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직의 경험기계와 행복론
Shared on October 9, 2026
수업 이어서 진행하겠습니다. 사고 실험을 하나 하죠.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고통 없이 잠만 잘 수 있는 캡슐이 있어요. 캡슐이 이제 여러분들 뭘 떠올리면 되냐면 몸 태닝하려고 들어가는 데 있잖아요. 기계처럼 돼가지고.
이렇게 돼가지고 여기 바깥에 보이고 이거 이렇게 열어가지고 여기 누워가지고 이렇게 닫는 거 그런 캡슐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어요. 자 이 안에 딱 들어가면 고통이 없어. 여러분들 지금까지 내 삶은 고통뿐이었어. 이런 사람들은 고통을 없애준답니다. 이 캡슐 들어가면. 대신에 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 캡슐에 들어가겠습니까? 라고 보통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대다수가 아무리 고통이 없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내 모든 것을 포기해야 된다니 들어가기가 꺼림칙하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죠? 자,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삶이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라고 대답을 했다라고 제가 가정을 했는데 실제로 수업 듣는 분들한테 바로 시키면 그렇게 나와요. 들어가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거든요. 그러면 다시 질문하는 거예요.
고통스러운 삶이라도 포기하기 싫다면 도대체 살면서 무슨 부귀 영화를 누리려고 여기를 안 들어가겠다는 거냐라고 다시 한번 물어보는 거예요. 이번에는 당신이 고통을 끝내준다는데도 포기 못하겠는 당신의 삶에서 뭘 바라느냐 어떤 경험을 하고 싶냐 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고민이 좀 되시나요? 내가 고통 없이 캡슐 들어가는 걸 싫다고 했는데
내 삶이 좀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살면서 뭘 해보고 싶어서 근데 그거 포기 못하겠어 이러면서 이제 안 들어간 거든요. 자 그러면 어떤 경험하고 싶어서 안 들어간 거예요? 여러분들도 해야지. 온라인 수업의 단점입니다. 이게 여러분들을 앞에다가 앉혀놓고 이 질문을 하면 어.. 이게 고민이 되거든요. 선생님이 앞에 서서 이제 질문을 던지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이 내용에 대해서 해답을 내리려고 고민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화면 앞에 앉아있기 때문에 아마 이렇게 질문을 하면 이 동영상을 내릴지도 몰라요. 아무튼 제가 하라는 거 제대로 하시면 좋겠습니다. 수업 제대로 듣고 싶으시면 살면서 어떤 경험하고 싶은가 질문을 하면 여러분들이 이제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 3가지, 5가지, 10가지 버킷리스트 뭐 이런 것도 있죠 아 난 죽기 전에 이건 해보고 싶어 버킷리스트 1, 2, 3, 4, 5, 6, 7, 8, 9, 10까지 딱 돼 그래서 뭐 저 번지점프 제일 높다는데 호주에 있대,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대 거기서 뛰어내리는 것도 한번 해보고 싶고 진짜 여자친구랑 세계여행도 해보고 싶고 뭐 이런 거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내가 진짜 아니면 부모님한테 진짜 좋은 집을 한 채 사드리고 싶어
뭐 이런 거 있잖아 부모님께 지금 감사하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그런 것도 버킷리스트에 있겠지 그죠? 그런 거를 하기 전에는 고통이 없다 하더라도 캡슐을 안 들어갈 거야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이에요 여러 가지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경험들이 있어 앞으로 했으면 좋겠는 그 경험 그게 있다고 가정을 하고 다음 질문이에요. 자, 이번에는 원하는 모든 것을 여러분들이 지금 버킷리스트 10가지, 100가지 써놓은 거 머릿속에 들어있는 그 모든 거를 모두 경험하게 해주는 캡슐입니다.
