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기독교 1
Shared on April 20, 2026
에세이가 내용이거든요. 예수자 제안은 하나의 날 운동이고 무엇인지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에 나타난 전태일 열사의 삶과 죽음을 분석하고 평가하라는 내용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 수업 내용을 그냥 잘 정리를 해두고 에세이에 카피 페이스를 하시면 돼요. 오늘 수업을 잘 정리를 해두면 에세이의 절반을 완성하는 겁니다. 오늘 수업에서 내가 에세이의 절반을 완성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리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다큐멘터리를 보고 혹은 영화를 보고
그걸 이제 분석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되게 쉽죠. 그러니까 여러분 오늘 수업을 그냥 잘 정리를 해주시면 에스앤은 그냥 거져먹기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의 강력한 동기부여를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라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 한번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예수라고 하는 사람을 신으로 생각하는 그런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라고 하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예술을 사상가로 생각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정치인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산악자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또 심지어 유대교에서는 예술을 이단 교주로 생각을 합니다. 유대교에서 갈려 나가서 새로운 기독교라고 하는 종교를 만들었으니까 유대교 입장에서는 기독교가 이단이니까요. 그러면 거기에 있는 최고의 지도자는 교주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을 할 겁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예술을 어떻게 보냐 그리스도라고 옵니다. 그리스도라고 말씀을 드렸죠. 그리스도는 구원자라는 뜻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입니다. 그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뭔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히브리어? 네 그렇죠. 메시아죠. 메시아. 그러니까 이 두 개가 다 구원자라는 뜻이에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를 우리말로 한자로 음역한 게 기독이 되는 기독. 그래서 이제 기독교가 되는 거죠 예 그래서 예수에 대한
이미지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모습은 다양합니다. 보시는 것처럼 여러분 예수의 얼굴도 굉장히 다양하죠. 그리스 정교회의 왼쪽에 있는 그림인데요. 이콘입니다. 어떻습니까? 전형적인 서구인의 모습을 하고 있죠. 그리고 예수 하면 우리가 미디어에서 많이 봤던 이미지가 있죠. 바로 워너셔러만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일 텐데요. 여기 보면 어떻습니까? 전형적인 서구인, 유럽인의 얼굴을 하고 있죠. 감사합니다.
그래서 보시면은 또 그리고 밈 씨가 보건한 예수의 얼굴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밈 씨가 당시에 예수는 중동 지역 팔레스틴 지역에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서구인 유럽이 유럽인의 얼굴은 아닐 거다라고 당연히 판단을 했고 그래서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그렇게 예상을 한 겁니다. 그리고 최근에 인공지능이 보건한 예수의 얼굴입니다. 전형적인 중동에 사는 그런 아랍인의 얼굴을 하고 있죠. 그리고 또 흑인들은요. 또 이런 흑인 예수의 이미지를 갖고서 예수를 상상하기도 합니다. 예수가 어떤 맥락 속에 있느냐에 따라서 예수에 대한 이해와 평가가 달라질 수가 있는 거죠. 우리가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조금 간단하게 살펴봐야 되는데요. 여러분 이스라엘이 시작된 건 이스라엘의 왕조가 시작된 건 BC 11세기입니다. BC 11세기의 왕조가 시작이 되고요.
그러다가 우리나라처럼 남과 북으로 분열하게 됩니다. 남쪽을 유다라고 부르고 북쪽을 이스라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남쪽 유다 북쪽 이스라엘 이렇게 해서 BC 921년에 분열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북쪽 이스라엘이 먼저 멸망을 하게 됩니다. 당시에 고대 근동 지역을 제패했던 아시리아라는 나라에 의해서 멸망을 하게 되고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BC 587년에 남쪽 유다도 멸망을 하게 됩니다. 당시에 아시리아는 바벨론이라고 하는 강대국에 의해서 멸망을 했고 바벨론이 남쪽 유다까지 접진
서두로 가서 다 그쪽을 멸망시켜 버리죠. 그러다가 바벨론인 페르시아가 등장을 하면서 바벨론이 망하게 됩니다. 계속 중동 당시의 고대 중동 지역을 놓고 패권 싸움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페르시아의 속국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그러다가 페르시아가 알렉산더라고 하는 사람에 의해서 멸망을 하게 되죠. 중동의 패권이 계속 바뀌는 겁니다. 알렉산더는 헬레니즘을 신봉으로 하는 사람을 봤습니다. 헬레니즘은 그리스 문화를 말해요. 그리스 문화.
그래서 알렉산더는 그리스 문화가 최고의 문화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전 세계 곳곳에 그리스 문화를 심으려고 했습니다. 자세하게 설명을 드릴 거고요. 그러다가 로마가 등장을 하면서 헬레리움 시대가 끝이 나는 거죠. 로마가 등장했을 때 그때 누가 탄생했느냐 바로 예수가 탄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로마 시대를 잘 이해를 해야지 예수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가르침을 했는지를 좀 이해를 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서 멸망했던 이때부터 계속해서 식민지 생활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아시리아 통치기라고 얘기를 하고요. 아시리아가 통치를 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 시기를 가르쳐서 바벨론 포로기라고 얘기합니다. 특별히 포로기라고 얘기하는 건 뭐냐면은 다른 나라 제국들은 그 나라를 이제 정치적으로 해결합니다. 땅을 점령을 해서 통치를 했다고 한다면 바벨론은 당시 상류층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왔습니다.
