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사 3주차
Shared on October 18, 2026
오 왜 안하지? 못돼있어 그래서 제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죽었어 근데 영혼이 부활했어 근데 내가 이렇게 하고 있으면 팔다리를 뚫려서 움직이고 있으면 못 찾아간다니까 그래서 팔다리를 묶어서 판 안에 가둬다녀 거의 자세면 하도 없습니다 거의 90% 이상 가까운 조각상이 돌판에 가둬져 있는 게 특징인데 이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그리스인들이 어떤 것들을 초기에부터 표현하기 시작했냐면 눈, 코, 입은 흡사, 석가구니, 부처님 같을 정도로 기술력이 되게 떨어져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해석이 뭐였냐면 그런데 인간이잖아요. 인간인데 왜 팔다리 다 이렇게 묶어놨어요? 우리는 움직일 수 있어야 되는데. 그래서 그리스는 처음으로 영향을 받게 받았지만 모든 조각의 시초를 팔다리를 뚫어놔서 움직일 수 있게끔 만들어놔요. 그것이 그리스 조각의 시작점이기 때문에 본인들은 어떻게 얘기하냐면 영향은 받았지만 그리스의 세계관 안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했다는 이야기 하거든요.
이것이 이집트와 그리스를 가로지르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거 나중에 써먹기 되게 좋아요. 왜냐하면 사실은 제가 어떤 생각을 하냐면 다 아는 내용인 것 같아서 이런거 얘기해야 되라고 하지만 가리시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여러분들은 아마 처음 보시는 분들도 있고 책에서 보신 분들도 있을 수 있는데 이것만 하고 잠깐만요.
메소포타미아는 제가 딱 중요한거 하나 시험자는 안되고 그냥 이건 아무도 아니니까 그냥 펜 4명부터 주셔도 되요. 메소포타미아는 이 스튜디오 운영보다 사실은 더 먼저 낸 가장 최초의 운명권이고 지금의 터키 지역이잖아요. 유프란테스칸과 티블스강을 끼고 두 강을 끼고 만들어진 것인데 사실은 얘네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면 두가지에요. 문자 이 두 가지 의미가 메소포타미아에 대해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얘기만 하고 제가 지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기원은 4천년 후반이고 가장 원시랑 맞닿아있어요. 비슷한 문명권이 바로 메소포타미아인데
얘네들이 농사, 농경 생활을 얼마 아까 체계적으로 했느냐? 아 그래서 너네들은 문명, 도시라는 것들이 일정 생겨났구나 라는 것을 위로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촌촌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사실은 생산하고 교육하고 물건을 파는 것, 행정 관리하기 위한 기록의 체계가 굉장히 빠르게 발달을 했었고 점토판에 쓰여진 초기 문자가 점차적으로 서량 문자로 발달된 문자를 최초로 사용한 문명권이 바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라고 얘기를 들을 수가 있는데
문자학원은 왜 필요해졌습니까? 여러분 제가 애기 흉내댔잖아요. 응애~ 누워 있을 때 막'어~ 응 응' 울음소리 했다. 애들이 배가 못한가? 침침한가? 똥싼다? 이런 걸로 이제 엄마들이 판단한단 말이에요. 얘네들이 그때까지는 말할 이유가 없지. 그러다가 본인이 기어 다니고 뭔가 하고 싶고 싶고 먹고 싶은 게 생기면 엄마를 해요. 엄마, 엄마 그럼 제가 배우고 응 응 응 그럼 엄마 제가 폭삭구야 말 치워줘
나는 빨리 치워라 약간 이런 뜻이잖아요 그러다가 본인이 걸어서 시작해서 만지는 게 많아지면 말할 수 있는 것은 일어나고 있어요 엄마 밥 주세요 그렇죠? 이렇게 인간이 사실은 생에 태어나서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이랑 사실 되게 비슷한데 이것도 동일하게 얘네들이 농업을 시작하면서 인여 생산물을 태겨요 남는 거에요. 사구차고 공간에 쌓여. 자원을 어떻게 관리하는거에요. 남는거에요. 거기서부터 사고가 틀. 너무 여러분들 생각해보세요.
그때그때 농사하셔서 먹는 시절을 지나서 너무 많이 쌓이는거야. 이거 도시를 어떻게 관리해야 될. 생각이 많아지는데 뱉어내야 되는게 많잖아요. 그렇죠? 그런것들. 두번째는 일단은 도시. 인구가 프라테스카가 틀을 쌓는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숫자. 지금의 5천명 이상의 인구가 모여되기 시작하거든요. 그게 분명히 시작되면 인구 5천명. 5천명이면 지금 우리나라 소규모 서운 지역에 있는 데가 3천명이다 하니까 굉장히 많은 숫자인데
이런 인구가 집중이 되다 보니까 분화돼야 해요. 이 사람이 이런 역할을 했는데 저 사람 저런 역할을 하는 역할을 분화하는 사회를 집중시킬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던 거고 그러다 보니까 이거 이어 생산물을 판매하기 위해서 누가 소유할 것이야? 이것을 소유에서 어떻게 거래할 것이야? 팔아서 어떻게 할 것이야? 라는 기록이 필요하게 시작을 했던 거예요. 그래서 아 그러면 내가 단순하게 그림으로 하기에는 사회가 너무 고도로 운명화되기 시작을 한 거죠.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겨야 되겠다 라고 생각을 해서 기억의 도저에서 출발을 했는데 행정과 법과 교역을 운영하는 어떻게?
사회 인프라라는 것들을 마련시키기 위해서 기록의 도구리 문자가 필요해지기 시작했던 거고 그걸 가장 먼저 시작했던 게 바로 에서 포타미아 문명입니다. 처음에 저편판에 뭐가 새겨져 있냐면 이렇게 새겨져 있어요. 개인이 소유한 농작물, 가축 소유권 포판 부서도 있고 수로로 이렇게 만들어야지 하는 설계 도안도 있고요. 실제로 제가 진짜 한 20년 전에 봤던 KBS의 메소폭탐와 관련된 정말 긴 한 2시간짜리 다큐멘터리가 있었는데 거기에
어느 정도 얘네들이 기록을 시작하는 게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 오늘 학교 선생님한테 땅 세배를 맞았다. 그 이유는 내가 떠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소수한 일상까지도 기록이 되어 있었대요. 그러다 보니까 문명이 고도화되다 보니까 사람들의 사고가 밖으로 뱉어 나오는 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라는 것들을 통해서 문자의 활용이라는 게 굉장히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이 됐다 라는 것들을 볼 수가 있는데 배송포탐을만 하고 끝내드리기가 얼마 안되거든요. 여기까지만. 빨리 만들어드릴게요.
그래서 이 지구라트 여러분 조금 의미가 달라요. 이게 지구라트에요. 가끔씩 얘기하다 말까 하다가 한번 지나가는 말로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이 지구라트가 지금의 피라미드 보다 먼저 지어진 건물이기도 하고 의미가 좀 다르거든요. 얘네들이 농업을 짓고 그 다음에 도시 인구가 집중되다 보니까 수로도 만들어야 되고 도로도 건설되어야 되고 성벽도 만들어야 되고 주거 신전 이런 것들이 필요해진 거예요 필요해졌어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까
그런데 어떻게 해야 되지 하다가 도시 우리나라 여러분 순대문화하고 똑같은 거 같아요 도시 중심의 떡하니 이 도시 전체를 관장할 수 있는 무언가 하나의 조직하는 건축물이 필요했다는 거고 그러다 보니까 도시를 이루는 물과 공간과 권력과 경계선 안에서 이것들이 건물이 하나의 집합 형태가 아니라 생존도 하고 이동도 하고 신앙도 행정도 도시에 해결할 수 있는 도시 중심의 떡하니 이렇게 상징적으로 세워져 있는 형태인 거네
이거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 나갈 수 있도록 그런 게 중심적으로 지급으로 치면 약간 그 뭐라 하지?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했던 게 바로 지구라트라고 볼 수가 있고요 그러다 보니까 메소포스타미아에서 디자인 관점을 우리가 어떻게 보냐면 사물, 더 이상 그냥 쓰는 물건, 도구, 단순하게 그림, 외부화지 시스템을 만드는 것보다 정보, 도시를 만드는 시스템에 디자인적 사고행위라는 것들이 왜 일정으로 적용되었다라는 것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고요
그리고 문자는 여러분들 되게 여러분 청각기호가 뭐죠? 음성이잖아요 여러분 음성은 야호! 하면 저쪽에서 갑자기 거짓이야 라고 생각났어요 나 그것도 얼마 전에 알았어 아 진짜 여러분 이게 진짜 문제에요. 요즘 일부러 인터뷰를 볼 수가 없으니까 야호~ 하면서 야호~ 하잖아요. 청각기온은 시골간적 한계가 있죠. 외쳐. 지금이야 전환기가 있으니까 그게 그냥 한계지만 그 당시에는 청각기온을 넘어서는 무엇까지 기온가 필요했을 텐데 문자 이전에는 뭔가 입으로 전해 놓은 거에요. 그랬지? 저랬지?
