고 전기도 넣고 잘 살아보세요, 잘 살아보세요 하면서 그때 국민적인 운동이 한창 펼쳐질 때야.

05:07:10

그때 내가 결단을 했다면 내가 도저히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해가지고는 웃고 살지 못하겠구나. 내 앞이 큰 감이에요. 그래서 시골에 내려가야 되겠다. 시골에 부모님이 계시니까.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묻혀있는 선산이 있잖아요. 조상들이 대대로 묻혀있는 산이 있다. 야산. 산에다가 내가 지을에다.

05:07:42

집이라도 하나 짓고 거기에서 메추리를 키워야 되겠다. 닭보다 적은 게 메추리야. 그걸 사가지고 딱 내려갔더니 할아버지가 무슨 소리 하느냐. 나는 너한테 물려줄 땅도 하나도 없고 농사질 땅도 없고 내가 양계, 양계라는 거는 닭을 키우는 걸 양계라고 그래. 양계장을 하다가 돈을 스무 마징이나 팔아먹은 사람이다.

05:08:18

"그러니까 당장 올라와라 이거야." "그러니까 내가 갈 데가 어디 있나?" "올 데가 없어서 왔는데." "아버지, 갈 데가 없어서 내가 지금 서울에 가서 직장생활 한 3년 해보니까" "도저히 내가 거기서 그런 식으로 해가지고 나를 학교를 뭐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앞길 막막하니까" 시골에 와서 뭔가 살아보겠다고 왔는데

05:08:51

가라 하면 내가 어딜 갑니까? 나 안 가랍니다 하고 고집을 부렸더니 그러려면

05:09:04

내가 우리 누나가, 그 할아버지 누나 아니야. 할아버지 큰 누나가 큰 가수원을 하는데 거기 가서 일을 하려면 한번 해봐라. 그래서 할아버지 따라서 갔다 말이야. 그게 경북 어성에 있는 에덴 노원이야. 거기서는 마침 일할 사람이 필요한데 트랙타, 경기 이런 기계를 만질 사람의 기술이 있고 한 젊은이가 필요한데

05:09:40

마침 내가 남도 아니잖아. 조카니까. 나는 어린 마음에 좋단 말이야. 사과도 있고 처녀들도 많고. 거기 가겠다. 그래서 거기서 만났지 할머니하고는. 할머니하고 만나가지고 만났지만 다른 처녀들은 나는 봐. 서울에서 온 총각 아니야. 그 시골에서는 그 동네에서만 나고 사간 처녀들이야.

05:10:11

그러니까 내가 눈길만 주면 농담으로 다 나한테 참 내가 하자 하는 대로 뭐 차를 한잔한다든지 만나자 한다든지 하면 다 할 사람이지만 유독 너 외할머니만큼은 들은 척도 안 해 본척도 안 해 나는 그 사람이 좋단 말이야 그런데 할머니는 또 그 인근에 살면서

05:10:46

딸이 여덟 명이야. 아들은 누구도 어리고 십 남매나 집에서 태어난 셋째 딸이야. 셋째 딸은 옛날부터 얼굴도 보지 말고 하라 했지. 할 정도로. 예쁜고 순진하고. 근데 거기서 아무튼 만났어. 만나가지고 내가 어렵게 결혼도 어렵게 했어요. 왜냐하면 그쪽에는 딸이 많으니까

05:11:23

하나하나 빨리빨리 시집을 보내야 될 거 아니야. 올해는 소 한 마리 키워서 시집하자. 팔아서 시집 보내고. 또 그 외할머니의 할머니, 양자로 들어간 집이야. 손이 귀하다 보니까, 후손이 귀하다 보니까 애를 많이 낳으러 한단 말이야. 그래서 외할머니 아버지는 아들 둘만 놀아 하기 때문에

05:11:57

놀다 보니까 딸을 8명이나 낳았다고. 그러니까 스무 살, 스물한 살만 되면 다 시집을 보내요. 나는 그때 뭐 할머니하고, 내가 좋아하긴 했지만은 손을 한 번 잡아봤나 말로만 그렇지. 그런데 그 어린 나이에 스물하나, 스물 둘만 되면 시집을 보낸다 말이야.

05:12:32

같이 한 과수원에서 일을 하잖아. 할머니가 안 보이더라고. 나는 그 때 별명이 처녀들이, 일하는 처녀들이나 모든 사람이 나를 부를 때 '타킴'이라 불러요. 왜? '미스터 킴'이라 하려 하면 너무 길잖아. '타킴요' 이랬단 말이에요. 어성 사투리로 '미스터 킴'이라 너무 길지, 기니까 '타킴'이라. 그래서 내 이름은 '타킴'인데

05:13:09

할머니는 나는 뭐라고 했냐면 신냥 신냥 이랬다고. 신씨잖아. 그러기만 했지. 둘 사이에는 1년간 가까이 같이 있었으면서도 일은 같이 하다가 몸도 부딪히고 했지만 한 번도 손을 잡으거나 개인적인 만남은 한 번도 없었어요. 나만 좋아했는 거야. 하루는 안 보여. 안 보이길래.

