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노트
Shared on April 16, 2026
はい。
우리 전에도 보상이었는데
굳이 섹슈얼티를 강조해서 얘기했다기보다는 그게 그 여성들의 삶에 대한 어떻게 보면 반응이 되고요. 그러니까 다말에도 그렇고 이게 내가 그 사회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첫 번째는 여성들이 그 사회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어떻게 대우를 받았는지에 대해서 딱 일률적으로, 회대적으로 얘기할 수 없지만 왜냐하면 여성들도 층위가 좀 다르니까요. 각자 상황이 좀 다르니까 그런데 불구하고 첫 번째 인재 어떻게 보면 소유죠.
본인 스스로가 자기 독립적으로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주체자국으로 그렇게 지워지지 않고 어딘가에 속해야 되는 존재인 것. 그게 남성이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남성이 아버지든 할아버지든 아들이든 누군가 있어야 돼. 그게 자기 삶의 기반인 거예요. 그런데 그 남성이 없었을 때의 여성이 그 사이에 가장 약자층이 된단 말이에요. 왜냐하면 생존 기반 자체가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 그게 사회 구조상 그런 거죠.
여러분이 나오미나 롯이나 이런 얘기 보면 롯이 생존 기반이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은 살아가지 않나요?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보다도 자기 삶을 개척해서 자기 생존을 자기가 다 책임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부조 안에서 남성이 없는 여성 같은 경우에는 일단은 생존 자체에서 기반이 없는 사람과 같이 취급을 대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남성이 필요한 부조가 되는 거죠. 그렇게 본다고 하면 룯 같은 경우에도 여성이 남성을 얻는 방식이 뭔가를 얘기할 때
그게 여성에게 있어서 어떻게 보면 섹슈얼리티의 강조로 나타날 수 있다는 거죠. 성경이 섹슈얼리티를 일부러 부각을 했다기보다는 그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부정하는, 물론 룻의 경우는 꼭 그렇게 볼 수는 없지만 다만이 아니라 다 자기가 가진 적극적으로 남성들이 요구하는, 필요로 하는 갑장질 사회 안에서 그게 지금의 잣대를 보면 너무 이상하고 너무 부당하지만 그 당시 여성한테 사실 그거를 수동적으로만 볼 수는 없을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런 거죠. 그러면서 사실 유다 같은 경우, 담화 같은 경우는 남성들의 겉으로 볼 때 멀쩡해 보이는 자기 시아버지, 그 사람들의 어떤 실체를 틀어내는 거죠. 남성들의 갑자체 구조가 얼마나 여성 없이 취약한지에 대해서 틀어내는 거죠. 또요. 서구에서 여성철학이나 여성학이 진행이 되면서 20세기 때 여러 가지 페미니즘의 조류가 있잖아요. 이건 우리 얘기는 오늘 주유가 아니긴 하지만 조류가 있지만 있잖아요.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 Radical Feminism 같은 경우에는 갑자체 자체가 문제인 거예요. 갑자체 안 해서 이것저것 고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야. 자체가 없어져야 돼. 그래서 여성들끼리 사는 세상은 꿈꿉이다 하고 여러 가지 상상이 나오는데 그 중에 하나가 가장 공격을 많이 받았던 책 중에 하나가 성경이에요.
성경을 물어보면 구약 같은 경우에는 신학하고 또 다르거든요. 그래서 구약을 가시적으로만 볼 때에는 폭력도 많고 맨날 싸움하고 여성들은 이렇게 취급되고 이런 책이 다 있어요. 이게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책 자체를 성경 자체를 거부하고 다시 써야 된다라고 얘기했어요. 어쨌든 그게 가부장치 하에서 쓰여진 책이니까 그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Radical Feminism의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가 성경에 대한 구정, 아니면 다시 쓰기 이런 거였거든요. 그런데 이제 그게 힘든 게 뭐냐면 요소를 다 잃어버리면 그 안에 들어있는 인간 역사 안에 이어져 오는 다른 요소들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두 번째는 다시 쓴다고 했을 때 그 책은 어떤 책이지? 그 책 역시 우리 사회의 인간 사고와 방식의 산물일 수밖에 없어요.
