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주의와 에피크로스의 행복론
Shared on October 9, 2026
네, 쾌락주의적 행복론 이어서 강의하겠습니다.
쾌락을 과도하게 추구하면 고통이 온다라고 하는 역설, 이걸 쾌락의 역설이라고 해요. 쾌락은 대부분의 쾌락은 고통이 온다. 그래서 쾌락을 추구하다 보면 후회감과 고통이 밀려오게 된다. 마약 중독자들도 그렇고 아까 이야기했던 극단적 쾌락주의자 라메틀이라고 하는 학자는 정말 그렇게 살았대요.
가지고 있는 돈 다 맛있는 거 사먹고 이러다가 송로버섯 파이 먹다 죽었다는데 이거는 그냥 사례고요. 아무튼 쾌락의 역설이라고 하는 게 쾌락주의가 우리가 따라야 할 행복론이 아니라고 하는 것에 대한 가장 강한 비판, 근거입니다. 쾌락은 역설에 빠진다. 추구하다 보면 고통에 처할 수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또 하나가 중간중간에 제가 말씀드렸던 건데
쾌락을 추구하다가 내가 만족감을 얻는데 이 만족감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게 쾌락주의라고 했잖아요. 이 만족감이 내가 어떤 만족을 했다 하더라도 진짜가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나의 무지나 환상으로부터 나타난 것이 있어. 그러니까 내가 만족하느냐를 물어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만족한다고 하는 거에 만족을 하느냐.
이걸 고민하면서 산다는 거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걸 이루어냈을 때의 만족이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왜? 우리 현대사회는 점점 더 외부에서 주어지는 정보의 양이 많아져서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는 길을 알려줘. 대부분의 길이 잘못된 길이지.
TV에서 핸드폰 광고가 계속 나옵니다. 얼마 전에 아이폰 광고 봤더니 굉장히 솔깃하더라고요. 얼마 전에 그런 광고가 있어서 아이폰이 갑자기 사고가 났을 때 위치 전송을 해준다 자동적으로 이게 안드로이드 폰에서는 아직 안 되나 모르겠네요 근데 이제 아이폰이 광고를 하잖아
그러면 내가 언제 사고가 날지도 모르는데 나의 안전을 위해서 사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든단 말이야 그러면 내가 돈을 막 모아가지고 막 뼛 빠지게 해가지고 아이폰을 사 부모님을 막 설득해가지고 아이폰을 사. 그러면 그 만족이 당신의 만족이냐는 거예요. 그게 진짜 당신의 만족이냐.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가 뭐가 하고 싶은데 내가 뭐가 되고 싶은데 그때 여러분들의 진정한 그 목표로서의 자아에
부합하는 만족이냐 생각을 해봐야 된다는 거지 라깡이라는 프랑스 철학자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유명한 말인데요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하고 싶 큰 거라고 주입해놓은 거 아니냐. 그래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얘기를 해요. 현대사회는 나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이다.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아이폰을 사고 싶다라는 욕망은 핸드폰 파는 회사가 주입해 준 욕망이다. 내가 원하는 욕망은 사실 타인과 사회적 기대의 주입이라는 거지 아이폰으로 예를 들었지만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이 어렸을 때부터 여러분들에게 너는 꼭 공무원이 되라 공무원이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을 수 있고
안정적으로 너의 삶을 끌어나갈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모시박히도록 얘기를 했다고 가정해보세요. 그러면 그 공무원이라고 하는 게 서서 여러분들이 공무원이 돼서 여러분들이 아 엄마 나 공무원이 됐어요. 라고 해도 그 만족이 당신의 만족이냐는 거야. 이거는 부모님과 사회적 기대의 주입인 거야. 부모님과 사회적 기대가 만들어 놓은 그 욕망에 여러분들이 맞춰준 거지 여러분들의 욕망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뭐라고 했다고요? 반성하지 않는 삶은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는 삶입니다. 그렇게 뭔가를 만족을 하면서 그게 내 만족으로 착각을 하면서 이렇게 살잖아요. 하나하나씩 살면서 이렇게 해야 될 일들이 있잖아. 시험도 봐야 되고 직장도 들어가야 되고 결혼도 해야 되고 이런 것들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건지 고민을 안 하면서 살잖아. 처음에 얘기했던 대로 현타가 오는데
이 현타가 내가 지금 뭘 하는 거냐. 이게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맞나? 이런 고민을 하게 되고 갑자기 하던 걸 정리하고 나는 자연이 나에 나올 수도 있다니까요. 나는 자연이 나에 나오는 사람들이 저는 굉장히 존경스럽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이 과정을 다 거친 거야. 이 과정을 다 거쳤기 때문에 굉장히 행복해 보이잖아요. 그분들. 그런 거 안 보시나요? 나이가 좀 들어야 하거나? 나는 자연입니다.