05:13:43

여기에 우리 고모댁에 밥 먹고 한 고모댁에 부엌 일하는 아줌마. 식모라 그랬지. 아줌마가 할머니의 이모야. 친이모인데 내가 물어봤어요. 아니 그 이모님 왜 신양이 안 보입니까? - 아, 이런 거가 있어요. - 응, 응.

05:14:17

그 나이에 무슨 약혼. 그 집엔 딸이 많아서 한 해 농사지면 하나 보내고 한 해 농사지면 하나 보내요. 그래요. 내가 굉장히 뭐라 할까. 안타깝다 할까. 아쉽다 할까. 난 좋아했는데 잘 살아라 하고 마음속으로 빌고 있었어. 근데 저녁에 아크델이가.

05:14:53

전기도 안 들어올 때야. 그 이야기, 내 이야기에 우리가 할머니하고 할아버지하고 만났던 이야기를 하려는 소설로 내가 쓰다가 말았잖아. 그걸 민경이한테 나중에 써라, 써라 하는 판이야. 그건 할머니 입장에서는 엄마 아버지가 연결해 주는 사람하고 만나러 갈 수밖에 더 있나. 그걸 갔는데 내가 아른거리로 들어간 거야.

05:15:29

그래서 시골에는 약혼이라는 게 어떤 건지 아님. 아까 우리 갔던 중국집 있지. 그런 시골에 있는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 하나 시켜놓고 양가 부모가 만나가지고 요즘 말하는 상견례처럼 약혼 반지 주고받고. 그 다음에 가는 데가 사진 찍는데 사진 찍고 나면 그게 약혼이야. 그리고 날 잡아가지고. 그런데 그 가지는 따라가는 거야.

05:16:02

아버지 급도 나고 하니까 뭐 가족하는 데로 갔지. 하지만 사진 찍으러 가면서 나 화장실 갔다 온다고 도망 온 거야. 나한테 도망 온 거야. 사실 할머니도... 대단한 용기 있는 사람이야 그때 당시에. 별로 내색은 안 하셨지만... 안 했지만 나를 좋아했지. 그런 스토리가 있어. 거기서는 의성읍이라 하는 데서. 의성읍에서 우리가 있는 에덴 농업까지는

05:16:41

버스를 타고도 40분을 나와야 돼. 나가서 걸어서 할머니가 사는 데서 에덴 농원까지는 아스팔트 포장도 안 되는 자갈 길이야. 한번 차가 지나가면 먼지가 아~ 이렇게 왔는데 발가락이 다 피가 날 정도로 돼 가지고 왔더라고. 나한테 온 거야. 무작정 상경하듯이 아무 계획이나 이런 것도 없이 그냥 내가 저 사람하고 하지 말고 탈출을 해야

05:17:13

그런 마음으로 뛰어온 거야. 나는 그때 뭘 했느냐. 그때 TV에서 유제도 선사하고 프로복싱 근투 경기를 할 때야. 나는 거기에 엄청 집중해 있었어. 포기를 했고 나는. 내가 좋아했는데 좋아했지만 나는 결혼할 준비도 안 됐잖아. 나이 23세 무슨 준비가 돼 있겠니. 그러니까 그래. 나는 내가 너를 좋아했다면 누구하고 결혼을 하든 부모가 전지해 주는 사람하고

05:17:54

행복하게 잘 살아라. 그쪽에서 누가 하고 왔다면 이 동네에 사는 서울에 사는 종각하고 이렇게 했던 거야. 그런데 이리 왔으니 TV에서 유제도 선수가 막 들어가다가 일본 사람이 와지마 고이치라 하는 선수가 넘어질라 넘어질라 하는데 부엌에서 일하는 아줌마가 말이야. 그때 이모하고 다른 신모가 바뀌었을 때

05:18:26

빨리 나와보라는 거야. 왜요? 왜요? 나는 눈은 저기 있고. 그래서 빨리 오라고. 왜요? 왜요? 왜요? 큰 소리를 못하고 누가 다른 사람들 들을까. 신양이 저기 와 있다 이거야. 신양이. 신양이 오늘 약혼하나 갔다는데 무슨 소리여? 지금 넘어가나가는데. 아 그거 볼 데가 아니라고. 지금 저기 과수원에는 못이 있어요. 나무에 물을 주기 위해서 못을 파는 게 있잖아. 그게 과미라기 말하는데.