이번에는 똑같은 캡슐인데 이 캡슐에 들어가면 여러분들이 앞으로 하고 싶었던 모든 걸 차곡차곡 경험하게 해줘요. 대신에 이 경험이 매우 리얼해. 매우 리얼해서 내가 캡슐에 들어와서 뭔가 지금 컴퓨터 아래 시스템 속에 들어와 있는지 내가 잠을 자고 있는데 꿈만 꾸고 있는지 실제 인지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굉장히 성능이 뛰어난 기계
그 기계 속에 여러분들이 들어간다고 가정을 해보세요. 원하는 걸 모두 경험하게 해준대 기계 속에서 나는 원하는 모든 쾌락과 욕망과 원하는 모든 버킷리스트에 있는 걸 모든 걸 다 충족할 수 있습니다. 이 기계에 들어가시겠습니까? 앞에서 앞에서 살면서 나 이 경험을 하기 전에는 그냥 캡슐 못 들어갈 것 같애라고 했던 사람들은 여기에 긍정적으로 답변을 해야 됩니다.
다 해준다니까 다 해줄 테니까 기계 들어가겠냐고 물어보면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이 질문을 하고 거수를 시키면 처음보다는 손드는 사람이 적어집니다. 처음에는 처음보다 많아지는 거지. 그러니까 처음에는 고통 없이 잠만 자는 기계 들어가겠냐 라고 하면 드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여기에서 모든 걸 경험하게 해줄게. 그러면 여기 들어갈래 라고 하면
드는 사람이 조금씩 생겨요.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다 들어야 돼. 그런데 뭔가 찜찜해서 못 드는 사람들이 있긴 있지만 많이 들어요. 꽤 많이 들어요. 이걸 다 하게 해준다는데 들어가야지. 그치? 동의한다면. 자 여러분들이 동의를 했어요. 아 나는 이런 경험을 하게 해준다면 그냥 죽을 때까지 잠만 잔다 하더라도 내가 잠잔다는 의식을 못하게 해줄 테니까 그냥 들어가는 게 좋겠어
이런 사람들이 꽤 많이 생길 텐데 그런 분들에게 다시 한번 질문하는 거예요 자 똑같은 기계에 당신이 나중에 낳을 자식이 들어간다고 하면 여러분들의 형제 자매가 이기게 들어간다고 하면 허락하시겠습니다. 자 여기에 대해서 나는 들어가도 내 가족이 들어가지는 못하게 할 것 같아 이런 사람이나 아니면 앞에서 네가 원하는 모든 경험을 다 하게 해줄게 라고 했는데도 뭔가 찜찜해서 손을 들지 않았던 모든 사람들
대상으로 지금 수업을 진행을 여러분들에게 지금 수업을 진행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차마 이 기계에 들어가지 못한다 혹은 나는 몰라도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못 들어가게 하고 싶다 라고 했던 사람들은 내 삶이 내가 하는 경험 말고 다른 뭔가 가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거예요. 그러니까 내 삶이 내가 앞으로 할 이 즐거운 경험이 전부라고 한다면
앞에 이 기계에 들어가야 되거든. 그런데 이 경험, 살면서 하는 이 경험 말고 이걸 모든 걸 다 하게 해준다 하더라도 내가 삶에서 이 주관적으로 겪을 수 있는 이 경험 말고 뭔가 다른 게 필요한 것 같아 이런 사람들은 끝까지 손을 안 들었을 거야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죠 그래서 로버트 노직이라고 하는 현대 미국의 사회 철학자입니다
유명하신 분인데 자유주의 정치론의 대각이십니다. 아무튼 로버트 노직이 쾌락기계 혹은 경험기계라고 하는 사유실험을 한 거를 제가 약간 풀어서 한 거예요. 로버트 노직의 경험기계가 말해주고 있는 거는 이런 겁니다. 욕망을 충족하고 쾌락을 경험하는 것이 내 삶의 전부냐 전부라면 들어갈 수밖에 없고 이 기계에
전부가 아니라면 안 들어갈 수 있겠죠 욕망을 충족하고 재미지게 살면서 하는 그 경험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기에 안 들어갈 수 있다는 거지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망을 충족하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걸 하고 내가 가질 수 있는 이 즐거운 경험 이거 하는 게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두 질문에 다르게 답한다면 앞에 두 가지 질문에 다르게 답하는 사람들은 삶에는 쾌락 말고 쾌락을 쾌락에 대한 경험 같은 것 말고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내 삶이라고 훌륭한 삶이었다고 평가하기 위해서 추구해야 할 다른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있다고 생각하니까 마지막 기계에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대답을 한 거다 이 말이죠.