현장이나 문고 이런 것들이 중심이었는데 문자가 발견되고 나서부터는 뭘 할 수가 있냐면 기록하고 동일함과 어떻게 똑같이 복제하고 전달해서 세대 간에 추천되는 침밀을 만들 수 있는 굳건한 형태가 된 거예요. 여성 포탐에만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집트, 황후, 인더스 많은 문명권으로 퍼져나가고 정말 빠르게 인류가 조직하되기 시작했던 거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볼 수가 있고 인간이 기억을 해
그렇지만 여러분 기억력은 한계가 있거든요. 그래서 이 한계를 넘어서 내가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그리스의 헤르도토스가 역사라는 걸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지금부터 정말 빠르게 진화될 것이다 라고 이야기했거든요. 역사 이 기록이라는 게 중요하다. 이거의 시초가 그래서 부탄이라고 시작이 됐다. 그래서 여러분 문자를 누군가는 말하는 사람의 기록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럼 말의 기록이 문자가 아니에요 뭐냐면
사회 전체가 어떻게 촘촘하게 조직화 되어 있느냐에 대한 인포메이션 디자인의 시작인거에요. 우리가 시각기호를 문자비유를 바꾸는거에요. 읽을 수 있게끔 기록으로 바꾸는거기 때문에 조금 더 넓은 거리로 문자를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다. 여러분이 보시면 이렇게 해서 문자가 만들어진거거든요. 우룩사세, 수메르, 바빌로니아시대 지나서 수메르어까지 가면 처음에 이렇게 젠디를 그려. 되게 잘 그렸죠? 보는 관찰력이 이미 원시시절부터 인류가 가지고 있는 본능적 행위였던거 같아요.
보여지는 것들을 관찰해서 되펴내는 형태잖아요. 그러다가 이게 정차적으로 어떻게 되면 기호화돼요. 필요한 것만 남기는 거. 우리가 이걸 추상이라고 하잖아. 너무 복잡해. 복잡한 거 걷어내고 본질만 남겨서 누군가가 다 알 수 있는 기호 체계를 만들자. 그래서 정차 기호화가 됐다가 문자화 되는 이 형태가 바로 문자의 형성 과정이라고 볼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문자가 만들어진 과정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처음에는 보이는 걸 그대로 그립니다. 이걸 재현이라고 해요. 그리고 제가 지금 방금 얘기한 거
보이지 않는 거에 대한 의미가 본질이라고 하는데 여러분 디자인 과정이 이러하거든요 구상에서 추상으로 가고 우리가 모던과 퍼스트 모던 얘기할 때 제가 이 얘기를 또 하긴 하겠지만 본질만 남기는 거 디터남스라는 디자인의 이름을 들어보셨을 텐데 디터남스가 아직 돌아가시진 않았는데 이제 90이 되셨고 그분의 디자인이 사실은 본질만 남긴 가장 그리즈 시스템을 잘 완성시킨 가장 깨끗한 디자인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분이 그렇게 될 때까지 그 이전에 이미 이렇게 보이는 것들을 그대로 만들고
거기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 제거하고 제거해서 본질만 남기는 디자인 그런 것들이 디자인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발전되고 있는 과정 안에서 문자의 형성 과정에서도 그런 것들이 보여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의미를 반복해서 반복 가능한 형태를 최대한 단순화시키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이것들을 언어와 정보를 체계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문자가 만들어지는 거. 그러다 보니까 형태를 통한 사유. 여러분 이거 되게 중요해요. 이거 제가 시험에 안내겠습니다. 말하나가.
너무 중요해서 집중하라고. 이거 중요하니까. 내가 말한 게 써 놓고 좀 기억 못 하고 있어요. 여러분 형태를 통한 사유가 기호를 통한 정보조리로 확장되서 이걸 제가 조금 더 쉽게 풀어드릴게요. 처음에 주먹돕기 만들었던 사람들이 형태를 우리가 뭔가를 자르는 거 부시는 거 이렇게 형태를 들어야 하는 생각의 사유가 단순하게 형태를 만드는 게 어울러 있었잖아요 되게 단순 사고가거든요 그쵸? 아웃풋이 되게 단순하단 말이에요 단순한 아웃풋이 정말 지구으로 치면 긴 시간이 짧게 느껴졌을 거예요
짧은 시간에 진화의 가사를 맞추면 어떤 걸로 바뀌냐면 형태를 통한 사유가 아니라 더 이상, 뭐 뭐서 본질적인 것, 보이지 않는 것, 기호를 통해서 정보라는 것들을 제공하는, 조직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야지 확장된 사건이기 때문에 문자가 인류의 인간 문화, 인간 발달사 중에서 성기 제작만큼이나 가장 유대한 발전사가 문자의 간력이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각 디자인하는 친구들은 그렇기 때문에 시각 디자인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라스코 동물 역할이 최초의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이다. 그 다음에 문자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중요하다. 상징성, 기호화 이런 것들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아셔야 하는 역사 중의 하나다. 환불하게 걱정만 하고 마무리해드릴게요. 여러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게 법전이고 함부로의 법전이 메소포탈에 운명을 신경이 만들어졌어요. 잘 보시면 위에 그림이 있고 밑에 텍스트가 있거든요. 이건 뭐라고요? 이미지와 팁션이라고 이야기하죠. 최초로 그림에 못 있는 사람을 통해서 이것이 어떤 것인가를 공표하면서 동시에 그림과 이미지를 같이 넣는다. 최초의
성문화된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이다 라고 볼 수가 있고요. 자 보면 사회가 조직화돼서 알겠어. 근데 얘들이 어느정도로 분명화되었는가를 아는 방법 중 하나가 뭐냐면 사회 안에서 공유되는 가치가 어긋나면 잘못된다는 걸 알려줘야지. 근데 그걸 구전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길 수 있게 될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법에 법을 돌에 새기는 거예요. 신과 왕의 관계를 이미지로 제시하다 보니까 내 말을 듣지 않아 그런 거는 처참하게 무너질 것이다.
라는 것들이 들어있거든요. 앉아있는 사람, 왕, 서있는 사람. 내 말을 잘 들어라 라는 뜻이거든요. 여러분들 여기가 너무 많이 쳐져 있기 때문에 초등학적인 사회규범이라는 걸 눈에 보이게 하는 후에 문자를 사용하고 기록을 할 수 있다 보니까 '아, 접하면 안 돼''저거 권장 열대 맞는 데'가 아니라 접어서 공표하는 겁니다. 우리나라 법전하고 동일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상단의 이미지, 왕권과 신성을 정당화시키면서 더불어서 이 이미지에 적합한 법과 규정을 어떻게?
핀셋으로 고정하는 거예요. 고정해서 이제부터 우리나라는 이렇게 운영될 것이다 라는 거고 이미지 플러스 문자 플러스 재료 플러스 공공의 매치 이게 지금 보시면 광학원 광장 어느쯤에 이렇게 거성에 계신 문화를 세운 거예요. 우뚝 상상한 거거든요. 그래서 아 사회 규범이라는 걸 읽고 기억하게 하는 디자인. 지금으로 지금 공공 디자인 중의 하나라고 보시면 돼요. 그런 것들이 이미 요제포타미아 안에 있었고 그래서 공공정보의 디자인과 권력을 시각화하는 것, 정보의 위계라는 게 있죠.
이미지를 보여주고 이런 것들을 위계 질서를 보여주는 것 이것들을 표준화 시켜서 공동체의 행동과 질서를 관장하겠다는 개념이기 때문에 사실 함부람의 여전이 법률집이어서 디자인 사항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권력과 지수와 신앙이라는 것들을 우리가 동시에 보여주는 공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역할 시각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우리 2시 5분이에요 여러분 제가 끝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출석은 출석은 하셔야 하고
물론 제가 수업시간에 여러 차례 얘기했던 것처럼 고도의 그림을 그리고 문자를 발명하면서부터도 계속해서 발전을 해왔지만 정확하게 인간의 시각에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그 BSC에 더 시작됐고요. 실제로 제 논문에도 나오기는 하는데 그리스 철학자들이 할 일이 많이 없었어요. 왜 할 일이 없었을까? 이 고도로 지성화된 도시 국가가 형성이 되면서 많은 철학자들이 세상에 오는 것들이 내게 궁금했단 말이죠.
