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울음: 아킬레우스, 알렉산더, 카이사르
Shared on May 13, 2026
왜 영웅은,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왜 영웅은 울까? 라는 질문이 들었는데요. 우리는 보통 영웅을 떠올릴 때 강인함, 이성, 그리고 통제력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로 등장하는데요. 대표적으로 아킬레우스는 전장에서 가장 강한 전사이면서도 가장 많이 우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예를 들어 아가멘과의 갈등 이후 명예를 빼앗긴 뒤 바다에 가서 어머니 테티스에게 울면서 호소를 합니다. 이거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존재가 부정당했다라는 감정에서 나오는 눈물입니다. 또한 친구의 죽음을 듣고 땅에 쓰러져 울부짖고 머리카락을 뜯습니다. 이 장면은 거의 감정의 폭발 수준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장면은 중요한 장면이어서 뒤에서 영상과 함께 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다른 의문이 들었는데요. 울음은 약함의 증거일까 아니면 인간다움의 증거일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 속 알렉산더를 감정의 인간인 호모아티쿠스라는 개념과 연관지어서 분석해보았습니다. 먼저 이론적 배경을 말씀드리자면 일리아즈에서 아킬레오스는 단순한 영웅이 아닙니다. 그는 감정의 흐름 속에서 움직이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감정의 구조가 세 단계로 정리가 되는데요.
분노, 슬픔, 그리고 연민으로 알 수 있습니다. 처음 그는 자신의 명예가 훼손이 되자 극단적인 분노에 빠집니다. 하지만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이후 그 분노가 슬픔으로 바뀌고 결국에는 적인 프리아머스 왕에게까지 연민을 느끼는 감정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단계로 이동한다 라고 분석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포모파테쿠스입니다. 이게 인간적 감정적 인간이라는 뜻인데요.
이는 단순히 감정적인 인간이 아니라 감정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인간을 의미합니다. 즉 고대 그리스에서 이상적인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깊이 느끼고 그것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는 존재였습니다. 이제 영화 속 알렉산더를 보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그를 세계정복자로 기억을 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그는 매우 불안정하고 극단적인 감정에 진폭을 가진 인물로 묘사가 됩니다.
특히 그는 명예와 인정에 집착을 하며 이 점에서 이미 아킬레우스와 유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좀 결정적으로 닮았다고 생각한 장면이 있었는데요. 그의 가장 가까운 존재인 헤파이스티온의 죽음 때 저는 가장 유사하다고 발견을 하였습니다. 영상을 같이 한번 보겠습니다.
I'm gonna mix it with the wine. How can this be?
- Yes, we'll do it, but no mine or country. Come on, come on.
who has ever been honest with me.
- I'm not going to leave.
and we will die together.
- Yeah, there was a frequency.
and sail up the Gulf to Egypt. From there we build a channel through the desert and out to the Middle Sea. And that great island Sicily, they'll pay large tribute. After that, the Roman tribe, good fighters, will beat them. And then explore the northern forests and out the pillars of Hercules to the western ocean. And then one day, not ten years from now, Babylon, it's deep water harbor.
In the center of the world, the centuries will grow. Populations will mix and travel freely. Asia and Europe will come together. And we'll grow old, a feisty. Looking at our balcony, at this new world.
우리가 아직 하나의 세계도 정복하지 못했는데 세상에 얼마나 무한한 세계가 있다니 이 얼마나 눈물 날 일인가 라고 말하면서 울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저희가 주목할 점은 알렉산더는 단순히 슬퍼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슬픔을 넘어서 완전히 붕괴가 됩니다. 그는 며칠 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이후 현실적인 판단을 거의 하지 못한 채 감정에 휘둘리게 됩니다. 저는 그래서 이후의 행동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는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강박적으로 정복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그는 감정을 성찰하고 변화를 시키는 순서가 아니라 감정에 집착하고 다시 잘못을 반복하는 구조를 보였습니다. 이제 아킬레우스와 알렉산더를 비교해보겠습니다. 공통점부터 보자면 감정이 행동을 결정하고 상실 이후 무너지고 눈물을 흘립니다. 이 점으로 보아 둘 다 호모 파티테쿠스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이점이 결정적인데요. 아케레우스는 슬픔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복수를 멈추고 인간적인 관계로 돌아옵니다. 반면 알렉산더는 끝까지 감정에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의 슬픔은 연민으로 확장되는 게 아니라 자기 집착으로 수련됩니다. 따라서 저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알렉산더는 아킬레우스의 후계자라고 볼 수도 없고 그는 오히려 완성되지 못한 아킬레우스라는 점을 이해했습니다. 그는 감정을 가진 영웅이었지만 그 감정을 통해 타인에게는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처음 질문으로 제가 왜 영웅은 울까? 라는 질문을 드렸잖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을 했을 때 고대 그리스 관점에서 울음은 약함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인간다움의 증거를 표현하고자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눈물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은 완성된 인간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도 못한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 되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세계를 정복했지만 자신의 감정은 끝까지 정복하지 못한 영웅이었습니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로마 시즌2 속에서 불멸의 명상과 유한한 환자의 카이사르라는 구제로 발표를 하게 된 전정호 안석현이라고 합니다. 오늘 발표의 목차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첫 번째로 철학적 배경, 두 번째로 로마 시즌2 및 카이사르 인물 분석, 마지막으로 통합 논의 및 개인적 결론순으로 발표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철학적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년 전 8세기 고대 그리스에는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두 가지 커다란 영웅적 소사가 존재했습니다. 왼쪽에 보이시는 아퓰리우스적 배경은 죽음 뒤에 남겨질 불멸의 명예를 주는 삶입니다. 반대로 오른쪽에 있는 오디세우적 배경은 고향으로 돌아가 부족과 함께 보내는 유한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추구합니다. 저는 오늘 이 불멸의 명성과 유한한 삶이라는 두 키워드를 중심으로 카이사르라는 인물을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아퓰리우스적 배경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기원하는데요.