포로를 끌고 가서 그들의 정신을 개조를 하는 거죠. 바벨론 문화와 바벨론 종교와 바벨론의 사상을 주입시켜서 사실상 정신적인 식민지로 만들려고 했던 겁니다. 그래서 이때는 통치기라기보다는 포로기, 이스라엘에 있는 사람들을 바벨론 제국으로 데리고 가서 정신적인 교육을 세뇌를 통해서 다시 본국으로 보내서 사실상 정신적으로 바벨론의 속공이 되도록 하는 그런 통치기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바벨론이 멸망을 하고 페르시아 제국이 등장을 하게 되죠. 페르시아는 굉장히 종교 관용 정책을 사용했습니다.
유화 정책을 쓴 거죠. 그러니까 세금만 잘 내면 그 식민지 나라의 종교를 인정을 해줬던 겁니다. 게다가 포로로 데리고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포로를 고국으로 귀환시킵니다. 그래서 페리시아에 대한 이스라엘의 감정이 굉장히 우호적이었어요. 심지어는 나중에는 포로 잡혔던 사람들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는데 돌아가지 않고 페리시아 제국에 나가서 고위 관료가 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이 페르시아는 오방국이었던 거예요. 자신들을 지켜주는 뒷배가 되는 굉장히 우호적인 제국으로 여겼던 겁니다. 그러다가 이제 알렉산더가 등장을 하게 됩니다. 알렉산더가 등장을 하면서 그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이 한 방에 무너지게 되죠.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 알렉산더는 헬레이즘, 그리스 문화를 최고의 문화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여러분 그리스 문화는 엄청난 문화죠. 여러분 지금도 그리스 철학을 우리가 배우잖아요. 그리스의 문화와 문명이 지금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이 알렉산더가의 스승이 누군지 혹시 아십니까?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 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리스죠. 그리스 천하의 어떤 꽃을 피운 사람이 여러분 플라톤 아리스토텔리스잖아요. 그 사람이 제자였던 겁니다. 그래서 도시 곳곳마다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세우고 거기에 헬레니즘 문화를 심어서 헬레니즘 문화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대제국을 동체했던 그런 제국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보면 이 알렉산더 제국의 모습입니다. 엄청나죠. 지금의 유럽지역을 통치를 하게 되는데 이게 너무나 거대한 땅이기 때문에 정치적 통일체로 만들기는 어려워서 문화적 통일체를 만들어버리죠. 그래서 중요한 거점 도시마다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건설하게 되고 거기에 헬레니즘을 심어서 헬레니즘을 통해서 문화적인 통치를 했던 것이죠. 여러분 헬레니즘이라고 하는 문화는 굉장히 강력한 문화고 굉장히 매력적인 문화입니다. 헬레니즘이 들어온 곳마다 기존의 반수 문화들이 다 사라지고 거기에 헬레니즘이 숨겨지게 됐죠.
그래서 이런 맥락 속에서 헬레니즘이 당시에 팔레스틴 지역에도 정착이 되게 된 겁니다. 그러다가 로마 제국이 등장을 하는데 그때 잠깐 해방을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식민 통치를 하는 국가만 바뀌지 식민지 상황은 변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다가 잠깐 알렉산더가 갑자기 죽게 되면서 그 틈을 타서 반역을 일으키고 이스라엘이 독립왕조를 만들게 됩니다. 그게 마카비 왕조예요.