그래서 쾌락이랑 욕망을 충족하는 이 경험 말고 또 다른 가치가 뭘까 뭐길래 이 좋은 경험들을 다 만류하고 나는 그 기계에 들어가지 않을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게 아닌 것 같다 라고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거죠. 여러분들 재미있게 살아야지 삶은 이런 사람들은
다 들어가야 돼요. 안 들어가면 논리적인 모순이야. 모순. 처음에 했던 얘기랑 다른 얘기를 하는 거야. 그래서 논리적으로 머릿속이 터져버려야 돼요. 여러분들 상대방을 논박하는 가장 결정적인 건 상대방이 처음에 했던 말이랑 정반대되는 말을 끄집어내는 거야. 소크라테스가 했던 건데 그거 말고는 사람이 이제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계속 빠져나가거든요.
빠져나갈 때 빠져나가면서 처음에 했던 얘기랑 정반대되는 얘기를 하면 그 사람은 진 거야 사실 논리적으로. 그런데 처음에는 재미있게 사는 게 최고지 라고 했다가 지금 이 기계 안 들어간다고 하는 사람 논리적으로 모순을 범한 거예요. 그럼 내가 왜 논리적으로 모순을 범했을까 생각을 해봐야 돼. 처음에 재미있게 사는 게 최고예요 라는 게 잘못된 거지. 뭔가 다른 게 있는 거야 여러분. 그게 뭘까
행복에는 세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쾌락주의가 있고요 지금 계속 설명드린 겁니다 주관적인 경험에 의해서 행복을 추구하는 그 행복론이에요 욕망과 쾌락의 충족이 곧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고요 되게 부정적으로 보이지 욕망 쾌락 막 이러니까 이거 부정적으로 보실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들 살면서 나 이거 하고 싶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그거 하고 싶은 거 충족하면서 사는 게 내가 바라는 삶이야 라는 사람은 여기 들어가는 거야 욕망 충족에
욕망 충족과 쾌락은 주관적인 느낌이고 행복은 주관적인 판단에 좌우된다 라고 하는 거지 그래서 행복은 내가 판단해 나의 행복은 나만 판단할 수 있어요 그렇잖아요 주관의 경험 주관적인 경험을 가지고 판단을 내려야 되는데 나 스스로만 판단할 수 있는 거야 이거는 딴 사람이 내 삶에 대해서 이렇고 저렇고 얘기할 수 없어. 그래서 지지로도 못 사는, 경제적으로 못 사는 나라가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그런 이유야. 행복지수 있잖아요. 유엔에서 얘기했던 행복지수가 측정하는 행복도가 쾌락주의 주관적인 행복론이 이야기하는 행복입니다.
그래서 지표가 이렇게 경제적인 지표가 높아도 행복론은 높을 수가 있는 거예요 행복한지는 아닌지는 나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인 꿈을 찾고 만족시키면 행복한 거야 소확행 있잖아요 소확행에서 이야기하는 행복이 쾌락주의 행복론이에요 작은 만족에서 행복을 느끼면서 산다. 이게 소화경의잖아요. 그치?
