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사상 속 행복론 비교
Shared on October 14, 2026
서양사상의 이해 지난주에 이어서 이번주 가치론 철학의 다양한 주제들 중에 가치론 가치론 중에서 행복이론 공부를 두 번째 쭉 행복론 두 번째 쭉 쭉 공부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행복의 다양한 견해들 두 번째 수업시간이고요. 저는 유재민이고 전화번호와 연락처가 이렇게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봤던 행복이론은 첫 번째 쾌락주의 행복론이었고요. 쾌락주의 행복론이 가지고 있는 가장 커다란 문제점인 쾌락의 역설이라고 하는 것. 쾌락의 역설 때문에 쾌락주의 행복론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행복에 대한 관념임에도 불구하고 지지받기 힘들다.
공격받기 힘들다 공격받기 쉽다 이런 얘기를 했었고요. 쾌락의 역설이라는 개념을 쾌락주의 행복론은 극복하기 힘들다 라고 했고 그래서 그 대안으로 쾌락주의 행복론 중에서 소극적 쾌락주의를 주장하는 에피크로스 학파의 이론을 공부했습니다. 에피크로스 악파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행복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소유를 늘리는 게 힘들다면
실제로 이제 월급 올리기 힘들잖아요. 직장 안전한 직장 잡기도 쉽지가 않은 거고 그러니까 소유를 늘리기가 쉽지가 않는 경우에 욕망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쾌락을 늘리는 방법도 있고 그러니까 쾌락이라고 하는 건 이때 욕망의 충족이죠.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 우리가 갖는 주관적인 만족감
쾌락을 늘리거나 혹은 고통을 줄이는 방법이 있죠. 근데 쾌락을 늘리는 이 방법 내 욕망을 보다 많이 실현하면 실현할수록 나는 행복하다 라고 하는 쾌락주의 행복론의 적극적인 측면을 강조를 하면 이건 쾌락의 역설에 빠지기 때문에 소극적 쾌락주의를 주장하는 에피크로스는 고통을 줄이는 데서 행복을 찾아보자.
고통을 줄여야 행복할 수 있다. 쾌락을 늘리는 데서는 행복을 추구하면 안 되고 여러 가지 역설이나 비판점들이 튀어나오기 때문에 그러지 말고 고통을 줄이는 데서 고통을 제거하는 데서 진정한 행복을 찾아야 된다. 그래서 경제학자들도 소유를 늘리지 못할 때는 욕망을 줄일 때 우리가 전체적으로 행복을 늘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쾌락주의 행복론 전체가 비판의 대상은 아니고요. 사실 소극적 쾌락주의를 이야기하는 에피크로스는 비판할 게 때문에
딱 드러나진 않습니다. 비판할 건 없는 거야. 내가 마음에 안 들면 이 선택을 안 하면 되는 거지. 하지만 잘 생각해 보셔야 됩니다. 소크라테스의 얘기를 다시 한번 하면 반성하면서 삶을 살아야 됩니다. 항상 지금까지 내 삶을 평가하고 마음에 들었는지 어떻게 하면 더 마음에 드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고민을 할 때 이걸 고민을 안 하면 안 돼요. 내가 지금 추구하는 게 돈인지 그죠 아니면 또 다른 가치인지 이런 걸 고민을 해야 된단 말이에요
그런데 젊은 분들은 음 나이든 분들도 이제 마찬가지인데 돈이라고 하는 거를 너무 추구를 하면 야 돈 많아야 일단 행복하지 이건 맞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연구상으로도 일정 정도의 벌이가 있어야 그 이상, 일정 정도의 벌이가 있어야 행복이 보장된다라고 하는 그런 통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별로 없다, 거의 없다 이러면 행복하기 쉽지가 않은데
여러분들 돈을 아주 많이 벌려고 생각을 한다면 돈이 최고야 라고 생각한다면 쾌락주의 행복론의 쾌락의 역설을 고민을 해보고 그리고 소극적 쾌락주의자로서의 에피쿠로스가 왜 여기서 행복을 찾지 않고 여기서 행복을 찾으려고 했는지 이걸 계속 고민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살아야 됩니다. 두 번째 행복이론은
탈세속주의 행복이론이에요. 앞에서 대충 설명드렸죠. 종교인들이 많이 갖는 행복관입니다. 종교인들은 여기서는 행복할 수 없어. 딴 데 가야 행복할 수 있어 이런 겁니다. 행복의 절대적인 기준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거나 불가능해. 그러니까 신께 귀히 하거나 신에게 의지를 하거나 내가 죽은 다음에 가는 어떤 천국이나 극락세계나 이런 곳에서나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어.
