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노트
Shared on April 20, 2026
인간이 만들어놓은 이렇게 놓은 정신적 지적 또는 물질적 생활양식과 행위정향 이렇게 자 그래서 지금 이 말에 문화라는 말에 상대 대처점이 뭐야 자연, 여기서 자연은 아름다운 자연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와일드, 거친, 황후지 이런 의미에요 손을 대지 않은, 문명화가 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와일드
고친 방향 이럴 때죠 그것과의 대비를 하는 게 영국 수영 브라 그래서 문화가 들어왔다 어떻게 된 자연의 척박함이 많이 다듬어 줘 인간이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문명적인 모습으로 또 인간으로 얘기하면 다듬어지지 않은 교양스럽지 못한 본능 충실한 본능에 충실한 인간의 본성이 문화를 통해서 문명화 시빌라이즈 문명화 된 사람으로 바뀐다 이런 의미요
보통 문화라는 개념은 손을 대지 않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 내 자연 중에서도 척박하고 거친 본능 이런 모습에 차별화된 개념으로 많이 쓰인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문화라는 개념은 고인돌, 바벨론, 성전 이런 눈에 보이는 상징물도 있지만 각종 문화재화처럼 그거 말고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행위, 정향 어떤 그 습성 패턴화된 습성도 문화 안에 들어가요 문화는
보이는 것도 있지만 안 보이는 그런 습성도 습관도 다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왜 문화가 중요한가? 일단 문화가 형성이 돼서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가 되기 시작하면 그게 사고, 인지, 행동 패턴을 발생시킨다는 거예요. 다시 문화가 일단 공유가 되기 시작하면 구성원들 사이에 동일한 거의 비슷한 사고,
인지 행동 패턴이 발생한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비슷한 사고, 인지 행동 양식을 보인다. 정향을 보인다. 이렇게 얘기해요. 그래서 정치학에서 관심을 갖는 거예요. 정치 문화를 우리가 알 수 있다면 그 집단, 그 국민의 사고, 인지 행동 패턴을 설명하고 일찍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래서 정치 문화라고 하는 요소가 부각이 된 거예요.
이게 1956년에 정치 문화 개념이 정치학에 처음 소개가 됐습니다. 1956년. 정치학에 비해서 굉장히 좀 늦다고 말이죠. 1956년에 우리의 알몬드라고 하는 거죠. 자주 나오죠? 알몬드가 정치치계의 얘기하고 딱이죠. 대가들이 대가. 대가들이 국어 영역에 걸쳤어요.
풍자적인 이론을 많이 만들어냅니다. 가오리엘 아르바이트 보수가 정치 문화라고 하는 political culture라고 하는 이 개념을
이런 건 다 책이 있으니까. 책에서 보면 됩니다. 저는 지금 기본적인 대응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걸 소개했다. 그래서 뭐라고 했냐면 문안에선 뭐냐 정향 우리말을 정향으로 번역하는데 원래 오리지나는 오리엔테이션이라고 합니다. 보통 우리가 시집생 OT 여러분들이 떠오르잖아 원래 수많은 오리엔테이션은 정상 정해진 하나의 패턴을 얘기합니다.
아 으 시점 오티에 왜 우리 있어서 몰라 아마 칠 생글 싹 이런의 런쇠 기품을 알려주시고 5 예 그가 왜 말이오서 지고 그래서 원래 정상의 란트에 상당히 패턴 아들 정해져 있는 성향을 4 5 인지 행동 자 그럼 어떻게 우리가 어떻게 현실에서 파악할까요
여러분들이 어디 유학을 가서 교환 학생이 미국 대학에 들어갔다. 예를 들면 UC 버클리에 갔다. 거기에 온갖 전 세계에서 학생들이 교환 학생들 많이 와 있거든요. 그런데 행동하는 거나 똑같은 시추에이션에서 우리 한국인 유학생들이 보이는 행태와 일본 더 나아가서 중남미 아프리카 학생들이 보이는 행태가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거든. 말로 설명을 안하는데 달라진다는 말이에요. 그게 오리엔테이션의 차이예요.
이 평상시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차이가 반영이 될 수 있죠 왜냐하면 이 분할 통해서 자고 인지 행동 패턴이 자기도 모르게 습관화 되어있거든 우리가 그런게 나온 그래서 정치 문화의 개념 우리가 알 필요가 있구요 정치 문화의 특성은 뭐냐면 이게 당대에 끝나지 않아 전수가 되죠 다음은 제대로 전해져요 여러 방식을 통해서
여러분들도 이미 태어나서 사회인으로 나오기 전까지 한 20년간 가정생활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의 가풍이라고 그러지 가풍. 자기가 인식하든 안하든 집안의 가풍이 여러분들을 행동에 많은 양형을 줬단 말이에요. 그게 닮아져 있어. 그 다음에 자기가 자랑한 지역성이 있으면 그것도 어느 정도 배우고 있죠.