그러다 보니까 자연 철학자들부터 시작해서 많은 철학자들이 세상 만물의 모든 것들에 궁금증이 남기셨던 거예요. 그 중에 가장 고차원적인 질문의 차원이 어디였냐면 아름다움이 있었어요. 미 라는 개념에 있었고 소카테스가 히피아스라는 운명, 아고라 광장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운명을 했던 사람들한테 어떤 질문을 했냐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죠? 라는 질문을 던져요. 끝 끝내 본인이 원하는 대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우리가 유추해야 될 것은 뭐냐면 그만큼 그 안을 우리가 물음 가운데 정확하게 답은 없진 못했지만 우리가 어느 한 시기 안에서 인간의 눈의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언제부터 찾기 시작했냐? 정확하게는 그리스 시기부터 찾기 시작했고 그래서 비례조화 대칭이라는 객관적인 10명 중에 여러분 제가 객관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설명하냐면 10명 중에 한 8명이 잘 모르겠어 가슴이 꼴렁거리거나 내 마음이 찜할 정도의 감정은 없는데
그런데 보기가 편안해. 그래서 눈에 거슬리는 게 없어. 그래서 보기가 좋아. 이런 게 보표적인 아름다움이에요. 그거를 10명 중에 한 8명은 잘 모르겠지만 좋은 것 같아. 이걸 백과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하고 그 8명이 선택한 거에 대부분이 뭘 갖고 있냐면 대칭과 비례와 부문 간의 조화가 이루어지면 기본적으로 우리가 좋다. 좋은 감정이라는 것들을 받아주게 돼요. 그거를 백과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하고 그런 것들에 대한 개념이 정확하게 사실은 이론화 되기 시작했던 게 그리스 시기부터 시작이 됐고
그게 이제 정점을 찍은 시기가 어디로 올라가냐면 를레상스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역사에서 반복된다라는 얘기를 하기 전에 그런데 재미있게도 여러분들 이집트 운명은 조금 원시랑 맞닿아 있어요. 2000년에 10차를 뛰고 그리스 문명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면 이집트랑 너무 차이가 많이 나. 근데 이 안에 2000년 동안 인류가 아무 일도 하지 않지는 않았을 텐데 갑자기 이런 위대한 문명이 탄생될 일은 없고 그 중간 안에 어떤 문명들이 분명히 존재했을 것인가 라고 들여다보면
지금 오디세이 때문에 미케네 문명 이런 것들이 많이 등장해서 여러분들도 한 번씩은 보실 적 있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잠깐만요. 메소포타미아가 끝나고 이집트 문명이 끝나고 그 즈음에 지금의 쌍토리섬에서 민호아 문명이 시작이 되고 지금 그리스 공토의 지역에서 미케네 문명이라는 게 시작이 되거든요. 정확하게 그리스 문명까지 가는데 그 2000년 신체 안에 이 두 가지 문명이
그리스 문명을 이룩하는데 굉장히 큰 영향이 줬기 때문에 미케네와 민호아 문명을 여러분 제가 아주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 지나가도록 할게요. 원래 대부분 책에 보면 이집트 문명을 떼고 바로 그리스 문명으로 들어가는데 그렇게 이해하면 여러분도 이해하기가 조금 어렵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그리스 문명이 이집트 문명으로부터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 영향을 받았을 그 시기 안에 두 가지 문명을 건너뛰면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이야기를 좀 하고 그리스를 목격적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여러분들 우리가 문명이라는 게 글씨가 작죠? 제가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은 그리스 쪽에서는 제가 시험에 좀 낸, 지금 제가 지금 이미 중간고사에 출제를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얘기하는 것 중에 중요한 것들은 여러분들 시험을 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좋은 것 같긴 합니다. 문명지가 대부분이 뭐라고 해야 되지? 물을 끼고 문명이 발생이 되잖아요. 그리스는 지중해예요. 지중해가 네트워크 역할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런 지정학적 위치적으로 굉장히 좋은 위치를 형성하고 있었어요. 그리스 문명 자체가. 그러다 보니까 지지적 조건이라는 게 문명을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구조라는 것들이 설계가 가능할 정도로 지중해를 끼고 이런 것들이 형성이 됐고 사실은 산지가, 지정학적 위치가 되게 특이한데 제가 뒷부를 볼게요. 일단 기본적으로 크레타 섬을 거친 여기 민원 문명이 발생했던 데가 크레타 섬이고 이걸 지나서 그리스 문명이 니케네 문명이 그리스 보통에서 시작이 된단 말이죠. 그런데 이미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통해서 꽤 많은 문명이 이루어졌다.
이 아운데 이 크레타 섬을 거쳐서 그리스로 갈 수 있는 역할이 주어졌단 말이에요. 지정적 위치적으로 굉장히 빠르게 여타 비교적 먼저 시작됐던 문명을 빠르게 만날 수 있었던 위치적인 선점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민원아 니케네 문명이라는 것이 사실 그리스의 본토와 근처에 있는 그 섬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가 있는데 좀 지나서 산지가 되게 많아요. 그리고 섬이 정말 수없이 많은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의 거대한 국가로 이룩되기보다는 폴리스 단일 조그만 조그만 도시 국가를 형성하면서 그리스 문명이 시작이 된 거야. 대표적인 도시가 아테네와 스파르타라는 도시이고요. 여러분 한 번씩 들어보셨어요? 그러니까 이거 폴리스라고 하는데 에게해와 지중해라는 굉장한 해상 교양을 할 수 있는 이게 여러분 다 모든 나라들이 보면 사실 문명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여타 다른 문명을 받아들이면서도 본인의 나라와 교류라는 걸 할 수 있어야 되는데 그 교류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건 해상무역이거든요.
해상무역을 하는데 굉장히 좋은 역할을 있고 그러다 보니까 해상을 서로 물자를 교환하면서 서로 다른 문명을 바라본다. 그러다 보니까 더 빠르게 흡수하고 더 빠르게 문명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그런 지기적인 구조라는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라고 볼 수가 있고 그러다 보니까 아테네 스파르타에게 지중해를 중심으로 이오니아 지역과 이렇게 스파르타 지역을 통해서 폴리스로 도시국가를 형성하면서 했던 거고 우리가 오늘 공부할 파르테로 신전부터 시작해서 에릭테리온과 비교적 빠르게 아셔야 되는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이 아테네를 통과해서 스파르타로 진행되는 이 과정 안에서 형성됐다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류와 경쟁이라는 게 제가 엉덩이를 붙고 또한을 틀고 앉으면 저 땅이 사실 대단히 볼 수밖에 없거든요. 같은 도시 국가를 형성하면서도 분명히 저 도시가 갖고 있는 강한 군사력과 이 도시가 갖고 있는 강한 군사력이 서로 접점이라는 것들을 이룩하기 위해서 어느 순간 어느 한 도시가 사실 커질 수밖에 없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겠고 그러다 보니까 정말 많은 자제 교류가 더불어서 경쟁이 서로 굉장히 교차 반복되면서 빠르게 발전했던 게 바로 그리스 운명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리스 디자인의 출발이라는 건 서로 상호간의 교류라는 것들을 하게 돼요. 왜 교류라는 것들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너무 좋은데? 받아들이거든요. 좋은데 좋기 때문에 뺏고 싶어 라는 경쟁 구도를 가져올 수밖에 없고 그런 경쟁 구도 안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뭘 탐호하기 시작을 하냐면 예쁜 거 보기 좋은 거 그래서 비례조화 계층이나 기본적으로 사람의 눈에 아름다운 질서라는 것들을 찾게 되는 본인들만의 독자적인 질서라는 것도 찾아가게 되고 이것이 결국은 여러분들 제가 오늘 수업시간에 얘기할 가장 핵심 중에 하나가 뭐냐면
반인반소에 대한 개념이 미켈의 문명을 끝으로 아예 사라지거든요. 거의 없어지기 시작해요. 그리스부터는 모든 것들을 인간에 대비해서 보기 시작한단 말이죠. 내가 사람이고 내 앞에 있는 사람도 사람인데 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 생활 환경 안에서 더 이상 자연이나 동물을 숙려하는 것보다는 인간 세상에 훨씬 더 많은 치중을 두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내 눈에 가시적으로 아름다운 것에 대한 것들을 탐이할 수밖에 없던 시대가
바로 그리스이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는 이걸 인본주의적 시각이라고 하는데 인간 중심적인 사고가 그리스 문명부터 완벽하게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여러분들 고객님께는 중요해요. 그래서 인간 중심적인 형식이라는 부분들을 제가 이따가 뒤에 가서 열심히 설명을 드리도록 할게요. 그래서 제가 수업 시간에 얘기했지만 제작 기법이 사실 굉장히 차이가 많이 나죠. 그리스 초기에 조각을 보면 굉장히 협소합니다. 디테일이나 제작 기술도 굉장히 떨어져요. 그런데 제가 아까 교류와 경쟁이라고 이야기했죠.
끊임없이 지중해를 통해서 리시텍 운명과 교류하던 그리스인들에게 특히 기술자들 눈에 너무나도 빠르게 디테일적으로 섬세하게 됐던 이런 기술력들이 흥수될 수 밖에 없었고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독자적으로 일으키기 위해서 무덤에도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던 게 바로 그리스 운영이고 이 얘기들을 제가 뒤에 가서 오늘 문의를 해드리도록 할 거예요. 그리스 조각사가 원래 여러분의 역사는 이긴 자,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되기 때문에 어느 기록도 그리스의
조각과 그리스의 문화가 이집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기록은 19세기 전까지 없었거든요. 19세기 사학자들 눈에 그러면 이 신차를 통해서 어떻게 이걸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를 들여다보니까 아 그렇다고 하면 그리스 조각상을 편해봤더니 이런 그리스 사람들이 표현했던 인체 표현과 발상 자체가 완벽하게 뿌리를 어디를 두고 있느냐 이집트로부터 두고 있구나 라고 진작 가능할 수 있겠다라는 기록이 19세기부터 미술사학자들에 의해서 쓰여지기 시작했고
그러니까 우리가 건너 건너서 원래 그전까지는 그리스 문명이 되게 중요했어요. 이집트 문명이 예술사학적으로도 미술사적으로는 별로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는데 19세기를 넘어가기 시작을 하면서 그러면 이런 위대한 문명과 독자적인 문명이 탄생하기 이전에 뿐이라는 것들이 거기 있었을 테고 그것들이 이집트로부터 발생되었거나 그런데 이집트의 영향은 또 어디부터 가냐 이게 먼 시럽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주먹도끼보다 시작해서 쭈루룩 내려와야만 이 모든 것들을 진주목걸이 꾀듯이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를 내가 수업시간에 끊임없이 드리는 거고
그러다 보니까 파르테로 신전을 여러분들 1년에 한 번씩 전 세계에 건축가들한테 설문을 같은 거를 해요 가장 위대한 건축물이 뭐냐 뭐라고 생각하느냐? 10위권 안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파르텔론 신전이거든요. 실제로 그리스에 가서 그 친구들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그냥 이 상태로 여러분들 마음속에 담아주어라. 왜냐하면 제가 어떤 얘기를 하냐면 실제로 가서 보면 지금은 우리가 이걸 즉각 가서 현이 뭐라 해야 되지?
