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죄
Shared on October 21, 2026
제가 이제 이 책을 가지고 차례대로 설명을 해드리고 있는데 죄에 대해서 오늘 나눌 겁니다. 그리고 인간 이외의 피종을 전달하게 할게요. 그리고 8장은 시험에 안 나오는 걸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부담 안 가지셔도 죄는 좀 중요하죠. 왜냐하면 죄가 진짜 어려워요.
기독교의 희신교리잖아요. 모든 인간은 죄입니다. 이게 희신교리란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구원자가 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우리의 주님이시고 구세주죠. 근데 죄를 뭐라고 정의하느냐가 사람마다 다릅니다. 오늘 그걸 보겠지만 여러분은 죄가 뭔지 않게. 죄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어, 뭐 말씀하셨는데?
괄협을 빗나갔다. 그렇죠. 그게 어디서 오는 거죠? 그 의미가? 성경에 그런 의미가 나와요. 그럼 여러분들 죄인, 내가 죄인이다 이런 걸 느끼세요. - 네. - 어, 오케이. 오케이, 좋습니다. 이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이 시대가 이걸 너무 희미하게 만들고 사실은 그 반대로 사람들을 끌고 갔기 때문에 이거는 사실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흔드는 거거든요.
우리가 죄인이다. 이 세상이 죄로 죄의의 곤경 가운데 처해 있다는 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도 그만큼 주어 줄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주위에 대해서 아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조금 요번에 좀 진지하게 같은 오늘 내용들을 생각해보실 것 필요들이 있어요 자 여러분 이가 인간이 선한 존재다 아카의 문제다 그 우리 학교 다행해 주고도 하고 가게 돼
성산설, 성악설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여러분들 생각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인간이 선한 존재입니까? 악한 존재입니까? 아 이거 또 상관아, 또 한가입니까? 인간이 선한 존재입니까? 악한 존재입니까? 악한 존재? 오케이. 또 악한 존재? 인간이 악한 존재다. 인간은 선하느냐, 편한 건 할 수 없나요? 없을까요? 100% 악한 행동과 말 말할까요?
아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그런 악한 존재다. 다른 분들, 혹시 인간이 그래도 좀 선한 변도 있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은 안 되나요? 여러분 잘 생각해보세요. 여러분들도 아마 그러실 텐데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래요. 이 세상에 난 나쁜 짓을 하면 다 살아야지. 나쁜 짓을 할 때 너무 기뻐.
막, 범죄는 나의 삶의 의미야. 이렇게 사는 사람들 별로 없어요. 다들 열심히 살지 않아요. 다들 자기가 옳은 선택들을 하고 산다고요. 이 세상의 사람들이 나는 이거 자기가 괴롭히려고 해야지. 아니면 이걸 망가뜨리려고 해야지. 이런 선택들은 별로 없어요. 다들 자기의 옳음, 너의 옳음과 나의 옳음들이 충돌하면서 살고 있어요. 진짜.
인간이 약한 존재인 게 맞느냐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아요. 그래서 성경의 입장은 모순된 존재라고 하죠. 인간 안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들이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들만 해도 여러분들이 이렇게 여기 와서 정말 하나님의 진리를 배워보려고 하는 이 아름다운 마음들 물론 공부하기 싫은 안 아름다운 마음들과 인상하신 분들과 이런 것들도 있지만 우리 가운데 아름다움이 있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안에 죄도 있는거야. 이게 성경이 우리를 인간이 모순된 존재다 라고 평가하시는게 정말 정확한 표현이에요. 인간은 단순히 선한 존재나 단순히 악한 존재가 아니라는걸 이해하시는게 되게 중요해요. 성선설, 성악설을 택하잖아요. 그럼 보통 어떻게 되냐면 사람이라는 것은 너는 악하고 나는 그래도 좀 낫고 이렇게 된단 말이에요.
