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개론 10주차
Shared on June 12, 2026
MBC 뉴스 김성현입니다.
부모와 아동간에 손상이 하나도 안되고 부모가 아이들을 잘 양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있다고 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부모나 보호자가 아이를 양육하는게 가장 좋죠 그런데 부모와 아동간에 관계해서 일부 손상이 있어 예를 들어서 부모가 아이를 양육을 할 수 없는 그런 환경이야 예를 들어서 맞벌이라던지 그래서 낮에 아이를 키울 수가 없잖아. 어린아이들, 간난아이들.
또 예전 공부한 여전의 위치에 대한 그 대신 누가 태어난 일제일까 나이도는 아니다 음 그래서 여러분들도 타고야 어린이징을 받았으면 부모와 자식간에 무슨 뭐 어떤 특별한 갈증이 있는게 아니고 부모가 그 역할을 일부할 수 없는 그때는 아이를 갖다가 시설에서
이용시절이죠 어린이집에서 낮에 키웠다가 다시 요런 정도는 뭐야 다 여러분들이 다 이렇게 아 그런데 거의 이제 이런 경우에 입장되는데 어 부모가 문제가 심각해져서 부모간의 갈등이 아니라 이게 뭐 하나씩 강조적인 거라고 해서 막 갈등이 있는 거라서 신체적으로 아동을 잘 휘어질 수가 없어 그렇다고 해서 뭐 관계를 갖다가 또 일숨은 없어 또 뭐야 부모에 대한 상담이라든지
아 아들기 위해서 완전히 부모가 사망했다든지 부모의 역할을 상실했어 반대 없어 일단은 시설로 갈 수 밖에 없죠 또는 지역사회에서 양년도나 입양기라는 건, 이 형태로.
다른 지역의 다른 부모 도자다 있는 쪽으로 나는 거죠. 이명은 완전히 호적까지 완전히 호적을 갖다가 딱 옆으로 다른 부모로 들어가는 거예요. 우리가 그냥 양년보호라고 하는 것은 내 호적으로 넣는 게 아니라 내가 그냥 키워주는 거고. 위탁 부모 형태. 아까 위탁이란 말이었죠. 위탁.
시설도 위탁을 하는거잖아. 아이들 위탁을 해서 받아서 키워주는거죠. 이거는 호족관계의 변함이 없어요. 그리고 이제 이렇게 아닌 경우에는 아동양육시설 아동복지시설이라고 그러죠. 아동복지설도 많아요.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시설의 뿌리는 출발은 시설이었고 시설의 역사에서 그 해친적인 것을 아동복지시설이에요. 자 그러면 내가 이 아동복지시설과 관련해서 몇년전에 내 연구하는데 연구 보고선대.
2년에 몇 명이 나오는 줄 알아요? 2년에? 지금은 좀 뭐 지금 뭐 좀 한 6,7년 전 자격이 있는지만 지금은 또 반이 바뀌었을 거예요. 몇 명 나올 것 같아요? 1년에 아동복지시설로 가능한 일이 몇 명일 것 같아요? 가능이 안 잡혀? 한 59만 명 정도. 60만 명 정도. 그러면 그 반대로 우리가 시설에 있어서 여기서 영원히 사는 게 아니야.
성년이 되면 아동복지법상의 18세 이상이 되면 이제는 나와야 돼요. 그러면 여기서 나오면 또 그 정도 숫자인 거야. 그런데 나오면 완전히 무슨 뭐 한마디로 집도 절대 없는 거지. 이거 기대할 수 있는 언덕도. 그런데 여기서 시설에서 양육이 되고 대학까지 보내주게 되었고.
내부원은 너무 많이 남겨진 자세히 내년에 놓고 안 되는 게 아니라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 그 지금이니까 그 지천밀신을 지키는 시기 생각할까요 2.5만원에 그 나라는 수요일 이게 강해가 되고 다른 일을 가뜩하는 것 같은 것들은, 이런 것들은.
