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t

의도주의 vs 반의도주의: 문학비평

Shared on April 22, 2026

04:30:49

했을 때 이제 반의도주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는 반의도주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입장이 바로 지난 시간에 살고 왔던 관리주의 혹은 내재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입장입니다. 이런 입장에서는 작품을 해석한다는 것은 작품을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에 작가의 마음속을 들어갈 필요는 전혀 없다. 그래서 더 안 된다. 이런 입장이에요. 작품 자체를 굉장히 과학적으로 분석해내는 것을 해서 보이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랬을 때 작품의 의미는 작품 안에 들어가 있어요. 작품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작품의 의미를 알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04:31:31

이런 입장은 비평의 형태로 말하자면 형식주의 비평, 그리고 문학에서 신비평이라고 불리는 비평이 있었습니다. 옛날에 20세기 초반에, 초중반에 굉장히 비평기를 주름잡았던 그런 비평 방식이고요. 이때는 작가니, 역사니, 맥락이니 이런 거는 사실은 작품 자체가 아니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다 제외하고 작품만을 봐야 한다. 이런 입장에서 탄생한 그런 비평 방식입니다. 그렇지만 이후에, 20세기 후반 이후에 맥락주의가 굉장히 강세를 보이게 되면서 이런 신비평은 저물게 되기는 했습니다만은 아직까지도 여러 가지 맥락적인 비평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런 비평들도 우선은 작품을 분석하고 난 다음에 그런 이야기들을 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런 형식주의 비평 혹은 내재주의적인 비평

04:32:32

이런 것들은 지금은 거의 비평의, 이때 말하는 비평 해석이라는 의미에서 비평의 기본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아직도 살아있다고도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 거고요. 이 관례주의 혹은 내재주의에서 특히 배제하고자 했던 것이 작가의 의도라고 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봤었으니까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작가의 의도를 작품의 해석에 참고하는 것은 오류다. 오류는 잘못됐다는 거죠. 의도를 배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04:33:10

뭐 봤었고 4 4 주의에 대한 이제 맥락 주의 부분 이제 특히 그 맥락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게 작가의 유도입니다 예루 주의 측에서 이 제기하는 발군들을 살펴보자면 이런거에요 과연 어이 내지가 특히 이제 강조하는 건 관례거든요 그리고 사실 이런 어 희집형 사실 이 형식집 형이라고 하지만 문학 비평의 특징적이기는 합니다 예 그리고 어 문학 비평 중에서도 사실은 시에 대한 비평의 좀 특징적이에요 왜냐하면 이렇게 설정하게 막 토막 토막에서 분석하면서 막 이 전체 구조를 막 파악을 하고 이런게 굉장히 긴 소설 같은 경우엔 어려울 수 있어요 그래서 이 시 같은 경우에 그런 식으로 분석하는 것이 훨씬 더 용이하기도 해요

04:33:56

어쨌든 간에 시든 문화든 소설이든 간에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언어의 의미가 이 안에서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은 언어가 원래 가지고 있는 의미가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잖아요. 그랬을 때 작품만 들여다본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작품의 의미를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래서 그 언어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관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질문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 관례하고 맥락하고 비슷한 거 아닌가요? 이런 질문이 있었어요. 제가 근데 좀 반대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잖아요. 관례라는 건 뭐냐면 이 언어의 의미가 관례적으로 결정된다는 게 뭐냐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말 지금 제가 말을 하고 있잖아요. 이 말의 의미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어요. 그 의미를 어떻게? 배워서. 이게 뭔가 사과 그림이 사과를 의미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어떤 관계가 아니라 관례적으로 언어의 의미가 결정된다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우리가. 나라마다 다른 언어가 있고 그런 언어들은 관례적으로 결정된다고요.

04:34:56

겁니다. 이런 의미가 관례라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맥락이라는 건 뭐냐면요. 어떤 세상이 있을 때 그것을 불러싸고 있는 배경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예술 작품이 있을 때 작품의 맥락. 그 작품이 어떤 시대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회적인 상황에서 탄생했나. 이런 게 맥락이에요. 특히 맥락 중에서도 어떤 작가를 보통 이야기하게 된다고 했었잖아요. 작가가 사람이고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맥락 속에 미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지금 이 2026년 대한민국에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잖아요. 이럴 때 나를 불러싸고 있는 이 많은 것들. 어떤 문화적인 맥락, 사회적인 맥락, 역사적인 맥락, 많은 것들이, 정치적인 맥락 많은 것들이 있겠죠. 이런 것들을 맥락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술 작품이 탄생했을 때의 맥락이라는 게 그런 의미예요. 어떤 상황 속에서 만들어지게 되었나. 예술 작품이 받아들여지게 되는 맥락. 이 작품을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상자들이

04:35:57

어떤 상황에서 받아들이고 감상하고 있나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게 맥락이고요. 관례주의라고 할 때 관례는 이 내부의 어떤 요소들 의미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의미하는 어떤 의미하게 되는 바가 관례적으로 결정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비슷한 것을 얘기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제가 지금 말하는 맥락에서는 그런 식의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설명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하여튼 그렇습니다. 그래서 관례가 모든 걸 결정할 수 없다는 얘기는 뭐냐면 작품 안에 들어있는 이 언어라고 했을 때 문학이라고 했을 때 언어의 의미가 관례적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지 않은가. 엄마라고 써있으면 그게 엄마로 의미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닌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은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작품 안에 들어있는 의미를 모든 것을 다 이 언어의 원래 가지고 있는 의미만으로 정확하게 구성할 수는 없다는 비판이에요.

04:36:50

이런 거죠. 그러니까 작가가 어떤 함축을 가지고 이 말을 했나 이런 걸 살펴야 된다는 주장인 거예요. 그리고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말을 했나를 살피기 위해서는 작가가 존재하고 있었던 맥락들, 제가 이야기했던 그런 배경들, 이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그런 어떤 상황 같은 것들을 고려해야 된다라는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작품의 맥락이 항상 관련된다는 것은 작품 내부의 요소들의 의미를 결정하는 그런 어떤 관례적인 언어의 의미, 이런 것이 아니라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인 맥락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04:37:29

이런 것들이 없이는 작품에 대해서 해석을 하기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이 신비평에서 굉장히 강조했던 것이 반어나 암시 이런 거거든요. 그런데 이 반어나 암시가 의미하는 게 뭐냐면 겉으로는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다른 걸 의미하는 게 반어나 암시잖아요. 그랬을 때 겉으로 드러나는 말, 말 자체의 의미는 관례적으로 결정된다 했을 때 우리가 의미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그 말 자체예요. 이거는 관례적으로 결정될 수가 있겠죠. 그렇지만 겉으로는 이런 말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다른 말을 하고 있어 라고 했을 때 그 속에 있는 말의 의미는 어떻게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이런 거예요.

04:38:11

물론 몸속에 있는 것도 관례적으로 우리가 따져보면 관례적으로 이런 말은 단어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이고 이 문학 작품 내에서의 어떤 맥락을 따져보면 이 맥락이라고 할 때도 내적인 맥락이 있고 외적인 맥락이 있을 수가 있겠죠. 앞에서 제가 관례가 모든 걸 요정할 수 없고 작품에는 항상 맥락이 관련된다고 할 때의 맥락은 아마 내적인 맥락들, 내부의 맥락들일 것이고 작품 내적인 맥락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작품을 읽어본다면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탄생한 거 누가 만들었고 이런 걸 모른다고 하더라도 작품만 읽어보더라도 이것들 간의 어떤 의미관의 구조를 봤을 때 이 말이 아마도 단어적으로 사용되는 것 같다는 말을 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04:38:50

그렇다면 작품 내부만 보더라도 우리가 단어적인 의미나 안시되고 있는가를 알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말을 내재주의자가 할 수는 있거든요. 그렇지만은 이제 의도주의자들이 하는 얘기는 뭐냐면요. 그런 걸 알아낸다고 했을 때 그 의미를 도대체 누가 집어넣으냐 하는 것을 우리가 떠올려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거거든요. 텍스트가 무슨 만든 사람도 없는 것처럼 저절로 존재하게 된 것인 것처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결국은 이것을 만들어낸 사람의 마음에 어떤 것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는 의미가 아니라 속에 들어있는 그 작가가 감춰놓은 의미를 우리가 알아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겠는가. 이런 거예요. 이런 게 의도주의자들의 입장입니다.

