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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와 식탁: 인간의 치유

Shared on May 30, 2026

04:30:29

I guess it's good to have.

04:31:19

이건 처음 보면...

04:31:50

억울함을 풀고 싶기도 하고 이런 벌인 걸 보상받고 싶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복수가 끝났다고 해서 정말 마음이 편해질까요? 빌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는 친구 퍼프로크로스를 잃고 헥토르에게 복수합니다. 하지만 헥토류를 죽인 뒤에도 그는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 깊은 슬픔과 호흡 속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발표에서 복수 이후에도 왜 인간은 여전히 고통스러울까를 중심으로 생각해봤습니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류를 죽였지만 파트로클로스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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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상대를 처벌할 수는 있지만 잃어버린 사람을 대상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수가 끝난 뒤에도 아킬레이스의 고통은 계속났습니다. 이따가 얘기할 바베테의 만찬에서도 인물들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사실 마음속에는 오래된 상처와 갈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작품은 이런 상처가 어떻게 조금씩 풀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먼저 알아야 할 개념 중의 하나는 평화사체인스 즉 감성적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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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인간이 단순히 이성적으로만 판단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정에 깊이 흔들리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분노하고 슬퍼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상실감에도 무너지기로 합니다. 아킬레우스가 바로 이런 감성적 인간의 대표적인 예 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그는 아주 강한 정사이지만 동시에 친구의 죽음 앞에 보면 완전히 무너지는 한 인간입니다. 이니아스에서 중요한 건 아킬레우스가 강하다는 점만이 아니라 그가 너무 많이 슬퍼하고 분노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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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단순히 헥토르가 미워서 생긴 강정은 아닌데요. 그의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 대신 전투에 나갔다가 헥토르에게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죽음은 아킬레우스에게 단순히 친구의 죽음이 아니라 자신 때문에 벌어진 비극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그래서 아킬레우스의 강정은 죄책감에서 시작해서 곧 분노로 바뀝니다. 그는 자신이 지키지 못한 친구의 죽음을 헥토르에게 되갚으려고 합니다. 이때 복수는 아킬레우스에게 슬픔을 견디기 위한 방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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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이는데요. 이렇게 보면 겉으로 복수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파트로클로스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아킬레우스는 여전히 고통을 받습니다. 여기서 아킬레우스가 정말 원했던 것은 단순히 헥토르의 죽음이 아니라 친구를 잃은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복수는 죽은 친구를 되살릴 수 없기 때문에 아킬레우스는 복수 이후에도 평화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그의 급변은 보통은 헥토르의 시신을 모욕하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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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와 같이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죽인 뒤에도 분노를 멈추기 못해서 그는 헥토르의 시신을 정차에 묶어서 끌고 다닙니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전쟁에서 적을 죽이는 것과 죽은 사람의 시신에 모욕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에게도 최소한의 존엄성을 보장되어야 하는데 아킬레우스는 그 인성을 넘어버리고 굉장히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그때 아킬레우스는 윤리적인 인간이라기보다는 분노와 성실감을 사로잡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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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고통을 멈추지 못하고 폭주하는 것처럼 됩니다. 여기서 이제 수업 내용과 연결되는 개념이 이 두 가지 개념인데요. 왼쪽에 있는 것은 타인의 고통을 불쌍히 여기는 명령이고 오른쪽은 자신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아는 수치임이나 절제에 가깝습니다. 아퓨런스가 헥토르의 시신을 계속 모욕한다는 것은 이 두 감정이 사라졌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그는 헥토르를 한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를 소단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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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영상을 보게 될 텐데요. 이 장면은 프리아모스가 아킬레오스에게 찾아가서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감정하는 것을 해냅니다.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아킬레오스가 처음으로 헥토르의 가족, 특히 아버지의 고통을 직접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영상을 보실 때 프리아모스가 단순히 왕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 말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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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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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the man who killed my 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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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big death frightens me now. I watched my eldest son die, watched you drag his body behind your chariot. Give him back to me. He deserves the honor of a proper burial, you know that. Give him to me. - He killed my cousin. - He thought it wa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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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fathers and brothers and husbands, how many brave Achil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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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knew your father. He died before his time. But he was lucky not to live long enough to see his son 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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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n everything from me. I held his son to my throne, defender of my kingdom. I cannot change what happened, it is the will of the gods. But give me this small mercy. I love my boy from the moment he opened his eyes till the moment you closed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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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등장하는 프리아모스는 트로이의 왕으로 아킬레오스 입장에서는 당연히 적개의 왕인데요. 이 프리아모스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아들 시신을 돌려받고 싶은 아버지가 되어서 아킬레오스에게 이렇게 설득을 합니다. 그리고 이 점이 아킬레오스의 마음을 흔들게 되는데요. 아킬레오스는 프리아모스를 보면서 자기 아버지의 펠레오스를 떠올리게 됩니다. 프리아모스가 아킬레오스에게 자기 아버지를 생각해보라고 말하면서