라고 하는 게 탈세속주의 행복론의 요지입니다. 그래서 읽어봅시다. 훌륭한 삶을 영위한다거나 이게 객관적 행복이 추구하는 거고요. 훌륭한 삶을 영위하는 게 객관적으로 어떤 걸 달성했을 때 성취했을 때 그게 진짜 행복이지라고 하는 게 객관적 행복론이 주장하는 건데 이건 3번에서 다룰 거고요. 훌륭한 삶을 영위한다거나 쾌락을 추구한다거나 주관적인 행복 첫 번째 거죠. 쾌락주의 행복론
이 모든 것들은 첫 번째 거죠. 쾌락주의 행복론. 이 모든 것들은 모두 1번과 2번 모두 1번과 3번 모두 세속적인 행복주구다.
세속적인이라고 하는 거 무슨 얘기인지 아시죠? 세속이라고 하는 게 이곳입니다. 이곳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지상에서 행복 추구는 무의미하다 혹은 가능하지도 않다는 겁니다. 객관적인 행복을 통해서도 주관적인 행복을 통해서도 우리는 이 세상에서 행복해질 수 없다라고 하는 이론이 탈세속주의 행복론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세속적 삶의 부조리함 혹은 허무주의죠.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 이렇게 열심히 살고 바득바득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을 했는데 죽을 때 돼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까 후회만 가득해. 이게 이제 허무주의지. 그죠? 내 삶을 지금까지 평가를 해보니까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아. 마음에 안 들어. 이게 이제 부조리하고 허무주의.
이게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탈세속주의 행복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지상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결과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애시당초부터 이걸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야 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세네카라는 로마시대에 굉장히 훌륭한 정치가이자 철학자이자 법학자였던 세네카라는 위대한 인물이 있었는데요.
드론을 보셨나 모르겠네. 세네카가 네로라고 들어가셨죠? 로마식이 네로 당대의 최고의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돈도 많았고요. 권력은 물론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하 권력이 굉장히 많았어. 그래서 세속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는 이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에요. 행복한 사람인 거지 이 사람이 그래서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주입되어 온
아 행복하게 살려면 저렇게는 살아야지 라고 하는 삶의 모델을 제시한 사람이에요 세네카가 그런데 말년에 죽을 때가 되어서 굉장히 불행한 일을 겪습니다 왕이 황제가 너무 황제가 너무 엉망이야 개떡같아서 모함도 받고 아무튼 불행에 빠지는데 그래서 네로 황제가 너 자살해라
모함에 빠져서 너 자살해 우리나라 같으면 사약을 내리겠지 어? 약약간 사약 사약 뭔지 아세요 먹으면 죽는 거야 왕이 내리는 거에서 안 먹을 순 없어요 근데 이제 당시 로마시대에는 뭐 그런 사약 제도가 있었던 건 아니기 때문에 자살하라고 친척들도 다 정치적인 이 패권 다툼이나 아 정치 싸움 때문에 친척들도 다 죽어버리고
가족들도 이제 다 불행해지고 그래서 스토아 철학자로서 본인은 행복했다고 말을 하긴 했는데 내 삶은 행복했다고 얘기를 하긴 했지만 이 만년을 보면 누가 봐도 불행한 삶이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만년의 불행이 세네카가 의도한 게 아니었다는 겁니다. 굉장히 우연인 거야. 우연적이고 불운인 거지. 굉장히 우연적인 어떤 사건에 얽혀서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 거거든요.
근데 탈세속주의 생복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을 하냐면 탈세속주의 생복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을 하냐면 이 삶을 살면서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이 불운, 우연적인 어떤 외부적인 풍파 같은 것들이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막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물론 조심조심해서 이렇게 살겠지만 어떻게 알아요, 그거를. 그러니까 인간사 세웅지마다. 잘 살았다고 해서 잘 산 게 아니라는 얘기지
아리스토텔레슨 철학자들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세네카는 죽기 직전이 불행했지만 그래서 죽음도 불행하게 죽었다고 후대에 평가를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슨은 이런 얘기래요 설사 평생을 평온하게 살다가 죽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죽은 다음에 이 사람이 불행해질 수 있다는 거야 그건 무슨 얘기일까요? 조선시대로 예를 들어서 얘기를 해보면 양반이야 그래서 벼슬도 받았어
그래서 어떤 분이 굉장히 훌륭한 삶을 살다가 돌아가셨어. 모두가 애도를 하면서 이 사람이 돌아가셨어. 그러면 이분은 굉장히 행복한 삶을 사는 거잖아요. 그렇죠? 풍파도 없었고. 그런데 죽은 다음에 이분의 자식이 반란을 일으킨 거야. 왕에게 대든 거지. 근데 걸렸어.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 조선시대에는 사돈의 팔촌까지 죽은 사람은 묘 자리를 다 파헤치고요.