케이블 TV 틀면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는데. 언제 틀든 세네 군데서는 나와요. 나는 자연입니다. 아무튼 그분들이 과거에 사회적인 성공을 못했던 사회적으로 실패했던 분들이든지 아무튼 그분들은 굉장히 만족하면서 삽니다. 그분들의 그 만족은 진짜 그분의 만족인 거예요. 실제로. 여러분들이 내가 돈을 벌면 이걸 할 수 있을 텐데 그때 하고 싶은 거 그게 진짜 여러분들이 원하는 건지 고민을 하면서 살아야 돼.
충족된 욕망은 나의 욕망이 충족된 게 아니다 타인의 행복이 아닌 나의 행복을 추구하려면 나의 욕망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 이걸 생각을 해봐야 돼요 이게 금방 안 나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책을 읽으라는 거예요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해준 그런 삶에서 아 이렇게 살았더니 이런 문제가 있고
이렇게 사는 게 좋고 이런 것들을 책을 통해서 하다못해 소설을 통해서라도 타인의 삶을 타인의 삶을 대리해서 내가 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거거든요. 책을 읽다 보면 책을 건성으로 읽으시면 안되고요. 그래서 생각도 많이 해보고 고민도 많이 해보고 그렇게 살아야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예전에 그 수술 받다가 돌아가신 제가 굉장히 좋아했던 신해철이라는 가수가 철학가 출신이에요. 철학가 출신이어서 그런 가사를 쓰는 건 아닐 텐데 굉장히 철학적인 가사가 맞습니다. 철학적인 가사가 뭐냐면 하다못해 중간에 그룹을 하나 만들었었는데 많이 알려져 있는 그룹은 아닙니다. 그룹 이름이 철학자 이름이에요. 비트겐슈타인이라고.
그런 그룹도 만들었었고요. 그런 활동도 했었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 라는 노래가 있어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 그러면서 계속 얘기하는 게 있는데 그런 고민을 해야 된다는 거지 그런 고민을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뭘까를 생각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많이 대학생이라면 대학교를 졸업할 때 되면 주위를 둘러보고 내 주위에서 사람들이 하는 삶을 따라가서 살 수밖에 없어요
그게 좋은 건 아니잖아. 면피는 될 수 있어도. 제가 그랬죠? 그렇게 살다가는 나중에 현타를 세게 만든다. 현타를 세게 안 맞으려면 평소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고민을 해 봐야 되고. 책도 읽고. 책을 읽으면 제가 조금 이따 에픽으로 설명드릴 텐데 에피코러스가 그랬거든요. 쾌락을 추구하는 게 올바른 삶이 아니다. 이런 건 책으로밖에 몰라요. 사실은. 내가 진짜 엄청난 쾌락을 추구하다가 정말 좌절해본 경험을 책을 통해서 미리 얻어내는 거잖아요.
에피크로스 학파는 쾌락주의자라고 하면 에피크로스 학파가 가장 대표적으로 나오고요. 그 이후에 에피크로스는 헬레니즘 시대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원전 3세기, 기원후 1세기 이때 활동했던 헬레니즘 시대 사람이고 그리고 에피쿠르스 악파가 쾌락주의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고요.
그리고 그 이후에 근대의 홉스 혹은 공리주의자, 벤담 이런 사람들이 쾌락주의자들인데 쾌락주의자를 자신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생각하면서 철학을 했던 사람들인데 에피크로스는 쾌락주의인데 굉장히 다른 쾌락주의자들이랑 달라요. 인상적으로 에피크로스 쾌락을 추구해? 그럼 누가 싫어할까? 종교인들이 싫어하겠지. 종교인들은 쾌락을 추구하는 이 세속적인 삶에서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이잖아요.