04:39:35

지난 시간에 의도주의 얘기를 했었습니다. 순진한 의도주의는 말 그대로 작가가 뭘 의도했다고 말을 했으면 그게 그 작품의 의미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게 순진한 의도주의입니다. 작가가 자기의 작품에 대해서 명확한 의도를 밝히는 경우 드물지만 있어요. 그런 경우는 우리가 이게 작품의 의미이구나 라고 생각해야 된다는 거죠. 왜냐 작가가 그렇다고 말했는데 그게 아니야. 작가가 만들었는데 그런 의도로 만들었는데 그게 아니야 라는 말을 하는 게 말이 되나 이런 거예요.

04:40:07

또 여기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나중에 또 얘기하기로 하고요. 이런 반론은 바로 제기할 수가 있습니다. 모든 작가가 자신의 작품의 의도가 뭐였는지를 명확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말을 했는데 없어져 버렸을 수도 있고 또는 일부러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혹은 일부러 애매모호하게 말할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많은 경우에 작가들은 이미 죽었어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작가의 의도를 명확하게 알 수 없어요.

04:40:48

작가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서 우리가 물어보지도 못할 수도 있고 살아있더라도 작품에 대한 적적인 언급을 일부러 피할 수 있습니다. 그랬을 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전기적인 해석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작가가 자기 작품이 어떤 어떤 것을 의미한다 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작가를 연구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작가가 어떨 때 어떤 상황에서 태어나서 어떤 삶을 살았고 이 작품을 만들었을 때 이 작가가 어떤 상황이었고 이런 것들을 알아보면 작품에 대해서 우리가 작품의 의미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거예요. 실제로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죠.

04:41:31

그래서 그 작품을 만들 당시에 이 작가의 인생에 어떤 일들이 있었나. 실현을 당했어요. 그러면 이 작품에서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그런 아픔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런 식인 거죠. 작가가 이 작품의 의미는 그런 거야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특히 그림은 잘 안 보이시겠지만 졸려서 안 될 수 없습니다. 지금 자전적이라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작품들이 있어요. 자신의 삶을 특히 작품에 반영하는 그런 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이런 전기적인 해석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요.

04:42:12

그 브리다 칼로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계시죠. 마시코의 여성 화가였고 굉장히 부르하다고도 할 수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 갇았을 때 굉장히 똑똑한 학생이었는데 끔찍한 교통사고로 몸 만신창이가 되는 바람에 아주 힘들게 살게 되었는데 나중에 이제 뭐 결혼을 하게 되고 근데 그 남편이 너무 바람을 피워서 뭐 다기도 바람을 피우고 이혼을 했다가 다시 같이 살다가 뭐 하여튼 온갖 인생상화 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굉장히 가지고 싶었지만은 이 교통사고 때문에 이제 몸이 망가져서 계속해서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고 그런 것들이 굉장히 이제 삶에 큰 불국을 안겨주게 되는데

04:42:57

자신을 많이 그렸어요. 이런 식으로. 자기를 이렇게 부러진 기둥에 만신창이가 된 그리고 항상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 몸을 상징하는 목들과 이 부러진 기둥, 붕대 같은 걸 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의상을 입고 있고 눈물을 눈에서는 눈물을 막 흘리고 있어요. 그림 잘 안 보이시죠. 프리다 칼로의 그림들은 항상 자기 자신을 등장시킵니다. 그리고 항상 자신이 겪고 있는 어떤 남편과의 어떤 사랑으로 반증의 문제라든지 자신의 어떤 입체적인 고통이라든지 정신적인 고통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담고 있거든요.

04:43:34

이런 작품들을 해석할 때는 그래서 칼로가 어릴 때 어떤 일을 겪었고 그런 것이 그녀의 삶과 성격과 이후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어질 수 있어요. 그런 것들을 우리가 많이 알아낼수록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상징들을 더 잘 읽어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뭐겠습니까? 모든 작가들이 자전적인 작품만을 만들지는 않아요. 이런 작가들의 작품은 우리가 굉장히 전기적 해석을 했을 때 유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은 안 그런 작품들도 많단 말이에요.

04:44:10

사실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가가 항상 자기 얘기를 하나. 뭐 이렇게 자기 얘기라고 하는 게 어느 정도는 그 작가의 어떤 뭐 그런 삶이나 사고 같은 것들이 들어갈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거꾼 일만 쓰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했을 때 이런 접근이 항상 유용하지는 않을 수 있겠습니다. 작가가 항상 자신의 삶을 반영하는 건 아니다. 일부러 자기의 삶과는 거리를 둘 수 있습니다. 굉장히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뭐 희망과 행복이 넘치는 작품을 만들지 못할 이라는 법은 없잖아요.

04:44:43

그렇습니다. 또 있어요. 작품의 굉장히 세부적인 어떤 부분들, 이런 것들까지도 작가의 삶하고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억지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은 말이 안 된다고도 할 수가 있어요. 또 작품의 세부와 어쨌든 간에 연관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도 만약에 작가가 자신의 삶이 작품을 반영되었다는 것을 공표하지 않는다거나 그런 것에 대해서 전혀 언급을 하지 않는 경우에 그런 식으로 연관을 짓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요.

04:45:22

뭐냐면은 우리가 사실은 아는 작가들에 대해서 그 작가에게서 어떤 모투리라도 알아내가지고 작품의 해석에다가 뭔가 이렇게 연관을 지어보려고 하기는 하는데 작가가 원하지 않았을 수 있잖아요. 자기 작품이 그런 식으로 자신의 사건 관련해서 해석되기를 원하지 않았을 수 있어요. 그래서 공적으로는 그런 것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고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랬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런 세부적인 요소들 분명히 이게 관련이 있을 거야 라는 식으로 해석을 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할 수 있어요. 작품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04:45:59

또 그러한 연관성이 굉장히 사적인 것이어서 다시 말해서 작가가 공적으로 알리고 지지 않은 것이어서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사실은 알아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모를 수도 있잖아요. 누군가가 어떻게 사적으로 관계했던 사람이 애인이 사실은 이거 이런 의미가 있어요.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것을 작품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가 계속 보게 될 것은 뭐냐면요. 크게 보자면 의도주의와 반의도주의 사이의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그랬을 때 이 작품을 어떤 것으로 보는가에 관여를 좀 차이가 있어요. 완전히.

04:46:40

반의도주의자들은 작가와 작품을 떨어뜨려 놓으려고 합니다.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독립적인 어떤 자율적인 앞에서 얘기 몇 번 했었습니다. 예술의 자율성 기억나십니까? 모던이즘 이런 거 있잖아요. 이런 입장인 거예요. 그러니까 신비평 다 모던이즘 시대의 산물입니다.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자율적인 존재인 거예요. 독립적인 거예요. 작가든 역사적 맨락이든 간에 의존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그거 자체로서 바라봐야 돼요.

04:47:13

이런 식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반의도주의의 기본적인 관점이라면 의도주의는 다르겠죠. 모든 작품은 작가 그리고 작가가 위치하고 있는 맥락 같은 것들이 얽혀서 탄생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는 점에 있어서 상당히 기반부터가 좀 다릅니다. 어쨌든 이렇게 대부분의 감상자들한테는 접근 불가능하다 그리고 어떤 세부적인 문장들이나 이런 것들과 생애까지 연관시켜야 하냐 작가는 자신의 작품과 거리를 두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다 보겠습니까? 다 작품을 작가와는 떨어뜨려 놓으려는 거예요. 독립적이라고 말을 하고자 하는 거예요.

04:47:53

왜냐하면 작가의 의도는 우리 마음속은 내 안에 있잖아요. 사적인 겁니다. 내 마음 안에 있는 거예요. 예술 작품은 내가 공공에게 지금 번져놓는 거란 말이에요. 공적인 겁니다. 이 공적인 것으로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그것을 사적인 작가의 마음과 관련시켜서 받아들이는 것은 이거는 규칙을 깨는 거다.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불법이다. 이런 거거든요. 그렇지만 유도주의자들도 할 말은 있겠죠. 현실적으로 우리가 그런 식으로

04:48:27

해석할 수밖에 없어 이런 얘기를 아마 들고 나오겠죠. 그런 싸움들입니다. 조금만 더 보겠습니다. 의도주의, 앞에서 순진한 의도주의, 전기적 해석 이런 것들 있었습니다만 사실은 오늘날에 현재 가장 설득력 있다고 여겨지는 의도주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온건한 실제 의도주의라는 게 있고요. 좀 있다 보겠지만 가설적 의도주의라는 게 있어요. 이 둘 모두 완전히 순진한 의도주의 같은 극단적인 의도주의에서는 한발 양보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반의도주의나 적절하게 절충한 입장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렇게는 하지만 어쨌든 간에 의도주의자들입니다.