그 책은 또 perfect? 안 되는 거죠. 그렇죠? 왜냐하면 우리 인간이 모두 자의 얘기할 거지만 어떤 식으로든 속박이 되어 있는 거예요. 그 가운데서 우리가 결단해서 살아가는 건데 그러면 다시 쓸 거면 그 책은 어떻게 될 거냐 그거. 그래서 20세 그런 페미니즘에 그렇지만 페미니즘에 문제 제기를 한 거는 어떻게 보면 정당하죠. 그 다음에 이어져 내 온 게 그 부류관체가 여성신앙이죠. 지금 얘기한 것처럼
성경안의 여성인물들을 어떻게 해석할 건가. 그 다음에 성경안의 다양한 요소들을 어떻게 해석할 건가. 그러니까 갑정체에 쓰여진 텍스트가 과연 다 버릴만한 것인가에 대해서 여성신앙에 공급을 하기 시작을 해요. 그래서 결국은 인터프레테이션의 문제일 수 있다. 라고 얘기를 하는 거죠. 그렇게 이어져 온 것도 있습니다. 네. 고마워요. 또. 자유로 넘어가 볼까요. 여러분은 자유로우십니까?
답이 없는 게 조용하신 게 어떻게 보면 왜 조용한지 모르겠는데 저도 그럼 선생님은 자유로우십니까? 이렇게 부르면 글쎄 잠깐 생각 좀 해보자. 그렇게 되겠죠. 자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여러분한테 자유는. 내가 자유로운가? 이거는 좀 오래 걸리는 질문일 수 있는데 여러분의 자유는 어떤 거예요? 자유. 집을 나갈 자유. 제가 옛날에 우리 조카가 여섯 명인데요. 그래서 이 한 명이
고등학교 때 집 나와가지고 우리 집에서 일주일 이따 간 적이 있어요. 그래가지고 하루는 이제 나왔어. 아빠랑 싸우고 나왔어. 이제 남자인데 나와가지고 모텔에 가서 하루를 잔 거예요. 아빠랑 팍 싸우고 나와서 잘 때가 갈 때가 없잖아요. 그래서 또 공모한테 얘기하기도 하고 그러니깐 잤는데 모텔 비가 8만원 이가 그때 그랬대. 헉 8만원? 용도로서 8만원? 도저히 안 되겠다. 그래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그럼 공짜로 내가 버틸 수 있는 데가 어딜까. 그래서 이제 우리 집에 와서 이제
일찍 있다가 들어간 경우가 크지. 자유롭고 싶어. 부모한테 턱 나왔는데 당장 잔고의 속박과 여러 가지 해결의 문제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기어 들어가서 내가 용돈을 받는 동안에는 부모에게 나름대로 순종함을 살리라. 이러면서 다시 들어가서 그런 거. 뭐 뭐가 자유로운 게. 걔한테 집 나갈 자유로운 것도.