이게 하반미에 다 습득이 돼서 여러분과 같은 존재가 지금 만들어진 거예요. 나의 20대 정도. 자기는 다 이해를 못해도 이미 배에 있다. 전수성이 있고요. 학습이 돼. 학습. 그 다음에 공유. 그래서 이 전수, 학습, 공유. 이게 모든 문화, 정치 문화뿐만 아니라 문화의 기본 속성으로 얘기가 돼. 목적으로 습관화된
사고 인지 행동 패턴을 발생시킵니다. 문화 자 이 점에서 우리가 조금 유사 개념과 비교할 필요가 있어요. 정치 이디올로기하고 정치 문화는 같은 건가? 다르죠 물론. 중첩되는 부분이 없을 수는 없지. 정치 이도로기가 많은 구성원이 공유하는 정치 문화와 완전히 독돌해진 것 나와봐야 그게 전파가 되겠어요. 어느 정도 연관성은 있지만
정치이디올로기가 정치 문화는 아닌 거죠. 뭐가 다를까요? 우리 다음 시간에 보겠지만 정치이디올로기는 이상적인 사회와 정치의 모습을 그려낸 의도적인 행동강령이에요. 행동강령. 의도적인 행동강령이라고 보면 돼요. 이데올로기는. 그래서 그거는 문화하고는 다르다. 거기에 비해서 문화는 누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류 많이 해 문화 평론과 문화 창작자들이 근데 결국 문화는 그게 거기서 만들어지게 하는 사람들은 재료를 많이 넣었지만 구성원 다수가 좋든지 뭐 할든지 해서 받아들여서 몸에 습관화가 되기 전까지는 문화가 아니야 그렇죠 그래서 정치 문화는 누가 만들고 이러는게 아 어떤 의도 속에 들어가 있자 약 공유가 우리의 뭔가 맞으니까 그렇죠 이걸로기는 그거에 비해서는 굉장히 의료적이고
만들어냅니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정치 이상향에 대한 집중성을 갖고 있어 이데올로기는 문화는 그것보다 훨씬 방법이 어떤 특정 이슈에 가는게 아니라 그래서 이데올로기와 문화를 비교했을 때 차이가 뭐냐 문화는 훨씬 내면적이에요 이데올로기처럼 이성의 이성과 감성에 고소하는 이런게 아니라 내면적으로 젖어드는거에요 내면성 둘째
어떤 특정 이슈에 대해서 집중 되는게 아니라 그것을 훨씬 황범위에 그런 차이가 있다. 여론이 정친문화인가요? 사회 여론이 정친문화인가요? 물론 연관성은 있지만 정친문화와 완전히 동떨어진 여론은 나오지 않지. 그러나 둘은 같지 않다. 어떻게 다를까요? 여론은 2부에 가서 보겠지만 어떤 특정 사항과 이슈에 대한 상관없이
사회 다수의 의견이야 의견. 그래서 그것은 바뀔 수가 있어. 상황에 따라서. 그렇죠? 그런데 문화는 그렇지 않아. 어떤 특정 이슈에 대한 여론이라기보다는 문화 안에 습성, 우리가 오랫동안 공유되고 우리 안에 내세용, 내면화되어 있는 사고, 인지, 행동 패턴에서 나오는 거죠. 자, 누구는 국민성 얘기를 그래.
한국인의 국민성이 어떻고 일본의 국민성이 어떻고. 국민성하고 문화는 나름대로 중첩되는 부분이 있죠. 그런데 문제는 국민성이라고 하는 개념이 상당히 넓어. 어떤 국민의 특별한 기질, 성격을 얘기하거든요. 문화보다는 굉장히 넓고 결정적인 문제는 국민적인 성격과 기질이라는 말이 학문적인 용어가 아니야.
그걸 국민성이라는 말은 언론이라든가 우리 대화에서 많이 쓸 수 있지만 학문적으로는 국민성이라는 말을 쓰기가 어려워. 이게 과학적인 용어가 될 수가 없어. 그래서 학문 정치학에서는 국민성이라는 말을 정치학용어로 개념으로 쓰지 않습니다. 우리가 얘기는 많이 하죠. 한국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보면 신리보다는 의리와 충전을 많이 강조한다. 그래서 왕사람 뜨잖아.