해외여행을 많이 하니까 옛날부터 신문 기자들이 홀트아름국제라든지 대한사회복지에 동반 이런 데서 사회복지시설기관에서 아이를 팔아먹는다. 심지어는 그런 아주 극단적인 표현을 써서 기사화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열의 백개 중에 그런 안 좋은 행위들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사회복지사들이
여러분들의 선배들이죠 나의 선배들 과거에 오시는 계시는데 그 정말 국무직이 한국의 사회복지 현장에서 헌신하면서 지금 진짜 지금 운지면 천사를 거부하지만 천사라고 하는 그런 틀에 사로잡혀 가지고 말이죠 예를 들면 헌신했던 그런 사람들의 그 숭고함 그런 것들이 아주 매도당합니다 일부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세상에 1분 그런데 사람들과 함께하는 거야 그래서 옛날에 이 말 예 아이가 1에서 아이가 엘 영하에 영하 영화를 보는 것은 0세부터 2세까지 영화를 한 겁니다 유한 3세에서 5세를 그래서 우리가 영유아 사회복지 라고 하는 것은 영세부터 3까지는 영화라고 영화만은 강국에 쌓여야 하는 피 떨어지는 간란이 있잖아
아 여러분들 베이비박스 라는 얘기 들어봤지 옛날에는 그런 것도 없었지만 우리가 IMF 이후에 베이비박스 서울이나 수도권 여기서 베이비박스가 있으면 그게 충청도 이쪽까지 막았다고 시설에 들어가는 애들이 아주 폭증이 많고 폭증했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아예 애를 나도 줄 수가 없는 거야 또는 부모가 사망했다든지 전쟁을 때문에 또는 어떤 일은 어떤 도로 이런저런
예를 내 아까에 불타는 국제에 놓고 있는 미국이 시선에 담기 시선으로 와서 도쪽에 입양 부모 입양 의사가 있는 김에 입양 부모 의사를 타지내서 사진도 보여주고 직접 오는 사람이 있지만 옛날에 미국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직항도 없었어요 이 자산은 큰 불꽃돈어서 배탈과 한 달 걸렸고 이번 경우에 서야겠고
지금이니까 뭐 많이 그러니까 사진 하나 이렇게 본다는 이런 식으로 해서 이제 선택을 하면은 얘는 이제 이제 일양 준비기간이 아니라 준비 막 그렇다고 상품처럼 있은 것 같고 이게 홍길동에 그냥 홍길동에 그냥 뭐 그니까 소품하고 택배로 보내 이런게 아니야 이런 과정들을 제대로 알고서 기사하고 해야 되는데 옛날 얘기야 옛날 기자들이기도 그러면 이제 여기서
수족을 받고 전 한 달이나 두 달 정도 보호기간이 필요해요. 그러면 한 달이나 두 달 어떤 거나 세 달. 이거 상당히 잘 안 됩니다. 그러면 이 기간 동안에 애를 갖다가 키우면 양육비가 필요하지? 양육비는 이제 받는 거야. 정도로부터. 그러고서 이제 이량 부모한테 이 돈을 받아요. 애를 파는.
이런 분야에다 양해 관련된 뭐라고 할까 속기지옥서 말해라 뭐라고 하죠 이랑 관련된 어떤 전차에 들어갈 필요 비행기 내게 해당 들어가서 또 부착할 때 비용 모든 비용이 이방구모가 지급된다
옛날에 전부가 오신을 되시는데 미국 유학하는 사람들은 돈이 없어 가지고 미국이나 대한사회 복지에서 이량을 했을 때 예를 들면 될 것 같죠 아이잖아 그러면 보호자 한명이 한국료라든지 각종 지절비가 그렇게 해서 미국 유학 같은 사람들이 돈이 없으니까 못 갚고 그래서 이게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했다는 얘기야 그런데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모르고
제대로 안지 않고 입양원 주관에서 애를 팔아놓은 거니 뭐니 사실은 애를 낳아 놓은 것도 중요한 것이고 낳기를 하는 정책적인 것도 중요한 것이지만 낳은 애를 잘 키우는 것 왜 상징국은 애를 개인의 자식으로 보는 게 아니라
개인의 소유를 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사회의 자산으로 가까운 일부만 원을 해도 아이가 땅꼬미 가져가고 밤이 되잖아 반대에 밤 6시 7시 되면 지역사회에 들어가 보면 애들 소리가 없어 근데 또 애들이 혼자서 밤에도 밤이 돌아다닌다 신고 오면 부모가 처벌을 받아요 아동학대?