아마 여러분들이 어떤 갈등을 겪고 계시려면 99%만 그렇게 되고 계실 거예요. 내가 나쁘지. 저 너무 나쁜 놈. 나는 그래도 여기서는 최선을 다했고, 지금 이러다가서 난 이렇게 하고 있는데 쟤 때문에 다 그렇게 됐어. 이렇게 된단 말이에요. 근데 그게 객관적으로 맞아요. 너무 단순한 이해. 너무 단순한. 우리가 죄와 악과 인간에 대해서도 그렇게 단순하게 이해하기가 쉬운데
인간은 모순 된 존재입니다. 이따가 죄의 보편성에 대해서도 얘기하겠지만 죄의 보편성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요. 나도 죄인이라는 거예요. 나의, 나의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죄인이라는 거예요. 내 안에 있는 모든 게 뭐예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죄에 물들어서 왜곡되고 내가 정말 손하는 일을 할게도 부지불식간에 너무나 순식간에 그게
주의 형태가 뭐 이다는게 성경이 가르쳐 주신 모습 내 이 존재의 의미입니다 왜 왜 그 이유는 그렇죠 선하게 창조 되었지만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죠 우리가 이거를 생각보다 인식한 다오는 그런 기억 하셔야 됩니다 나는 옳고 넘는 틀려 이기 진짜 인간의 영혼 약평거든요 우리는 다 그렇게 죄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해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대부분의 경우에 99% 이상, 제가 인간의 의미가 100%라고 말하는 거지만 99% 이상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들이 앞으로 어떤 누군가와 갈등이 있거나 문제가 있거나 사업을 할 때 없을 때 어려움이 생기실 때 내가 그렇게 딱 이렇게 딱 나눠서 이렇게 나는 열심히 했는데 제 때문에 그래 이런 생각이 드신다면 그게 성경적인 관점이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하실 수 있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죄가 뭔가 아까 죄가 이제 과녀를 벗어난다라고 하셨었는데 여러분 혹시 다른 죄에 대한 다른 정의 배워보신 적
되세요 제 아 서 배우게 아는 손에 무대에 우제 저어 진에 먹었음에 정이 아는 선에 결핍이다 또 제가 보여 여러분이 죄인이나 다른 죄인이나 그리고 여러분들과 물면서 막 성경이 이 말이었을 때 주인 제가 잘못했어요 회개합니다 이렇게 방해 쓸 거 아니에요 그때 그 여러분들이 자국한 죄가 뭐예요? 얼른 토론아 보세요. 나한테 얘기해 봤을 때.
아 오케이. 혹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실 수 있나요? - 사장님이 있어요. - 네 그렇죠. 네. - 우리의 주인사님 주인 혹시 사장님이 있어요? - 아 주인이 뭐, 박힌 거. 아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으
죄에 대해서 지금 이렇게 관역을 보던 비슷한 말이에요. 이게 지금 이렇게 되게 꽤 많이 왔는데 한국 교회 안에도 이런 관점들이 많이 왔어요. 한 30년 전만 해도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0~30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요. 한국 교회 죄라고 하면 뭐라고 생각해 냐면 율법을 어기는 거 나는 관점이 굉장히 집 중도적 이었어요 지배적 이었어요 법이 있어요 하나님이 정하지 얻어 법이 있어 그걸 어기는 거 이게 가장 큰 죄처럼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게 뭐냐면 여기서 보면 존재신론적
신관을 가지고 있을 때 이렇게 쭉쭉쭉 해서 죄를 보는 관점도 이렇게 이런 구도가 돼요.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서 우리가 성경을 보다 보니까 성경에는 그게 죄가 더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은데 그게 심적인 의미가 아닌 것 같은데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어요? 자꾸 안식을 어기셨어요? 그래서요. 유대인들은 정귤법이 너무너무 중요했는데 부족한 사람들과 자꾸 부딪히는 거예요
이거 죄거든요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게 죄였어요 자꾸 안식일에 밀가먹고 자꾸 죄를 짓는 거예요 신성모독을 하고 막 그랬다 말이에요 예수님이 그리고 성경을 들어보니까 우리도 유대인처럼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한국교회 안에 근데 그게 지금 예수님이 가르쳐준 것과는 다른 거 아닌가 라는 생각들이 있었던 거죠. 그 이전에는 영미의 신학자들도 그랬었던 거고
그래서 신을 보는 관점이 바뀌면 이게 죄에 대한 관점도 바뀌고 구원의 개념도 바뀌고 이렇게 쭉 센트로 변화가 되긴 하거든요. 현대에는 이렇게 바뀌는, 삼일체분정신관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 죄를 관계의 파괴로 봐요. 관계의 파괴. 아까 사실 말씀하셨던 것도 관계의 파괴의 관점이에요. 하나님과 우리와의 올바른 관계가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성기고 하나님만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이런 관계의 측면이 있는데 이것들을 깨뜨린 것 이렇게 물론 양쪽 다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스펙트럼이 있지만 그렇다 그러니까 여러분 죄라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스펙트럼이라는 게 있다 다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경을 볼 때도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걸 염두에 두시고 오늘 얘기들을 좀 들으셔야 됩니다 그럼 당연히 성경으로부터 시작을 해야 되겠죠. 성경에 보면 죄를 가리키는 용어들이 여러 개 있어요.