두 번째가 탈세속주의고 처음에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세 번째가 객관적인 행복론이 있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가 있어요. 자, 행복론의 시작은 행복론의 역사 처음에 행복에 대해서 우리 인류가 어떻게 행복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거는 공부해볼 만하죠 행복론의 역사를 축하하는 게 아니고 행복론이 어떻게 시작됐을까
보는 거예요 아주 옛날에 인류 출몰과 동시에 얘기를 했겠지 그죠? 의식을 갖고 있는 인간이라면 신화에는 길가메시 서사시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최초의 문명이에요. 인류 최초의 문명. 이 최초의 문명의 주인공 이야기가 이 길가메시 서사시에 주인공이 뭔가를 찾아 떠나는 모험담이에요. 이 길가메시 서사시는 그러니까 이 주인공이 현재의 삶을 떨쳐버리고
더 나은 삶을 찾아서 가는 이야기잖아요 그러니까 이것도 행복을 찾아 떠나는 거야 말하자면 기원전 5에서 6세기 이 길가메시 선사시보다 더 후대예요 기원전 5, 6세기면 BC 5, 6세기입니다 이 시기를 축의 시대라고 해요. 축. 여러분들 축이라고 하는 게 이 축을 기준으로 해가지고 방향을 전환하고 좌와 우를 구분하고 이런 걸 축이라고 하는데 이 축의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인류 문명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그런 시기입니다.
기원전 5세기에서 6세기. 그래서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공자, 붓다, 석가모니 있죠? 붓다, 그리고 조로아스터라고, 조로아스터라고 니체 아시는 분들은 짜라투스트라가 조로아스터랑 같은 말인데, 조로아스터 교, 창시자예요. 지금은 조라하스토게가 조금 많이 몰락하긴 했지만 지금 이란에서 시작된 종교거든요.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종교고 배화교라고 하는 이름으로 현재도 남아있습니다. 배화교 믿는 사람도 꽤 있어요. 조사를 해보면 그리고 노자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이 시기에 등장했고 이 종교적인 창시자, 종교의 창시자, 철학의 창시자가 가장 처음에 했던 질문이 너는 잘 살고 있느냐? 잘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거지.
그러니까 이분들이 인류의 문명을 꽃피우면서 처음부터 했던 질문이 어떻게 해야 잘 살 것인가 이들의 주된 관심이 잘 사는 거다 그래서 잘 사는 게 곧 행복이잖아요 여러분 난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는 이거 하면 되게 행복할 것 같아 라고 하는 여러분들의 행복은 주관적인 만족도 쾌락주의적인 행복론의 쾌락 이어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거고요.
이게 탈세속주의 행복론 혹은 객관주의적인 행복론의 모든 행복론의 타당한 행복의 정의는 사실 잘 산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잘 살 거냐라는 질문은 어떻게 행복할 거냐라고 하는 질문이랑 같은 거겠죠. 그래서 인류사, 인류 문명이 꼽힐 때 종교와 철학의 최초 창시자들이 했던 질문이 바로 행복하냐, 행복하자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기원우 1세기의 행복에 대해서 종교적인 관점이 개입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이제 이때 초월적인 행복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하고요. 여기서는 행복하기 힘들어 죽어서 하나님께로 가면 그때야 행복할 수 있으니까 현세에서는 구원을 받아야 돼. 이게 이제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때 종교적인 행복론은 되게 비슷한 행복론이 몇 가지 나오는데
에피코러스라는 학파의 괴락 그리고 스토아 학파가 이야기하는 굉장히 중요한 행복과 관련된 개념들이 있습니다 아타락시아, 아파테이야라고 하는 개념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매우 종교적인 개념으로 이해를 하시면 되겠어요 이분들은 거의 인간으로서는 달성하기 힘든 어떤 수준의 인간이 되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거든. 그러니까 종교적인 기독교나 이런 거랑 굉장히 연결이 되는 그런 행복론이라고 할 수 있겠고요.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는데 중요한 거는 인류 최초부터 행복에 대한 관심, 잘 삶에 대한 관심이 존재했었다. 알 수 있겠죠? 쾌락주의는 행복의 절대적인 기준을 쾌락의 극대화, 고통의 최소화로 삼는 주의다. 이게 엄격하게 학적으로 규정한 거지. 이게 공리주의할 때 했던 것이다. 얘기랑 같아요. 공리주의자들도 행복의 기준은 즐거움에 있다. 쾌락에 있다. 라고 얘기했잖아요. 이게 곧 이익이라고 했고.