주인게 뭐야 똑같은 빵 사람을 봐도 우리 국민들은 막 감동을 봐 정치 문화의 마주 뭐야 의리 충전 그리고 이 신금을 울리는 거거든 근데 똑같은 영화를 만약에 일본 사람이 보면 우리만큼 천오백만이 넘어갈까 잘 몰라 일본은 어떤 쪽으로 보죠 어떤 그 하늘 문화 비교하는 분들 얘기 들어보면 우리보다 훨씬 실속과 실리를 따지는 문화
뭐 여러 군데서 차이가 나 자 근데 개화기에 서양의 그 군악들이 막 들어올 때 아 우리 한국은 초 화비를 내세우고 오랑캐랑은 상종하면 안돼요 총합이 쇠국 정체 쫙 막았잖아 그래서 결국 전쟁 일어나고 힘이 없으니까 졌잖아요 우리 스타일 의리 충절 우리가 이게 조항에 굉장히 강 상별 초 홍보의 항립 참결 초 이 보티고 저 그 안에 들어가면
의와 충절 이라고 하는게 굉장히 강한 dna 가 있는 것 같아요 일본은 똑같은 시점에 그 동경 앞바다에 흑선 미국의 페리 제2기 그는 거대한 흑선이 외냐 기스 그 당시 그 뭐야 그죠 증기기관에서 나오는 걸 보고 이제 그들이 흑선 이라고 붙여 거대한 생전 보지도 못한 거대 앞에 태평양을 건너 왔습니다 그 다섯 책이 떠 있는 거 보고 일본 사부라이들이 얼마나 놀랬어요
뻥뻥 포를 쏘는데 책정 보지 못한 포트에 날 나오니까 너무 올린 거 아니에요 자 그때 일고 사람은 축하 위를 내세웠나 우리가 우리와 같은 반응 아니죠 보내 가지고 우리보다 우위라는 걸 딱 보는 순간 그대로 하악 업들인 거 아니에요 강화 조약 넣고 바로 무너개방 쪽으로 가서 일본이 결국 근대에서는 한국 중국 따돌리고 선두주자 루간 계기가 되죠
하고가 났어 실속과 줘 그래서 한국 역사를 연구하는 1번 4가 들 보면은 그 정몽 주에 대한 평가도 달라 우리는 정몽 주 고려 말기에 신흥 세력에 맞서서 충절 지키다가 죽은 고려의 충실 우리는 포은 정몽 주 아냐 미래한 인물 중 하나 보잖아 똑같은 4 일본의 한국사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 1분은
우둔한 사람으로 시세 판단을 못한 둔한 사람으로 평가해 막아는 고려에 어 모의를 붙잡은 이 신용 이걸 못 봤다는 정세 판단을 제대로 못했고 이런 쪽으로 평가하는 논문도 있어 굉장히 우리를 놀랍지 않아 다른 거야 그거를 분석하는 이유도 많아 한국은 중세 서양으로 치면 중세 또한 그냥 한국은 변동이 없어 동경 사회에 그 왕조에 고려
4명 몇 년 조선의 일본은 아니잖아 일본의 중세는 여러분들이 다 하는 것처럼 사무라이 길이 치열한 삶과 죽음의 전투에 연장 굉장히 실리적인 사고가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서 명분 찾고 있다가 다 죽는데 그쵸 그래서 아마 그런 그 차리를 만들었을 거다 하는 얘기들 재밌는 해석들이 많아요 어쨌든 불안하다 자 그러면 그 다음에 판단과 사고인지 행동이 달라지는
한일 간에 비굴 많이 하거든요 자 웹이 글을 문화로는 얘기 정치 문화에 집어 한국은 정치까지 특성을 보면 의리 충절 이런 굉장히 강조한 다음에 자존가 그 누가 날아와서 점령한 몽고 등 두는 끝까지 버티는 저항정신 자 이런거는 한국 정치 문화에 굉장히 그 돋보이구요 이걸 국민성 이란 개념으로 접근하지 않아 정착자 뭐
뭐 뭐 언론적인 어 언론에서 많이 쓰는 용으로 얘기합니다 아 자 이 정치문화 중요한 이유 우리가 얘기했구요 근데 어려운 점이 있어 어려운 점이 뭐냐 측정이 어려운 이 학문적인 용으로 계속 발전하려면 어떤 데이터 라든가 어떤 증거들이 나와야 되기도 통계가 아니라도 우리가 정치 문화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아 자 한 사람 한 사람은 잡아내