아바, 아발, 아바를라, 아발, 파샤 이렇게 많이 있는데 구구리다, 손을 넘어가다, 범하다, 암이 질배하는 것 이런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여기 나온 것처럼 불약성서에서 죄를 가리키기 위해서 가장 넓게 사용되는 단어가'하타' 이렇게 나와요. '하타'가 바로 올바른 목표를 벗어나다 하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이게 중요해지는 이유는 뭐냐면 이것만 가지고는 율법으로부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아 그리고 여기서 파샤도 여러분 좀 나중에 기억하셔야 됩니다. 헬라어에 보니까 헬라어에 되게 많은 가지 죄를 의미하는 단어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성경이 되게 죄에 대해서 많이 강조하신다는 걸 여러분은 아셔야 되는 거예요. 지금 이 시대가 죄를 너무 희미하게 만들기 때문에 사실은 우리가 복음으로 살아간다는 건 이 세상을 거스르는 거거든요. 이 세상과 반대쪽으로 드라이브를 거는 건데 사실은 우리가 더 죄에 대해서 강조해야 될 필요가 있는데 이전 세대랑 똑같이 할 수는 없어요.
더 성경적으로 이 시대에 이해할 수 있는 성경의 관점으로 해야 됩니다. 죄에 대해서 쭉 이렇게 있는데 이것도 다 죄죠. 그런데 가장 신약성경에서 자주 나오는 것은 더 강조되는 것이고 더 중요하다는 걸 아시죠? 가장 많이 사용되는 거의 330개 20번 정도가 사용되어 이 단어가 뭐냐면 하마르티아 하마르타는 동작은 하마르타는 단어고 제가 헬라우 그런 히브리오가 풍부가 너무 예쁜 예쁘게 안 나와서
한글로 썼습니다. 여러분 인터넷이 뭐 그냥 나오고 로봇이나 다 나오고 다 나오니까 하마르타, 하마르티아 이렇게 동사가 하마르티아, 동사가 하마르타 노. 이게 뭐냐면 관역을 빛나가는. 이게 하타랑 굉장히 비슷한 의미가 되는 거죠. 이 둘이 합쳐지면 어떤 문화가 되느냐. 우리가 양궁, 양궁 얼마 전에도 많이 보셨죠. 우리가 관역을 향해서 조준하고 있는 상태.
이 화살이 꽂히기 위해서 날아가는 상태. 이 화살이 관역에 정확하게 명중해서 하나가 되는 상태. 이 모든 것을 합쳐서 인간은 존재 동적으로 하나님을 향하도록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지어진 존재인데 그 존재 목적 하나님의 지지한 원리가 헤어지고 그렇게 살지 못한 것 그 목적에서 그 원리에서 벗어난 것을 죄 성명에서 가장 강력하게 말하는 죄다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이게 되게 중요해요. 이게 아까 존재실론적 신관과 삶의체론적 신관을 대비해드렸지만 율법을 어기는 게 죄다 라고 생각할 때와 관역을 벗어나는 게 죄다 라고 생각할 때는 상당히 많은 것들이 물론 완전히 벗어나는 건 아니지만 여기에도 이 개념들이 여기에도 원래 이 개념이 있지만 사실 미묘한 강조점의 차이기는 해요. 완전히 벗어나면 이단이 되는 거죠. 근데 미묘한 강조점의 차이인데 이렇게 관계성을 강조할 때와 그래서 꽤 많은 것들이 갈라지는 주입되어야 하는 개념을 생각해야 해요.
그리고 또 하나 여러분들 이거는 그냥 상식적으로 좀 기억하시면 좋은 게 뭐냐면 휘브리스, 휘브리스가'히브리어의 파샤에 대응하다' 이렇게 나와요. 교만입니다. 그 교만인데,'너무 내가 잘났지' 이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악독하고 공격적인, 파괴적인 교만을 말해요.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올라가기 위해서 누군가를 끌어내려야 되는 그런 교만. 그게 파시아와 히브리스인데 히브리스가 왜 중요하냐면
우리가 이제 예수님께서 2000년대에 오셨고 팔레스타인에서 복음이 시작되었지만 금세 그리스 로마 지역으로 복음이 전파되어서 신약 성경이 무슨 언어로 쓰여져 있죠? 헬라오 고대 그리스어로 쓰여져 있는 이유가 너무나 금방, 너무나 금방 고금이 그리스 로마 세계로 퍼져나가거든요. 그게 적히게 될 때는 그 사람들이 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쓰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에서 성경이 적힌 거 있잖아요.