05:19:05

못가에 가봐라 이거야. 못가에 와 있으니까. 그래 하고 할아버지 기분이 어떻겠냐. 깜짝 놀라고. 야, 나만 좋아했는 줄 알았더니 결국은 신장도 나를 좋아했나 보다. 그 반갑고 고맙고 이제 나만 좋아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사랑을 확인했는 그런 감정이 교차해서

05:19:39

이거 건축중계 이거 모든 거 때려치고 막 뛰어갔다가 거기서 한 100m 정도 돼요. 시골에 전기가 뭐가 있나. 가다가 눈에 찔리기도 하고 이러고 사과나무가 이렇게 사이사이에 있는데 그런 거 없어요. 그러면 그렇지. 다시 돌아와서 빨리 가서 건축중계를 봐야 될 거 아니냐. 막 하는 바는 뒤에서 확 잡더라고

05:20:14

첫마남이 우리는 모가지 잡는 이렇게 뒤에서 날 끌어안았어. 할머니 나와서. 그래, 그래서 우리 첫 대화를 나눈 게 소설이고 영화 같은 이야기지. 그러니까 여보, 여보가 아니지. 아이고, 웬일이야. 오늘 신형 약혼 났던 한 사람은 왜 여기 오느냐고. 그러니까 박혜는

05:20:50

그럼 우리 도망갑시다. 이게 나이야. 너 그런 용기 있겠냐? 엄마 아버지가 정지해 주는, 내가 전에 얘기했지만 다니던 고등학교, 용하 고등학교 바로 옆에 면허 시험장 있잖아. 내가 면허 시험장 근무할 때 여자 경찰관들, 여경들이 6명이 있었어. 그때 내가 계장이거든. 계장님

05:21:22

사모님하고 어떻게 만나셨어요? 사모님 그렇게 예쁘신데. 그런 이야기를 해주면 어머나. 도북대학에 한 명이 있었는데 상명여대, 상명여대 나오고 국민여대 나오고 이랬던 여성분들이 사모님 대단하세요 용기가. 우리 같으면 그래 못한다 이거야. 그래서 만났어요. 이제 질문에 요지는 어떻게 만났느냐잖아.

05:21:55

그래서 어렵게 만났어. 그러면 다음 과제가 뭐겠냐. 지금 우리 장인, 할머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딸을 좀... 이게 참 큰일 났잖아. 저쪽 사돈이 될 집안하고 그 총각한테도. 그 총각한테도 큰 상처란 말이야. 딱 하늘... 했는데 다 했는 거나 마찬가지지 뭐.

05:22:27

그래서 신부가 도망갔으니. 동네 시골이니까 그런 소리 들으면 파원당했더니 뭐 이런 창피하기도 하고. 보통 일이 아니잖아. 법적으로 얘기하면은 민사상 손해배상을 그쪽에서 만약에 청구한다면 손해배상을 해줘야 될 입장이야. 법적으로는. 그런 일을 저지르는 거야. 나야 좋지.

05:22:59

그러나 좋은 반면에 한편, 자, 나를 좋아한다 하지. 이런 일을 벌이는 날 어떻게 살아야 되겠는가. 그런 생각도 또 순간 참 좋잖아. 그래서 내가 첫 마디가 좋다, 신양. 나는, 나는 내가 혼자만 쫙 사랑했는 줄 알았더니 너도 나를 좋아한다는 게 확인이 됐다. 그걸로 난 대만족이다. 그러나, 이제 알다시피 난 아직 나이도 어리다. 내일에 대한

05:23:32

정확한 설계도 돼 있지 않나요? 더군다나 결혼이라는 건 나이 23살에 아직 돈도 10원도 없고 물려받을 유선도 없고 현실을 맹호하다. 그러니까 나는 됐으니까 나한테 달려온 것만으로 나는 충분하니까 내가 집에 데리고 갈 테니 잊어버리고 그 부모가 점지해 주는 대로 부모 입장들이 곤란하셨나 지금 곤란한 거

05:24:08

하지 말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그쪽으로 결혼을 해라. 다만 큰 일을 버려놓고 집에 와서 내가 너지까지는 내가 데려다 주겠단 말이야. 그때 내가 자전차가 있었어. 저 시골에 자갈길이 아스팔트 포장에 자갈이 털덜컹털덜컹하는 그런 데인데 자전차 뒤에 이렇게 타를 하고 내가 앞에 타다가 조금 길이

05:24:40

괜찮은 데는 타고 안 되는 걸고. 그렇게 가서 거기에 시골에 다리가 있어요. 시멘트 다리가 있는데 그걸 공사를 하는 중이었어요. 다리 밑에 우선 여기서 너 집이 얼마 안 되니까 너 집을 내가 알고 하니까 여기 잠깐 기다리라. 너 아버지 엄마는 너 찾아라 당길 거 아니냐. 큰일이다. 그래, 갔다가 얘기할 테니까 해라 하니까.