04:49:15

우선 본건한 실제 의도주의부터 보겠습니다. 실제적 의도주의라는 게 뭐냐. 실제적이 아닌 거는 아까 가설적 의도주의가 있다고 했잖아요. 그거랑 차이를 두고 있는 겁니다. 실제적 의도주의라는 말은 정말로 작가의 실제 의도. 정말로 존재하는 작가가 있잖아요. 예술가가 있잖아요. 그 예술가의 실제 마음속. 이거를 가리키는 겁니다. 그런데 그냥 실제 의도주의라고 하면 앞에서 말했던 순진한 의도주의 그런 거예요. 작가의 마음속에 있었던 바로 그 의도가 작품의 의미다. 그런데 앞에 온건한이 붙어 있습니다.

04:49:54

온건함이라고 할 때는 약간 한발 양보였다는 의미가 들어가 있겠죠. 그런 겁니다. 책을 구매하신 분은 거의 없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비평철학이라는 제가 소개했던 책이 있습니다. 노엘 캐럴이라고 하는 절학자가 지은 책인데 이 노엘 캐럴은 온건한 실제 의도주의를 지지하는 절학자예요. 비평철학 책을 보시면 해석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이 온건한 실제 의도주의가 어떤 주장을 하고 있고 어떤 지점에서 가설 의도주의와 부딪치고 이런 것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안 봐도 괜찮아요. 제가 수업시간에 얘기할 거니까 하여튼 온건한 실제 의도주의자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작품의 의미는 작가가 그 작품을 만들면서 전달하려고 하는 의미예요.

04:50:39

그래요. 자 그런데 이 얘기가 순진한 의도주의처럼 받아들여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 그럼 우리가 작품을 볼 필요가 없잖아요. 작가한테 가서 유의도가 뭐였다가 알아내면 이게 작품의 의미가 되어버리는 거잖아요. 이런 건 사실 말이 안 돼요. 그렇죠? 그래서 어떻게 이야기를 하냐면 작가의 의도를 알아내기 위한 가장 1차적이고 직접적인 수단이 뭐냐? 작품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요.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작가의 실제 의도를 알아낼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알아내고 나면 그것이 작품의 의미이라고 간주해야 한다. 이런 입장입니다.

04:51:16

이게 왜 온건하냐 하면요. 만약에 작품이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된다면 그거는 작품의 의미가 아니라고 거부될 수 있다는 걸 인정해요. 그래야 되겠죠. 작가가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작품을 반영하지 못했어요. 반영되지 못한 부분은 작품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게 상식적입니다. 그런 입장 정도는 받아들이기 때문에 온건한 의도 중입니다. 작가가 원대를 가졌다고 다 작품의 의미가 된다고 받아들이는 건 아니라는 의미에서 온건한 입장입니다.

04:51:53

그렇지만 어쨌든 간에 온건, 화분, 말건 간에 실제 의도주의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한테 작품을 해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과 도대체 어떤 생각을 했나,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었나, 실제로. 그거를 온갖 수단 방법을 다 강구해서 알아내는 것이 중요해요. 정확한 의도를 알아내야만이 작품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1차적으로는 작품에서부터 찾아 나서야 해요. 작품을 읽어봐야지 우리가 작가가 이런 말을 쓰면서 혹은 이런 걸 구리면서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졌을까 우리가 유출을 해볼 수가 있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비어있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가 다른 증거들을 사사치 조사를 해서 그 작가의 실제 정확한 의도를 알아내야 한다고 주장해요.

04:52:44

작가의 말, 친구랑 한 말이든 개인적인 편지든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거나 불법인과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우리한테 중요한 것은 작가의 실제 의도를 알아내는 것이니까 말, 인기, 편지, 노트, 친구나 친척의 증언, 개인적인 대화 등등등 모두 참고할 수 있어요. 어떤 수단을 써서 든지 간에 작가가 정확히 의도했던 바로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작품을 해석할 때 중요한 것입니다. 왜 이런 얘기를 강조하냐. 나중에 뭘 가설적 의도주의에서는 이런 건 다 불법이다라고 하거든요. 그렇습니다.

04:53:18

하겠습니다 이 온건 실제 도주의 자들은 항상 작품을 해석한다는 것은 상대 방에 우리가 이제 대화를 나눌 때 상대 나의 어이 말을 해석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을 해요 의사소통과 위를 합니다 자 이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말하고 있다가 나는 그 배를 본 적이 있어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자 여러분들 있어 전 빛에 가 뭔가 무슨 뺀가 좀 먹는 될 수도 있고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될 수도 있고 사랑 될 수도 있고 그쵸 자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합니까 어디가 말하는 내가 무슨 때야

04:53:58

묻겠죠 그쵸 이런 거라는 거예요 까 작품이 있어 작품이 특히 어 애매한 의미를 가진 때 앞에서 이제 어떤 문장들 이야기 했었죠 자동차가 뭐 가스가 떨어졌다는 얘기 잘해 나왔다는 얘기인지 이런 거 한 적이 있었잖아요 한 작품이 가질 수 있는 이 가능한 의미가 여러 가지가 있을 수가 있어요 특히 이제 뭐 서로 상반되는 누가 되서 비가 오세요 유령이 있다 없다 예 자 정확하지가 않아요 이것만 가지고서 결정이 안 돼요 어떻게 합니까 물어봐요 작가한테 유령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04:54:30

이게 이제 우리의 직관이라는 거예요. 영문의 실제 의도주의자들은. 그래서 바라자한테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바라자가 계속 피해요. 명확하게 얘기를 안 해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우리가 증거들을 찾아 나섭니다. 여러 가지 맥락 같은 것들을 살펴서 작가가 그래서 유령이 있다고 생각한 걸까 없다고 생각한 걸까 라든지 아니면 배경 지식 같은 것들을 총동원해서 온갖 작가가 남겼던 개인적인 친구한테 했던 말, 편지, 일기 이런 거 뒤져서 작가가 정말로 유령이 있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라고 생각한 건지 알아내요. 알아내고 나면 고객의 작품의 의미가 된다고 해야 된다는 거예요.

04:55:09

왜냐하면 발화와의 유리가 뭐냐면 우리가 말을 한다는 게 뭘 하기 위한 건가. 상대방한테 나의 어떤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거고요. 내가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은 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인 거예요. 그랬을 때 상대방의 말을 내가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도대체 이 말을 가지고 뭘 하려고 한다를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이게 의도주의의 직관입니다. 그런데 이게 작가가 내 의도는 뭐뭐뭐다 라고 이야기했다고 해서 뭐뭐뭐가 작품의 의미다 이런 식으로 그대로 순천하게 받아들이자는 입장은 아니에요. 왜냐? 작가가 하는 말 자체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04:55:54

뭐냐면은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졌을 거예요 아마도. 그리고 그런 의도가 있었으니까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작가가 자기의 의도가 뭐였는지에 대해서 말로 그렇게 막 섬세하게 잘 풀어내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작가가 말로 그거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으면 말 만 하면 되지 왜 작품을 만들겠습니까. 작가는 자신의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는 전문가는 아니에요. 그래서 비평가가 작가의 의도를 더 잘 파악하고 더 잘 언어화할 수 있을 가능성을 당연히 인정합니다. 작가가 뭐뭐라고 말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그게 의미라고 받아들이지는 않아요. 그 안에 있는 함축이나 정확하게 의미하는 바가 뭔지를 찾아내려고 하는 거죠.