올라가서 실제로 볼 수가 있잖아요. 이 당시에는 아크로포리스 가장 꼭대기 위에 우러러보는 아고라 가장 아랫단에서 위에 치켜다보는 그러니까 우리가 가까이 가서 볼 수 없는 건축물이었기 때문에 인간의 시각에 사실은 가장 아름다운 형태를 올려놓고 그것들의 비례를 조정해서 만든 게 바로 파르테노 신자인데 지금 그걸 어떻게 한다? 아래서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직접 가서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그때의 감동을 느끼는 게 굉장히 어렵지만 이런 위대한 건축물 역시 어디로부터 영향을 받았냐? 이집트에 엄청난 거대한 건축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라고 볼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집트와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그들이 만든 뛰어난 건축물 세심한 이런 디테일, 기술력 이런 모든 것들로부터 영향을 크게 받았다라는 것들을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보면 열주, 여러분 열주가 기둥이거든요 이 기둥 형식이 되게 중요해요 왜냐하면 신고전주의에도 또 등장하고 저희가 현대 건축으로 넘어왔을 때도 이 기동 얘기를 제가 한번 할 거기 때문에 여기 되게 중요한데 열조화 대칭과 반복을 사용하는데 공간을 조직화하는 방법이 완벽히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집트는 조금 더 원시 운명과 맞닿아 있어. 그런데 그리스는 그렇지 않아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가 뭐냐면 일단 되게 장업해요. 왕권과 사후세계를 형성하는 데에 공간을 시각화하는 데 있기 때문에 이것들이 공간을 조직화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엄숙하고 위계질서형이 이제 리스트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볼 수가 있는데 이게 이제 그리스로 넘어오면 신전 전체가 어떻게 되냐면 독립체계를 가지고 있거든요 얘가 단위 독립체계를 갖고 있단 말이고 그리고 나서
전체에 아테네 시민들에게 전하는 애국심을 상징하는 그런 건축으로 세워진 게 바로 파르테로 신전이기 때문에 보아라 우리의 위대한 도시의 힘을 이런 걸로 아크로포레스의 가장 윗단에 아테네 시민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시각과 환경을 조성해서 만든 것이 바로 파르테로 신전이기 때문에 인간이 지각하는 데 있어서 가장 완벽한 균형을 잡은 것이 바로 파르테로 신전입니다. 그래서 비례와 규칙에 의한 건축 언어로 바뀌기 시작을 하거든요.
이게 얼만큼 중요하냐면 원래 사람들이 우리가 어느 정도 마을 형성 사람이 그냥 가족을 형성하는 게 너무 어려워. 가족을 형성해 마을 형성해 군락을 형성해 그리고 나서 계급사회가 형성됐던 게 바로 이집트 사회예요. 계급사회가 되다 보니까 권력이라는 걸 처음으로 시각화하는 게 너무 중요했던 거예요. 그래서 왕, 왕비 그들이 죽은 사후세계를 우리 시각화할 거야. 그게 되게 중요했는데 그것이 더 이상 권력의 구조가 아니라 평등의 구조로 넘어가면서 비례와 규칙에 의한 시각 언어를 통해서 모든 시민들에게 아름다운 것들을 선사하겠다라는 인간존심의 세계관으로 변화하는 데 있어서
이 두 가지가 상징적인 건축물로서 흐름을 다르게 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도 여러분 비교해서 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그래서 민호와 분명은 제가 짧게 짧게 설명하고 지나갈게요. 모든 책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책들도 있고 다른 책들도 있는데 민호와 분명의 중심지는 사실은 크레타석을 거치지 않고는 이집트랑 메소포타미아는 갈 수조차 없었거든요. 그리스 본토에서 크레타 섬을 밟아야만 갈 수가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교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되는 섬이 바로 크레타 섬이었고
그래서 문명의 중심지이자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했던 거고 그리스의 수많은 신화의 배경이 되는 건 또한 크레타 섬이 됐던 이유가 본인들의 문명을 독자적으로 일으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했던 위치가 바로 크레타 섬이고 여기서 처음으로 공장했던 민호와 문명이라는 문명입니다. 일단 여기서 여러분 한 번씩은 들어보셨으면 크로스 궁전이 되게 중요하기 때문에 에스린이 보건도로 볼 수가 있고 지금 실제로 크레타 섬에 이렇게 일부 남아있기는 합니다만은 다 아시다시피 그리스가 그렇게 여유가 있는 국가가 아니고
아직까지도 여전히 파란색을 신경도 보건을 못하고 있는데 보건을 못하고 그냥 방치하는 사실 유물들이 굉장히 많고 유적지 되게 많은데 크레타 섬은 그리기는 하나예요. 크로스 궁전도 그대로 사실은 그냥 방치는 아니지만 방치 아닌 방치만 되고 있죠. 그래서 크로스 궁전이 발견되고 나서 민호와 궁량이 어떤 궁량이었는지를 위로 유추할 수 있는 거였는데 원래 민호와 궁량에서 사용되었던 여러 개 언어가 있어요. 선형 문자 A라는 언어인데 그 언어는 아직도 AI 시대지만 해석이 안 됐어요.
그러나 분명히 언어는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민호와 문명으로부터 미케네 문명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위로 짐작을 할 수 있지만 그러다 보니까 기록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크노소스 공전을 통해서 아 이 민호와 문명이라는 건 이러지 않았을까? 라고 짐작 정도 하는 그런 문명인데 일단 첫 번째로 제가 아까 궁전이라고 했잖아요. 처음으로 우리가 이집트라 제가 아까 파르테인 신전을 보여드렸죠. 그래서 그 사이에 그럼 주거지역이라는 것, 주거공간이라는 것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건축했느냐를 보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사료가 바로 크노소스 공전이거든요.
주거와 제의와 저장과 행정, 생산. 지금으로 치면 한 광장에 있는 모든 기능이 이 궁전 안에 모여드는 형태인 거고 복합문화체거든요. 복합문화 공간이라는 걸 궁전에 때려 넣었던 약 만평 정도에 가까운 공간을 하나의 큰 방어벽을 통해서 만들어놓은 공간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은 우리가 그 이전에 전혀 볼 수 없었던 형태의 구조가 나오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하나의 거대한 단일 공간이 아니라 이 중간을 중심으로 해서 방과 복도 이런 것들이 전부 다 연결되는 복합구조였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왕과 왕비가 사는 공간이 어떻게 형성이 돼 있었냐면 중경을 통해서 작업자와 주거지와 창고 따로 행정과 신을 모신 제2공간과 계단 복도가 따로 설계되어 있었단 말이죠. 이 얘기를 우리가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냐면 사실은 돌을 세우면서 우리가 힘이라는 걸 권력이라는 것을 상징화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무덤으로 가면서 피나민을 통해서 죽은 자의 집이라는 공간의 구성이라는 게 처음으로 이스트 운명을 통해서 등장을 하기 시작해요. 그런데 민원 운명으로 와서부터는 실제로 왕과 왕비가 사는 공간에 대한 구조가 처음으로 설계되기 시작했고
그것을 정확하게 볼 수 있었던 게 바로 크로스 공전인데 한 공간 안에 본인이 누리시는 모든 공간을 전부 다 사실은 소위 말하는 떼려 먹었다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건축이라는 게 제작이라는 것들을 완벽하게 뛰어넘어서 동선 우리가 되게 흐리 얘기하는 동선과 기능과 생활이라는 걸 하나의 시스템으로 조직화하는 것 이것이 이미 민원 운명 안에서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 문명에서 파르트로 신전이 위대하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인류가 공간을 조직하고 시스템을 하는 데 있어서 완벽에 가까운 공전의 보수 동안 존재하고 있었다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바로 그리스를 넘어가는 것보다는 민호화를 통해서 크로스 공권을 공전을 보는 게 중요하다고 볼 수가 있고 그래서 중전, 열린 공간이거든요. 우리나라 한옥의 중전 공간이잖아요. 중간을 열어놓으면 그 공간을 우리가 방사형이라고 하는데 파리의 신뢰가 그렇게 되어 있죠. 중앙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되어 있단 말이죠.
그러다 보니까 기능과 이동을 되게 조직적으로 할 수 있는 형태가 중정의 공간이에요. 그런 것이 이미 민호화 운영을 통해서 있었고 이 공간 동선도 굉장히 닫힌 공간으로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한쪽에서는 계단으로 올라가고 한쪽에서는 어떻게 올라가냐 비스마 사선으로 올라가는 이런 굉장히 복합 구조의 동선을 또한 이 구조가 가지고 있었고 이 수없이 많은 공간을 어떻게 구조할까 하다가 비꼬어 한길에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조 설계도 엿볼 수가 있었고 마지막으로 굉장히 많은 저장 창고가 필요했는데
그렇게 저장의 공간을 용도 또한 따로 분리시켜서 이야기할 정도로 이런 공간 디자인의 핵심이라는 걸 지금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미 현대 건축 이전에 를레산스 건축에서도 바룩크로 코코 건축에서도 보여지는 이런 건축의 모든 요소와 핵심들이 이미 민호와 문명으로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는 것들을 저희가 미로 입출할 수가 있고요. 그러다 보니까 공간과 기능과 동선이라는 것들 완벽하게 통합한 공간 디자인의 초기 시스템이라는 걸 민호와 문명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들을
좀 이야기할 수가 있고 그리고 재미있는 거는 이거 제가 한번 읽어보라고 넣어놓은 거니까 패스가 많지만 제가 시험에 다 놓고 나뉘어서 한번 볼게요. 크노소스 궁전에서 발견한 벽화의 모습이거든요. 보시면 동물 그려져 있죠. 볼고기가 그려져 있고 이거는 약간 반인반수예요. 하나는 위에는 새고 밑에는 바다의 형태인 반인반수가 그렇고 이것을 잘 보시면 황소가 있고 양쪽에 사람이 있고 여기 황소를 파고 있는 고개사가 있어요. 이 벽화가 정말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하거든요. 동물하고 뭐가 같이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나?