회락을 추구하는 이 삶 말고 저 너머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종교인들이죠. 그래서 기독교에 의해서 굉장히 박해를 많이 받습니다. 여러분들 지금 에피크로스주의를 공부를 할 텐데 에피크로스주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왜 기독교인들이 중세시대에 에피크로스 악파를 비판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을 거예요. 아마. 이 쾌락주의라고 하는 이름 때문에 비판을 한 건데 얘네들 세속적이고 나쁜 놈들이야 라고 비판을 많이 했거든요
책도 막 다 부질러버리고 그런데 에피쿠르사파는 그런 욕을 먹을 철학을 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쾌락주의자임에도 왜 그런지 한번 살펴봅시다 삶의 목적은 쾌락이다 욕망의 만족이 중요하다 라고 하는 건 에피코러스가 가리킨 게 맞아요. 실제 내용은 좀 다릅니다. 에피코러스는 이게 중요한데 행복하기 위해서는 쾌락의 추구에서는 행복할 수 없어 고통을 제거하는
데서 행복을 추구해야 돼 라고 하는 겁니다 자 쾌락주의자는 뭐라고 그랬지 처음에 쾌락주의는 쾌락을 높이고 고통을 줄이는 게 행복이다 이게 쾌락주의자라고 했죠 자 그런데 우리가 쾌락의 역설을 통해서 쾌락은 추구함을 할수록 괴롭고 쾌락은 지속적이지도 않고 이런 얘기 했었잖아요. 쾌락 비판 했었잖아요. 그건 다 받아들여.
그러니까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고통으로 가는 거야. 그러니까 쾌락 추구해서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여기서만 행복을 추구하자고 하는 게 에피코르스 학파입니다. 고통을 겪지 않는 삶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게 에피코르스 학파예요. 그러니까 쾌락주의자가 맞죠. 이게 쾌락주의니까. 쾌락주의 절반을 포기했다고 해서 쾌락주의자가 아닌 건 아니죠. 고통을 제거하는 거에 가장 큰 에너지를 쏟아 넣은 사람이 에피쿠로스라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고통을 겪지 않으려고 삶을 산 사람이야. 쾌락을 추구하는 데서 행복이 없고 그러니까 쾌락을 추구하지 않은 거지 고통을 겪지 않으려고 이런저런 노력도 하고 삶을 살고 철학을 한 사람한테 너희들 쾌락주의자야 라고 하면서 비판을 한 이 중세의 종교인들이 이게 제대로 된 비판을 한 거냐 공격을 한 거냐라고 물어볼 수 있겠지 굉장히 금욕주의적인 삶을 산 사람들입니다.
에피크로스학반은. 왜? 쾌락을 추구하지 않았다니까요. 쾌락은 무조건 추구하지 않으려고 했고 한 번만 추구하다 보면 힘들어지니까 이게 끊기가 힘들잖아. 끊기가 힘들다는 게 감정곡선 0의 상태를 만들기가 힘들거든. 한 번이라도 프로포폴을 맞았던 사람은 한 번이라도 마약을 했던 사람은 한 번이라도 담배를 피고 뭔가 만족을 했던 사람은 끊기가 힘들다니까요. 그러니까 아예 쾌락은 추구하지 않는다니까요. 그래서 이 에피크로스 악파의 쾌락주의를
소극적 쾌락주의라고 부릅니다. 자 여러분들 소극적 쾌락주의는 쾌락을 추천드리고요. 자 여러분들 소극적 쾌락주의는 쾌락을 추구하는 게 아니에요. 고통을 겪지 않으려고 하는 거지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제일 중요한 건 고통의 제거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했다라고 하는 게 제일 중요하고요. 고통을 야기하는 두려움의 원인을 제거해야 된다 라고 하는 철학을 한 사람들이어서 에프그로스 학파가 했던 철학적으로 중요한 작업 중에 하나가 다른 철학도 많이 했지만 크게 두 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걸 통해서 우리가 가장 큰 고통을 느끼느냐
우리에게 가장 커다란 고통을 가져오는 걸 겪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라고 한 거지. 그래서 세 가지 얘기했는데 그 중에 두 가지만 우리는 미래가 두려워서 고통을 겪는다. 또 우리는 죽음일까 봐 두려움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라고 이야기를 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온다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여러분들 고통으로 겪지 않아도 될 수 있는 철학적인 이유를 제시를 합니다 자 내 얘기를 한번 들어봐 이러이러하니까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자 또 내 얘기 들어봐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에 근거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라고 하는 거죠 자 그래서 에피크로스 학파가 논증을 제시하는 거예요 논증의 결론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오는 고통은 진짜 고통이 아니다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게 결론이고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이유를 제시를 하고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필요가 없다 결론으로 제시를 한 다음에 이 결론에 해당하는 근거와 이유를 제시한다 그게 이제 논증이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이런 겁니다.