마카비우스가 반란을 일으켜서 독립왕조를 만들게 됩니다. 신민지 통치 기간에 잠깐 독립왕조가 있게 되죠.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건 뭐냐면 독립왕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권력이 필요하잖아요. 그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외세를 끌어들입니다. 그러니까 왕조를 새로 세울 때의 명분은 독립왕조를 만들겠다. 외세를 몰아내긴다는 거였는데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시 외세를 끌어들여요. 그때 끌어들였던 외세가 로마였습니다. 로마는 한 번도 전쟁도 하지 않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팔레스틴 지역, 이스라엘 지역의 제국으로서 통치를 하기 시작을 하는 거죠. 그때 이제
이런 마카비 왕조의 처음에는 명분은 독립왕조를 만드는 거였는데 그 명분을 써버리고 권력투쟁을 하면서 웨셀이 끌어들인 그 모습에 굉장히 실망을 해서 나온 이스라엘 내에 하나의 집단이 있습니다. 그 집단을 바리세파라고 합니다. 여러분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어요. 바리세파. 이들은 굉장히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왕이, 마카비우스 널의 왕조가 어떤 민족의 그 독립을 위해서
왕조를 설립해놓고 다시 왜 세를 끌어들이냐. 나는 너희들이 인정할 수 없다. 우리는 새로운 독립된 나라를 위해서 일종의 독립투쟁을 하겠다. 하면서 나온 것이 바리세파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생각했을 때 이스라엘이 독립할 수 있는 방법은 뭐냐. 무력투쟁이 아니라 신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이 있는데 그 명령을 우리가 잘 지키지 않아서 지금 이런 식민통치를 당하는 징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럼 독립을 하려고 어떻게 되냐. 성서에 있는 그 율법들 법을 완벽하게 다 지켜야 된다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래서 이들은 굉장히 율법주의적 성향이 강합니다. 율법을 고지로대로 그들을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아주 강력한 교조적인 사람들인 거죠. 예수랑 나중에 바리새파 사람들이 부추어야 해요. 왜냐 너희들이 너무 위선적이다. 율법을 지키라고 하면서 율법의 진짜 정신을 왜곡시키고 있구나 하면서 위선적이라고 비판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바리새라고 하는게 지금도 위선자를 나타낼 때 일종의 상징처럼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여러분 지올파크의 크리스천이라는 노래 아시죠? You act like paris이라고 하는 그런 가사가 있어요. You act like paris. 너는 바리세파처럼 행동하는구나. 그런 가사인 거죠. 그 의미가 뭡니까? 그러니까 위선자. 너 위선자라는 거죠. 그러니까 위선자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적인 단어가 바리세입니다. 또 바리세는 원래는 자기는 민족주의적 성향을 위해서 등장했다고 볼 수가 있는 거죠. 이야,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해서 로마가 팔레틴 지역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들어오게 되고 로마의 통치기가 시작이 됩니다. 로마는 문화적으로는 전혀 피 한 방 없어요. 로마는 그리스 문화를 그대로 수용을 했어요. 정치적으로는 대단했지만 특별히 로마의 문화라고 할 게 없습니다. 로마 사람들도 헬레니즘을 굉장히 우월한 문화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실제로 로마 사람들 자기네 언어가 있었던 그게 라틴언데 라틴어로 약간 좀 한국 언어라고 생각을 하고 저 엘리트 사람들은 그리스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리스가 약간 상류층의 언어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그래서 로마의 문화는 그냥 그대로 그리스의 문화에요. 그래서 유벤알리스라고 하는 로마의 시인은 정복당한 자가 정복했다. 그 말이 뭡니까? 그리스 헬레니즘이 로마에 의해서 정복을 당했지만 거꾸로 정신적으로는 헬레니즘의 노마를 점령했다. 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
올림픽 때 레슬링 보시죠. 레슬링이 두 가지 타입이 있는 거 아시죠? 하나는 프리스타일 있고 또 하나 뭐가 있습니까? 그레꼬로만 있어요. 그레꼬로만. 그레꼬로만 스타일이 있습니다. 이건 뭐냐? 그리스 로마 시대 때부터 했던 그 스타일이라는 거예요. 이게 하나의 문화입니다. 그레꼬는 그리스고 로마는 로마죠. 이 하나의 문화로 취급이 됩니다. 그러니까 로마에 독자적인 문화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거죠. 이런 로마 통치기 상황에서 예수가 등장을 하게 되고요. 신약성서가 쓰이게 되고
신약성서가 쓰이게 되고 또 기독교라고 하는 제도적 종교가 로마 통치기 때 등장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를 잘 이해하려면 그리고 예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로마 통치기가 어떤 통치기인지를 좀 이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좀 잘 이해를 해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로마 사회가 어떤 사회이냐. 로마 사회는 아주 견고한 피라미드 사회입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강력한 위계질서가 있는 거죠.
개그질서가 공모했던 사회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밑에는 노예가 있고요. 그다음에 자유인, 자유인은 뭐냐면 노예였다가 훈련하는 사람 자유인입니다. 그다음에 평민이 있고, 그다음에 원로도 있습니다. 세네더 원로죠. 원로. 그리고 익스트레인이라는 기사, 간부 장교 같은 군인 장교가 되겠죠. 그리고 헤메트리시아스 귀족, 제일 위에는 황제가 이렇게 있습니다.
지금도 뭐 이런 계급 구조가 있는거 아니냐 라고 이제 방문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는데 이때 계급 질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뭐냐면요 태생성 입니다 태생성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져 있는거에요 그리고 그 계급은 대대로 자손들에게 전달이 되는거죠 그러니까 자기가 공을 세어 가지고 계급이 한 단계 올라가더라도 자기 자식은 자기가 태어날 때 그 계급을 물려줄 수 밖에 없는겁니다 신분상생이라고 하는게 사실상 거의 없는 그런 사회 구조였다 라고 하는겁니다 여러분 이렇게
신분 사회가 딱 견고하게 서로 잡히고 이런 계급 사이에 어떤 유동성이 없으면 아주 고착한 데 있는 사회면은 얼마 못 갑니다. 반란 일어납니다. 밑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반란을 일으켜서 위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리죠. 그리고 밑에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일단 수가 많고 상부층에 있는 사람들은 적습니다. 당시에 팔레스틴 지역에 그러니까 이스라엘 그 지역에 AD 1세기 예수가 활동했던 AD 1세기의 몫에는 상부층에 있는 사람들은 점점 줄고 있었어요.