04:56:35

포착이나 설명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그렇지만 어쨌든 해석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의 실제 의도입니다 실제 그의 마음속에 있었던 그 의도가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영화가 옛날에 있었습니다 이게 찾아보니까 2010년 정도더라고요 벌써 10년이 됐네요 보신 적 있습니까? 봤어요? 재밌죠? 재미있는 영화인데 머리가 좀 복잡해지지만 재미있는 영화예요 잘 안 보이시죠? 하여튼 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냐 지금 이게 동영상이 잘 안 보이시죠? 패니가 지금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거든요

04:57:12

이게 내용이 뭐냐? 아무진 분들을 위해서 제가 스포를 그냥 해버리겠습니다. 내용이 뭐냐면 이게 주인공인 네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콕이라고 불리는 주인공이 다른 사람의 꿈 속에 들어가서 꿈을 조작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그런 기술이 있어요. 그런 사람이고 아내와 같이 그런 걸 하다가 아내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서 자살을 해버리고 말아요. 그런데 이제 코비 어떤 인물을 맡게 되죠. 자기 아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쫓기고 있었는데 긴장한 이 재벌이 부자가 이 코반 때 내가 이제 사업적으로 뭔가 다른 사람 마음을 조정해야 될 일이 있는데 요거를 그 사람의 꿈에 들어가서 성공시켜주면은 당신이 쫓기지 않게 해주겠다. 이런 제안을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코비

04:58:05

제안을 받아들여서 몇 명의 동료들을 끌어모아서 이제 꿈속으로 들어갑니다. 꿈속에 또 꿈이 있고 또 아내의 환영같은 게 나타나서 막 방해를 하기도 하고 뭐 하여튼 뭐 그런 내용이에요. 근데 이게 본인도 그러니까 내가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릴 수 있잖아요. 내가 지금 꿈속에 들어가 있는지 아니면 지금 내가 현실에서 살아있는 것인지 그래서 꿈인지 현실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각자의 어떤 이제 물건 같은 게 있어요. 토텔이라고 불립니다. 이 코베 토템은 여기 돌아가는 요펭이에요.

04:58:37

이 팽이를 돌렸을 때 돌아가다가 언젠가는 이렇게 딱 쓰러지면은 현실인 거예요. 근데 계속 돌아가면은 꿈인 거예요. 내가 갑자기 헷갈릴 수 있잖아요. 내가 지금 꿈인가 현실인가? 주머니에서 이걸 꺼내서 돌려봐요. 쓰러지면은 아 나 지금 현실에 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거예요. 하여튼 영화 내용 자체가 그런 식으로 꿈에 들어갔다 나왔다 또 꿈에 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니까 관객들도 헷갈리거든요. 마지막 장면이 뭐냐면은 이렇게 팽이가 돌아가는 장면이 나와요. 코비 인생의 인물을 만수하고 나서 이제 집으로 돌아와요. 아이들이 있거든요. 아내는 죽었지만 아이들이 있는데 이 아이들이 지금 이렇게 아빠를 보고 당기고 있죠. 그렇죠. 그리고 가서 이제 아이들을 안으면서도 꿈이 아니라 안정화가 끝나는데 이제 아이들을 안으러 가기 전에 책상에다가 이거를 꺼내서 돌리거든요.

04:59:29

돌아가요. 쓰러지는지 안 쓰러지는지 안 보여지고 영화가 끝나버리거든요. 그래서 미안합니다. 스포를 했으면은. 대충 그런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보고는 전세계 이 영화 감상자들의 반응은 도대체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꿈이냐 현실이냐 이런 거예요. 결국 정말로 꿈에서 결국은 나와서 성공을 한 것인가 아니면 꿈에 갇혀버린 것인가. 이게 굉장히 놀란 거리가 됐었거든요. 아...

05:00:01

그래서 사람들이 여기 보세요 오늘 주기 공주에다 모르겠습니다 리얼리티 드림 스테이트 물을 이제 어떤 영화 팩이 나누어 났습니다 예를 들어서 에코베 손에 뭐 그런 반지가 있냐 없냐 뭐 이런거 가지고 예 이제 그거를 찾기도 하고 막 그러거든요 우리는 어 5회 이슬을 대로 저희 인증 스테이트 꿈속에서는 항상 반지를 끼고 있대요 사실에서는 반지를 끼고 있지 않대요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 장면에서 꼬미 반지를 끼고 있지 않아 먹어요

05:00:37

이런 걸 가지고 이제 내의 분으로 찾아내는 거죠. 그러니까 현실이다. 누구는 아니다. 난리가 났어요. 그랬는데 몇 년 뒤에 이 마이클 케인이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이 포배의 장인어른으로 나오거든요. 이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어요. 현실이다라고 읽어보겠습니다. 타임즈에 따르면 케인은 2018년이니까 우리 한 10년 가까이 지나고 나서 이야기를 한 거네요. 런던에서 열린 상영회에서 빈셉션의 마지막 장면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05:01:09

그는 관객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인셉션 갖고는 자기도 처음 받았을 때 흔한스러웠다. 그래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 꿈이 어디까지 이어지는 건지 모르겠다.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가 라고 물었다. 이에 놀란은 당신이 등장하면 현실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마지막 장면에 K이 등장해요. 현실이라는 게 밝혀진 거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이오스가 등장한다. 이는 꿈과 꿈에서 빠져나가는 실로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그의 끝에니 작은 행위가 결국 회전을 멈춘 것이다. 8년간 이어진 미스터리가 마침내 풀렸다. 이런 기사까지 나올 정도로 이게 전세계의 영화팬들의 관심거리였습니다.

05:01:51

하여튼 근데 우리가 지금 요거를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떤 거 같습니까? 자 감독이, 크리스토버 놀란 감독이 당신이 등장하면 현실이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영화에서 등장했으니까 현실인 거잖아요. 그렇죠? 그럼 어떤 거 같습니까? 만약에 감독이 그렇게 이야기했으니까 당연히 현실이라고 받아들여야 돼 라는 생각이 들었으면 의토주의자인 거예요. 여기 보시면은

05:02:23

어 간부의 인터뷰가 있어요 예 이게 뭐 해도 물론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그 스포 올라 감동한 때도 뭐 궁금하잖아요 그래서 마지막 장면 이 꿈이에요 현실이에요 하고 많은 사람들이 물어봤겠죠 뭐라고 얘기한지 보겠습니다 어 이 장면은 코브에게 최소한의 현실을 이용합니다만 코브는 믿을만한 나레이터가 아니죠 애리들만한 아예터가 아니라는 게 쓰지겠습니까 코백 안점에서 이제 상황이 영화가 진행되는 거거든요 그랬을 때 코비 자기가 이제 꾸미지 현실인지 호동을 하고 있으면은 우리가 아도 사실은 이게 흠철 실은 지가 명확하지가 않은 거예요 그러니까 어딜 만한 아예 더 아니라는 거죠 혹은 현실이라고 믿는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05:03:10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 모호하다는 걸 이해하려면 코브의 세계와 코브의 세계가 대단히 비슷하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코브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고 이제 막 현실이 아닐 수 있는 막 의심의 여지를 막 남기죠. 아이들의 옷이 다릅니다라는 거 뭐냐면은 이게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아이들인지 아빠하고 만나는 장면이에요. 그 전에 아이들이 나왔을 때하고 옷이 다른대요. 나이도 먹었죠. 배우도 바꿨대요.

05:03:41

그러면 이거는 현실이라는 얘긴가. 그러니까 이거 가지고 추리를 하기 시작하지 그죠. 그런데 중요한 건 코브가 토템을 보지 않는다는 거죠. 그는 신경 안 쓰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팽이를 돌려놓고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파악을 하고 싶으면 끝까지 봐야 되잖아요. 그런데 보지 않고 그냥 웃으면서 번지고 그냥 나가요. 그러니까 이게 꿈이든 현실이든 코브는 지금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거가 재밌어서 갖고 왔어요. 사실은 제가. 어떤 사람이 질문하는 인터뷰하는 사람이 일부러 결말을 모호하게 해서 꿈인지 현실인지 둘 다 해서 가능하게 해서 답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닌 영화를 만들려는 게 아닐까? 이런 질문을 했어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논란감독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답은 있어요.

05:04:29

저는 항상 모호한 결말의 영화를 만들려면 감독에게는 진짜 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만일 감독도 답을 모르면 자기 모순이 되거나 비현실적이 되어서 관객들이 속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모호함은 영화 속 캐릭터가 자기 운명을 모르고 관객이 그런 캐릭터와 동화되어서 나오는 것이지 감독이 모호하면 안 되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어요. 앞에서 아마 그런 저기 우리가 나사회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그런 말씀하신 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무책임하다.