실제로 잘 생각을 해봐야 이게 맞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보통 우리가 미래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거예요. 특별히. 옛날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은 신화시대 사람들은 하늘에서 천둥이 내려치면 천둥이 내려치면 제우스가 화가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천둥이 내려치면 두렵지 내가 무슨 잘못을 하지 않았나
걱정이 돼서 그런데 과학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천둥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현상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천둥이 친다고 해서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라는 얘기를 할 수 있겠지.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에피크로스도 기원 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발전하고 학문이 발전하면 많은 것들을 예측을 할 수 있게 되고 이렇게 예측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우리는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진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에피크로스가 당신들이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건 다 미신에서 나오는 거다 이 미신 때문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과학이나 학문이 발전하면 할수록 미신은 미신에 불과한 것이고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진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두 번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죽은 다음이 고통스러울까봐 무지해서 생긴다라고 했어요.
근데 에피쿠로스는 철저한 유물론자입니다. 유물론자, 물질론자 유물론자, 물질론자라고 하는 거는 죽은 다음에 내가 고통을 겪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왜? 내 육체는 없어지는데. 내 육체는 죽잖아요. 그럼 의식이 그냥 끊기는 거잖아. 그러면 그 고통을 겪을 의식 자체가 없어지는데 왜 두려워하느냐는 거야. 이게 만약에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죽은 다음에 당신의 영혼이 고통받을 수 있어요. 그러면 이게 좀 얘기가 달라지지만 에픽프로스는 모든 게 물질이야. 모든 게 물질뿐이야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간의 육체가 죽으면 그걸로 끝인 거야. 근데 두려워할 게 뭐가 있느냐는 겁니다 제가 지금 설명한 것보다 조금 더 복잡하고 정교한 근거를 제시합니다 실제로는 근데 그걸 다 살펴볼 수 없기 때문에 대의만
굵직굵직한 것만 지금 말씀드린 거예요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고통을 제거할 수 있다는 거지 고통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두려움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학문을 하면 돼 공부를 하면 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공부를 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중호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면 됩니다 이거는 의식적으로 계속 반복된 사고를 통해서 가능하겠지?
그러면 나는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되고 고통이 제거된 만족스러운 삶을 쭉 살 수 있어요. 물론 육체적 혈악주의자, 적극적 혈악주의자들처럼 감정 곡선이 위로 올라간 상태에서의 쾌락은 평생 느리지 못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감정 곡선이 올라간 사람은 무조건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 고통이 나에게 오지 않는다. 마이너스 상태의 그 고통을 겪지 않는
제로 상태의 이 마음 상태를 평생 동안 유지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 그러니까 행복은 여기가 0이고 쾌락 여기가 마이너스야. 그럼 행복은 여기서 올 수 없다는 거지. 여기 올라온 사람은 바닥으로 갈 수밖에 없다니까요. 여기 올라온 사람은 바닥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어. 행복은 여기서 유지가 돼야 돼. 여기로 안 떨어지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여기로 안 떨어지도록. 그런데 올라간 사람은 반드시 떨어지기 때문에
이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겁니다. 고통을 제거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또 고통을 제거하는 두 번째 방법은 인간은 고통이 얹어온다고 제가 말씀드렸죠.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될 때 고통스럽습니다. 이게 가장 커요. 사실 보통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좌절됐어.
이게 고통이거든요.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못할 때 우리가 고통이 온다면 욕망을 과도하게 만들지 말라. 많은데. 하고 싶은 게 없으면 돼. 굉장히 획기적인 일원입니다. 여러분들 하고 싶은 게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고통을 겪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러면 하고 싶은 게 없는 삶을 살면 돼. 정말 도인 같은 삶을 살면 됩니다.
과도한 욕망을 버리면 고통이 아예 생기지 않겠죠? 제가 아까 그랬죠. 고통, 쾌락 곡선 0에서 이걸 유지하는 삶을 살자. 이게 에피크로스 악파의 소극적 쾌락주의입니다. 쾌락이나 고통에서 여기서 왔다 갔다 하면 이건 고통스러운 삶인 거고 이거를 얻으려고 올라갔던 사람은 이 아래로 내려올 수밖에 없으니까 이것도 추구하지 말고 이것도 추구하면 안 된다는 거지.