우리 하부층의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산부층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부와 권력을 독점했어요. 소수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부를 독점하는 굉장히 어떻게 보면 불안정한 사회였던 거죠. 여러분 지금도 사실은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계층 간에 이런 플렉스콜리티가 없으면 한 사회가 쉽게 무던릴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그래서 계층 간에 활발한 이동이 있어야 되는데 과거 우리나라도 과거에 비해서 지금 그런 계층 간의 이동이 굉장히 어려운 시대가 됐죠. 그렇죠. 여러 가지 부동산이라든지 등등.
그러면서 이제 뭐 훨씬 사회가 이제 위험해졌다 이런 진단들을 하긴 합니다. 근데 이렇게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오랫동안 몇천 년을 이제 로마 제국은 이어 왔거든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냐. 바로 이 제도 때문입니다. 로마의 후원자 제도 때문입니다. 로마가 갖고 있는 굉장히 독특한 제도입니다. 그러니까 로마 사회의 불평등한 계급질서를 가능하게 했던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바로 이 후원자 패트론 클라이언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계급들이
상층부와 하층부의 계급들이 패트론과 클라이언트 관계로 다 이어져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중간계급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면 위의 사람들을 자기 후원자로 모시는 거고요. 밑에 있는 사람들은 클라이언트로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계급이 패트론, 클라이언트, 고리처럼 그렇게 다 연결이 되어 있는 거죠. 이해를 하시겠죠 여러분. 그래서 이 로마에서 권력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생겨나느냐. 보통 여러분 권력은 전쟁을 하면은 땅을 갖고 오잖아요
땅을 많이 점령을 하면 거기서 권력이 생기는 건데 보통 고대상에서 그런데 로마의 독특한 권력 구조는 어떻게 되었느냐 더 많은 클라이언트, 피후험자를 모집을 하면 할수록 거기서 힘이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왜 빠르게 로마제국이 전쟁을 향해서 뻗어나갔느냐 빨리 클라이언트를 모집을 해야 되는 거예요 내가 권력을 가지려면 더 많은 클라이언트를 모집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정복을 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클라이언트들을 모집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클라이언트와 페트론은 보호를 제공을 하죠. 그리고 클라이언트는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리고 칭송을 합니다. 은인이라고요. 당신은 나의 은인이고 당신 때문에 내가 이렇게 잘 살 수 있습니다. 라고 피호원자는 칭송을 해야 돼요. 그러면 페트론은 클라이언트를 보호해야 될 의믐가 생기는 겁니다. 이게 몽환제공에 촘촘하게 이어져 있었던 관계죠. 이 관계를 벗어나서는 살 수가 없는 거예요. 나는 누군가를 칭송하는 클라이언트이고 또 누군가를 보호하는
페트론이기도 한 거죠. 그런 관계 속에서 탄탄한 로마 사회 시스템이 유지가 될 수가 있었던 겁니다. 당연히 페트론과 클라이언트는 비대칭적인 관계입니다. 착취관계에요. 여러분 족복 생각하시면 돼요. 족복이 여러분 어떻습니까? 상인 보호해준다고 하면서 돈을 갈취하잖아요. 그게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 족복들 세계에서 나는 벗어나서 난 독자적으로 하겠다. 그러면 그 시장에서 장사 못하는 거잖아요.
물론 지금은 그런 거 없죠. 과거에 조폭들이 자기 무역이다 하면서 돈을 걷고 이런 게 있었죠.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런데 사실은 착취구조인 거죠. 마찬가지입니다. 페트론과 겉으로 보기에는 클라이언트는 굉장히 상호적인 것 같지만 보호를 제공하고 충성을 맹세하고 사실상 페트론이 클라이언트를 착취하는 구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로마사회는 아주 치열한 경쟁사였습니다. 더 많은 클라이언트들을 모집하기 위해서
물론 계급 간의 경쟁이 아니라 계급 내에서의 경쟁입니다. 귀족들 사이에서의 경쟁인 거예요. 그래서 귀족 내에서도 더 많은 권력을 가진 귀족이 있고 그렇지 못하는 귀족이 있는 거죠. 그래서 더 많은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클라이언트들을 모집하는 경쟁사였습니다. 그걸 밝혀서 명예여정이라고 합니다. 라틴스로 하면 크루스스, 여정이란 뜻이냐 이거 알 수 없고요 크리스스
끊임없이 더 많은 클라이언트를 못해서 권력을 가지려고 하는 문화적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게 바로 명예의 여정인 거죠. 그러니까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중고에 시달렸던 겁니다. 로마의 후원자 제도에 의해서 패트럴에게 착취를 당했죠. 표치를 당하고 또
그런데 종교 내부에 종교적인 시스템이 있었거든요. 그 종교세를 내야 되는 거죠. 그럼 종교에 의해서 또 착취를 당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세금도 내고 종교세도 내고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많은 당시에 팔레스틴 지역에 살고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부러 자유인, 풍미인, 노예가 되는 일들이 빈번하게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굉장히 극심한 고난 속에 살았던 거예요. 여기저기서 착취를 해가니까 우리나라 몽골이나 일제시대 때 그런 시대를 생각하면 되겠죠.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당연히 이 사람들은 이 고난에서 누군가를 날 좀 건져낼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하면 좋겠다. 워리어를 기대를 했던 겁니다. 어떤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 등장을 해서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이 고난과 순환을 조금 끝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로마 제국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독립시켜서 그 옛날 태평성대한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당연히 하게 되겠죠. 히어로의 등장을 원했던 겁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영웅이 있어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영웅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다윗이에요. 들어보셨죠? 다윗과 골리아트 할 때.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냐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위인 하면 세종대왕 이순신이잖아요. 두 분을 합쳐놓은 것 같은 위상을 갖고 있어요. 세종대왕 플러스 이순신이에요. 지혜도 있고 탁월하면서 군사력도 굉장히 강한 장군이었거든요.