05:05:03

이게 뭐 꿈인지 현실인지 유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감독도 그냥 결정하지 않고 내버려 둔 거라고 뭐 알아서 해석하세요 이런 식으로 내버려 두는 것은 작가로서 무책임한 거 아니냐 놀란 감독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관객들이 만약에 꿈이다 현실이다 말과 말과 하면서 막 논쟁을 벌이고 있으면 감독이 또 사실은 현실이었어 라고 이야기해줘 버리기는 싫을 수 있어요 그렇잖아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어 이제 뭐 꿈에 든 현실이든 안 결정하지 않았어 라고 하는 것도 책임할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자기 마음속으로는 사실은 작품 만들 때는 에 언 한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은 거기에 대해서 이제 뭐 감상자들이 이런저런 여러가지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조차 거부하지는 않을 수 있는 거거든요 그렇지만은 그렇다고 그냥 무책임하게 언 쪽여든 상관없는 그런 작품을 만들어버리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05:05:57

그랬을 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놀란 감독이 이런 식으로 나왔다고 했을 때 아무래도 이 인터뷰를 자세히 내가 분석을 해봤더니 아무래도 놀란 감독은 마지막 장면을 현실로 의도를 하기는 할 것 같아. 그러니까 현실이 맞아 라는 생각이 드는지 아니면 작가도 명확한 언급을 꺼리는데 우리는 작품 자체만을 봐서 그것만 가지고 해석을 해야 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작품 자체를 봤을 때는 품에 대한 현실이든 둘 다 해석이 가능하니까 모든 단서들을 찾아보더라도 작품 자체는 누가 재미를 다 가지는 것으로 해석을 해야 되는 게 아닐까 뭘 이렇게 해석해야 되는 건지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05:06:36

그런데 이게 그렇습니다. 이게 작품이 어떤 것을 의미한다는 게 결정된다고 해서 의도주의가 맞냐, 반의도주의가 맞냐가 결정되는 건 또 아니에요. 뭐냐면은 영화가 현실을 의미한다고 해보겠습니다. 이 영화를 예로 들자면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근거는 꼭 작가의 의도만은 아닐 수도 있어요. 작품을 자세히 분석해보면은 작품만을 우리가 분석해보면 예제주의적으로 분석해보면은 이게 현실이라는 게 나옵니다. 그래서 작가가 어떻게 말하는 건 없이 반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잖아요. 이런 식으로 작품을 자세히 분석해보면은 답을 알 수 있다 라고 할 수도 있고 감독이 그렇게 이야기했으니까 현실이 났다 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요. 또는 두 가지 해석 다 가능하다 라고 해석을 한다고 하더라도 작품을 보면은 두 가지 해석 다 가능해 라는 것일 수도 있고 작가의 말을 들어보더라도 누가 지단서 가능하다는 것을 유명한 것 같아. 이것이 근거일 수도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05:07:32

뭔가 작품에 대한 해석이 결정된다고 해서 이 논란이 결정되는 건 아닙니다. 온건한 실제 의도주의 굉장히 말이 되는 입장이고 굉장히 직관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그런 입장이기는 한데 또 반론도 만만치 않아요. 가장 먼저 제기할 수 있는 반론은 뭐냐 하면요. 이 의도주의를 따르면 가장 기본적인 반론이 뭐냐. 작가들은 항상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 의도가 항상 작품에서 정확하게 반영되지는 않을 수 있거든요. 그랬을 때 작가가 그렇게 의도했으니까 그게 작품의 의미야 라고 말하는 것이 부조리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 말로는 할 수가 있어요.

05:08:17

작가가 의도한 바가 작품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을 경우, 작가의 의도가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 작품이 의미하는 바는 작가가 의도한 바와 다르게 된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죠? 그렇다면 온건한 실제 의도주의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우리는 온건해라는 거예요. 앞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온건한 실제 의도주의인 이유가 뭐라고 했어요? 작품을 만들면서 전달하려고 한 의미고요. 성공했을 때 작품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의미여야 합니다.

05:08:54

작품이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지 못했으면 그것을 작품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온건한 입장이거든요. 그래서 작품 자체가 작가의 의도를 지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런 입장이기 때문에 우리는 온건한 실제 의도주의다. 그렇지 어쨌든 간에 작품이 작가의 의도를 지지할 수만 있다면 작가의 의도와 어긋나는 부분이 없다면 작가의 의도를 작품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요.

05:09:27

어쨌든 온근한 실제 의도주의도, 순진한 의도주의보다는 절충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작품이 작가의 의도를 지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인정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는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구조를 인정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약간은 관례주의적인 입장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런 중간적인 절충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례적인 의미,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런 의미와 의도, 작가의 의도 모두를 중시한다. 이렇게 단독님의 마음을

05:10:00

하는데요 참 어려운 문제인데 여기에 대해서 이제 이 반의부 주의 자들이 다시 재발을 할 수가 있어요 로 복잡하지 난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런 그랬을 때 자 의도와 관리를 모두 받아들인다고 했을 때 관련된 을 모두 받아들인다 도대체 무슨 말이냐 어떤 방식으로 관리와 의도를 모두 수용할 수 있냐 예 특히 관례적인 의미와 의도가 충돌할 때 그렇잖아요 이 성취 된 의료 자 의도가 성공했을 때

05:10:34

도대체 말이 되기는 하는 거냐. 이런 거예요. 저번에 앞에서 한번 이야기했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 간의도주의자들이 의도주의에 대해 제기하는 일종의 딜레마적인 상황이거든요. 작품이 있고 작품의 의미가 있어요. 그 다음에 의도가 있어요. 그런데 의도가 성공했어요. 작품에 성공적으로 지금 녹아 들어가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작품에서 실현이 됐어요.

05:11:06

그러면 작가의 의도는 필요 없어요. 작품만 봐도 우리가 작가의 의도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성공했으니까. 작가의 의도가 실패했어요. 그러면 우리 작가의 의도를 알아봐야 되겠습니까? 아니잖아요. 실패했는데 왜 알아봐요? 그렇죠? 그러면 어쨌든 간에 성공했든 실패했든지 작가의 의도는 필요 없는 거라고 할 수가 있거든요. 또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있어요. 이 얘기는 뭐냐 하면요. 우리가 작품을 열심히 읽어봤더니 A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05:11:40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작가의 의도였어요. 자 그러면 우리가 작가한테 의도를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작품만 봐도 우리가 A를 알 수가 있으니까. 그렇죠? 자 그런데 만약에 작품은 A인데 의도가 B다. 자 그런 경우에도 우리는 작가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냥 작품이 의미하는 바와 작가의 의도는 다르니까. 그렇죠? 자 그리고 이런 얘기도 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에 의도주의자가 하는 얘기가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이 의미하고 작가가 가지고 있는 이 의도가 일치해야 성공하는 거다.

05:12:20

이런 얘기라고 한다면 사실은 우리가 작가한테 물어보기 전에 작품의 의미를 구성할 수 있어야지 비교할 수 있잖아요. 그런 얘기는 할 수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 작품의 의미가 뭐다 하는 게 결정되어야지 이게 작가의 의도인가 작가의 의도가 성공했는가를 비교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때 이제 반도주의자의 반론은 뭐냐면은 자 그러면은 우리가 작가의 의도 없이도 충분히 작품의 의미를 구성할 수 있다는 거 아니냐.

05:12:52

그렇다면 왜 작가의 의도를 구태여 다시 확인을 해야 되는 거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거든요 여기에 대해서 사실은 의도주의자가 이 알로운 반박을 하기가 대답을 하기가 상당히 어렵기는 합니다 어렵기는 해요 작품의 의미에 대한 독립적인 관념이 없이는 어떤 것이 상취된 의도인지 설명할 수 없다는 게 그런 의미예요 그러니까 작품의 의미가 뭐라는 게 결정이 되어야 그것이 작가의 의도하고 비교해봤더니 성공한 거더라 실패한 거더라 라는 이야기를 할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랬을 때 이 성취된 의도라는 게 그런 말이잖아요 작가의 의도가 있을 때 작품의 의미하고 맞나 안 맞나

05:13:32

맞다 맞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작품만 가지고 우리가 의미를 구성해냈다는 거예요. 그래야지 비교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의도주의자가 하는 말과는 달리 사실은 작품 자체만으로 의미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면 작가의 의도가 도대체 분도덕이일 뿐인 것이 왜 필요하겠는가. 이런 식의 반론을 펴거든요. 만약에 이런 걸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의도주의자들이 예를 들어서 의도주의자들이 작품의 의미는 독립적으로 결정될 수 없어. 항상 작가의 의도와 관련해서만 우리가 의미를 구성할 수 있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고 해보겠습니다.