그림공원 아킬레우스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짧지만 영광스러운 삶과 길지만 평범한 삶이었죠. 여기서 아킬레우스는 주저없이 전자를 선택하게 됩니다. 결국 아킬레우스적 배경이란 육체적인 생명은 유한할지라도 역사 속의 이름을 남겨 불멸의 명예를 추구하는 존재론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오디세우스적 배경입니다.
코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계속 기원한 개념인데요. 아킬레우스와는 정반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오디세우스는 영원히 살 수 있는 불멸의 삶을 제안받지만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게 됩니다. 대신 인간으로서의 유한한 삶과 가족이 기다리는 일상으로 기원을 선택하게 됩니다. 결국 화려한 명예보다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지속 가능한 삶 속에서 진짜 의미를 찾은 셈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로마치 생기기 그리고 카이살에 대해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로마 시즌2는 각 시즌마다 로마의 주요 통치자 1명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시즌2는 그 중에서도 카이사르 일대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이 프로그램은 역사 전문가들의 해설과 배우들의 연기를 교차 편집되어 있는 다큐드라마의 형태입니다. 이제 카이사르에 대한 분석을 앞서서 카이사르의 이름에 대해서 한번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카이사르보다는 시저라는 이름에 익숙하신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루니스의 경우에도 그런 사연인데요. 룰리어스 카이사르와 줄리어스 시저는 완전하게 동일인물을 칭하는 것입니다. 카이사르는 고대 로마의 공용어인 라틴어식 발음으로 로마시대 당시에 실제 이름에 가장 가까운 표현이며 역사적 전문성을 강조하는 학술적 문맥에서 주로 사용됩니다. 반면에 줄리어스 시저는 라틴어 이름으로 영어식으로 읽는 발음입니다. 시저는 서부 대중문화나 영미권 문학, 셰이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통해서 널리 퍼진 형태입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아시는 이 그림의 탓에 나와있는 후성탈출 속 주인공인 시저도 카이사르로부터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다음은 카이사르의 시대적 배경입니다. 시대적 배경은 기원전 1세기로 기원전 8세기의 이론이었던 아킬레우스적 배경과 오디세우스적 배경이 이 시기까지도 유효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 카이사르의 일대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경력을 시작했는데요. 가장 유명했던 이라는
31살 때 가데스에서 알렉산더 대왕의 석상을 보면서 눈물을 휘겼던 일화입니다. 이유를 모르니 알렉산더는 내 나이에 이미 세상을 정복했는데 자기는 이런 게 없다면 한성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가 앞서 말씀드린 아킬레우스적 열망, 즉 불멸의 명성을 얼마나 갈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카이사르의 강력한 기반이 된 갈리아 정복입니다. 약 8년 동안 이어진 이 전쟁에서 그는 원로원의 허가도 없이 북한적으로 정복을 감행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막대한 부와 함께 자신에게 절제적으로 충성하는 베테랑 군단을 확보하게 됩니다. 월로원의 견제 속에서도 결국 불멸의 명성을 향한 발판을 확실하게 가진 셈입니다. 다음으로는 문다 전투입니다. 문다 전투는 기원전 45년에 벌어졌으며 월로원파 군대와 벌인 마지막 대규모 내전이었습니다. 여기서 카이사르는 완성을 거두면서 사실상 로마의 유일한 권력자로 서게 되는데요.
이제 카이사르 앞에는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최고의 명예와 관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뒤에도 말하겠지만 역살종이기도 정점의 순간이 그의 비극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내전에서 승리하고 로마의 정점을 샀지만 그 뒤에는 보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카이사르가 맞서 싸운 적군 역시 결국 로마의 시민이자 동료였다는 사실이 그를 도덕적 중압감으로 짓눌렀기 때문입니다. 그가 얻은 불멸의 명성은 역설적으로 그를 철저한 사회적 고립으로 몰아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인 오디세우스적 가치를 상실해버린 셈입니다. 최고의 영광을 누리면서도 동시에 비정한 고독을 느껴야 했던 영웅의 양면성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결국에 기원전 44년에 파이사르는 원로원에서 암살을 당하면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그가 특토록 원했던 불멸의 명성을 완성하는 계기가 되어집니다. 그의 이름은 제국을 상징하는 고비 명성을 되었고 그가 닦아놓은 길은 롬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우체는 비록 사라졌지만 그가 추구했던 영웅적 가치는 역사 속에 영원히 박제된 셈입니다. 이 장면에 대해서 영상들을 잠시 시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Gunshot*
Inside Rome, there's a real fear at this beginning of the Senate that what Caesar was going to do is make himself king of Rome. The idea that there would be a king of Rome was anathema to Roman political psychology. Inside the Senate, this is really the moment when they say, we have to get rid of Caesar.