그래서 다윗시대 때 이스라엘이 가장 부강했고 대외적으로도 이스라엘의 신인 야외의 위상이 가장 높았던 시절이에요. 이 시절로 돌아가는 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꿈이고 지금도 여러분 이스라엘이 그 꿈을 꾸고 있어요. 다윗이 등장을 해서 결국엔 부강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게 이스라엘 사람들의 꿈입니다. 지금도 꿈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국기에 보면 삼각형 두 개를 포갠 정상형 두 개를 하나는 거꾸로 해서 포갠 이 별이 다윗의 별이에요.
지금도 그들은 다윗과 같은 워려가 등장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네타냐우가 등장했을 때 그 다윗과 우리가 기다리던 그 메시아가 아니냐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했던 거죠.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를 메시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직 메시아가 오지 않았다. 다윗과 같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메시아가 오지 않았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다윗과 같은 사람이 등장하면 우리가 이 곧 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생각이 쭉 퍼지게 되죠. 그런 생각을 뭐라고 하느냐. 그게 바로 메시안이즘입니다. 지금도 여러분 어떤 메시안을 갈망하는 사상을 갖게 해서 메시안이즘이라고 통칭해서 쓰긴 하죠. 그래서 이 메시안이즘. 그래서 강력한 군사적인 힘을 가진 워리어가 등장을 해서 이 고통을 끝내줄 수 있는 메시아를 기다렸고 이 절정이, 메시아니즘의 절정이 AD 1세기
예수가 활동했던 그 세계의 절정에 이릅니다. 그 말은 거꾸로 말해서 그 시대가 가장 힘든 시대였다라고 하는 것을 의미를 하는 것이죠. 그때 예수가 등장을 하는 거예요. 예수가 기적도 일으키고 너무나 지혜롭게 잘 가르치고 보니까 저 사람은 그 다윗과 같은 그런 존재인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너의 시야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저 예수가 이제 기적을 일으켜서 군대를 만들고
그래서 로마 제국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통치할 왕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가 처음에 등장했을 때 정치적인 지도자, 정치적인 왕이 될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지금 같은 네타냐고 같은 그런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왕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런데 예수의 행적이 전혀 다른 거예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겁니다. 예수가 가르쳤던 그 가르침 행시에는 뭐가 있었냐면 하나님 나라가 있었습니다. 하행당.
하나님 나라를 킹덤옥가 이라고 하죠.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기 시작한 겁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예수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얘기를 하니까 이 하나님 나라가 강력한 군사력에 기반한 아주 파워풀한 나라라고 생각을 했던 거예요. 독립국가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사람들이 이제 예수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얘기를 하니까 궁금한 겁니다. 크게 두 가지가 궁금한 거예요. 첫 번째는 언제 when 그 다음에 what 뭐냐는 거죠. 하나님 나라가 도대체 언제 이들은 지금 새로운 시대가 오기를 오며불만 기다리고 있는 거죠 민중들은
그래서 예수가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은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건 어떻게 오느냐 이미 왔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이미 하나님 나라가 너희들 가운데 있다.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또 동시에 뭐라고 얘기를 하느냐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앞으로 오게 될 거다라고 갑자기 어느 순간 이 고통이 정점에 달했을 때 갑자기 도둑처럼 오게 될 거다라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형식 논리학적으로 이 말이 모순이죠. 이미 왔다라고 얘기를 하면서도 또 아직 오지 않았다는 거예요
굉장히 애매한 말을 던집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은 이런 이미지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여러분 그 베이커에 잉크를 한 방울 딱 떨어뜨리면 어떻습니까? 잉크가 완전히 다 떨어졌죠. 그런데 퍼졌으니까 아직 안 퍼졌으니까. 퍼지는 과정이 있는 것이잖아요. 그 상태를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하나의 나라라고 하는 것이 이미 왔는데 아직 다 퍼지지 않은 상태, 퍼져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 긴 양을 이제 얘기를 한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것이 이제 완전하게 도래를 했는데 그것이 아직 다 완전히 퍼지지 않은 겁니다. 퍼져가고 있는 상황 속에 있는 거죠. 그럼 도대체 하나님 나라라고 하는 게 뭐냐. 새로운 시대인 거예요. 한마디로 예수가 제안했던 것은 새로운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다행히 하나님 나라는 강력한 군사적 힘에 기반한 나라라고 생각을 했는데 예수가 느닷없이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겨자씨 같다고요
하나님 나라가 겨자씨 같은 거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가 겨자씨 같다라고 겨자씨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볼품없는 것을 가리키는 과정적인 표현이거든요. 우리나라도 여러분 굉장히 볼품없는 것을 나타낼 때 좁쌀같다, 직꼬리만하다 이런 표현을 쓰잖아요. 좁쌀같다라는 그런 표현처럼 이스라엘에서는 겨자씨같다, 굉장히 작고 무작할 것 없고 초라한 것을 겨자씨 같다라고 그렇게 얘기를 할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가 뭐냐고 사람들은 강력한 군사력을 기대를 하고 있는데