05:25:12

더 가지 말고 이 길로 도망가자고. 도망가고 철퉈이고 도망가고. 돈이 있나 뭐 가니. 어린애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앉혀놓고 내가 갔단 말이에요. 가보니까 지금 그 할머니의 맨 막내동생이 6살인가 그래요. 그 밑에는 4살이고 둘이 남매간에 놀고 있더라고. 도망가. 야 엄마 아버지 어디 가셨냐 하니까. 이제 의성 사투리가 그래.

05:25:48

모세에 갔니더 이러더라고. 모세 왜? 우리 누구야? 우리 누나가 누나 찾으러 갔니더. 이렇게 한단 말이야. 내가 모르는 척하고 누나 어디 갔는데? 몰라요. 모세에 빠져 죽으러 왔는 말이야. 그 할머니의 엄마 아버지가 딸 찾으러 혹시나 싶어서 집에도 없지.

05:26:23

오세가 죽었나 하고 횃불들고 그 차대로 갔대요. 한참 있다 보니까 들어오시더라고. 내가 이렇게 인사를 하니까 장모님은 나를 알거든. 할머니의 엄마를 알아요. 왜냐하면 나를 어떻게 아는 내가 그 동네에서 시골에 노래자랑 콩쿠드 대회를 했어요. 노래자랑 대회를 하는데

05:26:54

올라가서 내가 몇 등을 했다고 이별이라는 노래를, 패티키며 이별이라는 노래를 해가지고 등수 안에 들어가서 했기 때문에 그 동네 사람들이 다 박수를 치고 저 사람이 에덴 농원에서 이런 트랙타 운전사다. 타킴이다 하는 걸 다. 처녀들이 얘기했을 거 아니에요. 그 동네 처녀니까. 아 우리 타킴 나왔다고 말이야. 그때는 할머니도 와서 구경을 했었고 할머니의 엄마도

05:27:30

구역을 했기 때문에 안 알아요. 아 그거 왜 안 읽게 하더라. 사실은 신양이 나한테 찾아왔습니다. 뭐라고? 하면서 안도했을 거 아니야. 죽은 건 아니구나. 진작 말하지 말이야.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관식장에 안 갈라 하더라. 그런 사연이 있어요. 그래 그래 만났어.

05:28:02

"저희 장인 방에 들어가서 얘기하자"해서 방에 가서 내가 저를 하고. "자네가 이대로 원해서 일한다는 타켄인가 그 사람인가?" "자네한테 왔다고? 우리 딸 어디 있노?" "제가 데리고 왔습니다." "그 단들에 딱 봐도..." "자네가 우리 집에 몇일이 와서 경황 중에..."

05:28:35

어르신께서 경황 중이시겠지만 딸이, 아버지 겁이 나서 못 오니까 제가 먼저 왔습니다. 먼저 왔는데 나는 아버지, 아버님, 어머님께서 정제하시는 대로 결혼 응하라. 아버지 말들었고 응하라 했지만 그리고 고지국이 굉장히 고소하고

05:29:10

나하고 둘이 서울에 가서 당신이 사과를 만질 줄 아니까 사과를 미화과를 끌면 뒤에서 느끼겠다고 같이 살자고 이렇게 하니 저한테 한번 기회를 주십시오. 어려우시겠지만 사실은 저 신장을 사랑합니다.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05:29:41

3년 내지 5년만 고생하면 밥은 안 드는 일이겠습니다. 그러니까 뭐 장애인, 우리 장애인께서 생각하시기는 벌써 얘들은 일반적으로 얘기하듯이 사랑해서 잠도 같이 자고 이렇게 한 그런 사이인 줄 알지. 안 하시겠지. 그러시면 그건 아니란 말이야. 내 입장에서는 손도 한 번 제대로 안 잡아봤는 거야. 1년 반 동안. 그렇게 우리는 만났어. 어떻게 만났느냐고 물었기 때문에

05:30:16

그래가지고 사랑의 이야기를 다 하려면은 끝이 없어요. 한 종이라도 그 집을. 자 우리 장인의 과제는 저쪽에 가서 또 달려야 될 거 아니야? 이만저만 제가 잘못했습니다. 얘만 우리 딸이 아니고 밑에 딸도 있어. 오늘 저 한 번 좀 봐주십시오 하고. 그리고 받았던 폐물이라 해봐야 반집 밖에 있겠어. 돌려줘야 되고 이렇게. 그쪽에도 수습할 기회를 줘야 될 거 아니야. 그러니까 장인이 나한테 딱 말씀하시더라고. 부탁이 있네.