- Hmm.
In Rome, Caesar had no formal bodyguard, so he would be virtually untouchable once he was a general in the field. To guarantee there were no intruders, the Senate hired guards to stand watch at the site of the attack.
reason why Bruce has decided to conspire against Caesar was political. He could never tolerate a situation where the Republic had been defeated by an individual man who had taken power for himself in perpetuity.
기술의 기술의
사이사르 내면적 동기를 추적하면서 시청자가 영웅의 도내에 감정적으로 이익할 수 있도록 보았습니다. 그들의 해설은 이 이야기가 단순한 신화가 아님을 강조하고 오히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겪었던 치열한 실존적 기록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결과적으로 영웅 동안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의 인간이었음을 깊이 있게 발견하게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처음 제목에서도 언급했듯이 사이사르는 불멸의 명성을 추구하는 박필레아스적 배경 그리고 유한한 일상을 추구하는 오디세우스적 배경 어느 한쪽에 치우시지 않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표면적으로 불멸의 명성을 추구하지만 문다 전투에서 그가 느낀 공포감과 로마를 개조해서 그 안에서 안정적인 성시자들한테 원했던 모습을 보면 오디세우스적 배경도 지니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타이사르는 평생에 걸쳐서 초월적인 명성을 추구했으나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론적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마음 한편으로는 평범한 일상으로서의 기한을 훑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스스로 쌓아올린 거대한 명성과 권력은 역설적으로 그를 평범한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카이사르의 비극은 명예와 일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우리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께 두 가지의 무릉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로는 카이사르는 아킬레오스의 길을 걸었는가 아니면 오디세오스의 길을 갈망했는가. 두 번째로는 불멸의 명예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유한의 일생을 위해서 사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저의 견해 말씀드리고 발표를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은 영원할 수 없기에 그 유한함을 인식하고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인간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읽는 것도 죽는 것도 인간이라는 덧없는 생명체의 아름다움이다. 읽기 때문에 죽기 때문에 송구한 것이다. 이와 같이 유한의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대사를 통해서 현대 대중문학 속에서도 부디세우스적 가치, 즉 유한하기 때문에 송구하다는 소각이 전함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발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Yes, we can do that.
앞부분에 몇 페이지는 제가 설명 안 드린 게 있는데 필요한 게 많아서 일단 31페이지부터 보겠습니다.
바쿠스라고 하는 인물이 인간의 삶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하는데 굉장히 인간 삶이라고 하는 것은 더럽다 라고 하는 이런 식의 관점에서 조망을 하고 있습니다. 불교적 용어로 이야기한다면 재행사 뭐 이렇게 붙일 수도 있겠죠. 그럼 이런 헛되고 성경에 보면 전도서에 보면 솔로몬 왕이 헛되고 헛때도 다 이런 말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 생각에 솔로몬이 보았던 인생에 대한
그런 어떤 생각들 그게 지금 육권에서 글라푸스라고 하는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다음에 그러면 이런 헛된 삶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인간이 살 가치가 없느냐 그건 아니고 영원한 것은 불멸의 영광 그 다음에 기억이다. 저번에 말씀을 드렸죠. 이 두 가지가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획득하고 치료하려고 하는 게 삶의 의미다.
그 위에 그 일레아스 원문에 나와 있는 번역문에 나와 있는 건데 여러분들은 이해를 좀 돕기 위해서 제가 밑에 있는 걸로 그렇게 한번 해봤습니다. 인간 세대는 나뭇잎의 생장과 낙엽과도 같다. 바람이 일부 잎을 땅에 내려 앉히면 숲은 다시 새로운 일상이를 키우고 봄이 찾아온다. 이와 같이 한 세대가 생겨나고 또 다른 세대가 정부를 한다. 라고 하는 것을 좀...
뭐라고 할까요? 담당하게 그냥 이렇게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자 32페이지. 디오베데스하고 글라코스라고 하는 사람이 우정을 나누고 있는데 두 사람이 되게 재미있는 그런 장면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싸우려고 하다가 보니까 자기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게 돼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사실은
아버지 때부터 친구였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굳이 이렇게 싸워야 되겠냐 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거죠. 제일 밑에 빨간색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전차에서 뛰어내려 서로 손을 만잡고 신의를 지킬 것을 다 들였다.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지금 트로이군 그리스군으로 만났어요. 만났는데 우리 시골 가면 고향 어디 있냐. 아버지가 누구지 물어본 거야. 물어본 건데 우리 할아버지가 누구다. 우리 할아버지가 누구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가 적분이지만 좋아했던 사람에게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라는 거예요. 자, 그러나 크로루스의 아들 제우스는 글라우쿠스에게서 지각을 배워서 그랬다. 이것도 재미있는 표현인데, 이 다음에 뭐가 나오느냐 하니까 우리가 보통 친구 사이를 이렇게 하려고 하는 그리스 사람들은 이런 게 있어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줘요
그리고 이제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이렇게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때 줄 때 내가 안 쓰던 거 못 쓰던 거 당근 마켓에서 하는 그거 하는 게 아니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제일 좋은 걸 주는 거예요. 여러분 친구한테 줄 때요. 이렇게 좀 뭐라고 할까. 내가 이렇게 안 좋아하는 거 내가 쓰다가 좀 안 쓰려고 그러지 마세요.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안 사는 거. 내가 집안 어디에서 샀는데 내가 집안에다 아끼도 없는데 내가 안 쓰고 줄게. 이런 게 선물이 가야 됩니다.