근데 그 고대 그리스 세상에서 제일 큰 죄가 뭐야? 라고 말하면 휘브리스. 특히 고대 철학자들이 말할 때 휘브리스라는 단어는 모든 죄의 근원, 우리는 관계성으로는 게 아니지만 모든 죄의 근원을 휘브리스라고 생각했어요. 하마르티아가 아니라. 성경은 그런 당대의, 속세의 죄의 개념을 뒤집으셔서
아니면 좀 바꾸셔서, 초점을 바꾸셔서 하마르티아가 가장 중요한 죄야 나는 걸 가르쳐주신다는 게 중요해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라면 어떨까요? 굉장히 정말 똑똑하고 생각들을 많이 하고 이 세상을 탐구하고 했던 사람들이에요. 인간의 인성을 최고로 사용해서 이 세상을 읽었을 때 이 세상을 가장 망가뜨리고 가장 이 세상의 나쁜 짓이라고 생각되는 게 그 이 분이 있어요 종합 나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끌어 차 취해서 내가 올라가고 이게 가장 큰 죄 인간에 의사원을 할 때 그 이 가장 큰 죄였는데
성경은 조금 다르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걸 여러분들이 조금 알고 계셔야 될 게 다르다 이 분을 아니다 라는 것을 그래서 파마르티아 파마르타노 파타 요거는 여러분이 좀 기억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혹시 혹시 시험에 나오면 한글로 쓰셔도 됩니다. 이브리어로 쓰셔도 좋지만 그러면 우리의 문제는 그거죠.
인간이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우리가 좀 부족한 것도 알고 있고 그런데 죄가 우편적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죄입니다. 로마서 3자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보호하였으면 하나님의 어머니가 이를 믿습니다. 여러분 그 말씀이 정말로 정말로 동의가 되십니까? 믿어지십니까? 오케이 오케이 안 믿어지는 분 없으세요 기독교 역사에 이게 안 믿어진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펠라기우스도 마찬가지고요 엘라스누스도 마찬가지고요 꽤 있었어요 여러분들은 다 믿어지세요? 할렐루야 은혜입니다 이게 근데 여러분 이거 믿어지는 게 그냥 되는 게 아니에요 인간은 인간의 이 자아 중심으로 혹은 죄에 영향을 받은 자아의 모습이죠. 이걸로 내가 죄인, 사람들이 다 죄인이다 이걸 인정하는 것은 그냥 자연적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모공을 전할 때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이유가 그거잖아요. 이게 1차적으로 거부감이 들어요. "너 죄인이야. 너 지옥가야 돼." 이게 듣고"아우 그렇죠. 내가 이렇게 할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게 믿어지는 게 은혜죠. 믿어지는 게 은혜고 또 그런 게 있어요. 그런 갓난아기들. 막 6개월, 1년 된 아기들. 너무 예쁘지 않아요? 그런 아이들도 제일 있네요.
무슨 죄를 지었어요? 죽을 죄를 지어서 영원한 현물을 지고 그런가요? 여러분 그런 생각 해보신 적 없으세요? 그리고 이런 것도 있어요. 우리가 볼 때, 우리는 물론 사람들이 다 알 수 없지만 혹시 여러분들 그런 분들 보신 적 없어요? 일단 안 믿어요. 안 믿는데 되게 어려운 상황에서 진짜 열심히 사는 거예요.