04:40:14

아킬레우스도 결국 누군가의 아들이고 프리아모스가 아들을 잃은 아버지라면 프리아모스도 언젠가 아킬레우스를 잃게 될 아버지라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그리고 이 순간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를 단순히 적으로만 볼 수가 없게 되는데요. 그는 프리아모스의 슬픔 쪽에서 자기 가족의 슬픔 또한 보게 되면서 공감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뒤에서는 프리아모스 아킬레우스가 함께 울고 둘 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거나 잃게 될 고통을 함께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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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장면에서 아킬레우스는 자기 감정에 흔들리는 인간에서 타인의 고통을 자기 고통처럼 느낄 수 있는 인간으로 변하게 됩니다. 아킬레우스는 처음엔 자기 슬픔에만 붙여있었는데 프리아모스를 만나면서 타인의 슬픔을 보게 되고 공감을 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착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를 다시 인간으로 인정하는 윤리적 사건이기 때문에 중요한 경향입니다. 이후에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에게 식사를 권하면서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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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더하고 화해를 하게 되는데요. 이 식사는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장면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조금 전까지 서로 원수였던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앉아서 음식을 나누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전등에서 적응을 제거해야 할 대상이지만 식당 앞에서 상대는 함께 먹는 사람이 되면서 복수의 시간이 잠시 멈추고 인간적인 관계가 다시 시작되는 공간입니다. 이와 이어서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영화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영화는 음식과 식사를 통해서 인간관계가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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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면 한 여성이 마을 사람들에게 만찬을 대접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더 깊게 보면 상처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마음을 열고 화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일리아스와 연결할 수 있는데요. 두 작품 모두 식사가 단순히 생활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변화시키는 사건으로 나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요리를 해주는 바베드는 가족과 고향을 잃은 여성인데요. 아킬레우스는 상처를 복수로 바꾸는 반면에 바베트는 상처를 배춤으로 바꾼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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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은 자신이 가진 것을 이용해서 타인을 대접하고 음식을 통해서 자신의 예술과 사랑을 폭포해 표현합니다. 영화 속에서 마을 공동체는 겉으로는 경건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오해와 억압된 감정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바베트의 만찬은 바로 이 갇힌 마음을 여운 계기가 됩니다. 영상을 볼 건데 처음에는 근육적인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음식을 평가하지 않겠다고 하고 조심스럽게 앉아있지만 식사가 점점 진행되면서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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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영상이 길어서 짧게 사람들의 감정이 변화되는 부분으로 재생을 하니까 음식의 자체보다 사람들의 표정과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어떻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화목했던 마을의 분위기는 조금씩 변하게 되는데 이렇게 사람들의 불신이 가득하게 되자 이 배드의 15. 에어 100-år 사연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네, 제가 이 배드의 15. 에어 100-år 사연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네, 제가 이 배드의 15. 에어 100-år 사연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네, 제가 이 배드의 15. 에어 100-år 사연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네, 제가 이 배드의 15. 에어 100-år 사연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밤에는 마을의 화목을 들고 찾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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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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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u, meget døbt. - Hvad bete siger, vi er klar? - August, vi kan ikke smage. Lad os bede med præstens egne ord. - Munche, og fader, guld til hæer. Amen. - Du siger ikke noget om hælden. - Vi vil ikke skænke din tanke. - Jeg kan ikke søtte det. Amant i larder 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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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낳다 이다, 쇼팔 소바. 윗길랜 소바. 여기서 유일한 미식가인 룰렌스는 만찬이 번상치 않음을 알아차렸죠. 이 글랏 일을. 이고벤스 라인은 뇌월드. 그는 뇌월드. 뇌월드. 아하. 이고벤스 라인은 뇌월드.