이건 뭐 미국도 그렇고 아동한테 왜 해가지고 신고 오면 부모가 천장 가 니가 낫지만 하나의 아동도 하나의 이권의 개념으로 보는 거고 니 것이 아니다라고 보는 거예요 그런 양육 환경을 만들어 놓은단 말이에요 대신에 아동들한테 지원을 했어야 돼요 근데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밤 9시 10시 11시 돼도 뭐 애들 뭐 그냥 애들은 그렇게 하면 안 돼. 할 때 할 때.
요즘에 프로야구 여러분들 많이 보죠 야간경기 많이 하잖아 난 그걸 보면서 이 초등학교 우리 아이들이나 특히 그거보다 어린애들도 야구장에 카메라가 잡히는데 거기서 막 묶어놓고 있더라고 아니 지금 애들이 지금 10시 11시 야구 경기가 끝나고 보통 또 연장 가면은 11시 넘어서도 끝나고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말도 안 되는 거야 이게
그래서 여러분들이 해야 되겠다 지금 내가 그랬지 사회복지사가 많은 게 많은 많은 게 앞으로 더 많은 양직의 사회복지사 왜 여러분들이 현장에 나가서 일할 수 있는 곳이 굉장히 많다 하는 거야 약간 2번 말에 있었거든요 내가 지금 혼또압목지에 몇 번 갔었어요 혼또압목지에
옛날에 회장님이 전 국지부 차관께서 퇴직을 거에 가셨는데 내 개인적으로 잘 알아서 우리 학교에 특강도 보셨고 내가 직접 갔어도 봤고 또 우리 학교에 옛날에 20년 전에 입양연구소 국제 입양연구소 소장을 해서 1년에 한 번씩 해외 입양과에 있는 우리 아이들 그러니까 지금 청년 됐죠?
한국에 초청해서 몇일동안 한국문화를 채용하고 또 여러가지 어떤 교육부 문화행사 그게 지금 이름이 바뀌었는데 옛날에 외교부 재외동포재단에서 그랬었는데 사실 그것도 그래요. 과거에 20년 전에 내로 이제 참여하면서 과연 입양아들의 어떤 현재의 부강시험 상태
극단적으로 두 그릇으로 나눠줘요. 환불은 가서 성공을 한 거야. 부모가 따뜻하게 케어해주고 해가지고 또 그 부모의 백그라운드를 보면 경제적으로 여러 가지로 굉장히 좋은 집안으로 가서 차라리 안 느낌을 양육을 받고 성장을 하던 같은 경우에는 소위 미국 사회의 주류가 된 거야. 그런데 이제 그렇지 않은 경우에 이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내가 미국인인가 한국인인가 그러면 나의 부모는 왜 나를 버렸을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나의 호국이지만 수위 여러 가지 같은 감정이 좋지 않나요 뭐라고 그럴까 애증목, 진목 복잡한 감정들이 그렇게 굉장히 혼란스러워 그런 어떤 삶을 살면서 또 있고 다양해요 그래서 그런 과정 속에서 이제 야 이걸 민간에다만 맡기는 게 아니구나 정부에서 물론 모조번호 주지만 그래서 각기의 국가 책임 다해서 국가가 이량을 하겠다 이량 관련된 업무들을 국가가 직접 하겠다
그런데 그런거선 조직이나 인력이나 예산이나 확실하게 세팅해서 제대로 해야 되는데 좀 위가 버린다 하는 얘기를 기사합니다.