사랑하고 동물하고 동일시대는 격하가 처음 등장했던 바로 민호와 문명이거든요. 우리가 이걸 어떻게 이야기할 수가 있냐면 아 이제부터는 사랑과 동물을 대등한 관계로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인본주의의 시각이라는 게 그리스 문명부터 완벽하게 꽃이 피었던 게 아니라 그 이전부터 이미 어느 정도 일정으로 땅을 틔우고 있었다라는 이야기를 볼 수가 있기 때문에 중요한 거고 여기에 물고기 그림이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당연히 섬에서 하는 거기 때문에 본인들이 보고 관찰하는 것들을 외부 시각화하는 그런 벽화들도
그또서는 이걸 굉장히 많이 등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건 좀 중요해서 제가 뒤에 가서 설명을 다시 드리도록 할 거고 잠시만요. 자연이라는 걸 장식화한 게 아니에요. 언어로 사용했어요. 뭐의 언어로 사용했냐면 제가 아까 듣죠. 언어를 사용하는 흔적이 있긴 한데 아직 해국이 되진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여전히 어떻게 언어의 역할 보다는 그림을 신앙 언어로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편안한 명이었던 걸로 유추할 수가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이런 자연의 모티브들을 단순하게 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까 제가 돌고래를 보여줬던 것처럼 잘 보시면 이것들을 반복하고 있거든요. 반복하고 있고 중간중간에도 끊임없이 반복하는 형태가 보여져요. 그래서 아 그러면 이미 얘들이 이런 것들을 어떻게 똑같이 그려놓은 것들을 뛰어넘어서 곡선과 반복과 배치와 리듬이라는 것들을 형성하기 상하면서 1.5은 본인들 문명권 안에서 보여지는 조형의 요소라는 것들을 활용하고 있었구나 라는 것들을 이루어진 적 할 수가 있고 사실 여러분 제가
요즘에 전시 되게 많이 하잖아요. 전시만 보러 가는데 제가 얼마 전에 추석이었잖아요. 그래서 저희 시댁에 갔는데 저희 남편의 이모님이 되시는 거죠. 저한테 시이모님. 되게 불편한 관계지만 미술을 되게 좋아하세요. 동양화 전공하시고 하셔가지고. 저한테 서도 작가의 전시를 어렵게 갔다 왔다. 잘 모르겠더라. 이런 얘기 하시면서 전시를 보는 관점 이런 얘기를 했는데 사실 모르고 보면
여러분 이러한 돌고래를 크레프 섬에 봤어. 이거를 보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음 돌고래구나' 이렇게 보는 거예요. 우리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해서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들 문명권화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시각계의 리듬이라는 것들을 볼 수가 있기 때문에 다른 선을 볼 수가 있거든요. 여러분들이 사실은 디자인을 잘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도 있지만 어쨌든 여러분이 예술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서 앞으로 봐야 될 것들이 너무 많잖아요. 그런 거 안에서 좀 시간이 넓어졌으면 좋겠다.
관점에서 사실 내가 수업한 것도 있긴 한데 다시 좀 돌아올게요. 그래서 사실 복성과 반복과 비대칭과 리듬이라는 일정 부분 개념. 그러니까 똑같이 그리는 걸 뛰어넘어서 어떻게 하면 즐겁고 유의적인 것들을 보여줄 수 있지? 라는 개념이 이미 민호와 분명 안에 묻었다. 여러분 이걸 보고 뭘 얘기할 수 있냐면 이집트 분명과 민호와 분명 업격각이 달라요. 어떤 사람, 어떤 미술사학자가 이 돌고래의 벽화를 보고 완벽히 다르다. 이렇게 유추해 있겠네요. 그 이유가 뭔가?
엄숙하고 엄격하고 권력화되는 이집트의 벽화랑 완전히 다른 거예요. 사후세계의 영속성과 영원성을 강조하는 것과 다르게 어? 즐거움? 보는 거에 대한 시각의 리듬과 어? 이런 것들을 처음으로 내세웠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움이라는 것들을 표출하기 위한 노력의 지점들이 민호와 국남부터 일정으로 보여지기 시작했다는 게 그리스로 가도 뭉텅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 의미가 굉장히 크다라고 볼 수가 있고 그래서 정지된 질서가 아니에요.
보는 사람들로 하고 꿀랑거리는 감각적인 경험과 움직임, 믿음감이라는 것들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림이 일정으로 확장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것들이 여러분들 쌓이고 쌓였기 때문에 그리스의 저하게 혈림진까지 가면 우리가 다 흔히 아는 라오쿠과 군상들 이런 것들이 시대가 바뀌고 왕이 바뀌어서 문화가 확장되니까 갑자기 나온 것들이 아니고 칭이를 다져나온 끈이 없이 쌓이고 쌓이고 쌓이 나온 결과물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게 중요하다고 볼 수가 있고
그래서 공간의 시스템, 자연이 주는 것들에 대한 재해석,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연이 주는 이런 리듬감, 왜냐하면 돌거래가 여러분들은 튀잖아요. 그렇죠? 돌가래가 튄단 말이야. 그거를 그대로 그리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리듬감을 그대로 내가 지각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지점들이 있었고 이런 것들이 이미지와 병합되기 시작을 하면서 위대한 미동화 운명이라는 것들을 유동적인 형식으로 하나씩 통합한 것들이 있고 요거 제가 시험에 하나 낼 거예요. 왜 낼 거냐면 되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반인반수 그거 중요한가 이렇게 얘기하지만 민원우원에서 처음으로 뭐를 하기 시작하냐면 동물의 실제 모습보다 힘과 위험과 신성함이라는 것들을 상징과학에서 굉장히 크게 역동적으로 그려내기 시작을 해요 그런데 양쪽에 뭐가 있냐면 사람이 있어요 사람 있단 말이죠. 사실은 이런 의뢰화하는 장면이나 이런 모든 것들이 사실은 일상의 위도와 문명 안에서 우리가 도시국가가 형성되는 그리스 문명 안에서 공동체 생활이라는 것, 공동체 문명이라는 것, 모든 시민들을 향한 시각적인 질서와 아름다움이라는 것들이 처음으로 뿌리 내렸다라고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위도와 문명부터 어떻게 하냐면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가 공유하는 이런 의뢰화 신앙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서사어로 그려지기 시작을 했고 인간과 동물이 같은 연장선 안에서 네르테르 구조를 하는 것들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볼 수가 있고 그래서 황소 자체가 이들 문명관 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힘과 다상과 신성의 상징이었고 더불어서 이런 움직임, 이런 도양이나 이런 움직임 역시 마찬가지로
이런 것들이 결합된 하나의 대표적인 서사 구조의 사례이기 때문에 그 이전보다는 훨씬 더 자연의 힘이라는 것들을 상징화시켜서 만들고 이런 움직임을 통해서 신앙과 정체성이라는 것들을 시각하는 데 굉장히 큰 영향을 준 벽화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좀 크다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동물의 신성을 상징화하는 거로부터 넘어가서 아 그리스의 인간의 모습을 한 신과 인간 중심의 미학으로 이루어지는 되게 중요한 전환점을 이뤘던 게 바로 이 장면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다시 한번 풀어서 설명을 하면 쉽게 얘기하면 뭐냐면 황소의 힘을 믿었고 그런 것들 신앙에 체계하는 그림으로 그려냈는데 신이 사실은 완벽하게 어떤 모습을 하고 있냐면 완벽하게 신성한 모습이긴 한데 인간과 동물이 대등한 모습을 그려지기 시작하거든요 그런데 이건 그리스로 가기 시작하면 아 왜 점차적으로 원래 그 전까지는 이거 두 개를 섞어서 반인반수의 힘을 믿으면서 입체에서는 그런 힘을 신성화하기 시작했잖아
분리시킨 거예요 인간이 다루는 동물의 신성함이라는 걸 한 화면에 담기 시작을 했고 이것이 가장 의미 있는 건 이럼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결합해서 하나의 상징화된 것이 아니라 인간 세상에서 내가 상징화하는 하나의 신적인 존재를 만들어야지 그러다 보니까 그리스로 넘어가면서 모든 신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 의미가 되는 거기 때문에 제가 밑에 한 줄 넘어갔죠. 동물적 신성의 상징화로부터 넘어가서 그리스의 인간의 모습을 한 신과 인간 중심의 미학으로 이뤄진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으로 이뤄던 벽화의 모습이 바로 이 모습입니다.
황소와 사람 세 명이 동시에 한 오매를 넘게 뭐가 그렇게 중요해라고 하지만 반의 맛을 그리지 않기 시작을 해요. 그리고 동물과 사람을 대들만 가기로 시작을 하고 그런 것들이 조금 더 더 가서 신의 모습을 인간의 모습을 표출하기 이전에 이미 이런 벽화의 모습이라는 것들도 그리기 시작을 했구나라는 것들을 이야기할 수가 있고 여러분 제가 사실 시험에 된다고 하지만 또 마지막에 보고 시험에 빼는 것들도 있으니까 열심히 수업 들으라는 의미로 제가 얘기를 하는 거니까 그리고 보시면 여기서 발견된 소상화 중에 하나가 뭐냐면 아크로디 소년이라는 벽화 이 벽화 되게 유명하거든요.