05:30:49

6개월 동안은 우리 동네 근처에 오지를 말게. 나도 우리 딸 거기에 일하러 안 보내겠네. 그 일하러 왜 가겠나. 그때 임금비가 100원이야 한 사람이 일하면 여자는 80원이고. 돈 벌러 오는 거야. 돈을 벌러 오되 같은 처녀들끼리 하는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사과 열매를 따고 봄에는 꽃을 따고 요새 같으면 꽃이 사과 한 개가 되려면

05:31:22

5개가 달려요. 그럼 여기서 제일 충실한 거 한 개만 놔두고 나머지 4개는 잘라요. 그걸 젓과라 그래. 젓과. 요새는 지금 젓과철이야. 봄에는 꽃이 있을 때는 꽃이 벌이 없으니까 지금 농양을 마셔서 벌이 없기 때문에 인공수정을 해요. 그걸로 해서 1년 내내 그 과수원에는 일할 게 있단 말이에요. 시골 천연들로서는 제법 쌀쌀한

05:31:53

갑자락에 그 살림 시일까지 미쳤도 되고 해요. 그래서 일하러 다니는 거야. 아무튼 에덴 농원에서, 에덴 동산에서 우린 만났어. 만나서 좀 흑별하잖아. 다른 사람보다. 흑별한 상태에서 그 동네에서 결혼을 해서 그 가수원 외관쯤에서 살았어. 살면서

05:32:29

너 엄마를 낳은거야. 너 엄마를 낳았는데 왜 딴집에서

05:32:43

아기를 돌보고 일을 할 줄 지고 못 되잖아. 애를 낳고 애를 어떻게 키웠나 하는 지금부터 너무 많은 그런 이야기하면 울어. 여기에 시골집에 이렇게 보면 나무 숟가락이 있어요. 숟가락에 큰 못을 박아서 내가 대구 백화점에 가서 스프링으로 돼 있는 이렇게 펌핑하는 게 있어. 그걸... 아기가 이렇게 하면...

05:33:21

내 난리는 거네 있잖아. 거네. 거네식으로 뜀뛰게 하듯이 발만 이렇게 움직이면 몸이 올라가요. 쑥쑥. 그러면 어린애들은 그게 아주 호소스럽고 즐거우니까 웃고 좋아한단 말이야. 그거를 이렇게 뛰게 놀게 해 놓고 엄마는 바로 집 앞에 가서 나는 일을 하니까 아빠는 아빠대로 일하러 가고

05:33:54

엄마는 엄마들이 이러고, 얘 혼자 있는 거야. 그게 너 엄마야. 그러면 뛰고 놀다가 엄마 엄마 찾을 거 아니야 배고프면 엄마가 두 시간에 한 번씩은 가보긴 하지만 문을 닫아놨어요. 울다가 뛰다가 오줌 뭐 싸고 뭐 이렇게 한 상태에서 잠이 들어 있어요. 엄마를 얼마나 안타깝겠나.

05:34:27

너 할머니가 젖이 이만했어요. 그땐. 그렇지만 쭉쭉쭉 잘 빨아먹는단 말이야. 그게 한편 생각하면은 이제 너희들 어릴 때 민경이가 좀 아파가지고 아픈 게 달리 아프냐. 일찍 태어나다 보니까 조산을 하다 보니까 10개월 만에 태어난 아이들이 쌍둥이가 되니까 7개월 반 만에 태어났잖아.

05:35:02

성숙하지 않은 미성숙아로 태어났단 말이야. 너는 괜찮아. 너는 큰 애기. 이렇게 있잖아 쌍둥이가. 얘는 밑에 있잖아. 그러니까 완전히 모든 게 뇌라든지 이런 게 다 성숙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나왔기 때문에 나머지 병원에서 병원을 다니면서 다 정상적으로 다. 매일 당기다 보니까 둘 다 다니고 당길 수는 없고

05:35:36

- 아직도 멀었어? - 다들아... 결혼하는 과정에 이런 걸 설명하라 하니까 설명 안 와. - 그렇게 자세히 얘기 안 해도 돼, 적당히. - 속 뒤집듯이 다 깜짝 놀래. - 그래서... - 엄마는 보양아파트. 너 친할머니가 사는데 죽어도 안 들어가려고 그랬어요. - 왜 옛날에 시어머니 시자들었으면 식음식 안 먹는다 하잖아.

05:36:08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도 아닌데. 아빠 입장에서는 거기 가면 우리 엄마 아버지가 있는데 나경이는 봐줄 텐데 이건 안 들어가려고 하지. 그 병원은 가야 되지. 그때 상월곡동 아파트 살 때 너희들이 태어났잖아. 아빠가 와서 나경이 좀 맡아주십시오.

05:36:43

우리 집사람한테 외할머니한테 얘기를 했는데 그때 외할머니는 청소하다가 넘어지고 진공청소기 줄에 발이 걸려서 우리 나이가 들면 잘 넘어져요. 넘어지면 팔이 똑부러졌어요. 팔이 똑부러져 있으니까 애가 있으면 계속 봐줘야 되고 하는데 그게 되나? 안 되니까 좀 어렵다 보다시피 이렇게 돼 있네.