그래서 쾌락주의는 말 그대로 쾌락을 키우고 고통을 줄이면 그게 곧 행복이다. 심플합니다. 쾌락을 키우면 행복이고 고통을 줄이면 행복이다. 행복이야. 반대로 쾌락이 줄어들고 고통이 늘어나면 반대로 불행하겠죠. 쾌락이나 고통은 주관적인 느낌이어서 행복하냐 아니냐는 나만 할 수 있다. 당신이 뭐라든 나만 행복하면 돼.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게 주관의 만족감을 행복으로 보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겁니다.
객관주의 행복론에 따르면 객관적인 어떤 성취나 성과가 있어야 행복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객관적인 성취를 보고 행복하다고 판단하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 사람 행복하다 라고 평가를 할 수 있어요. 객관주의 행복론에 따르면. 탈세속주의 행복론에 따라서도 신이 보시기에 얘는 행복한 사람이야 라고 얘기를 할 수 있겠지. 그런데 주관적인 쾌락 주관적인 만족도를 행복으로 놓는 쾌락주의는
남이 나의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 잘못될 수 있어 통상 개인이 진정 달성하고 싶은 욕망이나 꿈을 발견하고 수단을 가지면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원하는 욕망이 많이 충족되면 그게 행복이고 욕망이 좌절된 불행이야. 여기서 이제 쾌락을 극대화시키는 게 보통 이제 쾌락주의에서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쾌락은 구체적인 내용이 뭐냐면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느냐 하고 싶은 게 좌절되느냐 이게 쾌락과 보통이에요. 사실은. 이걸 욕망 욕구라고 부르지.
그러니까 욕망을 극대화할 수 있으면 그게 행복이고 욕망을 내가 하고 싶은 욕망이 좌절이 많이 되면 될수록 그건 불행이지 그래서 하려고 하는 게 좌절되면 인간은 불행감을 가장 많이 느낍니다 이때 행복은 쾌락주의 행복이에요. 쾌락주의적 행복입니다. 쾌락주의적 인간관은 쾌락을 추구하는게 곧 인간이다.
자 여러분들 다른거 고민하지 마세요. 사유하는게 인간이고 정치적으로 공동체를 이루는게 인간이고 다 필요 없어. 쾌락주의 인간관은 그냥 쾌락을 추구하는 게 인간이라는 거예요. 이건 매우 현실적인 그런 인간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들 경제적인 인간 있죠? 경제. '돈 많은 게 장땡이지'라고 하는 사람들의 인간관이 쾌락주의 인간관이에요. 사실. 돈을 벌어서 뭐하게? 하고 싶은 거를 할 수 있으니까 돈을 버는 겁니다.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돈이 최고야 라고 하는 거지. 돈이 없으면 불행할 수밖에 없어요. 이 자본주의 사회는. 왜? 돈이 없으면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인간으로서 최소한도로 누려야 될 것도 누리지 못하니까 불행한 거예요. 이게 쾌락주의적인 인간관인 거지. 인간은 쾌락에 충족해서 만족하는 동물이다.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쾌락주의 인간간에서는 인간과 동물은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동물들도 자기한테 즐거운 것은 쫓고, 약한 동물을 먹고, 사자가 사슴을 먹고, 사자가 토끼를 잡아먹고, 늑대가 토끼를 잡아먹는 거는 즐거운 일이죠. 걔네들한테는. 그리고 자기보다 큰 동물을 피하는 건 고통을 회피하는 거예요. 그치? 그거랑 인간이 똑같다는 거야. 쾌락을 추구하는 게 인간이다. 고통을 피하는 게 인간이다. 라고 하는 거니까 쾌락주의적인 인간간에 따르면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동물권 옹호론자들 있어요. 동물권 보호하려는 분들. 그분들의 인간관은 기본적으로 우리 반려동물이랑 인간이 다른 게 뭐야? 라고 생각하시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쾌락주의적인 인간관을 가지고 계신 분들입니다. 만약에 그분들이 동물들 말고