05:14:11

그러면 사실은 성공한 의도라는 말 자체가 필요가 없어요. 필요가 없다기보다는 하기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왜냐하면 결국은 그 얘기는 이 말의 의미 혹은 작품의 의미는 작가의 의도가 있어야만 완성되는 거라는 얘기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이게 실패했다는 말을 과연 할 수는 있는 건가? 이런 얘기를 할 수가 있거든요. 좀 복잡하기는 한데 그런 식입니다. 온건한 실제 의도주의가 극단적인 순진한 의도주의가 아니라 온건한 입장이라고 자기들의 입장에 대해서 이 옹호가 뭐라고 하나? 방어를 할 때 어떤 얘기를 하냐면 우리는 작가의 모든 의도를 다 작품의 의미에 반영하지 않는다. 성공했을 때만 반영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거든요.

05:14:59

성공했을 때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둘을 비교할 수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비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작가의 의도 없이도 작품의 의미를 구성할 수 있다는 거 아니겠는가. 그러면 작가의 의도라고 하는 것은 필요 없는 군도덕이에 불과한 게 아닌가. 이런 반박을 하는 거죠. 만약에 성공했다는 말은 사실은 둘을 따로따로 알아내서 둘을 비교해보는 방식인 게 아니라 작품 자체의 의미 자체가 작가의 의도가 들어가야지 구성될 수 있는 거야.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그러면 우리가 과연 실패한 의도를 이야기할 수는 있는 건가.

05:15:35

성공 실패를 이야기할 수 있는 건가 왜냐하면 성공했다고 이야기하려면 비교를 할 수 있어야 되잖아요 비교가 안 되는 거잖아요 이거 자체가 지금 구성이 되는 거 자체가 작가의 의도가 들어와야 구성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이 작품의 의미가 항상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실패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결국은 그 입장은 그냥 앞에서 봤던 순진한 의도주의 극단적인 의도주의하고 같은 게 되어버립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있어요 작가가 뭔가 나는 2000년밖에 생각이 안 나서 세계 평화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05:16:13

라고 했어요. 작품이 있습니다. 작품 자체는 너무나 엉성하고 별 의미를 읽어낼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작가가 그렇게 이야기했으니까 의도주의에 따르면 이 작품은 세계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왜냐하면 그게 아니라는 증거는 없어요. 작품만 봐서는 그런 의미를 읽어낼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평화를 이야기하지 이야기한다는 그런 해석과 충동하는 부분도 없어요. 그렇다면 결국은 작가가 어떤 작품을 만들든지 상관없이 자기가 하는 말 내 의도가 뭐다라고 하는 말과 충동하는 부분만 없으면 결국은 이 작품의 의미는 의도주의에 따르면 작가가 가지고 있던 바로 그 의미가 작품의 의도가 작품의 의미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되는 거잖아요.

05:16:59

이런 경우에 작가의 의도가 과연 실패할 수가 있는 건가? 왜냐하면 작품의 의미 자체가 작가의 의도가 개입되어야만 성립하는 것이라면 항상 성공한다는 게 전제되어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얘기를 할 수가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성취된 의도, 성공한 의도라고 하는 말 자체가 어폐가 있다는 거예요. 성공이라는 게 비교해서 딱 맞다 하면 성공이라고 한다면 작가의 의도는 필요 없게 되는 거고요. 비교할 수 없다, 원래부터가 작품의 의미가 작가의 의도가 있어야만 결정되는 거다라고 하는 순간 모든 극단적인 의도주의하고 똑같아져 버리게 됩니다.

05:17:35

그래서 굉장히 복잡한 논점들이 오가고 있어요. 만약에 의도주의자라면 이런 반박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결국은 너는 극단적인 의도주의자가 되거나 아니면 작가의 의도 없이도 작품의 의미가 독립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되는 거야. 이렇게 나오는 거잖아요. 자, 그랬을 때 자, 이 의도주의자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요?

05:18:11

다시 말해서 지금 반의도주의자의 반박은 뭐냐면요. 너의 입장을 따른다면 결국은 실패한 의도라는 건 있을 수 없는 거 아니야? 이런 얘기일 수 있거든요. 실패할 수 없는 거 아니야.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실패한 의도를 찾아낼 수 있잖아요. 뭐냐면 작품을 봤을 때 분명히 작가는 이런 걸 의도했을 것 같은데 작품 자체는 부족해. 이런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05:18:45

그럴 수 있잖아요. 이런 거죠.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밥을 먹는데 젓가락이 있어요. 아 나 수절도 필요해 라고 했어요. 그 얘기는 사실은 숟가락이 필요하다는 얘기예요. 그렇죠? 그렇지만은 내가 당연히 알아들었어요. 숟가락을 줬어요. 그렇지만 말 자체는 숟가락 젓가락이 필요해 라는 이야기였을 수 있잖아요. 이런 상황이거든요. 비유가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럴 때 우리가 내가 수저가 필요해 라는 말을 숟가락 젓가락이 필요해 라는 말 이런 의미를 가진 것으로 이해를 해야 맞는 것인지 아니면은 말은 실수를 했지만 결국은 숟가락이 필요해 라는 말인 것으로 이해해야 되는 것인지 이런 문제하고 비슷할 수 있거든요.

05:19:36

실패한 의도라는 게 이런 경우인 거예요. 뭔가 의도는 서로 알고 있어요. 너가 말하려고 하는 바도 알겠고 알아들었어요. 그렇게는 한데 말 자체는 사실은 약간 어긋나 있을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사실은 의사소통을 할 때는 중요한 것은 말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 사람이 나한테 어떤 말을 전달하려고 했고 그의 의도가 보였다는 것을 내가 파악을 해서 거기에 맞춰서 행동하는 그런 게 중요한 거거든요. 그랬을 때 말을 똑같이 하더라도 똑같이 알아들어야 되는 거잖아요. 말은 그렇습니다.

05:20:09

그런데 작품도 그런가가 이제 문제인 거예요. 작가는 분명히 내가 작품을 보더라도 이런 말을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작품 자체는 정확하게 그런 걸 의미한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잖아요. 그런 경우에 우리가 작품의 의미를 뭐로 봐야 할 건가. 작가가 의미한 바가 분명히 내가 보이니까 그게 작품의 의미라고 봐야 되는 것인지. 이게 이제 아마도 의도주의자들이 할 만한 그런 얘기겠죠. 아니면은 니가 의도한다는 그런 거였을지 모르겠지만 너의 작품 자체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아.

05:20:47

그렇게 말을 해야 되는 것인지. 말이라고 한다면, 의사소통이라고 한다면 의도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의도주의자들은 작품도 그런 거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렇지만 반의도주의자들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우리가 말 자체의 의미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말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랬을 때 말을 이상하게 했으면 그 말 자체는 그 의미를 가지는 거라고 봐야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작품 자체는 독립적인 거니까. 이 만든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져든지 상관없이 이거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있어요.

05:21:26

그러면 그게 그 작품의 빙이라고 봐야 되는 것이지 위도한 사람이 뭘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여기서 중요한 게 아니라고 볼 수도 있는 거거든요. 하여튼 그런 겁니다. 의도주의자 라며는 아마도 그런 경우에 그 작품은 그냥 실패한 거다라고 할 것 같아요. 의도는 이러했으나 작품이 만약에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됐다면 실패한 거다라고 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마도 반의도주의자라면 의도받아 상관없이 이 작품 자체는 그런 의미를 가진다.