막 진짜 열심히 사는데 또 어려운 의미를 다 넣는 거예요. 그리고 또 정말 착하게 살려고 애쓰고 발버둥 치고 그런 사람들 여러분 혹시 보신 적 없으세요? 저는 종종 있거든요. 종종 있어요. 그럼 그 사람들은 무슨 의미로 죄인인 거지? 이런 생각 혹시 해보실 수 없으십니까? 안 하시는군요. 여러분들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런 고민들을 해보시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고민한 다음에도 성경이 진리라는 결론에 돌아오게 됩니다. 걱정하지 않으시고 고민하셔도 돼요. 그런데 다만 그들은 뭐예요? 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이런 고민은 필요합니다. 우리도 그것 때문에 조직신혁을 하는 거거든요 어쨌든 우리가 죄의 보편성을 얘기할 때 이렇게 세 가지를 얘기합니다. 죄가 우리의 존재의 핵심을 오영시킨다 이렇게 말해요. 이 책에 보면 그런 표현이 돼요. 우리 인격의 관제소를 망가뜨렸다 이렇게 말하고, 오영시킨다 이렇게 말하고,
우리의 자아, 우리의 어떤 판단을 하고 결정을 하고 의지를 발휘하고 생각을 이끌어가고 하는 우리 안에 어떤 자아라는 존재가 있죠. 그 존재가 죄로 인해서 오염되었다. 그리고 2번이 제가 말씀드린 거야. 죄는 1번은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라는 것. 우리 존재의 중심이 오염되고 두 번째는 우리의 성격이 선안도 왜곡식입니다. 나는 옳아. 나는 이렇게 하는게 옳아.
여러분 그게 너무나 쉽게 죄로 오염되요. 이걸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이걸 잊어버릴 때가 많거든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우리는 형제 눈에, 아니 내 눈에, 내 눈에 있는 들보는 못보고, 들보가 이거잖아요. 이게 들보잖아요. 이 들보거든요. 내 눈에 이게 있어요. 못봐요. 내 홍대에는 왜 있네? 티끌은 잘 본단 말이에요. 티끌. 티끌. 요거 요거 요거 요거 요거.
요거는 못 보는데 형제 눈에 있는 이거는 잘 본단 말이에요. 여러분 이걸 우리가 잃어버릴 때가 되게 많은데 우리는 형제 눈에 있는 티끌을 보면서 저 들보네 들보네 맨날 이러지만 사실 티끌이라고 알려주시는 거예요. 네 눈에 사실 들보가 있고 그거는 사실 티끌이야. 우리는 그런 왜곡된 원근법으로 이 세상을 보면서 사랑하고 있어. 이렇게 가르쳐 주시잖아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럼 그걸 진짜로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내가 정말 가장 옳다고 생각하고 정음은 정말 100% 틀리다고 생각할 때 조차도 그게 팩트가 아닐 수 있다는 거예요. 사실 아닌 성립이 굉장히 높다. 우리는 그걸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고결한 곳에서 가장 고결한 순간에 가장 가져갈 수 있어요. 우린 그런 존재입니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곳에서 사실은 나의 죄가 나의 모름을 오염시킬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죄는 보편적인 겁니다. 두 가지 차원이 있는 거예요. 모든. 다른 사람들의 인격의 중심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죄가 보편적인 것도 있지만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과 죄라고 생각하는 일,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 일과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 그 모두를 오염시킨다는 의미에서 죄는 보편적인 것입니다. 나라고 면제되는 게 아닌 거죠. 이거는 이제 그거죠. 이전에 존재신론적 관점에서 상위의체론적 관점으로 간다라고 봤을 때
존재신론적 관점에서는 우리가 정통신학 혹은 개혁신학은 언약신학을 주장하잖아요. 이런 법을 어기는 측면이 나와요. 강조돼요. 물론 우리 칼빈 선생님의 가르침을 보면 관계적인 측면이 굉장히 큽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거기서 취미와 성화가 나오고 관계적인 성향이 되게 큰데
조금 시간이 흐르면서 개혁주의 시장에서는 그 관계적인 측면은 상당히 줄어들고 법적인 측면, 이게 너무 강조되는 측면이 있어요. 그런 시장의 흐름들을 보면 있는데 우리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다시 관계적인 측면 우리 칼빈 선생님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그 관계적인 측면에 조금 더 강조점을 두기 시작하면 죄가 이렇게 볼 수 있다 뭐냐? 첫 번째 실패로서의 죄다
이 실패는 범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단순히 뭘 어겼다라는 걸 말해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가 있고 원래 디자인하신 모습이 있고 이 땅에 인간을 지신 목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것에서 실패했다는 거예요. 우리 하나의 행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죄라고 할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근본적인 실패는 뭐냐면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목적. 하나님의 원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간을 왜 만드셨습니까?