보잘것없는 촛살같은거야? 직군이 말한거야? 이렇게 얘기를 한거죠. 사람들이 되게 어리둥절했던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이 왜 하나의 나라를 겨자시같다라고 얘기를 했을까? 예수는 새로운 나라를 원했지만 그 새로운 나라를 이루는 기반에 군사적 힘을 기댔던게 아닙니다. 군사적인 힘을 통한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려고 했던게 아니에요. 여러분은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거든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지금 만약에 굉장히 어려운 시대로 여러분이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해봐요.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싶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만들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쉽게 군인을 모아서 강력한 힘을 추스른 다음에 그 힘을 바탕으로 해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거다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예수는 그걸 통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예수가 제안을 했다는 게 뭐냐? 시, 겨자씨입니다. 마치 시처럼 보자의 것 없는 씨앗과도 같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씨앗은 어떻습니까? 씨앗은 썩어요. 썩고 나서 사라집니다.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거죠. 그러니까 무언가를 포기하고 버림으로서만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변화가 움틀 수 있다 라고 하는 것을 예수는 보여주려고 했던 겁니다. 굉장히 여러분 조금 이해하기 힘든 설명일 수도 있을 텐데 여러분 성경에 보면 예수는 권세를 가진 사람이라고 반복해서 얘기합니다. 권세를 가진 사람. 그리스어로는 이걸 엑소시아 라고 합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왜 그럴까요? 아무튼 중요한건 아니고 중요한건 아닌데 권세를 가진 자라고 석터는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권세를 가지고서 군림을 한 것이 아니라 권세를 포기했다 예수는 신인데 그 신의 권세를 누린 것이 아니라 권세를 포기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권세를 권세를 나눠줬다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됐다 안 됐다 했잖아요
당시에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이 있었어요. 12명의 제자들이 있었는데 그 제자들은 예수가 당연히 정치적 왕이 될 거라고 기대를 했던 겁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를 따랐던 이유는 뭐냐. 예수가 왕이 되면 나중에 권력 한 자리 얻으려고 예수를 따라다녔던 거예요. 예수를 따라다니면서도 예수에게 배우면서도 예수의 권세가 군림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자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의 권세에 빌붙어서 자기도 권세를 누리면서 좀 떵떵거리면서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예수를 따랐던 거예요. 예수의 제자들이.
그래서 어느 날 제자들이 서로 다툼이 있었던 겁니다. 다툼이 있었던 겁니다. 예수가 왕이 되면 12명이니까 내가 2인자라겠다. 그러니까 2인자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 권력을 가지고 2인자 다툼을 했던 겁니다. 그렇게 다투고 있으니까 예수가 제자들에게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군 민족들의 왕들은 백성들을 위해 군림한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은인으로 행세한다.
너희는 그렇지 않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하고 또 다스리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과 같이 되어야 된다. 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이건 당시에 있었던 페트론 클라이언트 시스템을 역도하는 겁니다. 그렇죠? 권세를 부린 자는 의인으로 행사한다는 것은 전형적인 페트론이 하는 행세인 거죠. 그런데 너희들이 페트론이 되기 위해서 더 많은 클라이언트들을 모으기 위해서 그러니까 로마의 사회 질서를 따라서 권세를 갖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요.
그걸로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가 했던 얘기는 뭐가 뭐냐면 너희는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가장 어린 사람과 같이 되어야 된다.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라고 그렇게 제자들에게 예수가 얘기를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그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영되었던 힘의 관계에 대해서 예수는 이의를 제기하는 거예요. 당시에는 힘은 끊임없이 더 많은 클라이언트를 모집함으로써 더 모음으로써 힘을 갖는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예수는 거꾸로
그 힘을 포기할 때만 새로운 사회질서가 오게 된다고 얘기를 했던 겁니다.
로마 사이가 기본적으로 피라미드 사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로마 사이가 피라미드 사이라고 말씀. 여러분 어떻습니까? 역사 속에서 무산 혁명들이 있었습니다. 혁명들. 그 혁명들은 밑에 있는 사람들이 위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그리고 자기가 그 위에 올라가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뭐 플로레타리아 혁명이라든지 프랑스 혁명이라든지 무산 인류에서 역사가 어떻습니까? 밑에 있는 사람들이 올라가서 위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리는 거예요. 권력을 힘을 기방으로 해서 사회 질서를 정복시키는 거죠.