04:45:36

이는 도라스! 이렇게 바벤트가 많잖아요.

04:45:51

이렇게 만찬이 끝나고 커피와 샴페인까지 이어지자 사람들은 영혼이 채워지는 듯한 깊은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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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와 프리아무스가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아킬레우스의 만찬에서는 갈등과 오해를 품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합니다. 여기서 상황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게 함께 회복의 공간으로 보여줍니다. 차이점은 아킬레우스는 먼저 복수를 하고 시신까지 모욕한 뒤에야 공간에 도달을 했던 것만 바베트는 자신의 상처를 복수로 바꾸지 않고 상처 이후에 베풍을 선택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04:47:24

그렇다면 왜 하필 이 두 작품들에서 식사가 매개체가 되는 것일까요? 식사는 상대를 추상적인 적으로 구우지 않게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상대도 나와 같은 몸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배고프고 상처받고 위로받고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우리는 그 점에서 같은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행위는 타인을 다시 인간으로 보는 인간입니다. 일리아스에서 프리아모스는 더 이상 적의 왕만이 아니고 바베트의 만찬에서도 사람들이 더 이상 불편한 인간이 아닙니다. 그들은 식탁 앞에서 모두 평평한 인간이 됩니다.

04:48:08

결론적으로 일리아스와 바베트의 만찬은 모두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아킬레오스는 복수를 통해 상처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결국 프리아몬스의 만남과 식사를 통해서 공감을 잃고 바베트는 자신의 상처를 복수로 돌리지 않고 만찬을 통해 공동체를 회복시킵니다. 저는 그래서 이 두 작품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복수는 상처를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공감과 나누는 인간을 다시 인간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두 작품이 보여주는 핵심이 복수를 부정하는 것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요.

04:48:45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다가도 어느 순간 타인의 고통을 알아볼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두 작품이 말하는 화해의 시작이 거창하게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도 나처럼 상처받고 위로받아야 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딱 깨닫는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식사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자리가 아니라 타인을 다시 인간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인간입니다.

04:49:17

이 점에서 일리아스와 바베트의 만찬은 모두 인간이 복수와 갈등을 넘어 공간과 남은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04:49:45

아마 축제일까? 학교? 원래 축제는 이런 식이 되어야 되는데 그래서 옛날에도 보면은 자그마 축제는 돼지를 잡아요. 큰 축제는 소를 잡습니다. 소를 잡아요. 그래서 제 생각인데 학교에 들어갈 일은 없는데 소를 한 마리 잡아놓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옛날에 축제를 보다 보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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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불화상태에 있던 걸 그 시점을 그 시점으로 해가지고 새롭게 한번 화해해보자고 하는 그런 의미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좀 요즘은 그런 것들이 좀 뭐라고 할까요? 재현이 안 되는 것 같아가지고 좀 심적하네요.