사회복지개론 그래서 이제 우리 공주대학교 학생적으로 연락을
물론 뭐 다 정해진 전체에서 시험을 통해서 면접해서 기회를 준거지 그래서 거기서 이제 그 지원분에 대한 앞서 얘기는 유럽이란지 미국 이런데 지붕교 로가서 열려있어요 그 다음에 앞서 아예 그 그게 이제 자생각을 정부계에 가서 세계적으로 입양에 지들란이라든지 프랑스 영국 어디에 도시포타 지에 지금 가 있단 말이야 내 그거 뿐만 아니라
월드비전이라고 알지? 월드비전도 이것도 한국에서 만든 거예요. 한국의 공부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세계를 만든 거예요. 여러분들 굿네이머스 같은 경우도 옛날에 월드비전 같은 회장, 여러 분과 여성이었어요. 우리 학교도
조청도 특강도 있었고 옛날에 그런거 많이 했습니다. 대단하죠. 개인정보는 내 후배였는데 거기 가서 열심히 인정받아서 나중에 회장도 했죠. 직원은 인생했나 보기 때문에. 그래가지고 그런 데는 이제. 이게 그런 데는 선진국뿐만 아니라 여러분들 아는 중앙아시아 라든지 탄으로 끝나는 나라든지. 뭐 이런 뭐 이런 데도 아니죠. 그래서...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일방적으로 이런 사회복지 외국의 사회복지에 얹어서 많은 나라에서 지금은 또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이나 다른 나라들 보면 우리 학교 공제 내년 과학금 공제 공부를 하러 오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리고 한국의 사회복지에 얹어서 많은 나라들 보면 한국의 사회복지에 얹어서 많은 나라들.
기관을 통해서 한국에 대해서 알고 한국으로 해서 그런 민연에 대해서 얘기해 주신다 싶습니다. 한 5분 정도 쉬었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국지가 어떤지를 알기 위해서는 이전에 우리나라 사회국지가 어떻게 발달해 왔고 현재까지 이루게 됐는지를 아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 우리나라 사회국지가 없다고 전자체계의 변화에 대해서 얘기를 좀 드리겠습니다.
저는 과거에 우리나라 사회복지 역사국이 있을 때 그런 두 번 시대에는 없었는데요. 그 이전에 고려시대, 옛날에 삼국시대라고 얘기는 뭐 옛날에 없었는데요. 사회복지의 행위들은 있었지요. 우리가 여기서 살펴보는 것은 뭐냐면 좀 근대적인 어떤 사회복지, 정부가 법률이나 제주를 통해서
자, 우선
사회복지 정책이나 사업을 했던 것들을 기점으로 얘기한 겁니다. 과거에 여러분들 중앙부서 전에도 얘기했다시피 사회복지 행위들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면서 사람들 간의 여러 가지 도움이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서로 돕고 도움을 받고 하는 그런 것들 사무부족 같은 경우가 전 살국쟁이라고 볼 수 있고
종교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 자선사업이라고 했죠. 그다음에 인간의 어떤 이 박애, 이 동포의적인 어떤 그런 시각으로 출발한 게 박애사업 이런 것들. 또 민간에서 지역사회에서 이웃들 간에 서로 같은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 지역사회에 대해서 서로 도와주고 하는 거, 인보사업 이런 것들. 또 지난 시간에 영국에서 자선사업 같은 경우, 자선조직협회가 구성이 되고 민간장원에서 이런 사회복지 행동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여러분들 역사에서 봤던 시피 어려운 빈민들을 위해서 나라가 임금이 구율 사업을 하고 또 여러분들 뭐 개라든지 옛날에 불회라든지 뭐 이런 것들 다 모의 사회복지행입니다. 그것은 어느 나라든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왔습니다. 그거를 이제 그거를 보는게 아니라 지금은 이제 우리나라가 이제 일제강점 길을 봤어요.
해방이 되고 정부 수립이 된 이후부터 사회복지의 역사를 살펴보는 거예요. 그래서 우선 1960년대를 한번 보자. 그 이전, 우리가 1945년도에 해방하고 1948년도에 정부가 수립됐죠. 그 사이 45년도에서 48년도 전까지는 미국의 군사 통치를 받았어요. 이것을 미군정이라고 그러죠. 이제 일본도 미국의 군사 통치를 받았죠.