그러면 여러분 이 피라미드가 없어집니다. 아니죠. 그러니까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위계만 바뀐거지 위아래만 바뀐거지 이 피라미드는 그대로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예수가 원했던 새로운 사회 질서는 뭐냐. 이 피라미드를 해체하는 겁니다. 이 피라미드 자체를 없애는 거예요. 그러려면 유일한 방법은 뭐냐. 힘있는 사람이 권위있는 사람이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거예요. 자기가 갖고 있는 권력과 권세에 엑소시아를 포기해야지만 그래서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에 있는 사람을 섬겨야지만
그래야지만 이 위계 질서가 해체되고 평등한 세상이 도래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완전히 새로운 질서를 예수를 꿈꿨다고 볼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역사 속에서 우수한 혁명이 있었지만 그 혁명으로는 새로운 사회 질서가 변화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진정한 새로운 질서는 끊임없이 자기가 갖고 있는 권세를 포기할 때만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너무 좀 이상적이다
예수의 이 하나님 나라 온론이 너무 이상적이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역사 속에서 보면 실제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낸 중요한 운동들은 어떤 힘을 감어서 혁명을 일으켜서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사 속에서 그런 거 많이 보잖아요. 프로레타리아 혁명이 정말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네요. 또 다른 기득권을 만들고 또 다른 권력을 만들었잖아요. 역사 속에서 보면 작은 예이지만 마르틴 루터 킹 복사 아시죠 여러분?
1960년대에 흑인해방운동을 합니다. 그때 어떻게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었습니까? 버스 안타기 운동이었어요. 버스를 탈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그 권한을 포기하면서 비폭력적으로 저항을 한 거죠. 그 저항을 통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졌던 겁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2차 망정식으로 부른 겁니다. 기존 체제에 대해서 저항을 해야 돼요. 기존 사회 질서에 대해서 저항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비폭력, 다시 말해서 사랑의 방식으로 이것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운동의 핵심적인 것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려면 다행히 기존 사회에 대해서 비판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리고 그 비판을 통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 때 피를 흘리지 않는 방식으로 폭력을 불러오지 않는 방식으로 다시 말해서 사랑과 용서의 방식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를 하기 위해서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운동을 제안한 거고 그건 끊임없이 힘이 있는 사람들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고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된다라고 예수는 그렇게 얘기를 했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는 성김의 왕이라고 스스로 얘기합니다. 나는 성기로 왔는데 왕으로 왔는데 성기로 왔다는 거예요. 여러분 되게 이상한 말이에요. 성김의 왕이라고 하는 거는. 예수가 자기 자신을 아이덴티파이 하면서 뭐라고 얘기했냐면 성김의 왕이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왕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군림하는 거잖아요. 성김을 받는 사람이잖아요. 성기는 사람이 아닌 거예요. 그렇죠. 이건 마치 둥근 사각형 같은 거예요. 정직한 거짓말쟁이. 평형 모순이에요. 수식어와 수식을 받는 사이에 모순적 관계가 있는 거죠.
굉장히 이상한 말을 예수가 하고 다닌 겁니다. 여러분 지금이 기독교에서는 사순전이라고 하는 절입니다. 사순전은 뭐냐면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이스라엘의 종심지 그곳으로 가는 날 예수의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에요.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가 십자가 처형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고서 예루살렘이라고 하는 곳을 갑니다. 예방사님이라고 하는 곳을 가는데 사람들은
예수가 예루살렘에 온다는 얘기를 듣고서 아 이제 예수가 왕이 되기 위해서 오려나 보나 그렇게 생각했던 거예요. 예수가 활동했던 곳은 여기가 팔레스틴, 이스라엘 지역이라고 하면 갈릴리라고 하는 북쪽이었거든요. 예루살렘은 남쪽에 있습니다. 남쪽에 있습니다. 갈릴리에서 활동하던 예수가 어느 날 갑자기 예루살렘으로 오는 거예요. 예루살렘으로 온다는 얘기를 듣고 사람들이 이제 아 이제 드디어 예수가 정치적인 왕이 되기 위해서 다입과 같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왕이 되기 위해서 오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을 하는 거예요. 입성을 하는데 이제 나귀를 타고 옵니다. 나귀. 여러분 사실 왕이 행차를 하면 뭘 타야 됩니까? 말을 타야 됩니까? 군말을 타야 됩니까? 그렇죠 군말을 타야 되는데 예수는 나귀를 타요. 당시에 나귀라고 하는 게 굉장히 상징적이었거든요. 나귀는 노예를 상징하는 거예요. 나귀는 이제 뭐 거기에 짐을 수 있거나 뭐 이렇게 해서 마치 노예와 같은 어떤 그런 이미지로 여겨진 그런 동물이었거든요. 근데 그냥 나귀가 아니라 어린 나귀예요. 여러분 인터넷에서 어린 나귀라는 건 찾으면 굉장히 작습니다.
낙은 성인이 어린 나귀를 타면 어떤 모습이 연출될까요? 지금 이건 성화기 때문에 예수를 그렇게 그리지 못했지만 마치 멋있는 군바를 타고 나온 것처럼 그렇게 이미지화했지만 성경의 진술을 보면 예수가 어린 나귀를 탄대요. 조그만 나귀 같은 걸 타고 이게 탄 건지 아니면 끌고 오는 건지 모를 정도로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된 거죠. 마치 그런 겁니다. 카프레인터 하는 줄 알고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멋진 스포츠카나 지프차 이런 게 아니라 무슨 애들 타는 똥뽕이 같은 걸 타고 등차한 거 그런 거랑 비슷한 거예요.