05:22:01

라고 할 것 같습니다. 쉽지 않죠. 그렇죠. 굉장히 복잡한 논쟁들이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이런 논쟁들이 과연 작품의 해석에 정말로 실질적인 도움이 되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이기도 합니다. 그렇게는 한데 결국은 의도주의와 반의도주의의 대립의 핵심적인 입장 차이는 뭐냐 하면요. 작품이라는 걸 뭘로 보고 있는가의 차이입니다. 의도주의자는 작품의 어떤 의의가 어떤 의사소통에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랬을 때 말 같은 거라고 생각을 하는 것은 발화 같은 거라고 그랬을 때 말을 하고 서로 말을 하고 듣고 중요한 건 뭐겠습니까?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어서 이제 이게 받아들여지는 게 중요한 거예요. 고객의 의도주의자의 기본적인 입장이라고 한다면 반의도주의자들의 기본적인 입장은 뭐냐면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 의미

05:22:58

그런 거죠. 말로 말한다면은 작품이라고 할 때는 이런 청소통일화의 수단이라기보다는 작품은 그거 자체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존재자이고 우리가 작품을 해석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그대로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 자체로서 해석을 하는 것이다. 이걸 만들어낸 사람의 의도를 마음을 알아내려고 하는 게 아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짝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오늘 뭐냐면은 해리포터의 경우 많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뭐 이것도 오래 지나서 이제는 다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05:23:38

에이 2인 울리 이 집으로 작가 지어 에 덤블도 어 부장 2 뭐 성회 자다 이런 것을 펌 터뜨리고 나서 전세계의 해리포터 팬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작품을 많이 없을 때는 좀 더 오랜 생활 동안 시리즈로 나왔습니다만 영화를 만들어지고 왜 작품 자체로만 봤을 때는 이 동물 도어 그저 이 동성애자 라는 힌트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때까지는 그랬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 이제 많은 영화가 또 미리 작품들이 나오고 하면서 지금은 대충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나는 속에는 그랬어요 굉장히 추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해석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었어요

05:24:22

이런 거죠. 그러니까 이게 이 사례가 그렇다기보다는 어떤 경우에 이럴 수 있습니다. 작품 자체만 봐서는 전혀 그런 의미가 들어있다고 파악이 되지 않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런데 작가가 작품 다깝게 해서 내 작품의 의미는 이런 거였어 라고 이야기를 해버립니다. 그런 경우에 우리가 그렇지만 작품 자체에서 덤블도 그저니 게이가 아니라는 증거도 없어요. 여성과 무슨 사랑을 나누었다든가 이런 말도 없어요. 그러니까 동성애자가 아니라는 증거가 있으니까 안 되라고 할 수도 없는 거예요. 지금.

05:24:57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 작가의 의도를 작품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런 문제일 수 있거든요. 아마도 의도주의자라면 작품 자체에 이러한 작가의 의도에 반하는 증거가 전혀 없다면 이 작품 안에서 실패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없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이게 작품의 의미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얘기할 것 같습니다. 만약에 단 의도주의자라면 작가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05:25:31

굉장히 의도적으로 대제해야 합니다. 작가는 말 자체는. 그렇게 생각을 하거든요. 불법이에요. 불법입니다. 그런 거 넣으면 안 돼요. 작품 자체만으로 구성한 의미만이 제대로 된 의미라고 해야 될 것 같아요. 반대로 얘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뭐냐면 앞에서는 뭐였습니까? 첫 번째 경우는. 작가는 의도했는데 작품 안에 들어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였어요. 반대 경우도 있을 수 있잖아요.

05:26:05

작가는 별 생각 없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읽는 사람들이 굉장히 의미심장한 그런 의미들을 보기 안에 들어있다고 생각을 해요. 이럴 수도 있잖아요. 그렇죠? 물론 많은 경우 작가들은 가만히 있겠죠. 왜냐하면 작품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다양하게 섞여는 걸 좋아할 테니까. 자, 하여튼 작가의 의미에 의도되지 않았으나 작품 속에 가치 있는 것이 존재할 때가 있다. 우리가 작가에 대해서 많은 걸 알고 있어요. 그리고 이 작가는 분명히 이 맥락상, 상황상 이 작품 안에 그런 의미를 집어넣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를 집어넣지 않았을 것 같아요.

05:26:43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그렇게 읽힐 수 있어요. 그렇게 읽혔을 때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이 있어요. 앞에서 우리가 햄릿에 대한 오이디프스적 해석 이런 거 봤었습니다. 쉐이스피어가 프로이트보다 먼저 살았잖아요. 그렇죠? 쉐이스피어가 프로이트의 오이디프스 컴플렉스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상황들을 봤을 때 햄릿을 그렇게 프로이트적인 해석을 하는 것은 그러니까 불법인 것 같고 안 된다고 생각을 할 수가 있잖아요. 그렇지만은 작품 자체만 보자면은 그런 식으로 해석을 했을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착착착 맞아 떨어지면서 완전히 이 작품이 뭔지를 딱 보게 해줘요. 완벽하게 해서돼요. 그렇게.

05:27:25

그렇다면 이것을 이 작품의 의미로 봐야 하냐 안 봐야 하냐. 어떤 것 같습니까 직관적으로. 작가가 놓지 않았음에 분명하다고 판단될 수 있는 그런 의미가 작품 안에 들어있다고 생각해야 되는가 말아야 되는가. 이 의도주의자 들이라면 아마도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작품 속에서 읽어낼 수 있겠는가. 그거는 작품의 의미가 아니야라고 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또 다르게 반응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보시면.

05:28:01

작가가 미리 고정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작가가 완성된 산물에 들어가도록 승인하지 않았는가? 말은 어렵지만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새로운 거죠 셰익스피어가. 미리 뭔가 오이디프스 콤플렉스, 프로이트의 심리학 이런 걸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어서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만든 건 아닐 수 있어요. 그렇지만 어쨌든 간에 어떻게 하다 보니까 만들어진 작품이요. 그런 식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어요.

05:28:33

그럼 어쨌든 간에 작가는 그런 식으로 해석 되도록 작품을 만든 거예요. 이게 말이 되는 건지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무의식적으로. 의도주의자가 취할 수 있는 한 가지 입장이에요. 아까 얘기했던 노엘 캐럴이 이런 입장을 취합니다. 근데 말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의도라는 말 자체가 뭔가 의식적인 의도를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나도 모르고 있었던 나의 의도. 사실은 무순적인 말입니다.

05:29:06

내가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의도 이런 걸 의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너는 그런 의도를 너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어. 말이 되는 것 같습니까? 거의 우기는 거라고 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아닌데 내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대요. 나의 의식에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는데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이런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겠죠. 백스피어가 당시에 무슨 프로이트 심리학이나 오이디프스 컴플렉스나 그런 것까지는 몰랐다고 하더라도 자기도 모르게 그러니까 뭔가 이 햄리과 어머니와의 관계 그리고 이제 아버지를 죽인 삼촌이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 어떤 아들로서의 어떤 굉장히 뭔가 성심리적인 그런 어떤 것들을 자기도 모르게 뭔가 희한한

05:29:55

희미하게 이게 우리 포스 신화가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어머니가 결혼한다. 그런 거잖아요. 그런 게 어떤 원형적인 인간의 어떤 가장 깊은 어떤 뭔가와 관련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쉑스피어가 자기도 모르게 그런 식의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또 영 말이 안 되는 건 아닐 수도 있어요. 언속이 맞는 얘기 같습니까? 실제로 그런 의도를 가졌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작품의 의미가 아니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히려 완전히 의도주의자라고 한다면 실제 의도주의자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에 작가가 그런 의도를 가졌을 거란 생각을 할 수 없는 그런 게 분명한 상황이라면 그렇게 계속하는 것이 굉장히 흥미러울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의 정당한 의미는 아니야라고 할 것 같아요.

05:30:46

그렇기는 한데 캐럴 같은 사람은 그게 작품의 의미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뭐냐면 작가가 무의식적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의도를 가졌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야. 이렇게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작품이 그런 식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거야. 어쨌든 그러한 해석에 상반되는 그러한 해석에 부딪히는 그런 부분이 작품 안에 없어요. 그 얘기는 작가가 어쨌든 그런 식의 해석을 허용하도록 작품을 만든 게 아니겠는가.

05:31:18

이런 얘기를 하고 있거든요. 물론 이러한 입장의 설득력에 대해서는 평가가 좀 다양할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은 말이 잘 안 된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기는 한데 하여튼 그렇습니다. 어쨌든 만일 작가가 완성된 산물이 그런 식으로밖에 해석될 수 없는 그런 작품을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결국은 작가가 일종의 의도를 가지고 썼던 거라고 봐야 된다. 이런 얘기인 거예요. 이런 사례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안 돼요.