여러분들 매가정 연합군 사령관 사회에서 군사통치를 받은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정부 수립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45년도 이후에 그것은 미 군정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48년도 이후에 정부 수립이 됐을 때만 하더라도 정부가 어려운 사람들
위안한 사회복지 정책이나 사업은 없었다고 봐야 해요. 그래서 그 당시에는 절대적인 어떤 빈곤 상황이었고 한국전쟁이 1950에서 53년 동안 전쟁을 치렀잖아요.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죠. 인적 물적 피해는 많을 수가 없었죠. 특히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전쟁은 모든 사람들한테 고통과 재난을 주지만 특히나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라든지 아동들한테는 아주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많은 전쟁고아들이 발생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전쟁 피해자들, 뭐 많죠. 전쟁 때문에 상해를 입는 것이라든지 이런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외국의 원조기관들, 외국을 외원기관이라고 하는데 외국의 원조기관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와가지고 여기에다가 옛날에 얘기하면 와우
아동복지시설 그래서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의 출발은 사실은 시설의 역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정도로 전쟁 이재민을 대상으로 하는 긴급보호사업이라든지 시설보호라는게 바로 아동복지시설 그러니까 과학원 이런것들이 만들어지고 그런 정도의 사회복지사업이 이루어졌다는거에요. 이승만 정권이 이 당시에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죠.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서 상징성을 갖기는 하지만 역사적 평가는 독재를 했죠 그래서 결국에는 우리가 4.29 혁명을 통해서 이승만은 권자에서 불러갑니다 그러면서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죠 그러고서 우리나라는 그 당시의 내각제 우리가 시행을 했죠 1960년에 사회군혁명령이 4월 19일에 사회군혁명령이 되었고
그래서 이제 소위 국제는 이런 독재 정권을 갖다가 무너뜨리고 우리나라의 근현대사회에서의 민주주의 어떤 역사와 관련해서는 발전 역사와 관련해서 여러분들이 관심이 있으면 찾아보도록 하세요. 알았어요? 네. 그러다가 1961년도에 갑자기 박정희 그 당시 군인이죠. 군인. 계급은 육군 소장입니다. 이 박경희가
군사장면을 일으켰습니다. 소위 군사폭대당. 민주적으로 환경이 아니라 폭력으로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겁니다. 그래서 박정희 정부가 1961년도 5월 16일에 군사폭대당을 일으켰으니까 61년도에서부터 장기 집권을 합니다. 1979년도에 중앙정부부 김재규에게서 피살이 됐죠.
그러면서 박정정권은 끝났죠. 그런데 1961년도부터 79년도 이때 경제적으로는 국가에 의해서 국가 주도에 의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또 한편으로는 민주주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서 국민들의 인권이라든지 자유 이런 것들은 굉장히 폭압적으로 제안을 하는 거죠.
여튼 그런 상황이란다. 그래서 이때 이제 보통 얘기하는 게 선성장 후분배정성이에요. 성장기. 분배정성이라는 거죠. 그러면서 이게 이제 군사정권에 의해 군사 무력으로 정권회가 다 찬탈했기 때문에 정통성이나 정당성이 없죠. 국민들의 뜻에 의해서 민지적인 어떤 선거에 의해서 정권이 정권 권력을 획득한 게 아니기 때문에
이런 정당성의 위험이 취약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정당성 확보수단으로서 또 취약한 정권의 지지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 사회복지개론을 도움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나타난 게 사회보험에서는 산재 또 군인연금, 공무원연금 주로 자기의 물리적인 정권기반이 어디야? 군인이지. 군인연금이에요. 군인들한테 군인형이 제자로에
언제 시행하자. 날 공무원이 형 이런 식으로.
그래서 그 당시에 했던 게 주로 자기의 지지기반이었던 세력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보험제도를 도입을 했고 또 하나는 여러분들 지금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나중에 배우겠습니다만 그게 과거에 생활보호법이었어요. 생활보호제도. 즉 극빙층. 좀 서서 붙겠지요.