그래서 이제 지각을 빼앗아 버렸다 고 하는 것은 무슨 말이냐 하니까 돈으로 계산하면 못 바꾸는 거예요 이게 너무 값 차이가 많이 나니까 근데 그 돈 계산을 안 하고도 바꾼다고 하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이런 표현을 했어요. 티레우스의 아들 디오베레스와 무장 무장이라고 하는 갑옷인데요. 이 갑옷이 그냥 간단하게 그냥 갑옷 그건 뭐냐 쇠로 만든 거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되고 굉장히 가격이 만드는 재료에 따라서 가격 차이가 엄청납니다.
미시적인 것에 관심이 많아가지고 제가 다음 페이지에 그걸 한번 구체적으로 가게로 뽑아가세요. 자 디오메데스와 무장을 맞바꾸긴 했는데 황금을 청동과 바꾸었으니. 자 금으로 만든 갑옷이 있어요. 그거 하고 그 다음에 청동으로 만든 갑옷이 있어요. 그걸 바꾼 거예요. 근데 상식적 - 특이라면요.
적으로 만든 갑옷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약간 칠물을 너무 좋아하게 되면 정신이 나가는 거야. 나간 상태라서 이렇게 바꿀 수 있는 것이지 정상적인 상태에서 계산을 하게 되면 바꿀 수가 없는 거라는 것이죠. 그래서 여기 지금 원본에는 황소 100마리를 고작 황소 9마리와 바꿨다. 그러니까 청동으로 만든 갑옷도 황소 9마리 정도의 가치가 있는 거에요. 이것도 굉장히 비싼 겁니다. 지금 황소 1마리 뭐 1000만원에서 1000만원 정도 하거든요. 그러면은 좀 생각해보세요. 그럼 이건 과거 나오겠죠.
이렇게 하면 2억 되겠습니까? 100마리는 10배, 11마리 많죠. 그래서 비오베레스가 가지고 있는 갑옷은 천둥으로 만들어져 있고요. 소 1마리 그라우쿠스가 가지고 있는 황금 갑옷은 소 100마리인데 그 다음에 아킬레우스가 가지고 있는 갑옷이 있습니다. 그건 이제 해파이 소스 대장장이시니 만든 것인데 그거는 이제 가격으로 매길 수 없는 정도의 갑옷이 있는 걸로 해서 척적불가능해서 빼버리고 일단 이
이 글라코스하고 디오베레스 각오스를 보게 되면은 제가 그래서 이거 속 준비하면서 미국 시세로 황소 100마리 미국 시세로 해가지고요 가격이 18만 달러 이렇게 나와요. 나오니까 윗보드를 하게 되면은 2억 4천에서 한 2억 5천 정도. 이거는 보통 이제 거래되는 가격에 따라서 좀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그 미국도 제가 뭐 페라리를 안타가서 잘 모르겠는데
페라리 중에서 좋은게 한 3억에서 7억까지 하는게 있어요. 그러니까 이 갑옷 하나가 황금으로 만든 갑옷 하나가 페라리 정도의 가치가 있는 그런 갑옷이였나봐요. 근데 그 페라리를 그냥 준거에요. 친구한테. 그러니까 이 지금 이 그리스 사회 로마 사회 이런 데 저는요. 아까 그 발표자가 알렉산더 친구 페파시티오 이야기 했지만은 이 아킬레오스도 또 누굽니까? 파트로플루스 같은 경우는 우리가 보통 이거 이제 그 연구하시는 분들이 동성애자다. 이래 가지고 그러는데 동성애도 있는데 뭐가 있냐 하니까
전쟁터에서 주범을 같이 할 수 있는 존재. 창이 날아오면요. 내가 그 창을 맞아줄 수 있는 그 정도의 우정입니다. 이게 단과의 그냥 뭐라고 할까요. 동성애 이렇게 볼 수 없는. 동성애도 없는 건 아닙니다만 그런 것들이 굉장히 다청적으로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전통이 쭉 내려오다가 언제까지 내려올냐 하니까 스웨크 스피어 작품 중에서 베니스의 사례에 나오는 그 친구들. 두 사람 있지 않습니까. 안토니하고 그 두 사람의 친구가 고정을 써달라고 하니까 고정을 써주면서 사일로리 뭐라고 합니까. 동공감방 어떻게 할래야 할까. 내 가슴살 이렇게 하면 죽게 되는 거야.