교제하기 위해서 오케이. 혹시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 없어요? 원래 이렇게 하면 딱 잘 나오는 웨스트웨스터 요리 문담이 제일 인간의 제일 원칙이 있는데 하나님 인간을 왜 만드셨습니까? 그렇죠. 영광과 비교. 2사야 43절 21절. 그게 이제 제 1원칙이에요.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하나님의 법과 질서를 따르고 그렇게 살아가는 건 우리 인간의 목적이라고 보면 그게 그냥 존재실론적 관점에서 생각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바라고 인간을 바라보는. 3위일체론적 관점에서 보면, 이건 생각보다 그렇게 큰 범위는 아니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강조점의 차이인데, 둘 다 있는 거예요. 이쪽에 있다고 이걸 버리는 게 아니고, 이쪽에 있다고 이게 아예 없는 거 아닙니다. 그런데 3위일체론적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사랑의 대상,
사랑의 교제를 낳을 그 외적인 대응을 사랑의 파트너로 지으셨다 이렇게 나와요 그 부분을 더 강조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아까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우리가 사랑하지 않고 헛된 것들을 사랑하는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게 가장 근본적인 죄가 되는 거죠 언약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언약을 어기는 게 가장 근본적인 죄가 되는 거야. 이 차이가 있는 겁니다. 이 실패는 하나님의 디자인이다.
둘 다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성경에서 어떤 단어를 얻는지를 나름대로 찾아보시는 게 필요합니다. 그게 이제 실패가 뭐냐? 공동체의 붕괴로서의 죄인 것. 공동체 원래 하나님이 인간을 공동체로 지으셨습니다. 여러분 제가 여기 3일체 하나님의 영상 하고 이렇게 쭉 설명해 드리네요. 예수님 요거 이거까지 안해 안해군요.
성경에 보면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자 26절 27절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자라 우리의 모양대로 한 사람을 만들자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인간은 어떻게 지으셨어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어요. 그게 뭐예요? 창세기 1자 26절 27절에 보면 곧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이렇게 지으세요.
여러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었다는데 바로 그 구절이 그렇게 되어있어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게 남자와 여자로 지으신 거예요.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상한 소리 하는 거 아니에요. 찾아보세요. 그럼 뭐예요? 남자와 여자로 지으신 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거라고요. 그게 무슨 의미에요? 그게 무슨 하느님 명상이에요? 제가 직접 성부에 있는 거 얘기하는 거 맞아요.
3위일체 하느님 명상입니다. 여러분 3위일체가 뭐죠? 성부, 성부, 성장. 성령, 이 세 분은 서로 다른 분이에요. 그런데 한 분이에요. 3일체는 했었죠. 이 분들이 서로 다른 존재인데 하나로 존재하셨어요. 이런 존재 방식을 뭐라고 해요?
사랑이라고 해요. 사랑. 3일체 하나님께서는 영원전부터 사랑으로 존재하셨어요. 어거스의 뼘을 따르면 성부는 사랑하시는 자, 성장은 사랑받는 자, 성령은 그 둘 사이의 인격적인 사랑이라는 존재 방식으로 존재하셨기 때문에 요한 1서 5장 24절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하지 않느냐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게 뭐예요?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사랑이에요.
법이 아니라 법의 측면도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존재는 삼위일체 하나님, 사랑이라는 말이에요. 근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 자 하시고 나서 지으신 게 뭐냐면 남자와 여자에요. 그리고 창세기에 보면 남자와 여자가 하나 되고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 되고 그런 모습을 딱 보여주세요. 창세기 2장. 둘이 그런 부분. 그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한몸을 이루어진다.
이런 이런 표현들이야. 근데 이제 지금은 신라권 사건 때문에 여기와 여기에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생겨서 여기 돌아갈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는 이런 존재는 볼 수가 없어요. 볼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제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남자와 둘이, 창세기 2장 24장. 한 몸이 되는 거. 하나님과 아담도 한 몸이 되어서 창조사회로 완성하고 남자가 여자를 봤을 때
너는 내 뼈 중에 뼈, 내 살 중에 살이다. 이거 무슨 의미예요? 너는 나다. 그런 표현들이 나와요. 그리고 창세기 3장에 보면 이게 깨진 모습들을 딱 정확하게 이 2장과 3장이 대칭이 되어서 깨진 모습들이 나와요.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졌어요. 그리고 나서 참생기 5장 3절에 보면 아담이 그때부터는 아담, 자신의 형상 아담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낳는다
이렇게 말해요.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진 채로 하나님과 연합된 아담을 처음에 지어줬을 때 하나님과의 이 신비로운 연합을 이룬 채로 지어줬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이게 깨어진 채로 인생을 시작해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죄로부터 인생을 시작하는 거고 이게 없으면 에덴 동산에 보면 그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가 있었죠.