생활 복법을 제정해서 생활 복지로를 실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분들 과거 얘기지만 세마흥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세마흥운동. 여러분들 아마 부모님들한테 여쭤보면 잘 알겠습니다. 그것이 빛과 어둠이 존재해요. 세마흥운동이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상당한 기능이 있습니다.
이혈을 했다라고 하는 평가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이것이 관주도 이루어졌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주민의 자주적이고 또 자발성에 입각한 그런 운동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평가 있습니다만 어쨌든 이 생화운동을 실시하면 되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뒤 여기서 나왔다시피 61년도의 생활 보호법
아동복립법 이 아동복립법은 현재 아동복지법이에요 그다음에 재해보호법 군인연구법 산업재해보상보호법 산업재해보상보호법을 우리는 산재보호법이라고 이름을 추였어요 산업재해보상보호법 이런 것들이 이제 정권 초기에 이 득보잡이지 갑자기 이런 제주들을 갖다 그러고서 1970년대 사회복지사업법 이 사회복지사업법은 사회복지 전체의 사업을 위반하는 그런 법이에요
사회복지사업법을 제정했고 1977년도에 와서 의료보험법 하나는 의료보험법이고 하나는 의료보험법이지 의료보험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의 건강보험과 같은 거예요 그런데 지금의 건강보험은 전 국민을 전체 통일적으로 하나의 보험집단으로 해서 전체 국민들을
그 보험 관리를 하나 통으로 다 하는데 적용을 적용 계산을 전체 국민으로 다 하는데 여기서의 의료보험은 조합주의 방식으로 해가지고 사업장별로 또는 직종별로 달리 조각조각 따로 따로 의료보험을 시행했습니다. 자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지금은 의료 보험이 뭐 삼성에 다니든 현대에 다니든 중소기업에 다니든
공주에 살든 서울에 살든 상관없어요 직종에 따라 상관없고 계층에 따라서 다 그래서 하나로 통합이 됐는데 이 통합은 김혜준 정부에 와서 본 겁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대규모 사업장 500인 이상 근로자 노동자가 있는 대규모 사업장이라든지 또 아까 얘기했던 군인이라든지 사립업계 교직원이라든지 공무원이라든지 이런 특정 집단 직업군
이걸 대상으로 해서 의료보험을 실시했습니다. 이걸 조합주의 방식이라고 해요. 각각 조각조각해서 그들끼리만 보호막을 내려오고 자기들끼리 조합주의라는 게 좋은 거예요. 자기들이 서비스를 받는 그런 형태. 그러니까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전국민이라고 했을 때 예를 들어서 영세 자영업자라든지 또는...
기업의 규모가 아주 작은 중소기업이라든지 특히나 농업인 이런사람은 아예 배제가 되어버리죠. 우리가 상식적으로 보면 보험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보험 가장 위험에 노출되거나 위험의 직면에 있는 사람들을 번쩍 사실은 적용을 해야 되잖아. 근데 역설적이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국민이나 공무원이나 사립학교 교직원이나 이런 사람들은 신분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안정된 집단이죠.
대규모 사업장이라고 했을 때 예를 들어서 큰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죠. 그런 애들 보호법. 그러니까 이런 것만 봐도 이 정권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권인지 알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여기서 의료보호라고 하는 것은 아까 얘기했던 생활보호법 생활보호제도의 대상자 중에서 저소득층 보호률을 내지 않고도 조세 세금에 의해서
의료를 서비스를 제공했죠. 의료보험과 의료보험을 나눠서. 그래서 이 당시에 사회복지관련법이 많이 제정되어 있지만 소위 사회복지정책은 큰 발전을 보지 못했다. 물론 일방적으로 그 당시 박정희 정권의 성격 또는 박정희 정권이 사회복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가.