05:37:15

나도 내 딸을 봐서 도와줘야 되겠지만. 지금도 그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너희들 더 끔찍히 생각하는 이유가 어릴 때 봐줘야 되는 애들을 못 봐줬다 하는 것 때문에 작년에 정말 1년 동안 저를 다니면서 기도하는 거고 죽을 뻔했어요. 내가 그 바람에 싸워서 내가 시골까지 내려갔어요. - 아님 말 안하면서도 구분을 해서 해라. 애가 물어본다고.

05:37:49

그 그때 이제 병원에 한두 번 되었거든요. 하루는 연세대학교 하루는 고래대학교 하루는 서울대학교 그렇게 됩니다. 그러면 엄마가 거기 오니까 할머니가 아무리 잘 봐줘도 이래서 이렇게 이렇게 걸어갖고 엄마가 거기서 이렇게 있는다는 거야. 네가 그랬구나.

05:38:24

그런 거랑 마찬가지로 너 엄마는... 그러면 결혼 후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그... 그 지금까지 했던 게 있잖아. 그러다가 내가 경찰 공무원 시험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거를 너무 냈으면서

05:38:56

그 동네에서 커서 나이 어린 21살에 나하고 결혼을 했으니 아주 어리잖아. 창피하기도 하고 친구들한테 그리고 순탄한 결혼이 아니잖아. 부모가 점제해 주는 결혼을 마다하고 나한테 뛰쳐온 그런 입장이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디 돈이 많거나 그런 사람도 아닌데 또 결혼하고도 그 과수원에서 이런 사람이 부끄럽기도 하고 밤낮으로 나한테 졸랐단 말이야.

05:39:29

서울에 가서 삽시다. 서울이나 부산이나 대구 어디든 이 지역만 떠나자. 떠나서 당신이 약가 행상을 하더라도 나는 뒤에서 도와주겠다. 그래서 살아갑시다. 그런데 나는 그러기 싫단 말이야. 밑천이라도 지고 가야 될 거 아니야. 방값이라도 가지고. 그러자면 일을 더 해야 되겠지. 그때 마침 경찰 공무원 시험에

05:40:02

있어서 시험을 원서를 냈는데 시험 볼 때까지 한 석 달 동안 내가 공부할 시간도 없고 밥 먹으러 왔을 때 점심때 저녁 때 이때는 잠깐 잠깐 보았는데 그때 저녁 때면 어머니가 그러니까 할머니는 뭘 했나. 물 한 방 옛날 노인들 하듯이 장도구에다가 물 한 방 한 그릇 떠놓고 계속 기도한 거야.

05:40:36

우리 신랑 합격하게 해달라. 합격하면 난 이제 할머니 마음속에 합격만 하면 나는 이 바닥을 떠난단 말이야. 떠나고 옛날에 공무원이라 하면 그래도 시골에서는 괜찮거든 알아줬거든. 낳은 직장이고. 공무원 부인이 돼서 가면 업그레이드가 되는 거야. 요새 표현을 하면은. 그러니까 그때는 부교 신자가 아니야. 천지 신이한테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리 신랑 꼬꼬.

05:41:17

수험번호 몇 번인데 전화, 전화서 터놓고 기도했는데 보란 듯이 딱 합격을 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그의 시기인 거죠? 하... 그건 뭐 그렇지. 가장 힘들었다는 거는 그걸 보는 일을 하면서 한 동네에서 나를 찾아왔을 때는 이제 반갑고 고마웠지만