원래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인간의 외부로 생명을 계속해서 공급받아야만 살 수 있는데 이게 깨어졌기 때문에 당연히 죽는 거야. 이 사람 자체가 아무리 선해 보이고 아무리 간단하니까 청정해 보이고 순수해 보이고 아무리 내가 열심히 살아도 이게 없으면 죽는 거야. 아담도 이거 따로 봤을 때 바로 죽지 않았죠. 이게 끊어진 거야. 죽은 거야. 인간은. 70년 살든 80년 살든 100년 살든 죽은 거야. 이게 없어요.
근데 이게 없는 상태로 살아가야. 인간의 모든 인간은 선악과 사건이 왜 모든 사람을. 그게 뭐냐면 공동체인간이. 그러니까 이것도 단순히 교회가 깨졌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 이게 깨졌다 이런 의미인 겁니다. 세번째, 죄는 복음과 비추어서 생각해야 된다고 그랜지가 되게 강요해요. 복음과 대조하지 않았을 때
로마서에서도 보면 율법의 의로와 하나님의 새로운 의리를 대조시키잖아요 그러면서 복음을 설명하잖아요 이건 중립이 대조되는 거예요 근데 이걸 생각하지 않고 우리가 이렇게 얘기했을 때는 사실은 성경이 강조 이렇게 여 아까 제가 이걸로 비가 있어야 이 어린게 성격이 가장 강조 하시는 게 있는데 그거 말고 이곳들이 목숨을 그렇게 되요 그렇기 때문에 고금의 비추어 제를 생각해야 되는 거야 근데 고금은 보건의 신이 누구세요 예술이 써서 예술이
고린도우서 4장 같은 곳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로마서 8장에 보시면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시고 택하시고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데 그 이유가 뭐냐 이거 부원이죠. 우리를 왜 부원하시냐.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원하셨다 이렇게 말해요. 베드로전서 1장 같은 데 보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뭐냐? 이 세상에 써놓은 것을 피하여서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을 참여하게 하시려고 신성한 성품.
이게 단순히 나 개인이 아니에요. 인간이 개인으로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근데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구원하시려는 거예요. 이게 깨어졌는데 이걸 회복하시려고 한다는게 사회의 자체론적 관점에서 죄 그리고 구원의 관점이에요. 아까 예수님이 얘기했대요. 아까 이게 이 정의를 안 했습니다. 사회의의 자체가 뭐냐면 성부, 성자, 성령 서로 다른 존재들이 온전하게 하나가 되는 연합
공동체 이 이후에는 원래는 연합이었는데 지금은 연합이 깨어져 버렸어요. 연합으로는 볼 수가 없어요. 근데 그래서 공동체로만 희미하게 볼 수 있는 거죠. 원래는 그렇게 지어졌단 말이에요. 근데 예수의 숲에서 하나님의 형상이에요. 상위일체 하나님의 형상. 여러분 예수님이 어떤 의미로 하나님의 형상입니까? 예수님의 어떤 모습이 하나님의 형상입니까? 예수님이 엄청 잘생기셨을까요?
-생겨서요. -아니에요? 안 잘생겼어요?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죠. 여러분. 예수님은 어떤 의미로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세요? 여러분 그 하나님의 형상을 보셨어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시니까? 어떤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분에 대한 올바른 행동을? 아니면 행동을 정화시켰던 것? 무한한 사람 무한한 사람 아! 무한한 사람! 무한한 사람은 상당히 동접한 거예요
근데 사랑이 하나님의 형상이에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긴 해요 피조물을 향한 무한한 사람. 피조물을 향한 무한한 사람. 그걸 하나의 예수님이 보여주셨죠. 그걸 포함하는데 이 맥락에서 드리려고 하는 말씀은 뭐냐면 예수님은 성육하신 하나님이세요. 요한복음 1장에 나오죠.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렇게 쭉 하면서 일단 14절에 보니까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버리시면 독생자의 영광에 은혜의 은혜가 충만하더라.
아시는 말씀이죠? 성육신이에요. 성육신의 신학적 정의가 뭐냐면 예수 그리스로는 온전한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온전한 인간이시다 이거예요. 오케이.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거고 그렇게 하는데 여러분이 예수님이 온전한 하나님이셔 이거 오케이. 예수님 온전한 인간이셔 더 오케이. 근데 이 둘을 굳히면 굉장히 문제가 생기다는 거 아닙니까? 어떤 존재가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인간이다. 하나님이 어떤 존재이신지요? 무한한 존재예요. 영이세요. 창조주세요.