여러분들 인터뷰 해보고 mbti 같은거 많거든요 정착에도 그 해보면 금방 어느 유형이 대충 나와요 개인 어느 소수 집단까지 다 잘 잡아 대한민국 전체로 가로 올라가면 어려워져 대한민국 총금 2020년 대 대한민국 정치 문화를 어떻게 정리해 너무 다양해서 이 집단이 커지면 어려워져요 그래서 정치 문화 개념이 그 처음에 기대에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많은 이론들이 나오지 못했어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야. 이론만 쓰면 창작이 아니라 현실 사례연구가 붙어 줘야 되거든. 이게 쉽지 않았다 하는 얘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알고 있어요. 정치 문화가 분명히 있는데 비록 우리가 아직 측정을 완전히 못할 뿐. 그런데 이게 그 집단의 정치 행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는 걸 알고 있어. 그래서 특히 정치 문화와 정치 제도가
합시가 돼 해 주면 실제로 합치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아 자 제가 2개의 일을 갖고 왔어요 45년 해방 이후에 직후에 한국을 보면 어떤 거죠 미군정화에서 좀 결국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또 미국 미국 아니야 프리스톤 대학 박사까지 받은 뿐이야 한국의 도입된 48년 도에도 일단 아예 법은 당시로 치면 쇠게 최첨단 선진국 미국 헌법을 가져온 거야 3봉 분립에
당시 최고의 선진 법 법 미국 걸 갖고 왔어 제 2 4 그걸 돌려야 할 당국 국민의 쇼트 외우는 어두 수준 동건적 수준이야 아직 조선왕조 막 끝나고 일제에서 36년간 후덥이다가 막 나오자 민주적 민주문화 정치고 라가 아니오 그 당시에 저 어디 이수만 대통령 오면 그 지방에 가면 나라 힘이 라고 사람들의 대통령 이란 말이 아니고 딴 힘이야
불러 따라 님이라 더 우리의 소프트웨어는 아직 조선시대의 연장에 학과 그리 제거와 제거는 최첨단의 지금 여러분들이 논의하고 있는 온갖 권력분립과 민정치 제도를 갖고 있는데 문화 끊기여 사람들의 의식과 사고인지 패턴은 조선시대 메탈 이라니까 그 정체가 잘 되겠어요 안되는거지 그 뒤에 여러분들이 맨날 들었던
파이 한국 정치의 헌법적인 뭐 파행 얘기고 다 보면 크게 보면 말이 되는 거야 이해가 되요 자 합치가 되지 않았어 결국은 한국은 어떻게 결론을 내려요 50년 60년 대개에서 헌법 파동 개연 작업 왜냐하면 나란 힘을 모셔야 되는데 이 지금 갖고 있는 법적인 법 법적인 틀 가지고는 안 맞거든 이걸 계속 바꾸는 거 아니야 뭐야
한국화 한국화 미국에서 미국 제도를 한국화 해가는 어디까지 갔어요 결국 박정일의 쪼 그 사이에 열리는 그 뭐야 제2 공하고 잠깐 지나다 516 혁명 분석 테타 419 파행을 계속 거치고 한 대가 73년 유신 헌법을 맞아 유신 헌법이 뭐지 앞으로 우리가 배울 이 원지 쪽 부재 프랑스 두고리 만든 영도 조 달 통용 제거 야 그 제도의 대통령은 3권 분립의 하나가 아니라 그 위에 있는 영도 조
동용지 되요 그러니까 그게 좀 더 바람에 가까운 거야 자 70년대 대한민국은 50년대 처럼 다라님 생각은 없었어요 물론 그러나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90년 2000년대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민주 문화는 아직 아니야 70년대 말해 서 유신어 법은 영도족 대통령 제도로 그 아예 동영은 참고 분립에 있는 행정부 수반이 아니라 국가의 용도자
그래서 한국은 글로 갔어 남아 그 지금 반짝에서 독재 체제 독재 그렇죠 근데 그 여러분들만 점에서 볼 때 그런거고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일부 독재 투정되셨지만 대화 많은 국민은 그냥 억셉 된단 말이에요 그냥 한걸 왜 그 그 당시에 우리 문화에 어느정도 크게 지금처럼 여러분들한테 느끼는 것처럼 치지 마 우리만 그런가