민호와 문명이 징검가리 문명이라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게 바로 요거입니다. 해수와 초상 연대상으로 천 년 전과 앞서 있어요. 천 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민호와 문명이 저기 그리스로 가는 건널목 안에 있는 것 같아. 그런데 이스투로부터 영향도 받았어 라고 결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바로 정면성의 원리에요. 여전히 옆모습과 정면과 정면과 측면이라는 이집트인들이 사람을 그린 모습 그대로 벽화가 그려진
거 있는데 문제는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엄숙하고 신분이 높다라는 걸 우리가 위로 짐작할 수가 있어. 그런데 따라는 그렸는데 얘가 손끝에 살아있다니까요. 이건 벽화 실제 보면 진짜 되게 재밌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미 충분히 사람을 그릴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가 뭐냐면 이렇게 여기 섬이잖아요. 물고기를 잡았다. 정면성이긴 한데 눈과 입이 묶고 있어야
그리고 손끝이 올라가서 기분 좋은 거야. 물고기를 많이 잡아서 개근이 좋아.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을 벽화에 그려 넣었고 정면성의 원인이라는 것들은 따라 그리기는 했지만 인간의 모습 한층도 어떻게 그려내기 시작했냐 자연스럽게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까 이것이 점차 발전을 하면서 그리스로 가서 인간중심주의의 미학이라는 것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고 여기 하나 더 발견된 건 '건투하는 소년길'이라는 것도 발견되거든요. 주제 자체가 자연에서 본 거, 일상, 그냥 내 아들, 옆에서 갔던 아이들
이런 벽화가 생각보다 굉장히 발견이 많이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아, 민호와 문명 자체가 인간 중심에 굉장히 밝고 명랑한 그런 문명을 가지고 있었구나라는 것들을 짐작할 수가 있고 더불어서 사람들이 살아 숨쉬는 일상의 생활과 그들이 움직이는 이런 신체의 움직임이라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포착해서 사람처럼 그려가기 시작했던 시점을 민호와 민혁부터 시작을 보거든요. 그러니까 민호와 미케네 거쳐서 그리스로 가면서
빠르게 인간을 잘 그려내고 조각할 수밖에 없는 그런 기법들이 빠르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저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겠습니다. 그래서 디자인상적으로 이것도 어떻게 볼 수가 있냐면 인간 생활의 경험이라는 걸 그냥 치부한게 아니라 같이 있는거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문경의 디자인사 쪽으로도 굉장히 중요한게 제가 그랬잖아요 디자인이라는게 우리가 불편한거 좀 개정되어야 되는거 사실은 좁게 말하면 그런 것들을 고쳐나가는 작업 중에 하나가 디자인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일상에서 우리가 보는 것들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이 없어야지 눈에 걸려야지 디자인을 잘 할 수가 있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까 그러면 인간사에서 언제부터 사람의 일상생활 환경이 중요했느냐고 거슬러 올라가면 아마도 잘 모르겠지만 인간이 숨쉬고 살아가는 그냥 그런 거 있잖아요. 물고기를 잡아서 놀고 공을 차고 놀고 친구들끼리 다투고 운동하는 이런 모습 자체가 하나의 가치 있는 것. 기록으로 남길 만한 것이라고 보는 그런 관점이
민호와 문명부터 뚜렷하게 읽기 시작했고 그런 것들은 그냥 그린 것도 아니고 색과 리듬과 동세와 이런 것들을 넣어서 인간이 정말로 움직이는 동작 같은 동세라는 것들을 포착하면서 시각의 문화 어떤 인간 중심의 시각 문화라는 것들이 형성되는 조짐이라는 게 이 민호와 문명부터 꾸준히 이야기 되고 있었다라고 볼 수가 있어요 이 두 작품은 많은 책에서도 등장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아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인간교시의 문화로 발전했구나 라는 것들 정도만 알면 좋을 것 같고
미케네오레오는 오디세이 때문에 꽤 많은 유튜브에서 다루고 있긴 했지만 저희한테 중요한 건 그런 지점들은 아니고 중요한 것만 얘기하고 지나가도록 할게요. 크리에터 섭에서 미동왕 문명이 확 번성하던 시기에 그리스 본토 지역이거든요. 이 본토 지역에서 그리스 미케데 문명이 시작이 됐기 때문에 사실은 미케데 문명이 정확하게 그리스 문명으로 통과하는 길 중에 하나였고
선양문자 B가 어디서 발견됐냐면 미케데 문명에서 발견됐고 그건 해독이 됐거든요. 해독했더니 그리스의 여러가지 신의 유림들이 등장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걸로 고고학자들이 어떤 유출을 하기 시작했냐면 미케데 문명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그리스 문명이 꽃을 피었구나 라고 해독된 언어를 가지고 해석되기 시작했는데 미케데 문명은 지금으로 치면 우리나라의 대전 정도 되는 지역이에요. 아테네로부터 한 120km부터 떨어진 지역이고 1876년부터 유적지를 발굴하기 시작했는데
사실은 1200년 경에 발굴했던 그 지역을 발굴했던 사람은 19세기에 슐리만이라는 사람이 이거 뭐 많이 돌아왔는데 신화에 등장한 그 지역이 정말 있었을까? 이 본인이 너무 궁금했던 거야 그래서 우연하게 발견을 지금의 지역이 전부 다 발굴이 됐는데 중요한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아 40분인데 여러분 오늘은 휴식을 두 번 가지려고 하거든요 10분씩 나가서 10분 하고
왜냐하면 오늘은 할 것들이 좀 있어서 지금 43분인데 10분 쉬고 저희 이거 할게요
아니, 형님 너무 수월한데. 뭐 뭐? 목요일 3시에 수월한데 화요일 10시까지는 주문하죠. 네? 이게 뭐야? 먼저 보려고 하셨네. 그런 거 같아. 2주짜리 입문. 너무 빡세. -너무 신기해. -이거 막 장표 만드는 템플릿 이런 건 알려주셔? 뭔가 구성이나 이런 거? -아 그건 알려줬어. -아 그래?
정기수로 교님이 그냥 애들 헹쌀했다가 그냥 다 알려주시고 그냥 주차별로 뭐 해야 되는지. 그래서 난 되게 도움이 많이 갔어. 이 교수님의 빡센 거랑 그 절개로. 혹시 혹시. 나, 나, 나, 나 한 번 보내줄 수 있어? 이거 보내줄지. 이거. 근데 이건 이승이.
-라는 브랜딩 수업을 안 들어서 하나도 못했어. -브랜드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경쟁사 분석까지 하면 좋다고 하고 원래 기본 수영회에서 들어가야 하는데 이번엔 안 할 것 같고 이렇게 해보실게요. 이벤트에 자신이 자세하고 뭐 있는지 유지하고 뭐 있는지 어떤 게 권할을 해야 하는지 해서
왜 바꿔야 되는지 모르게 키워드 해서 할 거지 이것도 하나하나 다 적어주셨어 진짜 그래서 막 과제 예시나 이런 거 좀 보여주고 근데 이걸 2주 안에 나 혼자서 알아야 하는 게 좀 말이 안 되지 좀 더 진득하게 하고 싶긴 한데 -뭔가 약간 고민이고요. -뭔가 뒤에 있을 팀플에 집중하고 싶은 거 같은데.
-뭔가 막기더라고요. -그냥 한 번 해봤다에 만족을 해봐. -그렇구나. -가폭을 하고. -가폭 이거 수업. 다른 내용들. 근데 이분은 거의 말로 설명하시는 분이라고 하시네요. 아이고, 성교수님. 훨씬 좋은데. 그렇구나. 그분도 PPT를 보여줘요.
처음 보여주고 왜 안 보이냐고 그리고 이론의 설명이 거의 없어 그냥 둘이 팀 작업하면서 맨땅에 하는 거 같은데 약간 체인한 교수님인데 아 근데 체인한 교수님은 그래도 피드백이라도 괜찮았는데 안 해주시겠어요? 약간'이렇게 이렇게 해 오셨네요''좋습니다' 하고 끝나고 -어? -그러니까 수업이 안 나? 그래서'아 내가 왜 이 수업을 듣고 있는 거지?' 했어
그걸 한 15초 차까지 지은이랑 같은 팀에 보던지 -지은이 엄청 많아있었어 -아 그러니까 지은이 그런 식으로 수업하면서 되게 안 좋아하고 뭔가 얻어갈 게 있었던 게 없으니까 아무튼 저도 썩 많은 데는 기업은 아니었고 아 이게 도무지 해야 되나 그지? 팀플인데 팀플 위즈업은 왜냐하면 5주차까지는 개인 작업하고
그 뒤로 싹 다 팀플이었고 그리고 교수님이 위즈업 기업으로 팀에서 힘 잡으면서 점수를 내겠다. 근데 팀 내에서 상호평가를 안 했어. 어. 솔직히 그것도 문제가 있거든. 근데 팀 내에서 B-C부터 A0까지 점수가 싹 다 나요. 그리고 첫으로 내가 B-C야. 대박이지. 그래서 따질까 했는데 내일도 안 돼.
그래서 그냥 나 똥 맞았다 생각하고 있어. 미치겠네. 아니 뭐 봐야 되지? 되게 해해 웃으신 건데 다 약간 -뒤가 뭔가 있으시.. -나? 있으시 있으시.. 요즘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거 안 했다.
근데 그 주님의 폭풀 자체를 좋아서 사실 기대가 많이 됐는데 맛있게 됐다. 아 그니까. 그냥 같은 코코를 가지고 있는 게 내가 더 설명을 잘할 것 같아. 그냥 그리저분. 내가 오만한 말을 했는데 그 정도로 설명이 부족하거든. 약간 우리가 알아서 다 하는 게 내가 왜 설명을 해줘야 하지? 이런 느낌이라서 나. 너무 다.
근데 그 시합 차고 그걸 좀 줄여주기 위해 그런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런 줄 알았어.. 그.. 배 속을 듣지 않았겠다.. 아이고.. 아.. 자네에 좀 계시지.. 안식년이기에..