05:41:52

그 어린 신부가 여기를 떠나서 살자. 소원을 못 들어줬을 때 안타까운 것이고. 경제적으로는 그때 뭐 가난한 집은 안정이 됐지만. 그 제일 어려웠던 시간은 뭐 지금까지 결혼한 지 52년 동안에 어려웠던 순간이야. 20년간은 어려운 셈이지 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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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울에 와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막내외 삼촌을 낳았을 때는 아이가 3명이잖아. 3남매잖아. 그런데 이사를 9번 댕겼어. 9번을 댕겼는데 하루는 미아리 살 때는 왜 당신 우리한테 말할 때는 애가 둘이라 하더니 왜 애가 3명이냐. 그동안에 나왔습니다. 3명이잖아. 이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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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는 애가 둘인데 하나는 뱃속에 들었고 둘이 아직 세일을 하느냐고 말이야. 그런 일도 있었지만 그때가 청와대에 근무하던 시절이 제일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제일 어려웠던 시절을 빚고 힘든 시간이었어. 애들한테 우유도 하나 못 먹이고. 그 시간을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뭐 별다른 이기는 방법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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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되면서 마침내 80년대, 82년도인가 신용카드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카드. 카드가 나와서 카드로 모자란 그런 빌려서 마이너스 통장으로 빌려서. 그렇게 가불 인생을 살았는 셈이지. 그런데 자꾸 재애끼고 빨리 내 집을 마련해야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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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방울도 아끼고 그렇게 살았지. 그러면 살아오시면서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는 사회의 변화는 무엇인가요? 그동안에 민주화에 바람이 불고 내가 할아버지가 명치할 생각을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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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를 항상 하기 때문에 나는 더군다나 또 대학교 앞에 바주 소장을 세 번이나 하다가 보니까 계속 고려대학 앞에, 외국어 대학 앞에, 동국대학 앞에 다 대모하는 학교 앞이야. 그래도 뭐 항상 바빴지. 바빴고 뭐 그 시절엔 다 그랬으니까 사회, 정치적으로 변화가 있어서 지금 민주화가 되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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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도 할아버지가 성진을 하고 대모 막는 경찰 기동대에 근무할 당시에 가장 대모가 격렬했을 때 내가 대모대와 대모를 막는 획을 부대에 내가 소대장이었는데 그때 나는 예견을 했다고 이 정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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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나갈 것 같다. 그러니까 학생들을 너무 세게 아루지 말아라 하고 부하들에게 설명을 했고 했는데 내 예견이 맞았어. 내가 항상 예견했던 대로 박정희 대통령 때도 자칫하면 정권이 뒤바뀌겠구나. 차지천 경호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이 다 주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예견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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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맞았고, 전두환 대통령이 들어오면서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이 정치를 하게 되면 불행하게 될 것이고 군인으로 계속 있는다면 추앙받는 군인이다, 될 것이다 라고 내가 예견을 했는데 그 말도 맞았었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할아버지 시대 때는 학생들의 인권이 종종 받지 못했는데 지금은 받을 수 있게 보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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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개선됐지. 많이 개선됐고 학생들의 인권이 심장이 되어가지고 얼핏 너무 저렇게 자유방임적으로 되었지 않았나 할 정도로까지 많이 주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었다고 생각하는데 학생 당사자들은 또 느끼는 바가 틀리니까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05:47:56

아직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란을 보란 말이에요. 이란. 이란이나 북한을 이런 데를 보라 이거야. 중국도 완전 민주화가 되어 있지 않아요. 사회주의 국가로서 통제가 많아. 홍콩은도 민주화 투쟁을 외치다가 중국 당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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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권 통제에 따라서 지금 주춤해졌잖아. 숨죽이고 있잖아. 그에 비하면 우리 한국의 정치 상황이나 학생들의 인권이나 이런 건 굉장히 신장이 되고 자유가 보장되고 모든 면으로서 자유롭게 되었으니까 행복한 줄 알고 자기 맡은 바 공부해야지. 열심히 해야지 공부를.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가장 행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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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행복했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가장 행복했던 것은 내가 이루고자 꿈 했던 것을 이루었을 때 내가 퇴직을 하고, 중년 퇴직을 하고 여기저기 외국을 할머니하고 많이 가봤는데 내가 틈틈이 했던 영어 공부가 큰 도움이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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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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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손녀들을 이렇게 봤을 때 하나처럼 다 착하고 이쁘고 하니까 나한테는 보람이라 할까. 걔네들 볼 때마다 나는 행복하다고 자부하고 느끼고 있으니까. 언제 끝나요? 거의 다 했어. 응. 지금도 나의 77인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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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건강하고 첫째, 건강하기 때문에 직업을 가질 수가 있고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 아내도 74세이지만 건강하게 종교생활을 하고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으니까. 그 다음에 아들, 딸들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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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맏딸도 좋은 남편 만나가지고 딸 쌍둥이 나와서 잘 알뜰하게 살고 있고 아들도 공무원 부인 만나가지고 아들 둘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고 하니까 다 좋지만 이모가 결혼 못한 거거든 아무리 하라 해도 안 되는데 뭐 어떡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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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말씀해주세요. 남보다 특별히 뛰어나진 않을지라도 무시당하지는 말아야 되겠다. 못 배웠다고 돈 없다고 무시당하지는 않는 그런 아버지나 할아버지로 기억되고 싶다고. 존경은 못 받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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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스로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애들한테, 손자, 손녀들한테 존경받고 아들, 딸에게도 존경받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손주 세대에게 꼭

05:52:42

해주고 싶은 인생 조언이나 가치관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천재 살면서 과거를 말하기는 이치에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겠으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거울 삼아서 이렇게 어렵게 살았던 할아버지 세대에 비하면 우리는 많이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05:53:19

생각을 가지고 공부를 열심히 한다든지 맡은 바 직분에 충신해 줬으면 좋겠다 싶고 전문성을 가지고 무엇이든 사회복지사 하면 사회복지사 또는 민경이 같은 경우에는 전공과목에 따른 그런 공부를 열심히 해서 바라는 대로 잘 살아줬으면 좋겠다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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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럼 저희 엄마한테 한 가지 말씀을 해주신다면? -엄마 날 좀 무시 좀 하지 마라 그래요. -하하하... -어릴 때 봤지? 저 수안보 원천에 갔을 때도 봤잖아. 그렇게 빠락빠락 대어드리고 말이야. -응. -그... -할아버지를 다시 한번 세밀히 관찰을 하든지.