묘가 없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사돈의 팔촌까지 전부 다 노비가 돼. 왕에게 대들면. 이 사람은 반역을 일으켰던 아들의 아버지는 죽을 때는 행복했지만 행복하게 돌아가셨지만 죽은 다음이 불행한 거잖아요. 그죠? 이 사람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이 사람이 자식을 잘못 가져서 불행해졌구나 라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거지. 그러니까 이게 이제 아르셀레스가 타르속주의 행복론자여서 이런 얘기를 한 건 아닌데
아르셀레스는 이제 이 우연이라고 하는 게 굉장히 자신이 삶에 중요하게 작용을 한다는 얘기를 했기 때문에 이런 예를 든 거고요. 탈세속주행복론에 따르면 이 지상에서의 삶이라고 하는 건 죽은 다음에도 불행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거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까 어떻게든 여기서 행복하게 살려고 아동바동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탈세속주행복론자들이 그래서 종교인들이 많은 거예요
종교인들은 이 지상의 삶 말고 또 다른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행복할 수 없어 인간이라는 조건상 죽은 다음에나 너는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 여기서 찾으면은 안 돼 저 다음에 죽은 다음에 찾아야 되는 거야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지 그래서 이들은 행복과 불행은 인간 권한 밖의 문제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행복하려면 어떻게 되느냐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 지상에서도 그래도 나름 여기서 잘 살려면 진정한 행복은 여기서는 찾을 수 없지만 불행해지지 않는 삶을 영위하려면 초월적 존재의 힘을 빌어야 돼. 여기서조차. 그래서 교회 다니시는 분이 맨날 기도하고 절에 자주 다니시는 분들이 맨날 불공드리고 그러는 거예요.
복을 내려달라고 안전하게 살게 해달라고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 거야 왜? 인간의 힘으로는 안되니까 그런거죠 마태복음 7장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넓은 문 말고 이런 얘기가 있어요 그런데 이 좁은 문이 뭐냐 초월적 존재의 힘을 통해서 이 세속적인 삶을 영위해 나가려고 하는 사람의 삶인거지. 그리고 우리 범인들은 보통 사람들은 저 사람 어떻게 저런 삶을 살지 싶은 그런 삶.
그런 삶의 길 그걸 이제 좁은 문으로 볼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남들이 다 가는 넓은 문, 남들이 다 행복하다고 하는 그런 가치관에 따라 살지 말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된다라는 거예요. 탈세속주의는 보통 종교인들이 많이 이야기를 했고요. 그래서 이제 예를 이렇게 들어드리면 간단한 시훈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신부님이죠.
지금으로 치면은 교부라고 하는데 교회의 아버지란 뜻이지 교부 신부님이에요 교부가 이제 신부가 되는 건데 굉장히 유명한 신부님이셨어요 기원 5세기쯤 그때쯤 사셨던 분이고 보통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성 아우구스티누스라고 안하고 성 어거스틴이라고 합니다 같은 분이에요. 성어거스틴이든 성아우스티누스든 고백록이라고 하는 책이 유명해요.