그런게 갑자기 나온게 아니라 지금 그리스 시대부터 친구라고 하는 개념이 이 뭐라고 할까요 삼국지에 나오는 유기파루 장비 그런거에요. 대신 죽어줄게 친구가 죽을려고 하면 내가 죽어줄게 요즘은 친구사회 그런게 어디있습니까. 요즘은 사라진 가치죠. 우정이라 했을 때 친구라 지금 현재 우리가 말하고는 다르다. 저는 아킬레오
일리아스가 그야말로 역기적인 연체 살인마들이 사람 중에서 표현이 굉장히 많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그러면 이렇게 어떻게 보면 살인 이야기로 가득한 이런 책이 어떻게 세계에 고전 반열에서 제 첫 번째 올 수 있을까를 굉장히 궁금했는데 쭉 분석을 해보니까 그 가운데 마다 굉장히 인간리가 있는 게 있어요.
배치가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이제 포레로서는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니까 우리는 보통 평화롭게 살자. 친구 사이는 배신하지 않는다. 부부 사이는 분류를 저지르지 않는다. 뭐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요. 많이 하면서 실제로는 그거하고 배치되는 삶을 사는데 여기는 인간 삶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죽고 죽이는 그런 어떤 동물의 세계, 야수의 세계와 마찬가지라고 하는 거 주면서 그 가운데 가운데 숨겨놓은 어떤 - 아, 네.
보습같이 그런 것들이 우정이다, 사랑이다, 부부애다 이런 것들이 쭉 배치되어 있는 거예요. 그게 제가 볼 때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자 그 다음에 또 하나의 장면이 뭐냐 하니까 아가멤논도 바람피우고 아킬레우스도 바람피우고 하는데 유독 트로이 왕자, 트로이의 총사령관, 헥토르 같은 경우는 너무 부부애가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완벽한 부부상에 가까운 존재가 바로 텍토르하고 안드로마키입니다.
你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게 되니까 굉장히 부인 안드로마키가 두려워합니다. 두려워하고 그 다음에 헥토르 자기 자신도 책임감에 의해서 국가를 위해서 헌신해야겠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전쟁터가 나가지마는 자기에게도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두려워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쭉 깔려 있습니다. 제가 밀어볼게요.
알 수 없는 분 당신의 걱정이 철로로는 이 어린 것과 지금 이제 한 살짜리 피덩이 갓난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기가 나중에 이제 성벽에서 떨어져 죽게 돼요. 그런 것들이 있는데 누가 안 했느냐 누가 들습니까 우리 세우스는 거죠. 자 당신을 잃어 곧 과부가 될 이 바꼬카 내가
그러니까 남편을 보고 남편이 전쟁터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그런 자기 운명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거죠. 당신은 가엾지도 않은 거예요. 이제 곧 모든 아카엘 그리스인들을 표현하는 어떤 부족들과 연관되어 있는 표현들이 몇 개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아카엘인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이 달려들어 당신의 목숨을 빼앗겠지요. 당신을 잃기라도 하면 나도 차라리 땅 속으로 내려가는 편이 나을 거예요. 사람이 아닌
당신이 운명을 마주한다면 내게는 그 어떤 따스함도 없이 그저 고통만 남아야 되니까요. 이런 식의 대사가 나오는데 굉장히 그 뭐 좀 뭐라고 할까요?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남편을 두고 지금 부인이 안타까워하는 그런 장면들이 쭉 깔려 있습니다. 35페이지. 헥토르는 이제 가족과 도시를 지켜야 된다고 하는 그래서 노블레스 오블리즈 마음이 굉장히 강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아텔레우스는 굉장히 개인적으로
파고란 전사이지만 너무 개인적인 거죠. 그래서 자기 명예가 실수되면 아가 면론하고도 싸우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헥토르 같은 경우는 동생 파리스가 어떻게 보면 그리스의 왕비 헬레네와 불륜관계로 이제 해가지고 트로이로 오게 되는데 그러면 결국 전쟁을 하게 되고 전쟁을 하게 되면 많은 사람이 죽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매도 불구하고 자기 동생을 좀 감사합니다.
도덕적으로 미덕주의적 관점에서 봤을 때는 헥토르가 가장 일리아스 중에서는 뭡니까? 가장 완벽한 인간이다. 볼 수 있겠죠. 그러니까 아킬레우스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존재가 누굽니까? 헥토르가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헥토르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리고 일리아스의 마지막은 아킬레우스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헥토르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헥토르가 죽고, 헥토르가 장사 지내는 걸로 끝나고 아킬레우스는 아킬레우스도 조만간 죽을 것이다. 라고 하는 암시만이 있겠거든요. 그래서 헥토르도
아킬레오스 홀로 주인공이 아니라 헤트로도 같이 주인공이다. 이렇게 보셔야 됩니다. 그 다음에 제 밑에 한번 볼까요? 트로이아인들이 앞으로 겪게 될 고통도 헤카벳 왕비죠. 어머니죠. 헤카벳께서 겪을 고등학교 그러니까 자기가 죽는다고 하면 트로이가 멸망할 것이고 트로이가 멸망하게 되면 아버지 어머니 모든 왕족들 비족들도 다 어떻게 할까요? 다 포로가 되든지 그렇게 하겠죠. 그러한 것을 지금 내다보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죠. 프리아모스 왕의 고통도 또 저기에 찬 사려들에게 당해 흙먼지 속으로 꼬꾸라질 저 수많은 고귀한 형제들의 고통도. 청동 옷 입은 아카야인들 그리스인들 중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는 당신을 끌고 가며 자유의 날을 뺏어갈 때 당신이 겪을 그 고통은 고통이 굉장히 많은 겁니다. 그래서 인생을 어떻게 보면은 저는 좀 냉정하게 보면은 어떤 쾌락이라든지 기뻄 행복보다는 고통이 더 많습니다. 많은데.