복지정책을 소위 국민들을 통치하기 위한 또는 지배전략으로 복지정책의 수단 아닌가 이렇게도 얘기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 당시에 국민들의 인식 즉 복지에 대한 의식이나 인식이 발약했다 이렇게 보는 것도 있어요. 지금과는 달라. 옛날 60년대 50년대 60년대만 하더라도 국가가
지금 현재 여러분들이 누르고 있는 각종 사회보장제도와 관련된 얘기를 하면 빨갱이고 지구에 있고 그리고 거지나 가난배 가난도 나라 임금도 구제하지 못한다라고 하는 아주 지극히 대인주의적인 어떤 자유방인주의적인 어떤 복지관 복지를 바라보는 관점 이런거에다 박해하겠다는거야 권리 뭐 이런거 없었어요 뭐 팔자 속아
자기 탁, 뭐 하나는 누가 구제해주겠는가 지가 혼나서 그렇지 이런 식인거죠 내가 누구한테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지가 혼난거야 이런 정도의 수준이란거에요 비밀들의 복지인식이나 수준 이런 것도 의식 이런 것도 우리가 복지를 이제 소위 우리가 연구를 할 때 이수인 복지정책 결정 복지정책이 어떻게 어떤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는가 또는 발전되는가 이런걸 다했을 때 다양한 이분들이 있어요
박정희 정권 때 핵심은 사회복지제조가 법령이 만들어지고 생활보험법 사회보험제도가 박정희 정권 때 제정이 돼서 사업정책이 시행됐다. 일부 특정 식단이나 대상에 대해서 전체 국민이 대상으로 하는게 아니고 그렇게 정리가 됐죠. 그 다음에 이제 박정희가 1979년도 10월 26일날
총장하자 죽죠. 손으로 권력을 잡은 사람은 태국. 인과 인보야. 죽은 사람에 대해서 많은 사람을 핍박을 했어요. 어쨌든 그러면 이제 죽었으니까 우리가 이제 민주화. 야 이제 그 뭔가 태각적인 정권에서 야 이제 우리 돈이 내 힘이 없겠구나 했는데 또다시 또 국대차가 일어났어요.
전두환이라는 사람 이랬도 군인 박정희는 경제성장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달라요 보통은 진보라고 비판적인 문제는 공식과상 공식이 치지 않습니다 과가치가 않죠. 어쨌든 비판할 부분은 비판하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가 절대적인 어떤 빈번 국가에서 근대화를 갖다가 있었다는 것은 전반적인 평가야. 그건 뭐 산업화를 입었다고. 우리가 도시와 산업화 근대화 이거는 같은 게 의미가 없다고. 그런데 도시와 공업화 산업화 과정 속에서 피와 눈빛을 수 있는 것. 지금 전라나 삼성 현대 뭐 어디 할 거 없이 대기업들 총수들 거쳐 보는데 이분들 자기 수익의 절반 이상은 다 국민한테 반영해야 돼요. 사실.
그냥 지들기 자라서 된 게 아니야 국민들의 핏단에 의해서 만들어준다
갑자기 옛날 생각하니까 막 여러분들 생각을 했어요. 1960년대 70년대 여러분들 임오나 할아버지 할아버지 있어요. 아래 농촌의 인구가 1960년대까지만 안해도 70년대 초 그때 많이 들어도 80% 이상. 자연적인 농촌사회였죠. 도시어다니고 있지 않죠. 그런데 그 당시 농촌은 굉장히 힘들었어요. 정말 결국 끼리를 못되었다 이거야. 분실할 땐요.
사회가 받으니까 군별 산업화 이거 해야겠다 이게 또 국민들이 의식밥 받았던거에요 어쨌든 그러니까 먹고살기 힘드니까 여러분들 깜짝 놀랄 얘기가 뭐냐면 여기 들어 여기 봐 우리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로부터 엄청난 폭암을 갖다가 받았는데 보통 우리가 그 당시에 일제강점기 때 지주와 소당농과의 관계에요 지주 땅 그러니까 옛날에는 지금은 도시와 산업화 등뿌만 했지만 옛날에는 산업의 근반 산업의 근간이 농업이었단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