이거 굉장히 사람들이 많이 봅니다. 이 책을 보면 이 성아우스티누스가 젊었을 때 개망란이었거든요. 그래서 정말 친구들이랑 되는대로 살고 말 그대로 감각적 쾌락을 쫓아서 삶을 살다가 하물며 연상의 여인에게 자기 아이도 임신시키고 정말 엉망으로 살던 사람인데
어느 날 어머님의 기도 도움으로 본인이 회심하는 사건이 하나 생깁니다. 머리는 되게 좋아서 이교도들의 기독교를 치면 이단의 사상인거지 이교도의 사상에도 심취하다가 회심하고 기독교의 교리를 굉장히 철학적으로 완성시킨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성 아우스 뉴스는 서양 사상사의 역사에서 그 이전에 내려오던 헬레니즘 전통
헬레니즘 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면 그리스 히락 철학 그러니까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레스텔레스로 이어지는 철학적인 전통과 철학적인 전통과 헤브라이즌 헤브라이즘은 히브리를 중심으로 한 이론이란 뜻이에요. 헤브라이즘 처음 들어보세요. 들어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 서양
서양의 문명이 헬레니즘을 한 축으로 하고 헤브라이즘을 한 축으로 하는 이건 이제 구약성서 성경의 구약성서, 유대교 이쪽 전통이에요. 물론 기독교도 되는 거고요. 그러니까 철학과 종교를 종합하신 분입니다. 기온 5세기에. 그러니까 굉장히 철학 쪽에서도 연구도 많이 되고 존경도 많이 받는 분이시고요. 기독교에서 특히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천주교 말고 기독교에서 굉장히 많이 좋아하는 분이에요. 아무튼 이분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현세에, 현세가 지금 이곳이에요. 현세에 덧없는 것들은 벌써 덧없다고 하잖아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진정한 행복과 무관하다. 현세의 것들은 진짜 행복이랑 무관하다 진짜 행복은 신만이 줄 수 있다 하나님이겠죠? 신을 따르는 삶만이 진짜 행복이다
진짜 행복을 교회에서는 뭐라고 하냐면 지복이라고 해요 영원한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을 따르는 삶만이 영원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신에 대한 믿음, 구원의 소망, 신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갖고 신과 인간을 사랑하고 이걸 통해서 지복에 이를 수 있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은 물론 지상에서도 완전 불가능하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의 행복은 지복까지는 가지 않고요. 신이 줄 수 있는 천국에서의 삶이 지복인 거겠지. 사실은. 그것도 신의 도움으로만 가능하다. 세속적으로는 불가능하고 탈세속주의 행복론은 장점이 있습니다. 장점이 있어요.
단점도 물론 있지. 단점이 뭐냐면 현실로부터 도피를 하는 걸로 보여요. 이분들은 현실을 열심히 살려고 하지 않을 가능성이 생기는 거지. 타세적주의 행복만을 따르는 분들은 또 성아오스티누스 말고 불교 장치하신 석가모님 부처님이죠 현세의 삶 이런 얘기했어요 현세의 삶은 지금 여러분들이 살고 있는 삶은 고통의 연쇄다
삶이 고통이다 들어보셨어요? 삶은 그 자체가 고통이야 이게 석가모니가 한 말입니다 삶은 고통이야 그냥 삶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에 삶을 살면서 내가 지금 고통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건 다 착각입니다 그냥 삶 자체가 고통이에요 그리고 이 현세의 이 고통의 연쇄 이 윤회라고 하지 윤회를 끊어야 행복할 수 있어 윤회를 끊고 성불해야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그렇게 되는 거죠. 물론 이제 종포마다 약간 다르긴 하겠지만 그래서 이 고통의 연쇄를 끊어야 되는데 그러려면 초월해야 됩니다. 성불해야 돼. 그래서 행복해지기가 성 아우스튜러스가 이야기하는 행복보다 더 힘듭니다. 속세의 삶은 그러니까 이제 종교인들은 많은 걸 내려놓을 수가 있는 겁니다 진정한 가치는 저 너머에 있기 때문에 이 지상에서의 삶은
뭐냐 저기를 속세 속세 말고 천국이나 극락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에요. 이 현세의 삶은. 이 과정을 잘 지내야 천국도 극락도 갈 수 있는 거거든요. 이 과정에서 내가 욕심을 많이 부리고 인간의 정에 많이 끌리고 그러면 성불할 수 없겠지.
석가모니의 불교를 따르면 그렇게 되는 거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탈세속주의 행복론을 공부했고요. 지금 너무 쉬운 거 가는 것 같은데 그래서 조금 어려운 거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번째 객관주의 행복론은 첫 번째 주관적인 만족감이 진정한 행복이야. 주관적인 쾌락, 만족감, 욕망의 충족 이런 게 행복이야 라고 했던 쾌락주의 행복론. 두 번째 이 지상에서는 행복할 수 없어. 속세를 떠나야 행복할 수 있어.