북한 북한 북한 45년도에 똑같이 당했잖아 소련군이 들어왔는데 소련이 들어왔을 때 갖고 온 헌법이 뭐야 그들의 헌법은 원래 소련, 레닌이 만들었던 건 휘지의 제도야 소련은 레닌조차도 스탈린조차도 대통령 직함을 가지고 통치하지 않았어 당속기야 거기 펄리스로 정치구과 7명, 8명이 위원회 정치야 모든 사회주의의 교과서는
그중에 제1석이 또는 제네러시크레터링 당석이장 그 사람이 사실상 거기에 대표라고 그들이 합의해서 통치해가는게 사회주의 스타일이에요. 소년이 이걸 갖고 왔는데 그게 한국, 북한 역시 우리랑 똑같은 조선시대에 봉건적인 정치문화를 갖고 있는데 안돼. 해방문의 여러분들 왜 알죠? 4대 파월의 박헌영 남노당 김두봉 연안파 중국에서 활동하던 그 다음에 뭐
소연 거기에 하나가 깬게 김일성 빨치산 파 4개 파벌이 공존해서 가다가 결국 북한은 어떻게 정리가 돼 70년대 다 숙청한 다음에 김일성 한파가 독점하잖아 그 다음에 오늘날 4대에 이르기까지 족볼정치로 오잖아 그게 뭐야 옛날에 우리가 본 한국식의 왕정체제하고 뭐 비슷하지 않아요 남북한은 똑같아요 제가 보기
제도는 아무리 이론적으로 갖고 왔어도 우리 습성에 안 맞는다. 한국은 유신체제, 73년에. 북한은 70년대에 one family 족볼체제, 정리가 되죠. 그만큼 문화가 영향을 줘요. 80년대 소련 등 국권은 전반대예요. 이때 제도는 뭐예요? 스탈린이 만들어놓은 공산주의, 전체주의 체제가 그대로 작동하고 있는
80년대만 되면 소련의 지식인들 대학생들은 이미 소구를 다 알아. 문화적으로는 스탈린 시대의 그런 전체주의 문화가 자유화를 강도하고 갈망하는 그 문화에요. 그래서 여기는 우리가 정반대 일이 벌어졌어. 그래서 워낙 철권 정치와 비밀 경찰과 군사력에 눌려서 마음놓고 정권에 대해서 도전하지 못했지만 지식인들의 문화는
이런 것들을 좀부 부시하고 어떻게 냉소주의로 가는 거예요. 냉소. 그러니까 세상에 대해서, 현 정권에 대해서 반대는 못해요. 죽으니까. 그러나 냉소야, 냉소. 아예 인정을 안 하고 그들끼리 언더 세계, 언더그라운드에서 따로 놀아. 지식인들. 그게 80년대 소련 동부권의 일반적인 모습. 제가 90년에
90년 그 끝장에 모스크바에 가서 1년 살았거든. 골바초코 말기. 제가 있던 12월에 소련 국끼 내려오고 러시아 국끼 올라가서 그래도 그 자리에 내가 크래블에 가 있었다. 그래도 역사적인 증인이야. 소련이 바뀌는 시기. 그때 가보니까 80년대 냉소주의가 너무 아직도 남아 있어서 텔레비를 보다보면 모든 소련의 코미디 라든가 연극이
4 소주의 젖어 가지고 그 거처럼 아무도 안었는데 속으로 막 웃는 거야 그 왜냐하면 정권을 믿고는 이렇게 저렇게 총각 좀 소재가 좀 그런게 너무 유예 아 그 80년 대거 태 지나가는 걸 볼 수 있었거든요 자 결국 이거 이거의 견디다 못한 서기 자 우르바 초프가 아 이런 상태로 소련은 정상적인 국가가 될 수 없다 자체 내 비밀 회의에서
이 맥주 주의 젖어 가지고 그 저는 아무도 안었는데 속으로 막 웃는 거야 그 왜냐하면 정권을 믿고는 이렇게 잡게 총각 좀 소재가 좀 그런게 너무 유행 어 그 80년 대가 어떻게 지나가는 걸 볼 수 있었거든요 아 별거 이거 이번에 견디자 못한 서기 자 우리가 초 부가 아 이런 상태로 소련은 정상적인 국가가 될 수 없다
자체 내 비밀 회의에서 선언하고 페레스트로이크 개혁을 하면서 전체가 해체가 되어버렸잖아. 그쵸? 자신이 유일하게 무스크아 국립대학 법대 출신이야. 법대 당 소기장 중에 대학교 교육을 받은 유일한 사람이야. 인텔리라. 그 사람 눈에는 지식인이 따로 오는 이 세상이 정상적으로 보이질 않는다. 그걸 만지려다가 소련 자체가 해체가 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