자유의 신수는? 뭐가 자유의 신수는? 네. 시스물을 취급하는 것. 아, 네. 신수는 체계질 수 있는 자유. 또 어떤. 신체 자유도 뭐. 네. 속해있다니고. 네. 속해있어도 본인 스스로 하는 행동이 어떻게. 책임을 지는 게. 네. 자유가. 네. 죄송합니다. 네. 또. 상대권이. 아, 네. 상대권이 있는 거. 네. 상대권이 있는 게 사실 자유의 아주 정말 핵심이에요. 선택이
이게 선택이라는 데도 쉽지가 않죠. 이걸 몸에 좋은 거 먹으라고 딱 드리면 좋은데 선택하려면 쉽지 않게 선택은 핵심이고 책임도 사실 핵심일 수 있겠죠. 또. 이건 좀 단순하긴 한데 하고 싶은 걸 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하고 싶은 걸 할 때는 적합하고 적합된 것입니다. 선택권이 있다고 해도 정신적으로 증정하는 거죠. 네, 그렇죠. 하고 싶은 걸 하는 것. 아무튼 이제 하고 싶은 걸 하는 것도 사실 하고 싶은 거의 개념이 뭐였냐에 따라서 이제 어떻게 보면
그냥 외폐적인 자유가 될 수도 있고 하고 싶은 것을 선택을 통해서 자기가 결단하는 경우 이런 경우는 또 다른 의미의 자유가 될 수 있죠. 하고 싶은 걸 하는 거. 여러분, 뭘 하고 싶으세요? 네. 네. 아, 네. 그렇죠. 네. 오케이. 네. 또요. 혹시 있으십니까? 시험 문제일 수 있어. 생각해 봐야 돼. 지금부터. 네. 여러분한테 자유는 무엇입니까? 이건 쓸 수 있는 거잖아. 네. 그러면 제가 오래 기다릴 시간이 오도록 없기 때문에 바로 네. 네. 그냥 조금.
개념이 되도록 쉽게 할 건데 제가 쉽게 설명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일단 liberty와 freedom 영어로는 아시죠. liberty는 여기 보면 origin의 limit이에요. limit하면 한계죠. 그러니까 liberty는 여러분이 아시겠지만 근대 이유 들어서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자유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오히려 근대에 많이 나오고 시작합니다. 그게 아무런 처음으로 우리가 조언스 조언트의 일을 얘기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 사람이 인간은 자유롭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는 것을
천명한 사람이에요. 그러면서 천명을 했는데 개별성,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유를 존중해야 된다는 것을 미리 강조를 많이 했죠. 미래 자유로운. 여러분이 혹시 읽으셔도 얇습니다. 책도 알고 한 번은 읽어보면 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럴 경우 미리 얘기했던 자유는 여러분이 보시면 자유는 어떤 자유이냐. 내변적인 의식, 내 사상, 양심, 감정. 그건 그 사람 자유인 거예요.
나 오늘 어때? 슬퍼. 왜 슬퍼? 슬프면 안 되지. 이런 거 아니야. 그 사람 자유예요. 그러니까 존중해야 된다는 거예요. 슬프면 안 돼. 기뻐해야 돼. 이거 다 억압입니다. 억압이에요. 그리고 자기 방식, 기호, 취향, 목적, 나 추구, 자가가 되고 싶어 이런 목적 추구하는 거 그 사람 개별적인 자유라는 거예요. 나는 머리를 짧게 하고 싶어. 머리를 길게 하고 싶어. 그러니까 이게 여성은 왜 머리를 꼭 기려야 된다. 이건 다 억압인 거야. 왜냐하면 내가 취향에 따라서 짧게 하든 길게 하든 내 자유예요. 내가 내일 파마를 하고 오든 반바지를 여름에 입든, 겨울에 반바지를 입든 여름에 못 입고, 못 입는 입지 마세요. 여름에 코피를 입든, 코오트로 입든 취향이잖아. 취향. 그치? 취향.
제가 미래에 의하면 이거는 개별성의 자유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되는 겁니다. 인정하고 존중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중고등학교 때 교복을 입거나 이런 문제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 그렇죠? 네. 그럼 그것도 다 자유를 억압하는 거냐. 이제 그렇게 볼 수도 있고 그 다음에 세 번째 집단적으로 결사의 자유를 얘기한 거죠. 그래서 개별성, 개별적인 존재들이 모여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연대해서 그 목적을 추구할 권리.