고통을 제거하는 삶을 살아야 돼. 그러면 이 삶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겠죠? 이 삶을 유지하려면 뭔가를 자꾸 하려고 하지 마. 하고 싶은 걸 없애야 돼. 욕망을 제로 상태로 만들면 됩니다. 바라는 게 없는 삶을 살면 됩니다. 그럼 어떻게든 삶을 살겠어요? 나에게 주어진 것에서 그냥 만족하는 삶을 살면 되는 거예요. 거의 도인의 삶입니다. 그러니까 이 중세시대에 에픽그로스 악파를 핍박했던 기독교인들은 반성해야 됩니다.
이게 의도적으로 쾌락이라고 하는 이름을 갖고 있다고 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이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서 다른 철학을 억압한 거예요. 이거는 종교 탄압입니다. 신약 성경에도 에피크로스라는 단어가 나와요. 바울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아테네인가에서 에피크로스 악바랑 스토아 악과 만나서 논쟁 벌이는 장면이 있어요. 보통 성경 읽은 사람들은 잘 모를 텐데
한글 번역이 에픽크로스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에피구로스인가 뭐 그런 단어를 써서 에피구로스 학부가 나오긴 나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로마시대에 세계로 전파되게 되는데, 바울부터 시작해서. 처음에는 피빡을 많이 받았죠. 기독교가. 이제 이게 세계로 전파되면서 가장 큰 장애물이 스토어 에피크로스 학파였어요. 이게 이론상 굉장히 인기가 많았거든.
당시 철학적으로. 로마 종교는 사실 종교라고 할 수 없고요. 제우스를 필두로 하는 종교를 믿고 있었던 종교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고. 문제가 이제 에피크로스 학파를 어떻게든 없애야 되고. 그러니까 너희들 쾌락을 추구해? 이거 나쁜 애들이네. 그러면서 로마 황제들이 기독교의 등을 업고서 엄청 비팍을 합니다. 그런 역사가 있었어요. 그래서 진정한 행복은 과도해서 이룰 수 없는 욕망, 불필요한 욕망을 제거하는 데서 생각합니다. 욕망을 제거해야 해요. 욕망을 제거하는 게
하고 싶은 마음을 제거하는 거예요. 하고 싶은 게 없으면 됩니다. 그래서 이 상태가 아타락시아 상태예요. 여러분들 그 에피크로스 고등학교 때 에피크로스의 아타락시아 스토아의 아파테이아 혹시 들어본 분 있으세요? 아이팩 프로의 아타락시아는 욕망이 제로 상태인 마음의 평정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평정 상태라고 번역을 하는 거예요.
욕망이 제로가 된 마음의 평정 상태예요. 내가 이룰 수 없는 것은 바라지 않고 아예 처음부터 바라지 않는 거야. 바라는 데서 고통이 오니까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의 상태가 제거된 평정상태가 바로 아타락시아 평정상태 에픽크로스 학부가 추구한 행복의 실체는 아타락시아 상태를 유지하는게 그래서 에픽크로스는 많은걸 바라지 않았어요 그냥 친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우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에펙크로스는 실제로 공동체를 만들어서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공동체 생활을 했어요.
그냥 자기들이 농사짓고 그냥 농사진 거 나눠 먹으면서 소소하게 살았어 평생을 소확행의 선두주자지 근데 소확행보다 더 하고 싶은 게 없어 그냥 그런 삶을 산 분들이에요 그러니까 쾌락주의로 묶이긴 하는데 참 묶기가 애매한 그런 분들입니다 그래서 소극적 쾌락주의자 자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이 에피크로스의 쾌락주의 소고초 쾌락주의가 현대의 경제학에서 어떻게 부활하는지 그것만 설명을 드릴게요
자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돈 많으면 행복하다고 여러분 생각하시죠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다 라고 얘기한 사람이 1926년에 태어난 리처드 이스털린이라고 보면 굉장히 유명한 경제학자예요. 이스털린의 역설은 뭐냐면 상식적 경제 논리에 위배됩니다. 당시까지는 부자 나라가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스털린의 역설 이후에 UN에서 행복지수를 발표를 하는 거예요. 사실은. 이게 많이 개입이 된 거지. 소득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 디렉터가 올라가야 되는데
어느 정도 올라가다가 그냥 가더라는 거지 떨어지거나 되게 이상해 보통 상식적으로는 계속 올라가야 될 것 같은데 돈 많으면 많을수록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행복 추수가 오히려 줄어들더라는 거지 리설린 그거를 밝혀낸 사람이에요. 상 받고 막 그러셨어요. 오히려 떨어지더라.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돈이 행복이 전부다. 전부가 아니구나. 부우와 관련해서 행복을 좌우하는 게 뭐냐. 행복을 폴 세미현슨이라고 하는 노벨 경제학상회가 받으신 분인데
굉장히 유명한 경제학자입니다. 철학자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2009년에 돌아가신 분인데 이분이 행복은 뭐냐 현대인의 행복관이에요. 이건 쾌락주의적인 행복관을 다른 말로 표현한 거지. 쾌락 행복은 욕망을 분모로 하고 소유를 문자로 하는 소유를 문자로 하는 공식을 갖는다.