05:31:51

인형의 집 입생의 들어보셨습니까? 이 주인공 노라였나요? 하여튼 대충 얘기를 하자면 노라가 아주 행복한 가정, 중산층 가정에서 이제 사는 그런 부인이에요. 귀여운 자식들도 있고 자기를 아껴주는 남편도 있고 그런데 어떤 사건을 벗으면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그런 사건들을 벗으면서 이 가정 내에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내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대등한, 남편과 대등한 인격으로 지금 존중받는 그런 사람인 것이 아니라 마치 온실 속에 있는 하초처럼 마치 인형처럼 취급받고 있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돼요.

05:32:36

하면서 마지막에 이제 집을 팍 차고 나가요. 문을 쾅 하고 닫고 나가는 게 연극의 끝입니다. 하여튼 이런 소설을 썼습니다. 1880년에. 그리고 전 세계 페미니스트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최초의 페미니즘 소설이다라고 평가를 받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요. 입생 자신은 그러한 이 평가를 평생 동안 거부했어요. 뭐냐면은 자기는 이 인형의 집이라는 작품을 쓰면서 전혀 무슨 페미니즘이니 무슨 여성 권리니 이런 거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05:33:10

우리는 그냥 작품을 쓰면서 가정이란 무엇인가 결혼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작품을 썼다는 거예요. 그러거든요. 밑에 있는 것도 여팽목도 뭐냐면 어디에 초청되어서 입생이 연설을 한 부분입니다. 여성 무슨 어벤니즘 어떤 파크 이런 데 초청을 받아서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아서. 천사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나는 여성 권리 운동을 위해 의식적으로 일했다는 영광을 부인해야 합니다.

05:33:42

나는 이 여성 권리 운동이 실제로 무엇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그것은 인간 전체의 문제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내 책을 주의깊게 읽으면 이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사실 다른 모든 문제와 마찬가지로 여성 문제도 피격하는 것이 바람직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의 목적이 아니라 목적이 전부겠네요.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임무는 인간을 묘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구구 부인을 합니다.

05:34:14

이런 경우에 우리가 이 '인형의 집'이라는 작품이 여성해방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로 봐야 하는지 아닌 걸로 봐야 하는지 어느 쪽으로 맞는 것 같습니까? 정말 또 의도주의자라면, 입센이 그런 의도를 가지지 않았으면 이 작품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거라고 하는 게 솔직한 입장일 것 같아요. 혹은 아까 캐롤의 입장 같은 경우는 입센이 의식적으로 그런 의도를 가지지 않았을지는 모르겠으나 여러 가지 상황들을 책을 읽어보건대, 이 작품을 보건대 분명히 작가가 그런 의도를 가진 거라고 우리가 간주해야 한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거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석될 수밖에 없는 작품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는 거죠. 아마도 반 의도주의자라면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졌던 것과는 상관없이 이 작품 자체는 그런 여성해방에 관련된 의미를 가진다고 봐야 한다.

05:35:11

라고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작품 자체만 봤을 때 분명히 그런 의미를 입어낼 수 있다면 그런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하여튼 그래요. 이런 사례도 있어요. 조지아 옥기프라고 하는 여성 화가가 있습니다. 미국에. 옥기프의 꽃그림들이 굉장히 유명합니다. 재미하니까 잘 안 보이시기는 하죠. 아름다운 꽃을 굉장히 가까이에서 자세하게 아름다운 색감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05:35:47

오키프가 사실은 스티블릿스였나 하여튼 이 화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던 게 이제 에이드 오픈이기는 해요. 당시에 이제 미술계는 비평계 쪽에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과 연인관계가 되고 그러면서 오키프의 그림들이 알려지게 전시가 되고 알려지게 되고 나중에는 결혼도 합니다. 근데 또 금방 헤어져요. 그리고 이제 또 그 다음에 많은 그림들을 굉장히 오래 살았거든요.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근데 이 꽃그림들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을 하냐 하면요. 성적인 것으로 해석을 해요.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꽃의 형태 같은 것들이 굉장히 어떻게 보면은 여성의 성계를 상징하는, 의류하는 것처럼 그렇게

05:36:36

부인다고 해석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어키투 자신은 그러한 해석을 너무 싫어했어요. 자기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다. 나는 그냥 이 자연의 신비와 꽃 자체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가까이 들여다봤을 때 느껴지는 그러한 조용미 이런 것에 관심이 있었고 자기는 자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지 뭔가 어떤 성적인 함축 같은 의미는 전혀 없다. 그런 의도는 전혀 없다고 극복 부인을 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어키투와 스티글레츠 사이에 연애사건이 떠들썩했던 거였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어키투의 작품을 항상 그런 식으로 약간 성적인 함축을 가진 것으로 생각했었죠.

05:37:18

해석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그런 해석과 우키프는 평생을 싸웠습니다. 그런 의미 듣고 보면 또 작품들이 뭔가 관능적인 이미지로 읽히기도 해요. 보이기도 하거든요. 그렇다면 이 작품의 의미에 그런 성적인 함축이 들어가 있다고 해야 되는 것인가. 작품을 보면 작가 자신이 그렇게 독후 부인을 하니까 그것은 작품의 의미가 아니라고 해야 되는가.

05:37:50

그것들이 해석에 있어서 논쟁거리가 되는 그런 작품들입니다. 의도주의자라면 아마도 작가가 아니라고 하니까 아닌 걸로 봐야 한다. 자연의 신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냥. 그렇지만 반의도주의자에 따르면 작가가 아무리 부인한다고 하더라도 작품 자체는 그런 식으로 읽힐 수밖에 없어. 그렇다면 그런 의미를 가진 거야. 라고 하겠죠 아마도. 그런 논쟁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뭐가 첫째였습니까? 지금 뭔 얘기 라고 했었습니까? 의도주의가 있었고 온건한 실제 의도주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온건한 실제 의도주의에 대해서 제기될 수 있는 반론들을 지금 보고 있었습니다.

05:38:39

작가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작품에서 어떤 것들을 읽어낼 수 있으면 그것은 작품의 의미라고 봐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럼 의도주의가 틀린 거 아니냐. 이런 얘기를 지금 했었고요. 세 번째는 뭐냐면 의도주의 자체에 대한 반론입니다. 뭐냐면 실제 의도라고 했을 때 작가의 실제 마음 속에서도 바로 그 생각을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그거 우리가 알 수는 있는 건가? 이런 얘기예요. 작가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기는 했을 거예요. 그런데 작가의 마음은 작가만 알 수 있어요. 마음이라고 하는 건 주관적인 거고 나 혼자만 내가 접근할 수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간접적으로밖에 유추할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그랬을 때 작가의 실제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내서 그것을 작품의 의미라고 봐야 되라고 한다면 작가의 의도라고 하는 걸 과연 우리가 알아낼 수는 있는 건가?

05:39:30

그리고 만약에 그럴 수 없다면 작품의 의미는 영원히 모르는 게 되는 건가? 이런 반론을 할 수가 있습니다. 작가의 실제 의도는 확증될 수 없다. 특히 옛날에 돌아가신 분들의 마음속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물론 여러 가지 증거들을 파헤쳐서 알아내려고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확하게 작가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라는 걸 우리가 이야기할 수는 있는 건가? 이런 거예요. 작품의 특징과 맥락과 작가의 말을 통해서도 파악할 수 없는 의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05:40:03

왜냐 다른 사람의 의도라는 것은 직접적으로 접근 불가능한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거예요.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랬을 때 작가의 의도에 대해서 우리가 하는 말들은 결국은 확정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가설에 불과하다라고 얘기할 수가 있겠죠. 이런 입장들이 뭐가 되겠습니까? 가설 의도주의 이런 입장으로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실제 의도 알 수 없다. 타인의 의도라는 것은 원래부터 알 수 없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작품을 가지고 작품 만든 사람의 마음속을 어떻게든지 알아내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냥 작품을 가지고 이야기하자.

05:40:42

이런 입장이 되거든요. 그런데 가설적 의도주의도 의도주의이기는 합니다. 입장이 좀 복잡해요. 다음 시간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오늘 여기까지만 일단 하겠습니다. 다음에 가설 의도주의는 다음 시간에 이야기할게요. 다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