인간은 피조물이고 육체에 있고 유한한 존재예요. 무한한 존재와 유한한 존재로 한 존재가 되는 건 뭐예요? 어떻게 있는 거예요? 유무하게 있는 거예요.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여기를 건너왔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근데 재미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성육하신 하나님 하나님이자 하나님과 인간 서로 다른 존재가 완전하게 하나가 되는 신비로운 연합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예요.
그런 의미로 예수님 하나님의 형상인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오순장 나반다란 방 사건이 일어났었죠. 그때부터 뭐가 출발해요? 교회가 시작됐어요. 예수님께서 일단에 교회를 설립하셨다고요. 그 십자가 구원의 은대를 전하도록 그 도구로 교회를 사용하셨는데 성경에 보면 몇 군데 나오지만 특별히 에베소서 1장 23절에 보면 교회의 정의가 뭐죠?
정이라고 하긴 했잖아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도민이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용이라 여러분 아시죠? 에베소드 1:23절에 가셨어요. 교회가 뭐예요? 그게 몸이에요. 여러분 몸이라는 게 정말 신비하다는 거 아십니까? 우리가 이 몸을 지금 다 가지고 다니니까 이건 막 여러분들 아무렇지나 생각하고 별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지만
이거는 그 어떤 우주와 은하와 원자와 양자컴퓨터와 AI보다 더 신비하게 몸이에요 과학자들도 이 인체에 대해서 별로 알고 반의 반도 알지 못하거든요 몸이 어떤 의미냐면 눈은 코가 아니죠 코는 입이 아니에요. 손과 발은 다른데 온전하게 하나가 아니에요. 그래서 한 지체가 고통받으면 전체 지체가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전체 지체가 영광을 받는 정말 신비로운 일이 일어났어요.
정말 저희가 이렇게 몸처럼 되면요. 와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몸이에요. 근데 몸이 뭐냐? 서로 다른 존재들이 온전하게 하나가 되는 것을 이 선악관학관 이후에 신락원 이후에 세상에서 가장 근접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는 유비가 뭐냐? 몸이. 그래서 하나님께서 3일차 하나님이셨고 인간을 3일차 하나님의 홍장으로 만드셨고 근데 그것이 깨어진 것이 죄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홍장으로 오셔서
에베소서 2장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인간을 누워라 죽으신 이유가 뭐냐? 나중에 에베소서 2장 10절부터 10절 이하를 정독을 좀 해보세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치신 이유가 뭐예요 여러분? 예수님 왜 십자가에서 죽인거야? 네 무슨 말이야? 아, 바로 정답을 말씀하시면 안되는데 여러분 십자가 왜 죽으셨어요?
나 구원하려고 돌아가는거 아니야? 나 천국 보내려고, 나 영벌 안당하려고 한거 아니에요 근데 에베소서 2장에 보면 되게 재미있는 말씀입니다 다른데요 유대인과 이방이 당시에 그 유대인과 이방이로 대표되었지만 인류 역사상 언제나 지금 우리에게도 있는 원수대 그 원수대 그 중간에 막힌 땀을 육체로 허무시고
그 둘이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서 하나님이 그걸 위해서 너희를 지으신거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래스는 이 장 중요하니까 요 깨워진 것들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허무시고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께 나아간게 지으셨어 이게 십자가의 목적이었어요. 그리고 나서 교회가 생긴 겁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고 그게 완성된 것이 천국인 거죠. 이게 지금 이 1, 2, 3번을 통째로로
이게 실패인거죠. 공동체가 붕괴된거구요. 그리고 나서 죄에 번지는 복음.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와 하나님께서 하시고 계신 구원사역에 비추일 때 가장 잘 드러난다. 왜냐하면 여러분 술 담배가 죄입니까 아닙니까. 아 아니다. 오 굉장히 깨어 계시네요. 근데 제가 여기서 아니라고 말하면 안되고요.
죄에요. 죄에요. 제가 여기 강날대에서 신앙생들을 두고 죄가 아니라고 말하면 안되죠. 근데 죄에요. 죄인데 그게 성경이 말씀하시거든요. 가장 근본적인 죄일까요? 아니에요. 이게 조금 더 예민하게 나가면 여러 가지가 있어요. 여러분들이 생각해보죠. 성경이 말씀하신 진짜 근본적인 죄가 뭔가 고민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10분만 쉬었다가 이어서 해보겠습니다.
おやすみな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