행복은 소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올라간다. 욕망이 적으면 적을수록 행복도는 올라간다. 욕망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은 줄어들고 소유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행복은 줄어든다. 여기까지 동의하실 수 있겠죠? 이거는 유명한 경제학자가 한 말입니다. 우리는 보통 소유를 늘리고 욕망을 줄이는 두 가지 방식의 행복과한, 행복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소유를 늘리는 데서 행복을 찾으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죠? 그래서 당신이 소유를 늘릴 수 있다면 월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면 회사를 이직하면서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면 늘어나는 만큼 난 행복할 수 있어 이게 폴 앞에 이야기한 이스털림보다는 여러분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행복관인 거예요 그러니까 너 돈 많이 벌 수 있으면 많이 벌어 그러면 행복할 수 있어 단 욕망을
벌어들이는 소유보다 더 많이 하면 너의 행복은 줄어들 수밖에 없어. 이렇게 얘기할 거예요. 근데 보통 사람들은 돈이 많아지면 하고 싶은 게 많아집니다. 그쵸? 그래서 행복 그래프가 그래서 행복 그래프가 올라가다 꺾이는 이유가 이거야.
왜 그러냐면 돈이 많으면 하고 싶은 게 많아지거든요. 하고 싶은 걸 전부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꺾어지는 거예요. 처음에는 하나로 만족하다가 돈이 좀 많아지니까 여러 개를 갖고 싶어지는 거지 처음에는 레이로 만족하다가 돈이 많아지면 이러저러한 차들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벤츠도 보이고 막 그러는 거야 스포츠카도 보이고
차 한 대로 만족이 안 돼 또 다른 차를 사야 돼 그거 못 사게 되면은 욕망이 좌절되니까 행복은 소유가 늘어난 만큼 올라가지 않게 되는 겁니다. 소유를 늘릴 수 있다면 늘어나는 만큼 행복할 수 있는데 단 욕망이 그만큼 더 늘어나면 행복은 커지지 않아. 내가 소유가 늘어난 만큼 욕망도 그 만큼만 딱 늘릴 거야 그러면 행복도는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욕망을 줄이거나 고정할 수 있는 한에서
욕망을 내가 현 상태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한에서 소유가 많아지면 행복합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소유를 늘릴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소유를 통해서 행복을 늘릴 수는 없어요 이 방법은 안 돼 그럼 이쪽에서 행복을 늘려야 돼 욕망을 줄이면 행복은 늘어날 수 있습니다 내 소유가 많아지지 않아도 하고 싶은 걸 줄이면 나는 행복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게 에피크로스 얘기죠 에피크로스 얘기를 그대로 하는 겁니다 이 세미엘슨 박사님이 그 노벨상 받으신 분이 아 에피쿠로스가 옛날 소극적 회력주의에서 이런 얘기 했어요 라고 얘기하지 않았어요 물론 이제 공부 많이 하신 분이니까 에피쿠로스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알겠지만 자기 얘기를 하고 이걸로 이제 노벨상 받으신 거예요 욕망을 줄이는 한에서 소유가 고정되어도 행복하다는 거예요
자 바로 이 폴리세멜센스의 이론을 통해서 왜 가난한 나라가 더 행복하냐가 해명된 겁니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인데도 하고 싶은 게 많지 않아 그냥 소소하게 행복을 누리면서 사는 사람이야 그러면 행복도가 굉장히 높을 수가 있어요 왜 부탄이 문호를 개봉하고 외국 문화가 들어오면서 불행을 느끼기 시작했느냐도 해명할 수 있어. 왜? 하고 싶은 게 많아지거든.
소유는 그대로인데. 그러니까 행복도는 줄어드는 거죠. 여기까지 공부하고요. 탈세속주의란 객관주의 행복론은 다음 주에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