고통이 많은 것에 눌려서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면 살기가 힘들어지겠죠. 그러니까 고통 속에서도 계속해서 자기가 그 의미를 찾아가야 됩니다. 36페이지. 이것도 저는 되게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제가 읽어볼게요. 알 수 없군요. 여보 나를 두고 그렇게 너무 깊이 상심하지 맙시다. 내게 정해진 운명을 거슬러 나를 하대사. 지하세계종, 죽음의 세계종 보낼 수 있는 산에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은 내 말에 두지만 인간들 중 그 어떤 자도 피하지 못했어요. 비열한 자도 고귀한 자도 그가 일단 태어난 이상은 운명을 거슬릴 수 없다. 그래서 제우스도 신들 중에 신이라고 하는 제우스도 운명을 거슬릴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인간이면 누구나 그렇겠죠. 그래서 헥톨과 자기에게 주어져 있는 운명 또 자유도 죽을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것을 지금 추구의 불가피성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이런 것들은 그냥 지나가겠습니다. 지금 중요한 구조들이 너무 많아서요. 아 그리고 이제 아바벤논이 자꾸 트로이 군에게 밀리게 되니까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으로서 안되겠다. 내가 아킬레우스하고 화해해야 되겠다. 이래 시도를 하지만 아킬레우스는 한번 삐지면 그냥 또 화해 안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삐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중에 자기의 친구, 알렉산더의 친구인 헤파이스톤과 마찬가지로 아킬레오스 또 자기의 절체들이라고 할 수 있는
파트라플루스가 대신해서 자기를 대신해서 죽는 파트라플루스가 죽는 사건을 계기로 해서 나오는 것이지 아가멤논이 죄송하다 내가 잘못했다 이렇게 사과한다고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습니다. 자 다음에 39페이지 여러 사람을 보내서 화해를 시도하지만 아킬레오스는 화해를 극우합니다. 자 사진 되죠. 자 이거는 아킬레오스 아까 발표자들이 이야기했던 문 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한번 읽어볼게요. 두 갈래로 나뉜 운명이 나를 죽음 그 끝으로 데려갈 것인데 만약 내가 여기나마 프로야의 도시를 애호사고 싸우게 되면 나의 귀향 노스도스입니다. 그래서 그 향수병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노스텔지아 같은거. 이게 그게 지금 귀향에서 나오고 귀향을 하지 못해서 생기는 병. 향수병. 귀향은 사라지는 대신에 불별의 명성.
남을 것이고 자 고향 불멸의 명성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고향으로 못 가는 거예요. 고향으로 못 가는 거예요. 그 다음에 내가 고향 땅으로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살아서 돌아가게 되면 나의 고귀한 명성은 사라 지던 대신에 내게 긴 여생이 남아 죽어 그 끝도 내게 얼른 찾아오 지는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두 가지 길이 삶에는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는 명성을 얻는 것. 명성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될까요? 죽어야 되는 것이죠.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고향으로 못 가는 것이죠. 그 다음에 고향으로 가서 여생을 마치기 위해서는 죽 잘라야 되겠죠. 생존해야 되겠죠. 그러면 생존하게 되면 불변의 명성은 어떻습니까? 얻지 못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 두 가지가 그리스인들이 생각했던 어떤 삶에 있어서 두 가지의 어떤 길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데 앞에 불변의 명성을 획득하고 죽는 그 길은 아킬레우스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
단에 불멸의 명성보다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과 함께 마지막 여성을 고정했다. 이런 오디세우스가 보이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 일리야스에서는 이 가치가 똑같지가 않고 불멸의 명성을 주복으로서 불멸의 명성을 획득하려고 하는 것이 매우 강해요. 강하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압도해버린다. 이런 모습입니다. 자 그다음에 이것도 재미있는데요. 이 죽음을 아킬레우스가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친구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다. 그러니까 보통 이게 잘못해서 해야 되면은 죽음 자체를 그냥 좋아가지고 그냥 삶의 의미보다 죽음 자체를 좋아가지고 죽는다. 이렇게 볼 수 있는데 그게 아니고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 우정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 결과로서 죽게 되는 것이지 죽음 그 자체를 참배하게 된 죽는 건 아니다. 아, 이게 배지인?