인간이 이걸 더 많이 갖고 있잖아 라고 이야기를 하면 바로 그 측면에서 동물을 평등하게 보지 않는 거예요 아무튼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쾌락을 충족해야 되는데 이거는 굉장히 노골적인 쾌락주의가 감각적 쾌락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거지 사실 이 즐거움이나 재미는 정신적인 만족도에서도 올 수 있잖아요.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다가 쾌락을 얻을 수도 있고 정신적인 어떤 쾌락을 추구하다가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여기서는 쾌락주의적인 인간간의 굉장히 노골적인 케이스,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그런 쾌락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걸 좀 비판을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물론 뒤에 가면 정신적인 쾌락주의 얘기도 나오긴 합니다. 동물처럼 배고프면 먹고 가려우면 긁고 고통은 피한다. 그러면 행복하다는 겁니다. 여러분들 나는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을 해보세요. 내가 만족한 삶이 어떤 삶이었는지 생각을 해보라고.
아 나 이게 딱 기본적으로 돈은 이만큼 있고 이거저거 했으면 좋겠어. 그러면 난 만족해 그러면은 이거지 이 행복관인거지 그 다음에 무슨 고도로 정신적인 뭘 추구하겠어요 여러분들이 거기서 그냥 만족하는 거라니까요 너무 심하게 얘기했나 그렇게 충족이 되면은 다른 걸 추구할 수도 있겠지 줄리엥 라메트리라고 프랑스의 철학자 중의 한 명인데 유명한 사람은 아닙니다.
이분이 극단적인 쾌락주의자여서 18세기 사람이구요. 인간은 육체에 불과하다. 육체는 쾌락을 추구하는 것일 뿐이다. 영혼이 따로 있다는 이원론을 거부하고 인간은 육체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라고 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인간은 물질로만 이루어져 있다 이런 분이고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극단적 쾌락주의자를 일관되게 밀고 나가면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 음란함과 추접함은 너의 영광스러운 운명이니라 그 안에서 돼지처럼 뒹굴어라 그러면 돼지처럼 행복할 것이다 돼지처럼 먹고 싶은 거 먹고 싸고 싶을 때 싸고 그러면 되지 이게 행복이지 라고 생각하는 게 극단적 쾌락주의자는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들이 내가 추구하는 행복은 그런 건 아니야 라고 하면은 여러분들이 극단적 쾌락주의는 벗어난 거예요
극단적 쾌락주의는 벗어난 건데 쾌락주의라고 하는 이때 쾌락은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굉장히 비슷한 뭔가 그 비판 거리를 가지고 있어요 그거를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쾌락주의자가 가지고 있는 쾌락주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일단 어 쾌락 적응의 문제 라고 하는 게 있어요. 자 간단하게 쾌락이라고 하는 것은
즐거움이라고 하는 것은 욕망의 충족이라고 하는 것은 반복될수록 만족도가 떨어집니다. 그렇죠? 반복될수록 만족도가 떨어져요. 엄청나게 목이 마른 사람이 시원한 물 한 잔을 딱 먹으면은 시원하다가도 시원한 상태에 목이 갈증이 해소된 사람은 물을 두 잔째 주면은 덜 시원해져요. 그렇지. 쾌락이라고 하는 게 그거야.