그런 노조 이런 것들이 이 결사의 자유에서 발전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미리, 나는 이렇게 할 거야 저렇게 할 거야. 이게 개별적으로 다 존종 받을 수 있는 영역이면 좋은데 예를 들면 여러분들이 수업은 나는 10시에 반이 너무 이른데 나는 아침 8시까지는 자야 돼. 10시 반 수업 없애발이야. 그럼 어떻게 해. 그럼 다리가 나 6시에 일어나는 아무 문제 없는데 나 아침 수업이 좋아. 너가 나가. 이렇게 되면 개인의 자유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충돌이 되는 거죠.
그게 사회적인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미리 얘기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개별성의 취향이나 기호나 다 다르기 때문에 양심, 사상 다 다르잖아요. 다른 개별성의 자유가 같이 사는 사회에서는 충돌할 수밖에 없고 그런 경우에는 모든 사람의 자유가 다 충족되는 경우에는 후란이죠.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개별성의 자유를 조율해서
제안을 두는 합리적인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뭐에 어떻게 제안할 건가. 이게 이제 미래에 주된 관심이었어요. 그러니까 이걸 무조건 제안하면 안 되고 어떻게 합리적으로 개별성의 자유들을 조율해서 제안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리버티는 리밋, 제안을 기본적으로 전제로 한 자유입니다. 그러니까 사회적인 자유입니다. 법적인 자유, 법에 의해서 여러분 자유를 부여하지만 그 법이 또 여러분을 제안하기도 하는 거죠. 네, 제안을 합니다. 어린이 존에서 막 100km 달리면 안 되잖아요. 내가 달리고 싶어 그런다고 막 100km 달리면 지나가는 어린이들 위험한 거잖아요. 이걸 제안을 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게 미리 얘기하는 거예요. 리버티, 사회적 통제와 협의가 필요합니다.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지만.
그 프리덤은 조금 달라요. 프리덤은 에릭 프로미나 이런 사람이 여러분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 프리덤은 외적인, 법적인 이런 사회적인 자유가 아닌 내면적인 심리적인 자유입니다. 아까 엑소더스도 여러분이 비교하실 수 있을 거예요. 물리적인 속박에서는 버져나야 돼요. 미래의 이유를. 거기에 자유를 줘야 돼요. 그런데 그렇다고 'freedom'을 얻었냐.
이거는 또 다른 문제들이에요. 리버티는 얻었지. 사회적으로 개별성으로 억압에서 벗어나서 모든 개별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로부터 벗어났지만 개인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브리인들이 프리덤을 얻었냐 이게 별개의 문제에요. 그거는 심리적인 내면적인 자유다. 이렇게 해서 지금 우렉강 사회심리학이 있는데 그걸 얘기하는 거죠. 근데 프롬이 얘기하는 것은 개인의 내면적인 심리적인 자유가 사회적 구조하고 뗄래야 뗄 수 없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결국은 사회적인 구조, 사회 구조하고 인간 내면의 심리를 연결시킨 게 프롬의
자유로운 도피나 이런 책인 거죠. 그래서 프롬이 질문한 건 뭐냐면 특정한 문화의 구조가 특정한 정신의 구조 및 인간 활동에 어떻게 연결되냐. 이거에 얘기해 드리는 거죠. 구조와, 여기 질문을 잘 보세요. 문화 구조가 정신 구조 및 인간 활동에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사람이 이렇게 묻지 않았어요. 문화의 구조가 정신의 구조 및 인간 활동에 연결되는가. 이렇게 묻지 않았어요. 프로맨 전제는 연결된다가 전제야
전제고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방식을 밝히는 게 이 사람의 목표인 거죠. 그래서 이 사람이 얘기할 때 사회는 여러분이 자라면서 사회가 부정적인 기분만 있는 거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사회가 우리의 사회가 자라나면서 우리의 장점도 키울 수 있고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내 자질도 개발할 수 있고 등등등 내가 살아가는 어떤 터전을 마련을 해주잖아요. 사회가 그렇죠. 그런데 그러면서도 아까 얘기한 것처럼 여러분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못하고 아빠한테 돈 받는 대신에 그 집을 꾹 눌러 있어야 되고 여러 가지 학교도 시험도 봐야 되고 나 다 아는데 내가 차라리 시험 볼 시간에 생각이나 더 하고 좋은데 시험도 꾹 봐야 되고 외우고 싶지 않은데 다 외워야 되고 나 어떻게 하면 다 일종의 억압인 거죠. 소소한 억압부터 큰 것까지.