여기서 제가 이제 이 아우더바 아프리카라고 하는 영화가 있는데요. 그 영화에서 이 메릴 스트립이죠. 메릴 스트립이 이렇게 낭독하는 그 시가 있는데 에이 하우자만이 선 시 중에서 젊은 나이에 죽어가는 운동선수에게 라고 하는 시가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지금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제가 이제 시를 적어놓은 것인데 에 짧은 삶 그 다음에 불변의 명성 지금 우리 계속해서 나오는 아킬레우스가 추구한 믿음 그 믿음과 연관되는 시가 있는 그 장면을 제가 좀 보여드릴게요.
you won your town the race. We chaired you through the marketplace. Man and boy stood cheering by as home we brought you shoulder high. Smart lad to slip the times away from fields where glory does not remain. Early though the laurel rose, it willeth quicker than a rose. Now you will not swell the rout of lads that wore their honors out, runners whom renown outran.
And the name died for the man. And round that early laurelled head will flock to gaze the strength of the stead and find, unwithered on its curls, a garland.
- Free for the little girls.
'이리아스의 장면을 우리가 배우지 않았다고 한다면, 이 장면이 그냥 '뭐야 이거 별 재미도 없네' 볼 수 있는 장면인데, 일리아스의 이걸 우리가 기억한다면 이게 일리아스에 나오는
이야기하고 연결되셨구나. 그런 것들을 여러분들 좀 생각해보면은 도움이 될 겁니다. 자 그 다음에 이 아킬레우스의 죽음이라든지 트로이 목마 작전 이런 것들은 일리아스에 등장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좀 재밌는게 이거는 그리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은 좀 넣어주면 좋겠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그거는 다 알고 있다 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다른 어떤 장면들을 배치하는 것 같아요. 근데 이게 재밌는게
로마에 넘어가게 되면은 아이레이아스라든지 이런 작품들에서는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게 되는 거예요. 로마 사람들은 그래서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했어 결과가 어떻게 됐어 이런 것들을 좀 더 중요시했기 때문에 아킬레오스가 죽는 장면 또 트로이 목마 작정을 통해서 이기게 되는 장면 그런 것들에 대한 지적인 욕구가 더 많아가지고 로마 이야기에는 이런 것들이 아주 상세하게 들어가 있다. 볼 수 있겠죠. 그런데
그리스 이야기에서는 선택과 집중, 압축을 하다 보니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 상식적인 것들을 과감히 빼는 그런 어떤 기법, 수사기법을 쓰고 있습니다. 자, 그 다음에 오디세우스가 이런 정보 분야에 텅크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0분에는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오고요. 그 다음에 이제 트롤이가 개설에서 아킬레우스가 이렇게 전투를 참여하지 않으면은
트로이가 성리할 수 있는 기반이 발휘된 것이죠. 그리고 이런 것들을 이미 아킬레오스의 어머니인 테키스 여신이 누구한테 제우스한테 부탁을 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트로이군이 좀 이제 우위를 전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트로이군이 그리스군 방어선을 돌파하자 니키아 왕 사르페도는 사촌 글라코스에게 같이 싸우자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제가 그리스인들 생각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좀 나와 있거든요. 파란색
하지만 어디 그런가? 죽게 마련인 어떤 인간도 피하거나 도망칠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죽음의 여신들이 지금 우리 머리 위에 있을 뿐. 그러니까 인간을 이렇게 표현할 때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이렇게 이야기하고 신을 이야기할 때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인간을 이야기할 때 죽음이라고 하는 말을 죽음의 불가피성 안에 있는 존재라고 하는 것을 굉장히 많이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자꾸나 우리가 저들에게 명성을 주던 아니면 누군가가 우리에게 명성
싸우게 되면은 누군가는 이기지 않겠습니까? 이기면은 불변의 명성을 획득하는 것이고 지면은 불변의 명성을 상취를 하는 것이고 그 둘 중에 하나 아니겠는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전투에 참여하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45페이지 보면 이것도 이제 되게 재밌는 장면인데 헤라가 이제 책을 하나 내게 되는데 자매의 여신을 불러가지고 이 제우스가 잠깐
돌게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잠자기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그 제우스가 컨트롤 할 수 없는 그 상황에 테라하고 호세이돈이 어떻게 보면 그리스도를 좀 더 유리하게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게끔 그런 또 아니면 또 계속해서 밀리고 있는데 반격을 성격적으로 할 수 있게끔 그런 걸 이제 만들고 있습니다.
47페이지. 제우스가 잠깐 자고 이러다 보니까 전쟁이 좀 이상이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잠에서 깨어난 제우스가 헤라를 칠착합니다. 아니 뭐냐. 내가 자고 있을 때 내가 지금 이 인간들의 전쟁을 내가 지금 다 컨트롤하고 있는데 왜 부인이 이렇게 낯어가는지 이렇게 해서 칠착하고 다시 여러 신들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도 재미있어요. 황소 눈망. 제가 저번에 만들었죠. 헤라를 가리킬 때 표현이 흰파를 가진 헤라.