쾌락이라고 하는 게 나의 만족감인 거잖아. 만족감. 만족감이라고 하는 게 처음 쾌락이 10이었다 하더라도 이 쾌락을 계속 유지를 하는 이상은 처음 쾌락 10이 오지 않아 그 다음에는 점점 줄어들어요 그래서 나중에 쾌락 10을 얻으려면 처음에 나한테 주어졌던 만족감을 줬던 걸 점점 더 늘려야 돼 늘릴 수밖에 없어 그래서 더 큰 자격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쾌락은
지속적이지가 않아요. 굉장히 일시적이야. 그래서 주기적으로 반복을 해줘야 돼. 내가 어떤 만족감이라고 하는 것은 감정이기 때문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니까요. 그러니까 내가 뭘 해서 만족을 딱 얻었어. 그러면 그건 내려갈 수밖에 없어요. 그럼 다시 그 만족을 얻으려면 또 같은 걸 해야 되고. 반복된 자격이 필요하다. 지속적이지 않다. 그래서 내가 좋은 거 핸드폰이든 아니면 명품 백이든 만족감 지속도를 조사를 해봤더니
만족감이 하루 이틀 사이에 없어진다는 사람이 41% 한 달 이상 간다는 사람은 33%밖에 안 되고요. 사용할 때마다 만족감이 지속되더라 25.6%인데 이 사람들도 더 나중에 물어보면 줄어들겠죠.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족감은 지속적이지 않고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걸 약간 다른 방식으로 설명을 드리면 쾌락이라고 하는 것은 감정 곡선에서
평상시를 0으로 봤을 때 쾌락이라고 하는 것은 감정 곡선에서 더 높은 상태에서 우리가 얻는 거잖아요. 근데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쾌락을 경험한 사람은 감정의 동요가 없는 평상시 0의 상태에서는 마이너스가 된다는 얘기야. 처음에 내가 뭐로 할까 이거를 그 요즘에 연예인들 요즘은 아니고 얼마 전에 연예인들이
프로포폴이라고 하는 마취주사를 맞으면서 이게 마취 이게 마약류다 그래가지고 많이 신문에도 오르내리고 했거든요. 보통 마약이나 프로포폴 같은게 그런 거로 된 거지 이제 프로포폴을 맞지 않고 있는 평상시 상태가 0이야 0이라고 가정을 해보세요 처음 내가 프로포폴을 맞았더니 기분이 너무 좋아 그래서 감정 쾌락이 100이 됐어 100이 됐는데 이게 100이 된 상태가 한 번 맞았다고 해서 지속되진 않겠죠
그래서 이 상태에서 쾌락을 경험한 사람은 다시 평상시가 되면 처음에는 프로포폴 맞지 않았던 상태에서는 0이었는데 이 만족도가 0이었는데 프로포폴을 한 번이라도 맞은 사람은 평상시에 마이너스 10, 20, 30, 40, 50 떨어지게 돼요. 그렇겠지 그러니까 다시 프로포보를 찾는 거야 그래서 프로포보를 맞기 전엔 0이었다가
프로포보를 한 번이라도 맞은 사람은 마이너스 100이 된단 말이야 그러면 이 사람이 포보를 다시 맞아 그럼 다시 0밖에 안 돼요 어? 그러니까 한 번 이 육체적인 어떤 강한 쾌락을 맛본 사람은 이 쾌락을 맛보기 위해서 반복된 걸 계속해야 되고 지속적으로 해야 되고 더 강하게 해야 된다라는 거야. 마약이 그런 거죠. 마약이.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죠? 그래서 쾌락이라고 하는 거는 한 번이라도 맛보지 않는 게 중요하다.
왜? 평상시에는 0이잖아. 그러니까 프로봇을 안 맞았을 때 그 0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겠죠. 그러니까 애시당초부터 쾌락이라고 하는 것을 쾌락 욕망을 충족하는 경험을 아예 안 하는 데서 행복을 찾은 사람이 있어. 역설적으로. 그래서 행복을 처음 감정곡선 0의 상태에서 찾아야 한다.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조금 있다가 공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