발사한 목이라는 게 그게 올해인가? 어, 올해요. 딱 작년까지. 당연히 무슨 일을 두고 있지? 우리 어슷. 그렇게 해도 싶다. 차라리 가르치려는 의지가 있는 게 더. 같이 모이드하는 것 같고. 아 이거 너무. 네. 나도 잘해.
자 여러분 장면 좀 껴볼까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그럼 시작해.
슐리만이라는 사람이 일리아스를 보고 알고 있는데 호베로스의 일리아스의 얘기를 제가 할 것 같은데 역사적인 그 슐리만 이전에 있는 사람들이 토요일전쟁이 진짜야? 다짜야? 우리가 곰방 누구지? 쑥하고 마늘 먹는 사람들도 있어요. 곰이랑 뭐가 뭐지? 호랑이가 오나? 사자가 오나? 호랑이 쓰냐고 있어. 아 왜 이렇게 큰일 났어. 호랑이.
아 갑자기 우리 애 생각. 어제 여러분들 6명이 왔잖아. 왔어. 초등학교 5학년에 요즘 말투가 오냐면. 뭐야. 뭐야. 어쩌라. 아 그리고 무슨 말이야. 이게 진짜 아니야. 어 무슨 말이야. 이게 되게 말이에요. 친구들이 앉아 그러니 여섯 명이 왔어요. 안녕하세요. 이렇게 와. 발렛이 진짜 많이 나고, 땀때도 진짜 많이 나. 그리고 어떤 애는 가방에다가 배구공, 야구공 같이 야구방만 들고 다니고 난리가 아니에요. 여섯 명이 왔어. 왔는데 각자 편한 자리에 앉아요. 친구네 집인데도
한 명은 소파에, 한 명은 바닥에, 한 명은 저 식탁 의자에 같이 왔지만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 집은 그냥 PC방에 있어요. 각자 핸드폰을 들고 서로 얘기를 하는데 같이 있잖아. 한마디도 안해요. 그래서 왜 말을 안 하죠. 그러니까 단톡을 하면서 게임을 하는데 그러니까 우리 집인데 말하면 돼. 옆에 있거든 친구가 저기 식탁에 있어요. 이미 야 너 그거 뭐야 그거 그냥 게임 게임 이렇게 하면 되는데 그걸 단톡에서 한다고요 여러분. 그래서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무슨 소리만 들냐고 탁탁 소리만 들려요. 이거 있잖아요.
이거 있잖아요. 이 소리가 막 들려요. 그러다가 한 명이 조용히 가방을 메요. 그러면 나는 거기 서재에 있다가 나한테는 갈게요 이래. 너 왜 가니? 학원이야. 근데 그 누구도 잘가가 내일 보자 얘기를 안 해. 근데 제가 우리 애한테 너 왜 인사 안 해? 진짜 엄마한테. 엄마 단톡에서 얘기했어. 그러니까 같이 잘가를 하면 되는데 그 잘가를 카톡으로 하는 거야. 너무 이상해. 이러다가 나한테 근데 어제 저녁에 내가 서점에서 일을 하고 있어. 꼭 우리 애가 잔다는 거야.
그래서'우지나 잘자' 했는데 어제 내가 그걸 담속에서 얘기하는 게 되게 충격이었어요. 근데 아침, 내가 저녁에 자기 전에 우리가 이제'엄마 나 자게, 너무 잘자' 했는데 저녁에 새벽에다가 누웠을 거 아니야. 카톡으로'엄마 내일 아침 소떡소떡' 막 그냥'엄마 잘자'라고 얘기했더니'엄마 나 내일 아침 소떡소떡 해주면 안 돼' 이렇게 얘기하면 되는데 '엄마 소떡' 이게 아닌데'엄마 나 내일 아침 소떡소떡' 문장도 안 상영이 안 돼요. 이래서 내가 병원에서 아들이에요 라고 해서 내가 울었던 게
정확하게 현실에서 단일프로도 여러분들 어긋남이 없이 맞았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여견은 우리 얘기해도 진짜 작겠죠 여러분들 그래서 이 사람이 일리아스를 보고 이거는 핀이 완전한 신화는 아니다 거기에 완전 메모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 적을 찾았지 근데 이 찾은 거에서 결국은 발굴을 했거든요 그래서 1870년대 19세기에 트로이를 발굴한 거예요
그래서 아 청경기 시기에 애기의 문명이라는 게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사실적으로 드러나기 시작을 했고 1876년에 니케네이 왕묘에서 뭘 발굴했냐면 황금 마스크를 발견을 해요. 이렇게 발견을 합니다. 되게 조합을 가져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걸 생각할 수 있냐면 원래 오늘 제가 얘기하겠지만 원래 아르테크네 라고 해서 그리스 로마까지는 미술 예술이라는 단어가 없이 기술이라는 단어를 썼거든요. 그래서 이심트에 황금 마스크가 우리가 사실은 만들어놓지 않고 후대에 발견되긴 했지만
그만큼 기술적으로 얼마나 차이가 났는지 사실은 이 황금 마스크를 통해서 볼 수가 있거든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인들이 다 단시간에 정말 빠르게 이집트로부터 영향을 봐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는 게 위대하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아무래도 이거는 발견을 했거든요. 그렇게 해서 황금마스크를 발견을 하고 20세기 넘어서 많은 사학자들에 의해서 니켈의 문명이라는 것들이 정확하게 화려화가 되고
슐리만이 발굴한 유적지가 아마도 트로이 전쟁의 신화, 그러니까 아마 반은 신화고 반은 어느 정도에서 역사 사실이라는 것들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을까 라고 얘기하는데 중요한 것은 호베로스의 이야기가 그대로 입증됐다 사실적으로 그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실은 이런 저사시가 청동기 시대 신재로 도시와 왕범과 전쟁과 이런 흔적을 탐색하게 만드는 데 출발점이 됐다. 1.5 현실에 의해서 1.5 상상력을 동원해서 만든 신화의 이야기라는 것들이 사실은 완벽하게 공표된 그런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게 바로 루케네 문명이고 그래서 이 슐리만이라는 사람을 여러분이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집착적으로 있잖아요. 하나의 매몰돼서 이 사람이 정말 많은 돈을 들여서 여기 발굴을 하게 됐단 말이죠. 트롱이 전쟁의 역사성이라는 게 여전히 논쟁이에요. 어떤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가짜야 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데 슐리만이 발굴한 이 유적지를 통해서 우리 유추할 수 있어 라고 하는 것이 여전히 논쟁 중이긴 하지만 미케네 라는 문명의 세계와 더불어서 혹이 청동기 시대의 트로이와 같은 이런 동지중해 네트워크라는 것들을 우리가 하나의 역사 안에서 이해를 하면
문명이라는 것들을 분명히 사실에 의거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라는 것들 밑에는 문명에서는 두 가지가 좀 중요해서 그 얘기만 하고 좀 지나가도록 할게요 첫 번째는 뭐냐면 성경입니다 이게 이번에 보니까 호메로스 얘기 나오고 나서 많이 이제 그리스 예술을 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한 사자거든요. 두 마리 사자가 비둔게 이렇게 있죠. 그리고 문을 통과해야만 문명으로 들어가는 사실 하나의 허리한 출입구 같은 역할이에요.
대칭 형태에요. 완벽하게. 잘 보시면 사자를 중심으로 해서 가면 정확한 대칭 형태가 나오거든요. 들어가는 푸린본이 대칭 형태인 것도 특징이긴 한데 문장적 구성과 더미라서 경계의 위계의 질서라는 것들이 보여져요. 그 말은 뭐냐면 거대한 돌과 좁아지는 통로가 들어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역할이에요. 이게 뭐냐면 옛날에 조선에 우리 사극 같은 데 보면 4대문 같은 거 하잖아요. 문을 열어서 들어가는 곳이 어떻게 되어있죠?