그 다음에 큰 눈망울을 가진 헤라 이 두 개의 표현을 많이 씁니다. 지금 황소 눈망울의 여주인 헤라 이렇게 지금 남편이 부인 헤라에게 지금 이런 식으로 자기 부인을 부르고 있습니다. 물론 뒤에는 이제 좀 야간치는 그런 이야기죠. 48대지에요. 제우스가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 하니까 전쟁에서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들에게 불가피하다. 그런데
마트로클로스도 죽을 것이고 사르페돈도 죽을 것이고 헥토르도 죽을 것이고 아킬레오스도 죽을 것이다. 모든 지금 주요 지휘관들이 다 죽는다는데 여러분 여기서 사르페도는 제우스 아들입니다. 우리가 떠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떠면 그래 내 아들은 죽게 놔두는데 내 아들은 깨자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제우스도 극호할 수 없는 게 뭡니까? 문명의 여신인 저게도 문명의 큰 털은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인간들의 전쟁이라고 하는 트로이 전쟁은 사실은 제우스가 계획한 것이고 또 제우스도 다른 건 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만은 운명이라고 하는 큰 틀은 거고 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제일 넓게 지배할 수 있는 게 이제 운명이고 그 다음이 신들이고 그 다음이 인간인 것이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자 파란색으로 보게 되면요. 그 중에는 내 아들 친구와 같은 사라패동도 있다고.
친구와 같은 이라고 하는 이 표현은 사르테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이 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뭐 누구 한 사람에게 고유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이미 아킬레우스도 그 다음에 헥토르도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다 라고 하는 것이 이미 예정되어 있다. 일단은 아가면노문이 좀 속이 타겠죠. 그래서 내가 잘못한 건 있지만
우리가 좀 힘을 내 가지고 버티자 공격하자 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50페이지. 그래서 저는 이제 그 우리가 현대인들에게는 스토아철학이라든지 아니면 성리학에 영향을 많이 받아가지고 울든 안 된다. 그 다음에 참아야 돼. 뭐 이런 것들이 좀 군인들이 남성들이 갖춰야 될 그런 미덕으로 이렇게 생각을 하지만은 그리스 시대 일리아스를 보게 되면은
주인공들이 약간 발표자에게 했듯이 진노하고 분노하고 그 다음에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고 그 다음에 연매를 느끼는 굉장히 감성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현대화될수록 과학화되고 근대화될수록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성적인 측면을 좀 많이 상실한 것 아닌가. 그래서 그런 것들은 오히려 일리아스를 보면서 더 풍부하게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고요. 물론 그것만 가지고는 인간의 문명이라고 하는 것이 완성이 될 수 없으니까 오디세이아에 나와 있는
로고 속 이성적인 것들이 강조가 되어야 되겠죠. 이 카이사로는 아까 발표자가 행별로 대체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스페인에 가가지고 스페인에 가가지고 누굽니까? 알렉산더 동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는데 이 카이사로는 보면은 머리도 굉장히 좋고요. 두 가지가 같이 있다고 해요. 머리도 좋고 굉장히 감성적이고 이런 것들이 좀 있습니다. 자 그래서 토론 문제로 갈 건데요
자, 힐리아스의 아킬레우스는 짧고도 강렬한 삶 속에서 불멸의 능혜를 선택하며 자신의 존재를 영원히 기록된 위대함으로 규정한다. 이에 반해서 오디세우스는 아직 우리가 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냥 대비시켜서 해보겠습니다. 불멸의 삶보다는 유한한 삶. 그러니까 칼립소라고 하는 여신이 이런 제안을 합니다. 나하고 살자. 나하고 살때는 당신을
신적인 존재로 만들어 주겠다. 그러니까 이제 신들이 먹는 음료수가 넥타르거든요. 넥타르. 그 신들이 먹는 음료수 음식을 주고 내가 또 당신에게 넓지 않는 그런 힘을 주겠다.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근데 보통 신화 같은 데에서는 이런 제안이 들어오면 뭐라고 할까요? 오케이 콜. 그래가지고 나 집에 안 가. 이렇게 하셨는데 어디 세 옷을 나르죠. 아니다. 그것보다는 나는 그냥 고향에 가서 넓어가는 당신은 내가 신이기 때문에 당신이 넓지 않고 영혼이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고 내가 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고향에 가면은 넓은 부인이 있는데 나는 사실 나는 그렇게 부인하고 살겠다.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죠.
이 유한한 삶의 회복과 인상의 귀환. 요거는 이 오디세아에 나와 있는 가치다. 그래서 저는 그래서 이게 제 개인적으로는 이제 호베로스라고 하는 사람이 사실은 두 사람이다. 그러니까 일리아스에 나와 있는 그 추구하는 가치하고 오디세아에 나와 있는 가치가 너무 달라요. 여러분들이 원문으로 두 개를 다 읽어 보시게 되면은 아 이거 너무 다르다. 한 사람이 있었다고 하면은 제가 볼 때는 뭐라고 할까요? 한 사람 안에 인격이 두 개 있는 거 다중인격이에요. 그리고 아 이걸 그래서
시대도 한 100년 뒤쪽에 나오는 것입니다. 일리아스가 100년 앞쪽. 그 다음에 기원전 8세기. 그 다음에 오디세이아랑 기원전 7세기 정도. 그래서 이 한 100년 뒤에 추구하는 가치가 일리아는 불멸의 여행 보다는 일상적인 삶이다. 이런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두 선택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의 목적. 그런 것들을 우리가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오늘 했던 것 중에서 이 두 가지 삶의 길 중에서 어떤 길이 더 의미가 있을지 그런 것에 대해서
나눠보겠습니다. 자, 45분까지 하면 되는까요? 잘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