04:51:28

26페이지 정도에 2교시 있습니다. 앞부분에 계속 연결되어 오고 있죠. 그래서 파트로클로스가 죽었다 라고 하는 게 저번 시간에 가장 큰 사건입니다. 자 23번, 24번 두 권이 남았는데 23번 쪽에 한번 볼게요. 아킬레우스는 파트럴클로스의 장례식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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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오열한다. 제가 아킬라우스가 우는 장면들 중에서 그래도 좀 크게 우는 장면, 오열 통곡하는 장면을 한번 체크해 보니까 지금 이 시점은 세 번째로 이렇게 크게 우는 장면입니다. 물론 작은 것까지 합하면 더 될 수도 있지만 제가 볼 때는 크게 우는 게 세 번째였다. 바트로콜로스가 자기 대신 싸우다 죽게 되었다고 하는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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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에 성공했는데도 불구하고 진정한 치유나 평화가 도래하지 않았다는 허구감 이런 것들이 이제 복합적으로 나오는데요. 아리스토레스를 비롯한 부적을 이야기하는 고대 철학자들 또 목데뉴엘까지 이렇게 보면 친구가 뭐냐 이렇게 했을 때 하나의 요혼이 두 개의 신체에 깃들어 있는 존재 이런 것을 친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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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몸은 다르지만은 동일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지금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친구 개념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렇게 봐야 됩니다. 그래서 죽음도 불사하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그런 존재로 우정 친구를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파트너 크로스도 마찬가지죠. 동일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다른 식체이지만 동일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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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로클로스가 죽었기 때문에 그 슬픔이라고 하는 것은 이를 말할 수 없다. 이를 볼 수 있는 것이고요. 밑에 보라색을 보시면 불행한 파트로클로스의 용어를 부르며 손잡이가 둘 달린 잔을 쥐고 황금 술동이에서 구도주를 담아 올려 안바닥에 쏟아 부어가며 대지를 적셨다. 앙티고네 한때 기억나시죠. 그래서 이 술이라고 하는 게 사실 처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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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떻게 생긴지 알겠지 봤을 때 저는 이게 죽은 사람과의 관계를 죽은 사람을 생각할 때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거나 장사 지낼 때 사용되었던 어떤 음식이다 이렇게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제사와 연관했을 때 술이 많이 듭니다. 마치 새신랑이 되자마자 죽어 불행한 부모에게 소름을 안긴 자식의 뼈를 아비가 불태우며 통복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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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친구 사이에 이 우정이라고 하는 것을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 이렇게 하면은 비슷하다 이렇게 볼 수 있다. 여기에 비유를 그렇게 들고 있는 거죠. 아킬레우스도 전후의 뼈를 불태오며 통곡하였고 쉴 새 없이 탄식하며 화장터 둘레로 제 몸을 끌고 다녔다. 그러니까 이것도 역시 뭐 그 땅에 엎드려 가지고 뒷물면서 슬퍼하는 그런 걸 여러분들의 상상할 수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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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제 헥토르의 시실을 능력하는 것은 파트로플러스를 좋아하고 위로하는 것은 얼마든지 인간다운 그런 도리라고 할 수 있겠는데 죽은 헥토르의 시실을 능력하는 것은 전차에 매달고 이렇게 한 12일입니까? 그렇게 트롯섬 주변을 도는 것은 이것은 인간으로서 할 짓도 아니고 장군으로서도 할 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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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런 것이 이제 아킬레오스의 극단적인 비윤리성이 표출되는 사례다 이렇게 볼 수 있겠고 이런 상태에서는 연민이라든지 절제라든지 이런 것들이 완전히 실종된 비윤리적 존재인 아킬레오스의 모습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면 빨간색 보겠습니다. 중간중부터 빠른 말들에게 멍해를 지워 전차 앞에 달고 헥토르를 끌고 다닐 작정으로 전차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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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고 메노이티오스의 숨진 아들 자 여기 누구냐 하니까 제가 추가를 했는데 메노이티오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파트로클로스라고 명시하는 것보다는 메노이티오스의 아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더 좋아서 이렇게 표현했네요. 아들의 무덤을 들러 세 바퀴 끌고 다닌다 바로 막사 안에서 쉬었고 헥토로는 물지 속에 얼굴을 파묻게 한 채 길게 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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