그래서 이 두 가지가 다 사회는 작동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회가 그래서 그 개별적인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어떤 사회는 좀 더 개별적인 자유를 존중하는 맥락에서 사회적인 제한 기능을 사용할 거고 어떤 사회는 훨씬 더 많이 사회적인 제한 기능을 사용하고 개별적인 자유를 제한하겠죠. 그러니까 그 사회가 어떤 사회냐에 따라서 사회의 성격, 개별의 성격 구조가 바뀐다는 거예요.
개인의 성격구조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결국은 내 성격은, 개개인의 성격은 고유한 것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에 영향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이랑 제가 우리 사오십 명 있으면 다 개별적으로 성격이 좀 다르겠죠. 그런데 한국 사회에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우리가 한국 사회 구조에 영향을 받는다는 거예요. 이 프롬의 이야기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소속의 욕구하고 자의 욕구 두 가지죠.
아까 여기서도 얘기했지만 자유로우면 굉장히 부담된다. 어디에 딱 속하고 있으면서 자유로운 건 좋은데 소속하고 싶은 안정과 내 마음대로 뭔가 하고 싶은 자유가 늘 충돌한다는 거죠. 그래서 이거는 여러분이 한번 읽어보세요. 자유 개념과 그 자유란 뭔지. 자유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가? 프롬은 본성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자유를 바라는 것은 인간에 속한 문화와는 아무 관계가 없나? 아니면
사회에 따라서 개인의 발달도 달라지나. 프롬은 사회에 따라서 개인의 발달이 달라진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유를 위해서 싸우게 하는 사회적, 경제적 요인은 뭐냐. 이거는 질문할 게 자본주의 때문에 그래요. 자본주의 한에서 굉장히 자유로운 사회도 같은데 개인의 억압이 더 심화되는 이런 것 때문에 나온 질문입니다. 그리고 여기 파란색. 자유는 왜 얻고 싶은 어떤 목표가 되면서도 하나는 위협인가
자유가 이스라엘 사람들한테 위협이죠. 에지프트에서는 그래도 먹을 거라도 있었는데 딱 나오니 먹을 것도 해결해야 돼. 뭐 뭐것도 떨어져야 돼. 어떻게 하면 좋아. 생존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생존에 위협이잖아요. 이게 자유가 양면적인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위협이 된다고 생각할 때는 프롬은 복종하고 싶은 마음이 다시 생긴다는 거지. 우리 조카처럼 안되겠다. 다시 들어가야겠다. 돈도 없어. 내가 이거 학교도 끝나야 돼. 아 내가 아빠한테 고개를 숙여야겠다. 다시 복종하고 이제 들어가는 거죠.
그렇게 인간 심리를 이제 프롬이 얘기를 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프롬이 예를 들었던 것은 나치즘이에요. 왜냐하면 그때 상황이 그런데 이 나치즘은 여러분이 독일 나치즘의 한계를 지을 필요는 없어요. 사람들이 뭐 지금 얘기해 이스라엘 국회의 나치즘 다 알고 그랬다고 하는 것처럼 이 나치즘은 그 나치즘이 보여준 그런 전체주의적 특성이지. 그래서 여러분 이걸 너무 독일의 히틀러한테만 한계를 짓지 말고 그 어떤 공통된 특징을 한번 보셔라.