굉장히 우스갖한 모습으로 등장한 거죠. 그러니까 굉장히 의도된 예수의 연출이었어요. 내가 너희들이 기대하는 그런 강력한 월요가 아니다. 나는 왕이긴 하지만 오히려 이 나귀처럼 사람들을 숨기기 위해서 온 것이다. 라고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던 겁니다. 실제로 예수가 로마 군인에 의해서 잡힙니다. 사람들은 기대하는 게 뭐냐. 그래서 로마 군대를 다 물리치고 로마 군인을 다 쫓아내고 전쟁에서 승리를 해서 왕이 되길 기대하고 있는데
순순히 잡혀있는거에요. 로마 군인이 때리면 그대로 다 맞는겁니다. 그리고 십자가 처형까지 순순히 다닿아낸거에요. 그러니까 사람들의 기대가 확 꺾이죠. 우리가 기대하던 그 메시아가 아니구나. 우리가 말했던 그 메시아가 아니구나. 사람들의 기대와는 너무나 다르게 예수가 행동을 하는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갑자기 저 사람은 메시아가 아니다. 라고 돌변을 해요. 메시아라고 환영했던 예루살렘의 사람들이 아 저 사람은 메시아가 아니니까 내가 십자가에 처형시켜라. 라고 갑자기 돌변합니다. 예수가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통해서 진정한 하나님 나라는 반대의 행동을 통해서
가입과 같은 워리어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힘 있는 사람들이 자기의 권세를 포기하고 권력을 포기함으로서만 새로운 사회 질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겁니다. 그게 여러분 예수가 말했던 하나님 나라의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요약으로 하면 그렇습니다. 로마 사회는 어떻습니까? 끊임없이 더 많은 권력을 쟁취하는 사회였어요. 그걸 위해서 끊임없이 경쟁하는 사회였습니다. 그 경쟁을 가리켜서 명예의 여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해계문의 그 정점에는 누가 있습니까? 로마 황제 권력이 있습니다.
이게 AD 1세기의 사회적 분위기였어요. 이걸 cursors honor 라고 합니다. 반면에 예수는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는 운동이었죠. 권력을 더 많이 장치고 클라이언트를 모집해서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는 운동이라고 한다면 예수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끊임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운동입니다. 해계본의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갖고 있는 권세를 아랫사람들한테 안아줘야 되는 거예요.
그걸 통해서만 새로운 사회질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여러분 제가 지난주에 한국의 초기 기독교 얘기를 하면서 그 엘리트들이 그렇잖아요. 한국의 초기 성교사는 대단한 엘리트들인데 그들이 백점을 치료하고 고아를 가르쳤단 말이에요. 그게 그냥 그렇게 한 게 아니라 기독교의 아주 핵심적인 가르침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겁니다. 자신이 권세를 갖고 있지만 그 권세를 갖고서 자기의 기득권을 누리는데 사용한 게 아니라
그걸 통해서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그 사람들을 돌보고 섬기는 데 사용한 거예요. 그걸 통해서만 새로운 사회 질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예수가 가르쳤고 그 예수의 가르침을 선교사들이 실천한 거죠. 그래서 우리 사회가 사실상 또 그런 근대화를 이루는 중요한 어떤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운동은 권세를 향유하고 권세를 모아서 그것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권세를 포기함으로써 권세를 나눠주고 오히려 권세 있는 자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드는 것 그것만이 진정한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라고 예수가 설파하고 가르쳤던 것이죠. 그래서 이 명의의 여정과 대비된 것이 겸손의 여정. 라틴언은 "Crossed for the room"이라고 합니다. 이건 알 필요까지는 없고 영어는 "Crossed of the ignominis"라고 하는데 겸손의 여정입니다. AD 1세기에 이 두 세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죠. 로마의 세계관과 예수가 제시했던 하나님 나라의 세계관, 이 두 세계관이 AD 1세기에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두세개가 대비가 되는 것이죠. 어떤 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겠는가. 이 질문을 여러분들에게 한번 던져 보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가 대한 방법이 너무 아이디어로 하다. 실제로 이게 돼. 그냥 빨리 힘을 모아서 힘내 힘으로. 지금 여러분 세계 질서의 역동성을 한번 보세요. 지금 왜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그렇게 공격하고 맞대를 합니까.
힘을 통해서만 세계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 이데올로기가 있는거에요. 그런데 예수는 그걸 거부했다는거죠. 그걸 통해선 세계의 평화가 없어요. 또 다른 공격선을 만들어낼 뿐인거죠. 또 다른 전쟁을 만들어내고. 그래서 권태있는 사람이 자기의 권력을 포기할때만 그리고 끊임없이 아래로 내려갈 때만. 이건 그리스로는 케노시스라고 합니다. 자기 비용. 이 자기 비용을 통해서만 기사로운 사회질서가 만들어질 수 있다 라고 그렇게 주장을 한겁니다.
질문 있으신가요? 질문 그러면 잠깐 쉬었다가 우리 11시 5분에 11시 5분에 수업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두번 가지 마시고 다 들어오세요 네