05:54:29

해보라 그래. 너 엄마는 나를 무시하는 경향이 많아요. 할아버지는 저희 엄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하얀없이 귀여운 거 한 딸이지. 날들하지. 첫 증을 준 애가 누구야? 너 엄마 아냐? 삼남매 중에. 내가 얼마나 귀여워했는데. 쟤는 뭔가 너 엄마, 너 딸, 너 엄마에 대한 불만의 그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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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님에 비해서 친정엄마 아버지가 못하다 하는 이런 어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에요. 내가 생각하면 못한 거 하나도 없어. 뭐가 못하냐고. 그런데 그런 열등의식을 가지 필요가 없는 거예요. 사람은 배운대로 배운만큼만 살면 되는 것인데 배운만큼 이상으로 난 살고 있는 사람이고 엄마 할머니도 그렇고

05:55:39

물론 그 세상사를 하다 보면 비교를 안 할 수 없겠지만 너무 비교하는 것은 좋지 못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이렇게 생각을 해야지. 자꾸 그 비교를 하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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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엄마 아버지가 행동하기에 따라서 내가 길을 못 피우고 산다라든지. 내가 김서방한테 무슨 콤플렉스를 느끼는 게 뭐가 있나. 나는 그 나이에 40평 짜리 아파트에 살았던 사람이야. 나는 그 나이에서 안 돼.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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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는 너 엄마는 네 자식들을 내가 볼 때 자식 쌍중이들한테 너무 과보호하고 있어요. 내 발에 놔두면 나름대로 다 똑똑하고 발랄한 애들인데 일일이 엄마 손을 엄마가 다 해 주려 하니까 그렇게 키워서는 안 되는데 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어요.

05:57:19

공개 색상에선 그런 얘기 하지 말고. - 그렇죠 그렇죠. - 어? - 그렇죠 그렇죠. - 또 있어? - 음. - 한 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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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삶에서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건 내가 말했듯이 삼남매 다, 내가 낳았던 삼남매 모두가 다 자기 생활에 충실하고 있고 건강하고, 우리 역시 건강한 노년의 삶을 누리고 있으니까 행복한 거야. 난 행복하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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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어떤 게 있으실까요? 내가 만일 다시 태어나거나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악기를 하나 다루고 싶어. 왜요? 예를 들면 트럼펫을 본다든지 색스폰을 본다든지 기타를 친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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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을 이루지 못했거든. 하나를 해야 했다 하면서도 여태껏 마음만 있었지 배울 시간도 여유도 없었기 때문에 이제 시작하려니까 늦었고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신나게 한 번 연주라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그럴 수 많이 있겠나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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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못 하는 게.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난 만족해. 내가 남들이 안 가든 외국도 많이 다녀봤고. 예를 들어서 내가 뉴스를 봐도 블란스 파리하면 파리에 대한 소식이 나올 때는 에펠탑에 나오는데 그 에펠탑도 올라가 봤고 미국하면 미국 특파원이 이렇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비추어진 거기도 올라가 봤고 오스트레일리아 하면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보여주는데 거기도 가봤고. 가볼 만한 데 다 가봤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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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는 이런 사람과 결혼을 해야 되겠다 라고 꿈꾸고 왔는데 그런 사람을 만났고. 만나는 과정이야 어려웠지만 만나서 지금 51년째 살고 있고 다 만족해. 그리고 이런 손자를 얻었으면, 이런 손녀를 얻었으면 했는데 그런 손녀들을 만났잖아. 만나면 다 건강하게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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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고 있으니까 다 고맙고 감사하지. 특별히 뭐 그런 아쉬운 게 하나, 내가 어떤 악기를 하나 연주할 수 있었으면 그걸 못 해봤단 말이야. 지금 하려 하니까 왠지 늦은 것 같고 다른 건가요? 스포츠카는 아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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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뭐 그건 뭘 배우겠냐. 늦었다 싶어. 악기를 배우면 어떤 게 좋아질 것 같다고 생각하시면 그냥 로망? 그냥 로망인 거예요? 악기를? 그렇지. 내가 작곡, 내가 뭐 어설프긴 했겠지만 내가 지은 글에다가 곡을 붙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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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가지고 연주를 하고, 노래를 하고. 그게 하나의 로망이야. 근데 사람이 바라고 싶은 욕망대로 다 이룰 수는 없는데. 부족하니까 또 로망도 생기는 거고. 그런 것이 아니겠냐? 뭐, 퀴즈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