초월적인 것에서 행복을 찾아야 돼 라고 한 탈세속주의 행복론. 세 번째가 객관주의 행복론인데 객관주의 행복론은 매우 현실적인 행복론입니다. 많은 분들이 약간 헷갈릴 수도 있어요. 첫 번째 쾌락주의 행복론이랑 헷갈릴 수도 있는데 이게 엄밀히 들어가면 구분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쾌락주의 행복론을 가지면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요. 그래서 객관주의 행복론의 행복은 이게 주관적인 감정이나 만족감이 아니야.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서 어떻게 내 주변을 변화시켰는지를 통해 그 사람의 업적과 성과 결과 이런 것들을 통해서 행복을 측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이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윤리학이 객관주의 행복론의 대표인데요. 우리가 이제 지난 주제 윤리공부를 할 때 결과론으로서의 공리주의와
그렇죠? 동기를 중요시하는 의무론 공부를 하다가 계약론도 공부를 했었고요. 이거 말고 현대에 덕윤리라고 하는 게 되게 각광을 받고 있어 덕을 중요시하는 윤리가 되겠죠? 그 덕윤리가 바로 객관주의 행복론에서 이야기하는 윤리입니다. 덕윤리는 객관적인 행복론이랑 내용이 거의 비슷해요. 같은 거라고 보셔도 되고요.
그래서 덕윤리자들은 착하게 사는 것, 착하게 사는 거랑 삶을 훌륭하게 사는 걸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객관주의 행목론에서 도덕적으로 너 손해보면서 착하게 살아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니고요 이건 약간 복잡한 얘기니까 여긴 이것까지 하고 아무튼 윤리학에서 공부를 하나 덜 했던 현대 윤리학자들이 많이 연구를 하는 그 덕윤리가
플라톤과 아리스텔레스가 이야기하는 객관주의 행목론이랑 같은 거다 이렇게 이야기하시면 되겠고요 그래서 덕이라고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개념이 됩니다. 객관적인 행복론에서는 덕이 뭐냐가 문제가 되겠죠. 그건 조금 이따가 말씀드리기로 하고요. 플라톤도 아리스텔레스도 물론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삶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돼. 이건 마찬가지인 거고
주간의 만족감이나 즐거운 어떤 기분 좋은 감정이나 이런 거에서 행복을 찾지 않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인간들과 관계를 맺고 있느냐 이런 것에서 객관적으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객관주의 행복론을 공부할 때 플라톤과 아레스레스에서 공부를 하면 되고요. 그 중에서도 객관주의 행복론을 최종 정리했던 아리스텔레스 윤리학을 객관주의 행복론을 공부를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아리스텔레스가 들고 있는 이건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라는 그림이 있다만하게 있는데요. 그 한가운데 두 분이 정중앙에 5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어. 당시 근대 초기 중세 말기 그때 그려진 그림인데요. 이 그림에는 당시까지 철학자 종교인들 그림이 다 그려져 있어요.
근데 정중앙에 두 명이 딱 그려져 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텔레스. 그래서 플라톤과 아리텔레스를 중심으로 서양 사상이 형성되어 왔다. 이렇게 이해를 하시면 되겠고 이 객관주의 행복론은 현지에도 굉장히 많이 연구가 되는 분야다. 이렇게 이해를 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아리텔레스가 플라톤은 아르셀레스의 스승이죠. 플라톤의 스승은 소크라테스이고요. 소크라테스로부터 이어지는 이 세 분의 행복론이 되겠어요.
왼쪽이 플라톤이고 오른쪽이 아르셀레스인데 플라톤이 들고 있는 책이 있고 아르셀레스가 들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플라톤이 들고 있는 책 이름은 이렇게 써 있어요. T-My-O-S T-My-O-S 라고 써있고요. 이거는 에티카 이렇게 써있는 것 같아요. 에티카 이렇게 써있나? T-My-O-S 플라젠트 내리고 있는 T-My-O-S는
우주 창조론을 담고 있는 책이고요. 여기에 대해서는 알 필요는 없어요. 우리가 나중에 서양 사상의 주제들, 철학의 주제들 중에 존재로 공부할 때 팀하이얼스 얘기를 좀 할 거고요. 지금은 아레셀레스가 자신의 주저라고 생각한 이 그림을 그린 라파엘로가 근대 초기에, 르네상스 시기에 플라톤 하면 떠오르는 책을
여기다가 그려놨겠지 아리셀레스 하면 떠오르는 책을 그려놨을 거예요 플라톤도 30여건 아리셀레스는 더 많은 책을 썼는데 그 중에 가장 주자라고 생각하는 게 여기 지금 에티카에요 에티카가 윤리학입니다 이 윤리학은 아리셀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는 책이고요 그래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는 객관주의 행복론이 담겨있고 현대 덕윤리의 핵심적인 내용들이 그대로 다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용기에 대한 이야기, 덕, 중용, 저스티스, 정의, 쾌락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요.
그리고 우정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굉장히 다양한 주제들을 한 권의 책에 담고 있는 그런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그러면 객관주의 행복론 본격적으로 두 번째 시간부터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