그래서 나치즘이 심리에서 얘기를 하는데 이 나치즘의 상황 자체가 1차 대전 이후에 독일이 굉장히 패배의식 때문에 무력감에 시달렸고 무력감이 깊어지면 무력감에서 헤어나는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무력감을 탈피하기 위해서 절대적인 권력을 원한다는 거지. 그러니까 오히려 사회가 무력감에 시달릴수록 독재를 원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독재가 큰 힘을 발휘하고 그 큰 힘에 기대해서 큰 권력을 기대해서 내 무력감을 보상할 수 있는 하나의 기회를 사람들이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1차 대전 이후에 독일 사람들이 깊게 느꼈던 무력감, 패배감. 융의 상담일지를 보면 그게 너무 자세히 나와요. 융이 20년 전에 예언했던 거거든요. 독일이 이렇게 가다가는 안 되겠다. 이렇게 사람들이 패배의식에 젖어있으면 언젠가는 독재자를 꿈꾸게 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프롬이 얘기했던 건 뭐냐면 사람들이 자유를 그렇게 원하면서도 자유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한다는 거죠. 왜냐하면 이게 너무 부담스럽고 힘드니까.
그래서 그게 도망가면서 사람들을 택하는 게 뭐냐면 권위주의. 권위주의여서 내가 다른 사람의 일종의 권위를 내세워서 다른 사람을 내 밑에 두려고 하는, 하위로 두려고 하는 그런 특성들. 그 다음 파괴성, 내 무력감이나 패배감을 보상하기 위해서 외부의 대상을 파괴한다는 거예요. 지금 전쟁도 여러분이 보시면 다 내부 문제가 있잖아. 이스라엘도 내부 문제가 있고.
트럼프나 내부 문제가 있고 본인 개인 문제가 있고 물론 그게 다는 아니지만 거기에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어떤 그 deadlock이 있을 때 외부를 파괴함으로써 자기 문제를 해결하나 무력감을 해결하고 싶은 방식 그 다음에 아니면 이제 아무 말도 안 해도 자동적으로 그냥 걱정하는 거 자동순호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이 자기 자유를 그냥 포기하거나 버릴 수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괜찮으세요? 네, 좋습니다. 그런데 야스퍼스 같은 사람은 실존적 자유라고 얘기해요. 실존적 자유. 이 사람은 사회하고는 별도의 정말 개별자가, 개개인이 자기 존재로서, 자기로서 어떻게 살아가는 수 있을 것인가. 이걸 이제 염두에 둔 거거든요. 나로서 어떻게, 나로서 산다는 거, 나로서 자유롭게 산다는 게 뭐냐. 이걸 질문을 하는 거예요.
그게 이제 40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이 해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죠. 두 개 다 겹쳐있어요. 이스라엘 사람들 같은 경우 한편으로는 힘들어. 그러니까 다시 파라오 밑으로 들어가고 싶은 거죠. 다시 복종 상태로 들어가고 싶은 거. 그리고 다시 권위나 거기에 자기를 맡기고 싶은 거. 권력에 자기를 맡기고 싶은 거. 그게 이제 한 면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40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것 자체가 거의 죽었지만
실존적 자유로의 여정인데 이 여정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실패하게 되는 거죠. 나로서 어떻게 살아가는 거죠. 그래서 여기 여러분이 보세요. 야스퍼스가 우리는 언제 자유라고 느끼는가. 이걸 이 사람들도 질문을 던졌어. 그래서 여러분이 보세요. 그래서 이 사람이 사람들은 대부분 이 세 가지를 자유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지식을 통해서 객관적 상황을 지배할 때. 이건 대상에 대한 자유라고 얘기하는데 뭐냐면 제가 25살 때 운전면을 따고 지금 한 30년 운전 안 하다가 다시 해요. 운전 안 해보고 어떻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지금 약간 외곽이어가지고
운전을 안 하기가 너무 힘든 상황을 핑계로 삼아 잘 운전 연습을 하고 있는데 내가 25살 때 이렇게 못 타고 공감감도 없고 너무 힘든 거예요. 지금 다시 하는데 이러지 않았는데. 그러니까 뭐예요 여러분. 그러니까 옆에서 이제 그 운전 점거나 늦거나 나이 상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