개방력이 아니에요. 그 조건물을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가 있게 되어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움직임이라는 걸 통제한다는 굉장히 권력형 그리고 경계가 강화된 우리가 사실 민원 문명은 밝고 해밝고 아이대로 버투하고 이런 해악적인 모습이 보여지는 반면에 트로이 전쟁이 기반이 됐던 리케네문명은 어떻게 보다 조금 더 강화된 도시를 구성하기 위한 문명이었다라는 것들을 사자문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다 이렇게 할 수가 있고 그리고 상북구에 있는 사자 이 두 마리의 부조는 왕권
사자는 무조건 왕권이고 이게 리스트웨이 등장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이것들이 들어가는 도시, 이 문을 통과하고 들어가는 우리의 문명부터는 권력과 왕과 이런 모든 것들 구조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겠다라는 것들이 사실은 문명의 커다란 얼굴이다라고 볼 수가 있기 때문에 이 사자의 문이 되게 중요하고 그래서 이런 것들이 우리가 디자인적 음면에서 보면 우리가 사실 이유 없는 공간의 설계라는 건 없어요. 제가 수없이 가도 얘기했지만 북역을 가든 서유럽을 가든 우리가 유럽의 여행에 굉장히 크게 낭만을 가진 이유는 뭐냐면
모든 나라들이 지우고 있듯이 아이디테인티가 굉장히 정확하고 명확하게 명중하게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그렇다고 보면 얘네들이 오래전부터 그저 그렇게 설계된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승인을 나서 설계를 할 때 말이죠. 이 공간은 그냥 그저 그렇게 설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구조 구조 이런 상징적과 이런 모든 것들이 사실은 본인들의 나라에 맞는 아이디테티라는 구조 안에서 사실은 시스템화됐다고 볼 수가 있는데 그런 의미들이 이미 문명화된 도시국가 안에서도 일정만 보여지고 있었고
미케네 문명이 이런 자자의 문을 통해서 기념비적인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공간의 구조 설계라는 것들을 이미 어느 정도 일정만 하고 있었다라는 라는 의미들을 볼 수가 있기 때문에 사자의 보는 그런 식으로 해석을 하시면 좋을 것 같고 아 요거는 조금 중요합니다 상인방은 그냥 보시면 됩니다. 이거는 여러분 보물 창고에요. 아트레오스 장군의 보물창고였지 않았을까라고 유추하는 것만인데 사실 여러분 우리가 로마의 건축물이 사실 가장 위주하죠. 왜냐하면 로마는 사실은 왕의 정당성이라는 것들 황제의 정당성이라는 구역에서 건축이 가장 빠르게 발전할 수밖에 없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 현대의 모든 거축은 로마로부터 시작이 된다고 해도 무방한데 그럼 로마에서 가장 위대하라고 하는 판테오네 구조도 이미 이테네 문명에 있는 상인방 구조로부터 일정 부분 명예 받았다고 알 수가 있거든요. 상인방은 뭐냐면 여러분들 이 돌을 쌓아서 원형을 만들면 하중부 때문에 무너져 내려요. 무게중심을 못 받으니까. 그래서 무게중심을 분산시키기 위해서 커다란 돌을 주거나 놓으면 하중부는 무너지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이 도매 형태의 상인방이라는 것들을 하나 만들고 그리고 개구구를 만들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라는 것들을 이미 김원도 14세기에 미케네 분명히 타릇하게 보여주고 있고 거대한 석재라는 것들을 쌓아 올리게 만들어서 하중을 분산시켜서 측면으로 어떻게 대구국 이것들을 통해서 하중을 분산시키는 이미 건축을 설계할 때 하중 분산과 더불어 높게 쌓는 구축하는 형태의 설계 구조라는 것이고 이미 그리스 문명 이전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뇌공간은 화를 틀어 하시더니 어느 날 문득 갑자기 뚝딱하고 그들이 기술력을 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만 리노와라 미케네 문명 안에서 크루스 궁전을 벗어서 이렇게 4인방 구조까지도 발견될 정도로 그리스 문명 이전에도 이미 사람들이 사는 공간 구조에 대한 설계는 꽤 뚜렷하게 빠르게 진화되고 있었다는 것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미케네 문명에서 시험에 낼 게 없기 때문에 화나게 들으시는 부분 여러분 이거 재미있는 건 황금 마스크인데 이게 슬림하니 아가멤농이다 이렇게 됐어요. 이건 필이 아가멤논의 얼굴인 것이다 이렇게 했었는데
사실은 지금 알려진 것은 아가멤논으로 슐리만을 보기는 했지만 현재는 아마도 기원장 16세기에 왕족의 유물이지 않았을까? 라고 사람들이 유추하고 연대의 창조 측정 연대기가 그렇대요 그리고 트로이 전쟁 시기보다 수세기 먼저 앞서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거랑은 불차점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슐리만이 말았던 트로이 전쟁과 부관하지 않겠느냐 라고 하는 이유도 이렇게 유물 때문에 그렇긴 한데 근데 우리가 그런 걸 다 차지하더라고 사실은 이런 왕족의 무덤에서
뭐 보성이라든지 금 마스크라든지 공예품이 굉장히 많이 출토가 된단 말이죠 죽음 이후에도 사실 제가 아까 권력형이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집트랑 동일하게 이런 사회적 지위라든지 권력의 구조를 어떻게 하면 내가 이것들을 기록할 것인가가 아마도 이 미케네 문명과는 있지 않았을까? 위노와 문명은 확실히 다르기 위노와 문명은 여러분이 이런 유물 규단은 벽화나 이런 것들이 훨씬 더 집중돼서 추투가 와있는데 미케네 문명은 아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트로이 전쟁과 신화와 계속해서 맞물려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상상력을 벗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이 아가멘의 마스크 자체가 대인의 지위 이 사람이 아마도 권력을 가진 자였을 것이고 우리가 그것들을 기억하겠다는 거고 그럼 왜 금일까? 라는 얘기를 할 수 있잖아요. 우리가 이집트에 수많은 유물이 금으로 되어 있었던 것과 금이 많아서 그가 아니라 영속적인 재료 중인 하나는 금입니다. 영원한 것. 그래서 영속적이고 희소적인 금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거기에 같이 무기와 보장품이 같이 들어있는 건
아마도 이 사람의 권력형의 구조라는 것들을 기록하는 데 있어서 마스크, 주문자의 백마스크가 가장 중요하지 않았을까? 그런 것들이 이집트와 미케드가 건너서 쭉쭉쭉 이어서 가고 있었고 그리고 흉삭이잖아요. 조각상. 이 조각상이 갑자기 노마식이 형상으로 만들어지고 조각상이 갑자기 등장한 건 아니고 끊임없이 이런 식으로 기록과 상징의 의미로써 조각되고 있었다는 것도 여러 특징이라고 볼 수가 있고요. 이렇게 넘어가는 건 여러분들께서는 자료예요.
사실 수업자료를 필요한 친구들은 이렇게만 보셔도 책을 읽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제가 정리를 좀 해놓았기 때문에 이렇게 보시면, 이거 여러분 선형 문자 B입니다. 이게 해독된 문자. 선형 문자 A는 해독을 못했거든요. 여전히 지금도 이것도 영국의 한 건축학자가 해독을 했는데 선형 문자 A는 아직도, 그러니까 민호와 문명. 그래서 선형 문자 A는 아직도 해독을 못했고, 크노 성수 궁전에서 선형 문자 A랑 B가 발견됐어요. 그런데 민호와 문명권 안에서 미케넬 문명이 왜 발견됐지?
아마도 미케넬 문명이 권력을 훨씬 더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민호와 문명권까지도 아마 이렇게 영토로 확장했던 걸로 보여지고, 그래서 크노 성수 궁전에서 선형 문자 A와 B가 발견됐는데, 1952년에 B를 해독을 했어요. B를 해독을 했더니, 디오니소스, 포세이론, 헤라. 라는 단어를 유추하는 이런 신들의 이름이 등장을 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곡물과 가축과 이런 행정의 기록이 등장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아 크노소스에서 발견한 이 선형 문자 A는 해동이 되지 않았지만
B를 통해서 어떻게 이 그리스 본토에서 발전한 데 밑에 된 운명이 그리스 운명으로 넘어가는 데 있어서 큰 결정적인 계기를 세우겠구나라고 사람들이 유출을 하게 되죠. 그래서 보이는 기호를 통해서 생산과 권력과 이런 것들을 종직하는 초기 정보 디자인 역할을 하기 시작을 하면서 아마도 사실 가장 있는 그리스어로 기록된 것이 선형 문자 B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운명과 문자 그리고 기록 이 세 가지가 사실은 그 시대에 어떤 것들을 보여주기 위한
정보를 구축하고 그런 것들을 보여주기 위한 시각화된 구조이기 때문에 크게는 시각 디자인이고 조금 더 적게는 정보디자인의 역할이라는 것들 체계가 이미 농협관에서 일정도 굉장히 굳건하게 취임을 가지고 있었다. 문화적 기억의 축척이라는 게 여러분들 단순하게 우리가 초기 운명이기 때문에 굉장히 흥소했을 것이다 라고 보지만 제가 2주차 때부터 3주차 넘어오잖아요 잘 보시면 말을 잘 하지 못하고
그림으로 언어 소통을 하고 시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에도 그들이 남기고 싶어하는 이런 시스템화 됐던 것들은 모두 다 시각화되게 제가 예전에 생각을 하는데 이것들을 밖으로 내뱉어야 되는 외부장치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지가 이미 있었고 그런 것들이 끊임없이 그림으로 어떻게 언어로써 계속해서 발전되고 있었고 그것도 우리가 초기에 문화적 기억이 족정된 정보의 시스템 디자인의 시스템이라는 것들로 우리가 해석할 수도 있다 그 여지가 좀 있다 라고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민호와 미케네의 분명은 제가 웬만하면 시험을 내지는 않을 거니까 몸이 건너뛰고 지금 배울 것들이 좀 중요해요 그래서 그리스에는 제가 수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그리스 왜냐하면 그리스를 잘 이해하시면 유네상스 바로 그거는 하나도 어렵지가 않아요 그래서 그리스 문명을 이해를 잘 하시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우리가 이제 그런 얘기 하거든요 로마가 사실은 그리스 문명을 그냥 뭐라 해야 되지 포시탐탐이라고 해야 되고요
우리는 위대한 그리스 운명을 어떻게 따라하는 거야 라고 얘기했지만 그리스는 처음부터 아니 야 우리 독자적인 운명이야 라고 얘기했거든요 그 이유가 있어요 그 얘기를 제가 집중적으로 하면서 어떻게 하면 독자적인 이런 도시 문화라는 것도 타개시켰을까 라고 하는데 우리가 그리스를 여러분들 철학의 운명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고도로 지성적인 문화라는 것들이 발전을 했다 그렇게 좀 얘기를 하시면 제가 그래서 얼마나 고도로 지성적이었냐 사람들이 여러분들 가장 상의의 토론이라는 걸
진성이에요. 진리와 윤리와 아름다움에 대한 토론이 이미 그리스 시기에 철학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그거는 인간 세상의 모든 것들을 내가 잘 관찰해야만 포로를 장으로 올라올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가 고도의 지성적인 공화라는 것들을 발전시켰다라고 볼 수가 있는 거고 두 번째는 뭐냐면 직접 민주주의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